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곳에 신(神)이 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요한 4.12)
톨스토이(1828-1910)의 작품 가운데 '사랑하는 곳에 신이 있다.' 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마르틴 아브제잇치라는 구두 수선하는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창하나 나있는 지하실에 살고 있는데 그 창 너머로는 거리에 오가
는 사람들의 발목만이 보였고 그것을 보고서 그 사람이 누군가를 알
아맞히는 것이 이 노인이 세살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애냐
하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신발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고 친절하여 일거리는 많았지만 노인에게는 남모르는 슬픔이
겹쌓여, 살아가느데 모든 희망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앞서
죽은데다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또 세상사는 보람이기도 했던 외아들
까지 죽어버렸던 것이었습니다. 실의와 절망이 너무 커서 왜 신(神) 은
자식대신 자기를 죽게 하지 않았는가... ! 하고 신을 원망하기 사작했
고 , 실의만 가중시키는 신을 믿을 수 없다하여 교회에 나가는 일까지
그만두었습니다.
어느 날 고향친구가 찾아와서 그 절망에서 헤어날 길은 그래도 성
서밖에 없다는 권고를 합니다. 그는 매일 성서 속에서 그 구렁텅이로
부터의 탈출구룰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너무나 우연하
게도 이제까지 자신의 생활이 전적으로 자기본위였고, 실의나 절망도
자기본위에서 파생한 것임을 어름풋이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 밤 성서를 읽으며 졸고 있을 때, 비몽사몽간에 귓전으로
"마르틴! 내일 창밖으로 내다 보아라. 내가 올 것이다." 라는 神의 말
을 듣습니다. 이튿날 그 말을 의식하여 창 박을 자주 내다보며 일을
했습니다.
스테파누치라는, 안면 있는 노인이 눈을 쓰는 인부와 와들와들 떨
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기에 불러들여 따뜻한 차 한 잔을 권했
습니다.조금 후에는 아직껏 헤어진 하복을 입은 과부가 젖먹이 아기
를 안고 눈길을 헤매고 있는 것을 보고 불러들여 빵과 스프를 주고
낡은 코트를 입혀 내보냅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의 창가에로 인도하셨을 겁니
다." 하고 과부는 인사를 했습니다. 또 배고픈 부랑아가 사과를 훔쳐
달아나다가 사과 파는 노파에게 붙잡혀 파출소로 가는 것이 보였습니
다. 마르틴은 밖으로 나가 아이에게는 사과를, 노파에게는 대금을 치
러 중재시켰습니다.
이렇게 하여 날이 어두워졌지만 약속했던 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
다. 다만 환상처럼 그의 눈에는 젖먹이와 과부의 감사하던 얼굴이며,
사과 파는 노파며 부랑아의 웃던 얼굴이 떠 올랐습니다.마르틴은 그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그의 영혼이 그를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입
나다.
마르틴은 여느 때처럼 돋보기를 끼고 성서를 펴 보았습니다.펼쳐진
곳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