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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일손(爲道日損)
도는 비우는 것이다는 뜻으로, 道를 행하려면 날마다 줄이고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爲 : 할 위(爪/8)
道 : 길 도(辶/10)
日 : 날 일(日/0)
損 : 덜 손(扌/10)
출전 :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48章
이 성어는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48章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為學日益, 為道日損.
학문을 하면 날로 늘어나고, 도를 닦으면 날로 줄어든다.
損之又損, 以至於無為, 無為而無不為.
줄이고 또 줄이면 인위적 행함이 없음에 이르게 되고, 인위적 행함이 없음에 이르면 하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천하를 취함에는 항상 일이 없음으로써 하니, 일을 만들어 내서는 천하를 위하지 못한다.
학문을 추구하는 것은 조금씩 쌓아 가는 것으로 더할수록 많아지고 지식 역시 더할수록 많아진다. 하지만 수도(修道)는 지식과 학문 및 마음속 모든 것을 서서히 줄여 나가는 것이다.
줄이고 줄여서 모든 것을 텅 비워 버리고 마지막에 이 텅 빈 것마저 비워 버려 아무것도 없음에 되면, 그런 후에는 없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일이 없음으로 천하를 취하는 것이 최고의 도덕이다. 중국역사를 말하면 요, 순, 우(堯.舜.禹) 임금이 일이 없음으로써 천하를 위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권력투쟁으로 왕위를 취한 것이 아니고 순리로 왕위를 이어 받은 것이다. 또한 공자(孔子)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공자는 천하를 취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천하, 바로 공(空)의 천하를 취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왕(素王)이라고 불렀다. 소왕이란 토지가 없는 황제를 말하는데 바꾸어 말하면 공자는 문화 왕국의 제왕인 셈이다.
자신의 문화 왕국에서 수천 년을 호령했으며 어쩌면 장차 수만 년을 호령할 수도 있겠다. 이런 것이 일없음으로 천하를 취하는 것이다.
일이 없음(無事)이란 자기 행위로 인한 공덕 성취와 도덕적 성취가 모략이나 수단에 의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秦)나라 한(漢)나라 이후 모든 나라는 권력투쟁으로 천하를 소유했으나 노자는 그것은 천하를 취하지 못한 것이라 했다.
맹자가 ‘덕으로써 다른 사람을 굴복 시키는 사람은 왕자요, 힘으로써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사람은 패자다(以德服人者王, 以力服人者覇)’라 했다. 노자가 말한 이치는 왕도(王道)를 말한 것이다.
⏹ 다음은 신정근 교수의 위도일손(爲道日損)의 글이다.
학교를 다니면 1년마다 한 학년이 올라간다. 운동을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 승단을 한다. 직장을 다니면 규정이나 실적에 따라 승진을 한다. 이처럼 사람은 무엇을 하게 되면 실력도 나아지고 직급도 높아지기를 바란다.
만약 10년을 배워도 실력이 제자리를 맴돌고 10년 동안 회사를 다녀도 만년 말단이라면 하던 일을 계속하기가 어렵다.
학년이 올라가고 실력이 좋아지고 직급이 올라간다고 해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초등학생이 고등학생이 되면 학습량이 엄청 늘어난다. 운동 실력이 좋아지면 아무 곳에서 실력을 내보이지 않도록 몸가짐을 단속해야 한다.
직급이 올라가면 책임이 많아지고 결정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이러한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한꺼번에 갑자기 승급하거나 승진하지 않는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아래에서 위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나아가게 된다.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이전 단계에서 쌓았던 능력을 갈무리해서 다음 단계에서 펼쳐 보이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갑작스레 승급하거나 준비 과정을 거쳤더라도 결정을 내리는 일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모든 일이 뒤엉키게 된다. 직급이 높을수록 결정이 늦어지면 연관된 사람들이 모두 손을 놓고 기다리게 된다.
‘노자 48장’을 보면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구절이 있다. “학습을 따라가면 나날이 늘어나고 도를 따라가면 나날이 덜어진다.”(爲學日益, 爲道日損)
회사를 처음 출근했을 때를 생각해보라. 출입구 문을 여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낯설다. 건물, 업무, 사람 등 모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익히고 배우려다 보니까 오히려 더 실수를 하게 된다.
배워야 할 것이 나날이 늘어나다 보면 때로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건망증이 찾아와서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면서도 뭘 하는지 모르는 상태까지 된다.
3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의사 결정권을 행사할 때가 되면 신입사원 때처럼 통째로 외워야 하는 것은 줄어들었다.
하는 일을 보면 고참은 신입사원에 비해 업무량도 많고 업무의 효율도 높다. 왜 그럴까. 아마 기본적인 것이 대부분 습관으로 체화됐기 때문이다.
습관 이외에도 전체를 꿰뚫어보는 안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를 따라가면 해야 하는 과정이 점점 줄어들지만 일이 척척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 ‘위도일손’이라고 하는 것이다.
차를 몰고 같은 길을 가더라도 초행자는 경험자에 비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운전 후 피로도 더 깊다. 초행자는 앞에 어떤 길이 나올지 모르므로 온갖 촉각을 세우며 차를 몬다.
반면 경험자는 지금 이 순간에서 다음 순간에 어떤 길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알므로 느긋하게 차를 몬다. 이렇게 보면 도(道)는 사람의 지식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존재나 특별한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특별한 원리가 아니다.
도는 무슨 일을 하려면 누구나 지켜야 하고 경험으로 익숙해질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고 일반 원칙이기도 하다.
시스템이 갖춰지고 일반 원칙이 확립되면 실제로 의사 결정권자가 해야 할 일이 줄어든다. 그것은 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시스템과 일반 원칙에 따르면 어떤 결정이 내려지리라 예상 가능하기 때문에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에서는 ‘위도일손’이 무위(無爲)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 무위는 하는 일이 없다거나 놀고 지낸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특별히 나서서 뭐라고 할 것이 없이 시스템과 일반 원칙에 따라 일이 척척 진행되도록 맡겨둔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일을 자신이 바라는 방향만 끌어가려는 욕심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결정에 앞서 전을 뒤집듯이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되고 주위 동향을 보며 이익을 계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결정을 번민과 착각하면 시간을 끌수록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숙고한 뒤 상황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결정은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신속하지 않으면 시스템과 일반 원칙의 마비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이하는 노자강의 중의 글이다.
유학은 성인의 말씀을 쌓아가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학(學)은 날마다 무엇인가를 더하는 일이다. 그러나 도(道)는 무엇인가를 날마다 덜어내는 일이다.
덜어낸다는 것은 세계와 관계해야 하는 내 안에 있는 이념, 지식, 개념을 약화 시키는 것이다. 덜어내고 덜어내면 무위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이미 있는 가치관이나 신념, 이념, 지식으로 세계와 관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신념이나 이념, 가치관을 밟고 서서 자기가 주인이 되어, 세계와 관계한다. 이론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안으로 직접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무위이다.
노자 철학은 천하를 장악하는 법을 알려준다. 흔히 도가 사상을 무위의 철학이라 하지만, 노자는 無爲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위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無爲 無不爲)”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의 핵심은 無爲가 아닌 無不爲이다. 즉 無不爲를 위해 無爲를 한다는 것이다. 천하를 차지하려면 항상 無爲的으로 일 처리를 해야 한다.
개방성과 자율성 속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마음껏 활동하게 해 줌으로써 천하를 차지한다. 일이 있는데 이르게 되면 하늘 아래를 다스리기엔 부족하리로다. 만약 어떤 틀을 정해 놓고 그 틀에 맞게 일을 하려 한다면 천하를 차지할 수 없다.
⏹ 이하는 황종택의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의 글이다.
채움과 비움은 자연의 순리다. 물론 채우기는 필요하다. 채우지 못하면 기본적인 힘을 유지할 수 없기에 어느 정도 잘 해야 한다. 중요한 건 비움이다.
예컨대 낙엽은 나무의 자기 비우기의 결과다. 나무에게 잎은 매우 소중한 존재이지만 비워야 하기에 과감하게 낙엽을 떨군 것이다. 그래야 추운 겨울에 나무가 살고, 봄에 새로운 잎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채우기만 하고 비우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어렵다. 채우기에만 급급하는 탐욕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채근담은 이렇게 경책하고 있다.
人只一念貪私, 便銷剛爲柔塞智爲昏, 變恩爲慘, 染潔爲汚, 壞了一生人品.
사람이 한번 사사로운 이익을 탐내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꿋꿋한 기상도 꺾여 나약해지고, 지혜는 막혀 어두워지며, 어진 마음이 변해 사나워지고, 깨끗한 마음이 물들어 더러워져서, 한평생 닦고 기른 인품을 망가뜨리고 만다.
故古人以不貪爲寶, 所以度越一世.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탐내지 않는 것을 보배로 삼았으니, 이것이 곧 세상을 초월하는 방법이다.
그렇다. 우리는 채움의 결과로 지식, 명예, 권세, 재물 등의 지적, 정신적 산물과 물질을 향유해 간다. 상식적인 진리가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부터 채워진 산물들에서 채움과 비움이 조화를 이루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균형을 잃으면 병들고 불행해진다.
이렇게 우리의 몸과 마음,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행복은 결과적으로 채움과 비움의 소통과 순환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순행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노자(老子)가 도덕경에서, “배움은 채우는 것이요, 도는 비우는 것이다(爲學日益, 爲道日損)”라고 가르친 바는 채움과 비움, 소통과 순환의 가치와 의미를 함축적으로 일러주고 있다.
세상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고통의 대부분은 탐욕에서 생겨난다. 맑고 평화로운 마음은 기름진 음식, 고급 승용차, 큰 집 등에 비할 바 아니다.
새해엔 채움과 비움의 순환이 순조로운지 챙겨보자.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살맛나는 세상의 출발이다.
▶️ 爲(할 위)는 ❶상형문자로 为(위), 為(위)는 통자(通字), 为(위)는 간자(簡字)이다.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양을 본떴다. 전(轉)하여 하다, 이루다, 만들다, 다스리다의 뜻으로 삼고 다시 전(轉)하여 남을 위하다, 나라를 위하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爲자는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爲자는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爲자를 보면 본래는 코끼리와 손이 함께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코끼리를 조련시킨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爲자의 본래 의미는 '길들이다'였다. 하지만 후에 코끼리에게 무언가를 하게 시킨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爲(위)는 ①하다 ②위하다 ③다스리다 ④되다, 이루어지다 ⑤생각하다 ⑥삼다 ⑦배우다 ⑧가장(假裝)하다 ⑨속하다 ⑩있다 ⑪행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옮길 사(徙),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들 거(擧), 옮길 이(移), 다닐 행(行), 구를 전(轉)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를 위함을 위국(爲國),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 다른 것에 앞서 우선하는 일이라는 위선(爲先), 힘을 다함을 위력(爲力), 첫번을 삼아 시작함을 위시(爲始),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생업을 삼음 또는 사업을 경영함을 위업(爲業), 사람의 됨됨이를 위인(爲人), 정치를 행함을 위정(爲政), 주되는 것으로 삼는 것을 위주(爲主), 예정임 또는 작정임을 위계(爲計), 진실한 즐거움을 위락(爲樂), 어떤 것을 첫 자리나 으뜸으로 함을 위수(爲首), 기준으로 삼음을 위준(爲準), 나라를 위한 기도를 위축(爲祝), 부모를 위함을 위친(爲親), 자기를 이롭게 하려다가 도리어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위총구작(爲叢驅雀), 치부致富하려면 자연히 어질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을 위부불인(爲富不仁), 바퀴도 되고 탄환도 된다는 뜻으로 하늘의 뜻대로 맡겨 둠을 이르는 말을 위륜위탄(爲輪爲彈), 겉으로는 그것을 위하는 체하면서 실상은 다른 것을 위함 곧 속과 겉이 다름을 일컫는 말을 위초비위조(爲楚非爲趙), 되거나 안 되거나 좌우 간 또는 하든지 아니 하든지를 일컫는 말을 위불위간(爲不爲間), 선을 행함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말을 위선최락(爲善最樂), 도마 위의 물고기가 된다는 뜻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어육(爲魚肉), 어떤 사람을 위해 벼슬자리를 새로이 마련함이나 남을 위해 정성껏 꾀함을 일컫는 말을 위인설관(爲人設官), 자손을 위하여 계획을 함 또는 그 계획을 일컫는 말을 위자손계(爲子孫計), 가난을 면하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귀소소(爲鬼所笑), 자기가 정한 법을 자기가 범하여 벌을 당함을 일컫는 말을 위법자폐(爲法自弊),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을 전화위복(轉禍爲福),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뜻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됨 또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르는 말을 지록위마(指鹿爲馬),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하고야 만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마부위침(磨斧爲針),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에 따라 기질이 변한다는 말을 귤화위지(橘化爲枳), 손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됨을 이르는 말을 객반위주(客反爲主), 인공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이상적인 경지를 일컫는 말을 무위자연(無爲自然),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된다는 뜻으로 작은 것도 모이면 큰 것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진적위산(塵積爲山),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 또는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무위도식(無爲徒食) 등에 쓰인다.
▶️ 道(길 도)는 ❶회의문자로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首(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首(수)는 사람 머리와 같이 사물의 끝에 있는 것, 처음, 근거란 뜻을 나타낸다. 道(도)는 한 줄로 통하는 큰 길이다. 사람을 목적지에 인도하는 것도 길이지만 또 도덕적인 근거도 길이다. ❷회의문자로 道자는 ‘길’이나 ‘도리’, ‘이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道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首(머리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首자는 ‘머리’라는 뜻이 있다. 道자는 길을 뜻하는 辶자에 首자를 결합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인도하다’나 ‘이끌다’였다. 그러나 후에 ‘사람이 가야 할 올바른 바른길’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도리’나 ‘이치’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寸(마디 촌)자를 더한 導(이끌 도)자가 ‘인도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道(도)는 (1)우리나라의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예전에 8도이던 것을 고종(高宗) 33(1896)년에 13도로 고쳤고, 다시 대한민국 수립 후에 14도로 정함 (2)우리나라의 최고 지방자치단체 (3)도청 (4)중국 당(唐) 대의 최고 행정 단위. 당초에는 10도로 나누어 각 도마다 안찰사(按察使)를 두었으며 734년에 15도로 늘려 관찰사(觀察使)를 장관(長官)으로 두었음 (5)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6)종교 상으로, 교의에 깊이 통하여 알게 되는 이치, 또는 깊이 깨달은 지경 (7)기예(技藝)나 방술(方術), 무술(武術) 등에서의 방법 (8)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 ②도리(道理), 이치(理致) ③재주 ④방법(方法), 술책(術策) ⑤근원(根源), 바탕 ⑥기능(機能), 작용(作用) ⑦주의(主義), 사상(思想) ⑧제도(制度) ⑨기예(技藝) ⑩불교(佛敎) ⑪승려(僧侶) ⑫도교(道敎) ⑬도사(道士) ⑭교설(敎說) ⑮~에서, ~부터 ⑯가다 ⑰가르치다 ⑱깨닫다 ⑲다스리다 ⑳따르다 ㉑말하다 ㉒완벽한 글 ㉓의존하다 ㉔이끌다, 인도하다 ㉕정통하다 ㉖통하다, 다니다 ㉗행정구역 단위 ㉘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길 도(塗), 거리 항(巷), 거리 가(街), 네거리 구(衢), 길 로/노(路), 길 도(途), 길거리 규(逵), 모퉁이 우(隅)이다. 용례로는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길을 도로(道路),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도리(道理),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도덕(道德), 일에 쓰이는 여러 가지 연장을 도구(道具), 도를 닦는 사람을 도사(道士),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일반에게 알리는 새로운 소식을 보도(報道), 차가 지나다니는 길을 궤도(軌道),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를 효도(孝道),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른 길을 정도(正道), 차가 다니도록 마련한 길을 차도(車道), 도를 닦음을 수도(修道), 임금이 마땅히 행해야 될 일을 왕도(王道), 바르지 못한 도리를 사도(邪道), 사람이 다니는 길을 보도(步道), 일에 대한 방법과 도리를 방도(方道),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도불습유(道不拾遺),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도청도설(道聽塗說),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남에게 버림받음을 도방고리(道傍苦李), 먼 길을 달린 후에야 천리마의 재능을 안다는 도원지기(道遠知驥), 길에는 오르고 내림이 있다는 도유승강(道有升降) 등에 쓰인다.
▶️ 日(날 일)은 ❶상형문자로 해를 본뜬 글자이다. 단단한 재료에 칼로 새겼기 때문에 네모꼴로 보이지만 본디는 둥글게 쓰려던 것인 듯하다. ❷상형문자로 日자는 태양을 그린 것으로 ‘날’이나 ‘해’, ‘낮’이라는 뜻이 있다. 갑골문은 딱딱한 거북의 껍데기에 글자를 새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둥근 모양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日자가 비록 네모난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래는 둥근 태양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갑골문에 나온 日자를 보면 사각형에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을 두고 태양의 흑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먼 옛날 맨눈으로 태양의 흑점을 식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日자는 태양과 주위로 퍼져나가는 빛을 함께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태양은 시간에 따라 일출과 일몰을 반복했기 때문에 日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시간’이나 ‘날짜’ 또는 ‘밝기’나 ‘날씨’와 같은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日(일)은 (1)일요일(日曜日) (2)하루를 뜻하는 말. 일부 명사(名詞) 앞에서만 쓰임 (3)일부 명사(名詞)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날의 뜻을 나타내는 말 (4)날짜나 날수를 셀 때 쓰는 말 (5)일본(日本)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날 ②해, 태양(太陽) ③낮 ④날수 ⑤기한(期限) ⑥낮의 길이 ⑦달력 ⑧햇볕, 햇살, 햇빛, 일광(日光: 햇빛) ⑨십이장(十二章)의 하나 ⑩나날이, 매일(每日) ⑪접때(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 앞서, 이왕에 ⑫뒷날에, 다른 날에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달 월(月)이다. 용례로는 그 날에 할 일을 일정(日程), 날마다를 일상(日常), 날과 때를 일시(日時), 하루 동안을 일간(日間), 해가 짐을 일몰(日沒), 해가 돋음을 일출(日出), 그 날 그 날의 당직을 일직(日直), 직무 상의 기록을 적은 책을 일지(日誌), 하루하루의 모든 날을 매일(每日), 날마다 또는 여러 날을 계속하여를 연일(連日),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일을 쉬고 노는 날을 휴일(休日),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축하할 만한 기쁜 일이 있는 날을 가일(佳日), 일본과 친근함을 친일(親日), 일본에 반대하여 싸우는 일을 항일(抗日),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을 당일(當日), 일정하게 정해진 때까지 앞으로 남은 날을 여일(餘日), 날마다 내는 신문을 일간지(日間紙), 일상으로 하는 일을 일상사(日常事), 날마다 늘 있는 일이 되게 함을 일상화(日常化), 날마다의 생활을 일상생활(日常生活), 해와 달과 별을 일월성신(日月星辰), 아침 해가 높이 떴음을 일고삼장(日高三丈), 항상 있는 일을 일상다반(日常茶飯),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일취월장(日就月將),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는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일구월심(日久月深) 등에 쓰인다.
▶️ 損(덜 손)은 ❶형성문자로 损(손)은 간자(簡字), 扻(손)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員(원, 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員(원, 손)은 물건의 수, 혹은 둥근 것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損자는 '덜다'나 '줄이다', '감소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損자는 手(손 수)자와 員(수효 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員자는 '인원'이나 '수효'라는 뜻을 갖고 있다. 損자는 이렇게 '수효'를 뜻하는 員자에 手자를 결합한 것으로 손으로 인원을 덜어낸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수량이 감소했다는 것은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損자는 '잃다'나 '손해를 보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損(손)은 손해(損害)의 뜻으로 ①덜다, 줄이다 ②줄다, 감소(減少)하다 ③잃다, 손해(損害)를 보다 ④해(害)치다, 상하게 하다 ⑤헐뜯다, 비난하다 ⑥낮추다, 겸손(謙遜)하다 ⑦64괘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덜 감(減), 덜 제(除), 덜 생(省),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더할 가(加), 더할 증(增), 얻을 득(得), 더할 첨(添), 오를 척(陟), 오를 등(登), 더할 익(益)이다. 용례로는 가지고 있거나 누릴 수 있는 물질이나 행복 등을 잃거나 빼앗겨 좋지 않게 된 상태를 손해(損害), 축나서 없어짐이나 손해를 봄을 손실(損失), 충돌하거나 떨어지거나 깨지거나 상하거나 하여 손실이 되거나 손실이 되게 함을 손상(損傷), 손실과 이익으로 재산의 덜림과 더해짐을 손익(損益), 손상하고 파괴함을 손괴(損壞), 손해난 돈을 손금(損金), 자연의 재앙으로 인한 농작물의 손실에 따라서 전세의 율을 낮추어 매기는 일을 손분(損分), 군사가 규율이나 명령을 위반하였을 경우에 근무 일수를 삭감하는 일을 손도(損到), 기력이나 원기가 감손함을 손섭(損攝), 잘 되고 못된 농작물의 작황을 손실(損實), 심한 자극으로 기운이 상함을 손기(損氣), 남의 명예를 떨어뜨림을 손명(損名), 사귀어서 이롭지 못하고 해가 되는 벗을 손우(損友), 헐거나 깨뜨리어 못 쓰게 만듦을 훼손(毁損), 깨어져 못 쓰게 됨을 파손(破損), 부족이나 손실을 휴손(虧損), 더럽히고 손상함을 오손(汚損), 온통 당하는 손해를 전손(全損), 축이 나거나 손해가 남을 결손(缺損), 매매의 결산을 할 때의 차액의 손실을 차손(差損), 집안 명예의 손상이나 치욕을 가손(家損), 닳거나 소모되어 줄어듦을 모손(耗損), 텅 비고 상함을 허손(虛損), 무너뜨려 손해를 입힘을 괴손(壞損), 가뭄으로 말미암아 입는 손해를 한손(旱損), 덜리어 손해가 됨을 감손(減損), 손톱으로 긁어서 상처를 냄을 조손(抓損), 사귀면 손해가 되는 세 가지 친구라는 뜻으로 무슨 일에나 안이한 길만을 취하는 사람과 남에게 아첨하는 사람과 입에 발린 말 뿐이고 성의가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손자삼우(損者三友), 좋아해서 해로운 일 세 가지로서 교만하고 사치함을 좋아하는 일과 편안하게 놀기를 즐기는 일과 잔치를 베풀고 즐기기를 좋아하는 일을 두고 이르는 말을 손자삼요(損者三樂), 윗사람에게 해를 끼침으로써 아랫사람을 이롭게 함을 이르는 말을 손상익하(損上益下), 아랫사람에게 해를 입혀서 윗사람을 이롭게 함을 이르는 말을 손하익상(損下益上), 나라에 해를 끼치고 백성의 제물을 강제로 빼앗음을 이르는 말을 손상박하(損上剝下), 남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깎는 일을 이르는 말을 명예훼손(名譽毁損)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