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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을 넘어 백 년을 살아보니
- 김형석 교수-
안녕하세요? 김형석입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묻곤 합니다.
"교수 님!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오랫동안 평온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까? 하고 말이지요.
사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무엇을 얻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고 이제 백 년이라는 세월의 고개를 넘어서 보니 비로소 깨닫게 되는 진실들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마치 긴 여행과 같아서 처음에는 짐을 채우며 올라가지만 정착 지에 가까워질수록 그 짐을 하나 둘 내려
놓아야만 비로소 평안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70 세라는 나이는 인생의 아주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공자께서는 이를 종신 지우(終身之憂)라 하여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라 하셨지요.
그러나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가야 할 곳을
엄격히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경지입니다.
* (주) 종신지우를 종신종신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은 무거울지도 모릅니다.
나이 일흔에 절대 가지 말아야 할 세 곳에 대한 이야기이니까요.
어떤 이들은 이 나이에 못 갈 곳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켜본 삶 속에서 노년의 불행은 대개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들여 놓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을 갉아 먹고 평생 쌓아온 복을 깎아 먹으며 끝내 원치 않는 업을 짊어지게 만드는 그런 어두운 에너지가
깊은 곳들을 말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적으로 쇠약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영혼이 투명해지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젊었을 적에는 흙탕물 속에서도 헤엄칠 힘이 있지만 일흔의 영혼은 작은 얼룩에도 쉽게 오염되기 마련입니다.
내가 무심코 찾아간 그곳에서 나눈 대화 한마디 내가 머물렀던 그 자리에서 남겨진 감정의 찌꺼기들이 있습니다.
결국 나의 노년을 초라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성장이 아니라 성숙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성숙한 인간은 자신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그리고 어디에서 멈춰야 할 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고 심심하니까 가고,
예전부터 갔으니까 가는 그런 관성적인 삶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 몸과 마음을 지키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며 하늘이 허락한 남은 시간을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저의 백 년 세월이 담긴 고백이자 여러분의 남은 생을 지켜줄 작은 등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하는 진심입니다. 부디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왜 일흔의 나이에 세 곳을 멀리 해야 하는지 그 속에 담긴 준엄한 생의 위치를 함께 짚어 봅시다.
일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흔히 외로움을 가장 큰 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이 많은 곳, 북적이는 곳을
찾아가려 애쓰지요.
옛 동창들의 화려한 회갑이나 칠순 잔치 혹은 자식자랑이 난무하는 동호회 같은 모임에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100년을 살아오며 느낀 점은 노년에 가장 깊은 고독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나와 맞지 않는 화려함
속에 있을 때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흔의 나이에 첫 번째로 피해야 할 곳은 바로 허영이 가득한 모임입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술잔을 부딪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누가 더 비싼 옷을 입었는지, 누가 더 좋은 차를 타는지,
혹은 자식이 얼마나 출세 했는지를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을 벌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런 곳에 다녀오면 마음이 풍요
로워지던가요? 아니면 왠지 모를 허탈감과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밤잠을 설치게 되던 가요? 노년의 업겸?>은 대개
입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남의 잘된 소식을 들으며 진심으로 축복하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에서 시기심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이미 내 영혼에
독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내가 가진 것을 뽐내면 남에게 박탈감을 주는 것 또한 아주 큰 업을 짓는 일입니다.
나 왕년에 이랬던 사람이야, 우리 아들이 이번에 상무가 됐어 같은 말들은, 그 순간에는 달콤할지 모르나 결국은
타인의 원망과 질투라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나에게 끌어오는 행위일 뿐입니다.
한국 사회는 유독 체면과 비교해 민감합니다. 하지만 일흔은 그 체면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는 나이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보다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보느냐 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잔치 집의
소란스러운 소음은 우리 내면의 목소리를 가로막습니다. 술기운에 실려 보낸 무의미한 시간들은 다음 날이면 지독한
공황으로 돌아옵니다.
그곳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분의 인생이 뒤쳐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간에 숲 길을 걷거나 평소 읽고
싶었던 팩 한 권을 읽으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 훨씬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을 선사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넓이가 아니라 깊이가 중요합니다.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한 두 명이면 좋습니다. 그 외에 나를 증명해야 하고 나를 포장해야 하는 자리는 과감히
발길을 끊으십시오. 진정한 품격은 금 테 둘은 안경이나 비싼 시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정신과 타인을
배려하는 고요한 태도에서 나옵니다.
에너지가 고갈 된 노년에 그런 불필요한 장소에 가서 기운을 뺏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귀한 시간을 시기나 질투
허영의 불꽃을 피우는 곳에 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내 노년의 품위를 지키고 평온한 내일을 준비하는
첫걸음입니다. 자신을 화려하게 꾸며줄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으로 고요하게 가라앉힐 수 있는 장소를 찾으십시오.
그것이 바로 일흔이 담긴 몸을 넣어야 할 진정한 자리입니다.
인생의 가을 지나 겨울로 접어드는 일흔의 나이에 우리가 두 번째로 경계해야 할 곳은 바로 분쟁의 현장입니다.
특히 자식들의 다툼이나 타인의 시비가 엇갈리는 장소에 깊이 발을 들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부모 된 마음으로 자식들의 갈등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지요. 내가 한마디 해서 바로 잡아야지 하는 책임감이 앞서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백 년을 살아보니 노년의 가장 큰 지혜는 개입해야 할 때보다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데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성인이 된 후에 갈등은 그들 각자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충돌하며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입니다.
부모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거나 훈수를 두는 순간 갈등은 해결되기 보다 오히려 부모를
향한 원망으로 번지기 일수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무거운 업입니다.
자식들의 인생은 그들이 책임져야 할 몫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갈등 속에 뛰어들어 마음을 끓이고 화를 내는 것은
마치 남의 가방을 대신 메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내 무릎이 깨지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동네 사람들이나 주변
지인들의 시비가 있는 곳도 멀리 하십시오.
누군가를 비난하고 편을 가르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 부정적인 에너지의 소용돌이는 생각보다 힘이 셉니다.
일흔의 나이는 주변의 기운에 쉽게 영향을 받는 시기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기운은 탁해
지고 심장은 불필요하게 두근거립니다.
나만 안 그러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 자체가 이미 그 업의 파동 속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구역 경계를 경계하라고 가르치지요.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동조하게 되고
내 입에서도 독한 말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노년의 입술은 지혜를 전하고 축복을 빌어주는 데서 해야지 누군가의 시시비비를 가르는 칼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뱉은 말 날카로운 말 한마디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내 노년의 평화를 깨뜨리고 내 자식들에게 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여러분! 진부(眞否)의 가치를 아는 노년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자식이 갈등을 겪고 있다면 조용히 지도로 응원하고,
타인이 시비를 걸어오면 그저 미소 짓고 자리를 피하십시오. 그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이치를 깨달은 자의 여유입니다.
내가 비워둔 갈등의 자리에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해결의 꽃이 피어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억지로 해결하려 들수록
실타래는 더 엉키기 마련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대접받고 싶다면 먼저 내 마음에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억울한 일이 생겨도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길 수 있는 넉넉함이 필요합니다.
굳이 내 옳음을 증명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세월이 흐르면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고 내가 지킨 고요함은 내 얼굴에
주름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내면에 평화를 해치는 모든 소란스러운 곳으로부터 발길을 돌리십시오. 여러분의 에너지를 남의 싸움을 구경하거나
참견하는데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자신의 내면을 돌보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며는 조용히 마음속에서
방생해 주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자식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자신에게는 평온한 노후를 선물하는 길입니다.
일흔의 나이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피해야 할 곳은 눈에 보이는 장소라기보다
우리 마음속에 깊이 박힌 과거의 그림자입니다.
특히 왕년에 화려했던 시대를 추억하며 현재의 초라함을 자책하게 만드는 장소, 혹은 과거에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나 기억이 머무는 곳을 다시 찾아가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면 옛날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이랬는데 그때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만 안 했어도 라며 강물을 붙잡으려 애를 쓰지요.
하지만 여러분!
백 년을 살아보니 분명히 정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손님일 뿐이며 그 손님을 붙잡고 앉아 현재를
낭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일흔이라는 나이는 이제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아니라 내 앞에 남은 생의 조각들을 얼마나 맑고 투명하게 닦아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과거의 영광이 깊은 곳에 자주 발걸음을 밟다 보면 현재의 모습이 자꾸만 작아 보이고 비참해지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고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원망의 장소를 서성이는 것입니다.
나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입혔던 사람에게, 내 자존심을 짓밟았던 이들과 연관된 곳을 찾아가거나 그 기억을 되새기는
행위는 내 영혼에 스스로 상처를 내는 일입니다.
언젠가는 복수하겠다 사과라도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그 언저리를 맴도는 순간 여러분의 노년은 빛을 잃고 맙니다.
원망은 무거운 돌덩이와 같아서 그것을 품고 있으면 결코 평온의 바다로 나갈 수 없습니다.
일흔의 나이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데 에너지를 쓰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손실입니다. 그것은 나의 복을
깎아 먹고 내 몸의 병을 키우는 지름길입니다. 설령 누군가 나를 모욕하거나 무시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업일 뿐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그 모욕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저는 하루 종일 곱씹는 순간, 비로소 저는
그 모욕은 나의 업이 됩니다. 저는 여러분께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기억의 정리를 시작하십시오. 서랍 속에 쌓인
낡은 물건을 버리듯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과거의 장소와 인연들을 하나씩 놓아주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합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곳은 삼십 년 전에 전성기가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놓인 따뜻한 차 잔과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입니다.
과거의 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현재의 내가 보입니다. 일흔은 인생의 황혼기가 아니라 불필요한 집착의 껍질을 벗고
알맹이만 남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입니다.
억울함도 후회도 자만심도 모두 그 자리에 두고 오십시오. 발걸음을 가볍게 하십시오. 과거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
현재라는 광장으로 향할 때 여러분의 노년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남은 생을 죽은 과거의
무덤 위에서 보내지 마십시오
살아 있는 오늘 그리고 더 맑아질 내일을 위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길입니다.
이제 이 이야기를 맺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흔이라는 나이에 왜 우리가 허영의 자리, 분쟁의 장소, 그리고 과거의
무덤을 멀리해야 하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가시는지요. 제가 100년을 넘는 세월을 살아보니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통장의 잔고도 자식의 성공도 왕년에 명예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에 평정심이었습니다.
저녁에 눈을 감을 때 내 마음에 한 점의 부끄러움이나 미움이 없고, 아침에 눈을 뜰 때 그저 살아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그 상태 말입니다. 노년의 삶은 흔히 황혼에 비유되곤 합니다. 하지만 황혼은 단순히 해가 지는 시간이 아닙니다.
낮 동안에 뜨거웠던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물드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실천을 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물건이든 인간관계든 내게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정리하십시오. 일흔 살이 넘어서도 무엇인가를 소유하려
하는 것은 영혼을 무겁게 할 뿐입니다.
오래된 훈장이나, 상장, 입지도 않는 옷들, 그리고 만나고 나면 기운만 빠지는 인연들을 하나 둘 정리해 보십시오.
비워진 그 자리에 비로소 고요한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입술을 닫고 귀를 열되 오직 선한 것만 담으십시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훈계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셔 보십시오.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혹은 내 품격을 깎아
내리지는 않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대신 고맙다, 미안하다, 참 좋다는 따뜻한 말을 자주 건네십시오. 그 말들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영혼을 치유하는 영양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매일 조금씩이라도 걷고 사색하십시오. 거창한 운동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을 온전히 느끼며 걷는 그 시간은 우주와 소통하는 신성한 시간입니다.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며 그 속에서 생의 순리를 배우십시오.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자연스럽듯 우리 몸이 늙고 기운이 쇠하는 것도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아름다운 섭리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무시하거나 노인이라고 소외시키더라도 절대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 사람의 부족함이지 여러분의 가치가 낮은 것이 아닙니다.
구름이 지나간다고 해서 하늘의 본질이 변하지 않듯 타인의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단한 자아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일흔에 당신은 그 자체로 충분히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살아 있는 동안 내 영혼이 시들어 가는 것이고,
죽는 순간까지 미움과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숨을 내뿜는 순간 참 좋은 인생이었다, 참 고마운 삶이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성공입니다. 오늘 제가 드린 이 소박한 말씀들이 여러분의 남은 여정에 작은 지팡이가 되길 바랍니다.
세 곳에 독한 장소를 피하고 내면에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며 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얼굴에는 인자한 성자의
미소가 머물 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여러분의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평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 가을을 지나고 있는 사랑하는 여러분!
부디 평안하십시오.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김형석 교수님의 동영상 강연을 옮긴 글이기 때문에 발음의 이해가 잘못 옮긴 경우가 있으면 양해를 구합니다.
<옮긴 쇠뭉치 拜>
<옮긴 글>

첫댓글 70대 이상 1,2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 89%가 "인생 다시 살면 완전히 다르게 살겠다"
그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들:
😭 사랑한다 말 못한 것 (50년 살아도 단 3번...)
😭 가족과 함께 못한 시간들
😭 건강할 때 여행 못 간 것 (52세부터 만성질환 시작!)
😭 남의 눈치만 보며 산 세월
😭 돈만 쫓다가 중요한 것 놓친 것
💡 한 분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그 사람들, 결국 내 인생에 책임져 주지 않더라고요"
⏰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순간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하루 더 늙어요
김형석 교수 님의 이 글을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105세 되신 분의 말씀으로는 참으로 감동적인 말씀이었지요.
너무나 감동을 주는 글이었기에 동영상을 옮긴 분이 철자법 오류, 발음의 이해 오류로 몇 군데 고쳐야 하였기에
동영상을 몇 번을 들으며 서투른 타자로 많은 시간을 들여 옮기게 되었습니다.행여 누(累)가 될까 봐 몇 번을
수정하며 옮겼지만 저 역시 귀가 익지 않은 부분은 바로 옮겼는지 걱정이 됩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 그 많은 석학, 지식인, 원로,교수 등 단 한마디 하지 않고 강 건너 불 구경 하고 있는데
김형석 교수 님은 "윤 석열 계엄 선포는 신의 한 수이다"고 외치신 분이십니다. 존경하고도 모자랄 분이시지요.
105 세가 되신 지금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활동하십니까? 만인의 귀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김형석 교수님의 책을 요즈음 두권을 보고 있는데
"백년을 살아보니",백년의 지혜' 좋은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죽음에도 의미가 있는가 하면 사람을 한부로 대하고
인맥을 소모품 처럼 쓰지 말라는 내용 등 의식적으로 느낄만한
내용이였습니다.
인생은 흐르는데 어느곳에 멈추워야 하는 정답은 없는듯 싶 습습니다.
위 댓글 김종승 선생님 글 5가지글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글 감사하게 잘보고 많이 느껴 봅니다.
뚝배기 님! 반갑습니다. 고향 분이라 뵈울 때마다 정이 갑니다.
"백년을 살아 보니" "백년의 지혜"외에 "백 세를 살아보니/정년 보감"이란 글이 있습니다.
참으로 귀감이 되는 글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