돌기해삼
海蔘 trepang 또는 sea slug
서 휴
울지 마
너무 흥분하는 거 아냐
세상은 배신당하며 사는 거야
아니야.
수없는 배신이 우리를 감싸고 있어
아니야.
믿는다는 사람에게 모든 걸 마 끼면
거기서부터 시작 되는 거야
배신하며 사는 자들은
언제나 배신을 일삼지
피나는 노력 없이
필요한 걸 쉽게 얻기 위한 방법이야
우선당장 필요한 걸 취하려
인연을 끊어가며 배신을 하는 거야
오직하면 배신하겠어.
물어보면 변명은 참 잘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미안하고 죽을죄를 졌다고
그러면서
배신당한 몫을 포기해주길 바라지
아니야.
그자는 배신하며 살아가는 자야
마음 뿌리가 배신에서 시작되고 있어
어찌 보면 우리모습은
바다 속의 해삼만도 못한 것 같아
바다에는 돌기해삼이란 게 있어
그냥 해삼이라 부르지
몸에 뼈대가 없어 연체동물이면서
등에는 뾰족한 돌기들이
아카시아 가시처럼 찌를 듯 솟아나
돌기해삼이라 이름 지었겠지
해삼은 잡혀 먹힐 걸 대비하여
뱃속을 들어내며 산다지.
느려터진 해삼을 잡아먹으려 다가오면
느려 터져 도망갈 수도 없는
해삼이 다급해지면
항문을 치켜들며
속에든 것들을 모두 쏟아내지
속에든 것들이란
자기 몸에 들어있는 내장을 말하지
알 수 없는 일이야
뱃속의 내장을 다 쏟아낸다니
노란 색깔에 입맛이 당겨
노란 내장을 맛있게 먹고 있는 사이
천천히 도망을 가버리지
위급한 상황은 빠져나왔으나
내장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
일주일 정도 지나면 신기하게도
새로운 내장이 생겨나 새로운 몸이 되지
해삼을 배를 갈라 알을 쏟아내고
내장을 말끔히 꺼낸 후 지켜보면
며칠 두어도 살아있어요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갈라진 배가 합해지기 시작하고
그러고 나면 몸이 뒤틀리며
입이 항문이 되기도 하고
항문이 입이 되기도 하며
몸 안에는 새로운 내장이 생겨나고
다시 해삼의 원 모습이 되어있지
이렇게 모든 걸 다 주고도
다시 살아나는 동물이 있을까
배신하고 해삼이 무슨 관계야
비약이 잘못되었나.
그냥 다 주었다고 생각해
아니야. 그건 배신자가 바라는 거야
해삼처럼 포기하고 가라는 거야 뭐야
문제는 지금부터야
다 날려 아무것도 없잖아
다 날린 지금부터가 문제지
배신의 아픈 상처를 안고
맨주먹으로 시작해야 하는 거
안타 갚지.
한동안 고생하게 되겠어.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낼 때까지
많은 고생을 하게 될 거야
그래 그러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열심히 살아가면 보는 눈들이 있어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야
배신을 당하여 고생하다보면
참아내며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친구의 좋은 됨됨이를 보며
좋은 인연을 맺는 기회가 찾아올 거야
배신을 당하는 건
더 좋은 일을 만나기 위한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인지도 몰라
성공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겪으며 큰 사업을 일군 거겠지
때로는 살아감에
나를 베껴먹으려 달려들면
해삼처럼 미리 대비하며 살아갈 수 없을까
말도 안 되는 예기 하지 마
정정 당당히 싸워 이겨야지
싸워서 이겨내는 게 삶이야
그래 맞는 말이야
용기를 내어 이겨내야지
자 한잔해
남은 해삼 마져먹자
이 돌기해삼 좀 봐
지능도 아이큐도 없는 것이
기억력을 간직할 수도 없는 것이
뱃속의 모든 걸 다주고도
다시 살아낸다니 어디서 배운 걸까
이놈의 다시 살아내는 힘
이놈의 신비한 복원력을 높이 사
이놈을 바다의 삼蔘이라 부르나
돌기해삼 海蔘
수심 5m에서 500m 사이의 암초 표면이나
자갈이나 개흙이나 모래 바닥이나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해삼
다 자라면 보통 20cm 정도이며
원통처럼 생긴 몸은 뒤끝이 약간 갸름하며
점액이 피부로 나와 미끈거리며
먹고 살아가는 환경에 맞추어
황갈색이나 적갈색이나 흑갈색이 되지요
배 쪽 표면에 움츠렸다 폈다하는 세관細管을
관족管足이라 부르며 슬며시 기어가지요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단상
돌기해삼
서길수
추천 1
조회 179
17.08.02 11:4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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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같은 수필같은 해삼글 잘 감상하였어요
이런사람 저런사람 다 만나게 되는것이 인생인가봐요
해삼.. 저는 먹는거에만 관심을 두었는데 ㅋ
적갈색 홍삼을 더 고급으로 쳐주지만 맛으로 구별을 못하겠더군요
고노와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안주!!
요즘 일식집들 해삼내장을 종지에 대충 덜어서 내옵니다, 모양새도 어설프고 쓴맛이 그대로 입니다
해삼내장을 얇은채에 손으로 여러번 가는걸 반복해서 부르럽게 만든다음..
생메추리알노란자 정종 꿀 소금 아주조금 가미하여 내놓아야 맛도 모양새도 제격입니다
이런 고노와다에 회를 찍어 먹으면 정말 술맛 납니다 ㅋ
해삼에 대해 새삼 알게 되네요
배신으로 실의에 빠진 분을
위로하는 건지
아님 자신한테 하며 다짐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쓴 때문인지 설득력이 있는거 같아요
진심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아 해삼이 바다의삼이라고
올여름 몇번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저절로 자기를 살려내는
기술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정말 신비한자연의 세계네요.
해삼의 내장은 비교적 작고 깨긋한 편이죠.
그걸 다 쏫아내고 다시 생산한다니...
앞으로 해삼을 먹으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네요. ^*^
해삼한테도 그런재주가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