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영향력이 크지만 동시에 불신도 많이 받는 언론이다. 올해 기자협회가 1천 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한 ‘가장 불신하는 언론사가 어디냐’고 묻는 설문조사에서, 42%의 기자들이 조선일보를 꼽아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조선일보가 무리한 기사를 쓰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4대강 녹조 문제에 대한 보도는 무리의 정도가 질과 양 두 측면에서 모두 심각하다.
조선일보는 지난 10월 5일부터 11월 11일까지 한 달 남짓 동안 12건의 녹조 관련 기사를 실었는데, 이 기사들이 대부분 한 녹조 연구자의 연구 결과를 보도해온 대구MBC에 대한 비난 기사였다. 조선일보는 녹조 연구자와 대구MBC가 ‘녹조 괴담'을 퍼트린다고 비난했다. 그 비난은 이주환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에 의해 증폭됐고, 4대강 찬성단체 회원들이 녹조 연구자들과 언론인, 환경단체 활동가를 고발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문제는 조선일보 기사의 상당수가 편향된 이념 잣대로 쓰인 왜곡 기사였을 뿐 아니라 일부는 아예 사실을 날조한 기사였다는 점이다.
2022년 7월 대구MBC는 대구시 정수장에서 정수된 물을 남세균(녹조) 독소 전문가인 이승준 부경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미생물전공)에게 맡겨 분석했다. 그 결과 맹독성 남세균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최고 0.28PPB 검출됐다. 0.28PPB는 미국의 6세 이하 아동 기준치인 0.3PPB에 근접하는 수치였고, 이로 인해 수돗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환경부는 수돗물에서 남세균 독소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해왔기 때문에 논란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대구MBC의 보도를 괴담으로 보도했다. 정수한 물에서는 남세균 독소가 나올 수 없다고 규정한 뒤 이승준 교수의 실험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돗물 시료를 대구MBC가 전달했다는 점을 들어 시료의 객관성을 확보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료를 떠서 준 것은 대구시 상수도본부였고 대구MBC는 시료를 받아 이승준 교수와 사전에 약속한 방법대로 안전하게 전달했을 뿐이었다. 시료를 정수장에서 떠온 것은 당연히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조선일보의 보도 후 대구MBC 심병철 기자가 오보를 정정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박상현 조선일보 환경담당 기자는 이를 거부했다. 이승준 교수가 대구MBC가 전달했다고 했으니 기사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다. 기사가 진실이 아니어도 취재원이 한 말을 쓴 것이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박상현 기자의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대구MBC는 방송으로 보도한 기사를 인터넷 기사로 만들어 올렸는데, 이 때 대구시 상수도본부가 현미경 관찰을 하는 장면이 3장의 사진 중 하나로 들어갔다. 사진에 ‘대구시 상수도본부가 분석하는 장면'이라는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이승준 교수의 분석 장면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었다. 대구MBC는 며칠 뒤 해당 사진을 기사에서 삭제했다. 그런데 사진이 삭제되기 전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이 그 사진을 캡처해서 환경과학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환경과학원은 사진만을 보고 ‘남세균이 아니라 녹조류'라고 답변했다.
이주환 의원실로부터 환경과학원의 답변을 입수한 조선일보 기자는 이 교수의 입장을 확인했다. 이 교수는 대구MBC 기사 링크의 썸네일에 있는 사진을 보고 ‘저희 쪽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조선일보 기자는 이 교수가 환경과학원이 분석한 사진, 즉 MBC가 분석한 대구 상수도본부 분석 사진을 보고 한 답변이라고 착각한다. 이 교수가 녹조류를 남세균이라고 잘못 분석했다는 대형 오보가 잉태된 순간이다.
조선일보 기자는 이승준 교수에 이어 대구MBC의 심병철 기자를 취재했다. 심병철 기자는 박상현 기자가 보내 온 사진을 보고 ‘그건 우리 것이 아니고 상수도본부 검사 장면'이라고 답변했다. 심지어 그날 대구MBC는 대구 상수도본부에서 현미경 관찰을 하는 상황이 담긴 뉴스도 방송을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기자는 자신의 착각에 의해 잘못 이해된 이승준 교수의 답변만을 인용했고, 이를 바로잡은 대구MBC의 답변은 인용하지 않았다.
국정감사 하루 전인 10월 20일 조선일보는 “국립환경과학원, MBC 무독성 물질을 남세균으로 둔갑…수돗물 공포감 조성” 기사를 보도했다. 국가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이 MBC라는 언론사가 무독성 물질을 남세균으로 둔갑시켜 수돗물 공포감을 조성한다고 선포했다는 무시무시한 기사였다. 조선일보가 그동안 여러 차례 그랬듯이 엄연히 다른 법인인 대구MBC를 그냥 MBC라고 표현하는 수법으로 범 여권의 ‘MBC 때리기'에 편승한 것은 '덤'이다.
10월 21일 국정감사가 시작되자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수돗물 필터에서 나온 것은 남세균이 아니라고 확언했다. 국민의힘 측은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다. 그러나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가 시작되자 국민의힘과 환경부의 확신은 간단히 무너졌다. 문제의 사진이 이승준 교수가 분석한 사진이 아니라 대구MBC가 대구 상수도본부의 현미경 관찰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환경과학원장은 잘못된 사진을 토대로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도대체 왜 조선일보는 이런 뜬금없는 주장을 하며 사실상 날조된 기사를 쓴 것일까? 이 기사 보도 후에도 대구MBC 심병철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에게 항의하자 “이주환 의원실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는 기사에 쓴 사실이 팩트가 아니어도 '이주환 의원실이 말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사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거짓 기사를 쓰고도 취재원이 한 말을 옮긴 것만으로 면책이 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는 대구MBC 기자가 ‘악의적 오보'라며 질타하자 해명 대신 악담을 했다. “악의적 오보는 수돗물 안전에 공포감을 심어주는 광우병 사태 시즌2로 MBC에서 자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 “대구MBC 보도가 4대강 보 해체라는 좌파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4대강 보 해체 주장의 근거가 되는 보도는 사실을 날조해 비난해도 괜찮다는 뜻일까?
조선일보의 허위, 왜곡, 날조 보도 퍼레이드는 4대강국민연합이라는 4대강 찬성 단체 회원들이 이승준 교수 등 4대강 녹조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을 고발했다는 기사로 이어졌다. 조선일보로서는 자사 기사가 마침내 4대강 반대운동을 해온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데 기여했다고 자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 과정에서 숱한 취재 윤리 위반을 저질렀다.
박상현 기자가 물의를 빚은 기사를 쓴 이력이 다수 있음에도 여전히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지닌 기사를 써내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일보 편집 시스템 전반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토록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문제가 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조선일보가 대한민국 영향력 1위 신문이라는 것이 진정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