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바다로 간 노인, 71회,
"암말말구, 그냥 한번 선만 보랑 께!
선보고 나선 마음에 들지않으면,
뻥! 차버리면 될것이고, 마음에 들면 붙잡던지...늬 맘데로 해쁘리면 되잖 혀?"
누님의 말이 맞긴, 맞는말이다.
~~"고흫처녀!
박정희,라는 아가씨와 결혼할랴 믄,
늬가 맘을 독하게 먹어야 한당 께!
목숨걸고 죽울 각오로 대들면 못할일도 없지만서 두...
여자가 얼굴에 반점도 그렇고,
여자 이름이 박정희! 라고 야?
대통령 이름과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같아서 리...
팔자가 쎄서 요쪼시랑<나쁘다>께, "ㅡ
누님의 의뭉스런 맘은 여선생과 선을 보게 하므로서 정희씨와 혜어지게 하려는 심보다.
누님은 선을 본다는 선생 아가씨와 이미 깊은 약속이 있었던 모양세다.
무조건 선을 안보겠다고 우기면 누님 비위를 상하게 하는 꼴이니...
지금 우리집안 상황은 누님의 위세가 당당하다.
그도 그럴것이 누님이 경영하는 요식업 사업이 번창일로<繁昌一路>하메, 음으로 양으로
부모님께 도움을 주고 있음이다.
정희씨와의 결혼을 성사시킬라면 누님의 입김이 큰 힘이될 것일 터...
일단은 선생 아가씨와 선을 봄으로서 누님의 체면을 세워주고,
선생 아가씨와 선,을 보되...정희씨에 향한 내맘은 일편단심 변치않을거라고 확신하메,
나역시 누님과 의뭉스러운 거래를 승락한것이다.
그간에 정희씨와는 줄곳 연락이 있었다.
귀국할 당시에는 집에 들리곤 곧 정희씨를 만날려는 계획이였었는데,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 이른 거였다.
맘속으로는 당장이라도 가서 만나고 싶었지만,
현제 상황에서는 "애인! 정희씨를 만나로 가야겠소"라고 나설 처지가 아닌거다.
편지로, 전화통화로는...가끔 영락을 했었고,<백색 전화는 울집과 정희씨집에도 있었다>
근간에 만나자고 약속도 했었다.
우리가 결혼에 골인하기 까지는 험난한 길을 예고하고 있다.
얼마전 어무이가 지나가는 말로, 아니믄 누님의 입김이 있었든가,
~"명수야! 늬 장가 가야지?"~
~"장가 요? 저어 기, 고흥에 박정희가 있잖아 여,"~
~"누구? 거시기...얼굴 딘둥<점박이>이 말 여?"ㅡ
~"어무이! 무시기 말을 고로코롬 한다 엿! 딘둥<점박이>이라니 욧!"~
뜻박에 아들 녀석의 꼬라지를 보곤 어무니는 아차 싶었던가 금새 화해 한다.
~"명수야! 미 미안하다. 자식가진 부모로서 고로코롬 말한는게 아닌 디..."~
~"어무이! 난, 어떤일이 있드래도 정희씨 한테 장가 갈텡께, 그리 아시오 잉!"~
어무니는 아들녀석의 완강한 고집스런 태도에서 기氣가 한풀 꺽인 눈치였다.
~"에고 오, 쯪 쯔...그 고집통은... 지그 아부지 아들 아니랄까 봐 서...
닮을 꺼 닮아야 지, 쯪 쯔..."~
모자간의 모처럼의 대화가, 아부지의 고집불통 성질머리가 비유되는 꼴이되고 말았다.
결혼은 축복인것을...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간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원인이야 뻔하다.
신부 될 당사자 정희씨, 얼굴의 붉은 점, 때문이였다.
방금전에도 어무니는 붉은점을 딘둥이라고 했다.
그만큼 정희씨 한테 거부반응이 심하다는 뜻이다.
부모된 입장에서 생각하면은 이해가 된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은 너는 잘나고 똑똑한 아들이다.
그리고, 외국 나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시대에...
잘난 아들은 거뜬히 살아돌아 왔고, 돈도 거시기만큼 벌어왔고,
선물도 아주 귀한걸로 거시기하게 가져왔으니, 어찌 자랑거리가 아닐 수 있겠남,
<경찰월급이 5,000원시대에 아들월급은 12,800원이였으니...>
어무이는 언감생심<꿈도 못 꿀 일>으로 운을 땐적이 있었다.
~~"명수야! 늬 그 처자와 진짜로 결혼까지 생각하 냐?
꿈도 꾸지 말그 라, 결혼은 안뎅 께!"~~
~~"워 쩨서여?"~~
~~"사람이란 거이, 월메나 간사스런 인간인줄 알기나 허남,
늬,가 지금은 눈깔이 뒤집혀서 앞뒤 생각 안 하고 결혼하겠다고 덤비지만,
사람의 맘은 흐렸다 개였다 오뉴월 날씨와 같은거 여,
사람의 마음은 조석변이라 고!
간사한 사람은 맘이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한다는 디,
결혼하믄 맨날,<허구헌날>처다봐야 할, 얼굴인 디...
그 반점이 흉하게 보일때가 올것인 디...
진저리를 치면서 후회할 날이 올거랑 께!"~~
어무이의 잔소리는 자식을 위한 염려인줄 어이 모를리오 만,
ㅡ"어쩔것이 오,
이미 정희씨와 난, 몸을 석어버렸어 라,
나는 남자니께, 괞찮지만 정희씨는 여잔 듸, 어쩔 것이어 라,
정희씨는 이미 처녀가 아니여라 우...
시집갈 처녀, 가숨에 서린 천추의 한을 서러움을 자식가진 어무니 입장에서
쬐금이라도 생각한다믄...이해하시시 오 잉!"ㅡ
나는 결코 그런 막된 말까지는 하지 말아야 했었다.
그렇지만 어쩌란 말인가.
나는 성격이 곧은 사람이었다.
무언가 옳다고 생각하면은 실천에 옮기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가운데 물불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순수한 열정때문에,
때로는 큰 낭패를 볼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군대에서도...선임자의 폭력을 참고 견뎌냈드라면 탈영도 안했을거구 군대감방도 안갔을거였다.
원양어선을 타게 된것도 꼭 돈을 벌려는 욕심때문은 아니었다.
젊음이 무언가 이뤄보겠다는 욕망때문이었다.
참치잡이 원양어선을 탓다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무모한 모험인거 였다.
죽울고비<사선死線>를 넘나들다가 귀국해서, 이렇게나마 산사람대접을 받으면서
장가가는 문제로 시시콜콜 시비가 붙게 된일도 사실은 내가 살아 돌아왔으므로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아부지는 외국으로 떠나간 아들놈이 생각보담 빨리돌아옴으로서 큰 응원군을 얻은셈이었나보다.
지붕개량 공사를 할랴면 인부도 여럿명 있어야 하지만서두...
도편을 잡는 기술자가 꼭 필요했었던 거였다.
가을<벼>이 무르익어 갈 무렵<71년10월>에 지붕개량 공사가 터진것이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의 령으로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우리 마을을 우리 힘으로 새롭게 바꾸어 보자;는 운동으로 농촌에서 불붙기 시작했고,
농촌의 초가지붕 없애기<지붕개량>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것이다.
그 선봉에서 아버지와 나는 기술자로서 돈도벌고 역사도 일궈낸 것이었다.
드뎌! 첫공사가 시작됐다.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시목리<아버지의안태고향>부락에서부터 지붕개량을 시작했다.
수십년, 아니다...수백년을 초가지붕<이엉>을 지고 있었던 서까래는 썩고 문드러져서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고 푹푹 꺼지고, 내려앉즈고...
그야말로 집을 새로 짖듯이 해야 하는 대 공사였다.
그러나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은 노력하면은 이루워지는 진다는 것이다.
기둥뿌리가 튼튼하고 서까래가 반듯한 집은 기와 지붕을 얹으고<1프로정도>그외의 집은
스레트,양철 지붕으로 깔금하게 마무리된다.
아부지는 일본에서...왜놈들 한테 배운기술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것이었다.
일본건물의 특징은 본체 양옆으로 날개처럼 <방풍>지붕을 얹은식이다.
그 일본식 지붕의 특징을 지붕이 낮은 우리네 농촌지붕에 방풍지붕을 제작해내는 기술을 접목시키는 거였다.
한국의 초가지붕은 물매가 거의 없었다.
초가의 이영을 벗겨낸 지붕은 경사가 10도 미만으로...너무나 낮으고 초라하고 보잘것 없었다.
ㅡ"아부지! 지붕이 넘, 경사가 없구먼 여?
옛 어른들은 머리가 멍청했던가 봐 여?
요로코롬 경사가 없으니께, 비가 오면은 빗물이 줄줄 셋지 여?
진짜로 옛사람들은 물메도 몰랐나 봐 여?
지붕 물메 잡을라면 무지 고생께나 하겠어 라, ...흐흐흐,"ㅡ
ㅡ"이눔아! 모르는 소리 말그랏!
지붕에 물메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옛조상들이 지혜가 깊다는 거 여,
지붕의 물메를 이영<벼짚>으로 잡으려고 한거 여,
이영을 처마 끝쪽보다 지붕머리쪽에 차곡히 많이 높게 쌓게 되면은 물메도 잡게되고,
집안의 방구석에 두루 보온이 된다는 거 여,
지붕 머리에 이영을 많이 얹으게 되면 될수록 집안은 겨울에는 따뜻하구 여름에는 시원한거 여,"ㅡ
ㅡ"오, 호 홋!"ㅡ
氣기가차고 탐복할 일이다.
그렇게나 우리 조상님들이 지혜롭고 합리적이고 슬기롭다는...것인가???
아부지의 설명이 있기전까지는 나는,
멍청한 조상님들에... 한없이 경멸하고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조상님들의 지혜는 정말로 경이롭기까지 한데,
얼마나 나는 경박하고 교만하고 무지한가,
조상님들께 얼굴을 들 수가 없도록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감사합니다. 글, 우두봉/오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