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포 연안으로
구월 첫 주 화요일이다. 연일 구름이 끼고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아침 출근 시간대는 비가 그쳐주었다. 남들보다 한 시간은 이른 여섯 시 조금 지나 현관을 나섰다. 우산을 준비하고 비닐봉지에 등산바지를 하나 더 챙겼다. 오후에 비가 쏟아지면 양복바지와 바꿔 입고 퇴근하기 위해서다. 비는 금방 쏟아지지 않아 평소처럼 연사 들녘을 걸어 연초천 산책로를 따라 걸어 학교에 왔다.
낮에는 하늘만 잔뜩 흐리기만 하고 비는 참아주었다. 퇴근해 와실로 들어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연사삼거리로 나가 능포로 가는 11번 버스를 탔다. 송정고개를 넘어 옥포에서 대우조선소를 돌아 두모고개를 넘으니 장승포였다. 일 주 전 맥주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퇴근 후 행사장을 찾은 적 있었다. 그날 저녁 비가 제법 내리는 속에 주최 측에선 행사를 진행하느라 애를 먹었다.
내가 머무는 연초 연사에서 고현 북동부로 가는 버스 가운데 능포행 10번과 11번이 가장 잦은 편이다. 지난 봄날 능포에서 양지암 등대와 조각공원을 걸었던 적 있다. 장마 기간인 칠월 어느 날은 옥수동에서 대우조선소를 돌아 능포 수변공원으로도 나갔다. 한여름에 장승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조각공원을 넘어 능포로 내려서기도 했다. 산행이 아닌 산책 코스가 여러 갈래였다.
내가 지난번 걸었던 길은 장승포 시민들이 더러 찾는 곳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는 데도 있었다. 장승포 포구에서 해안도로는 산책객이 더러 보였다. 그 길을 다시 걸으려고 장승포 수협 앞에서 내렸다. 포구엔 장어통발 어선들은 조업을 나가고 한 척도 보이질 않았다. 장승포는 규모가 큰 어항으로 장어와 멸치를 잡는 어선들이 출항하는 전진 기지였다. 멸치를 잡아온 어선이 있었다.
수협과 인접한 어항에선 멸치잡이 어선이 모항으로 귀항해 생멸치를 부려놓고 있었다. 워낙 많은 멸치라 굴삭기로 퍼 올려 컨테이너 박스로 옮겨 놓았다. 그걸 지게차가 떠받쳐 대형 트럭에 올림은 진풍경이었다. 인근 냉동 창고로 실어 나르려는지, 더 먼 곳으로 옮겨 삶아 건져 마른멸치로 만들려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른 곳에선 구릿빛 얼굴의 어부들이 그물을 사리고 있었다.
포구가 끝난 언덕 비치호텔을 돌아 비탈을 따라 오르니 흐린 하늘이지만 탁 트인 바다가 드러났다. 포구 바깥엔 동백섬 지심도가 드러누워 있었다. 바다 위에는 어로 작업을 하는 어선들이 가끔 보였다. 모항으로 만선 귀항을 하는 멸치잡이 배들은 발동기 소리를 내면서 물살을 가르며 헤쳐오고 있었다. 바다 위는 부산 신항으로 드나드는 컨테이너 선박과 가스 운반선도 보였다.
장승포에 사는 사람들에게 해안 산책로가 있음은 축복이었다. 바다가 보이고 공기가 깨끗한 곳이었다. 살고 있는 집과는 조금 떨어지긴 해도 발품만 팔아 나서면 자동차 매연이나 소음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산책로였다. 벚나무 가로수가 그늘을 드리워 여름 한낮에 걸어도 좋을 듯했다. 해질녘 비가 오락가락하는 데도 산책을 나선 이들이 더러 보였다. 나만이 이방인인 듯했다.
산책로를 따라 망산 산등선을 돌아가니 양지암 조각공원과 등대로 가는 산줄기가 길게 이어졌다. 시야가 흐리긴 해도 가덕도와 다대포 몰운대와 더 멀리 영도 태종대까지 실루엣으로 드러났다. 날이 어두워지자 신항으로 드나드는 선박과 고기를 잡는 배들은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성근 빗방울이 들었으나 챙겨간 우산은 펼치지 않고 그냥 맞고 걸었더니 한결 시원함이 느껴졌다.
비가 오고 날이 어두워와 조각공원으로 건너가지 않고 지름길 옥수동으로 내려섰다. 장승포와 능포 사이가 옥수동이었다. 주택가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니 장승포 시외버스터미널이 나왔다. 전에 한 번 들린 옥수재래시장으로 갔다. ‘옥수동집밥’에 들려 저녁 밥상을 받았다. 미역국에 구운 갈치가 두 도막 따라 나왔다. 저녁을 때우고 밖으로 나오니 어둠 속에 빗줄기는 세찼다. 19.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