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30일(토 )
* 시작 기도
주님...
과연 나의 자랑이 십자가가 맞습니까?
내 몸에는 과연 예수의 흔적이 있는지요?
남들 보기에 허울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보란 듯한 3A에 매몰되어 살아왔던 자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신앙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소서.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행한 나의 일이 어찌 나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는지요?
나야말로 선악과를 따먹은 하나님처럼의 아담이 아닌지요?
나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여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여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소서.
시류를 좇지 않도록 나의 마음을 가난하게 하옵소서.
오늘은 9월의 마지막 날이며 토요일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 이 하루도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시간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히 13:18-25
제목 : 평강 평강 평강의 하나님의 뜻.
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19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
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23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24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 나의 묵상
한 달 전 시작했던 히브리서 묵상이 오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독자들 곧 유대 기독교인 공동체에게 기도를 요청한다.
기자는 모든 일에 선한 삶을 살려 함으로 자신에게 선한 양심이 있음을 확신한다.
그는 이 공동체에 속히 돌아가기 위하여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어서 기자는 하나님께 대한 송영과 신앙고백을 드린다.
양들의 큰 목자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영원한 언약의 피로 살리신 평강의 하나님께서 공동체로 하여금 모든 좋은 것으로 무장시키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앞에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시기 원한다.
기자는 그들에게 쓴 권면의 말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다.
디모데가 옥에서 나온 것을 알리고 그가 오면 그와 함께 공동체를 방문해서 그들을 보겠노라고 한다.
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과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면서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의 문안도 전한다.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기를 기원하면서 서신을 마친다.
히브리서 독자들은 시련과 박해의 상황에서 배교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예수님이 참된 진리요 생명임을 알고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신앙의 신선도가 점점 떨어지고 유대교인들이 와서 그들을 종용하는 것으로 인하여 진짜 예수만으로 구원 받을 수 없는 건가, 하고 회의적인 마음을 품는 것이다.
이런 히브리 기독교 공동체에 기자가 쓴 편지가 바로 히브리서이다.
기자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며 인내로서 믿음의 경주를 다할 것을 촉구한다.
인내로서 경주할 믿음의 대상은 다름 아닌 완전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담대함 곧 파레시아이다.
이 때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한 배교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또한 복음의 최종 목적지인 안식에 이르게 된다.
이 안식은 은혜의 보좌요 하나님의 품속이다.
또한 휘장 안의 지성소이고 시온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며 완전한 하늘 본향이다.
이런 나라를 주기 원하시는 분이 곧 평강의 하나님이시다.
이 나라의 주인이시요 우리를 구원하여 그 나라로 인도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평강의 아버지이시다.
이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 기도의 대상이시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대상을 가리켜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하여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아주 크고 값진 희생을 치러야만 하셨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혼자서는 길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딴 길로 가는 어린 양 같은 우리들이다.
그런 우리들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큰 목자요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또한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은 이 평강을 이루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는데 이는 그에게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 나의 죄로 인함이다.
(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헬, 파라디도미)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헬, 파라디도미)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나는 극악한 죄인이요 이 죄로 인하여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나의 범죄함으로 그 형벌이 나에게 돌아와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평강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완전한 평강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이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행하셨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고 피 흘려 죽게 하신 것이다.
만약 이런 그리스도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평강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평강을 얻기 원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조차 아끼지 않으시고 그 평강을 위하여 내어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와 같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평강의 하나님은 우리가 평강을 위하여 구하는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다고 하니까 육신적 필요나 세상의 안락함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응답하실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7:7-8절 말씀을 그 증거구절로 인용하기도 한다.
(마 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르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하지만 이 말씀은 산상수훈으로써 단지 만물 안에 속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는 주님께서 그토록 전하기 원하셨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다.
오늘 막을 내리는 히브리서의 주제와 같이 이 땅의 것 곧 만물 안에 속한 것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담대함 곧 파레시아를 잃지 말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요 평강은 그곳에만 있기 때문이다.
(찬송가 491장 3절) 의심의 안개 걷히고 근심의 구름 없는 곳 기쁘고 참된 평화가 거기만 있사옵니다.
이 세상은 의심의 안개와 근심의 구름으로 자욱하지만 오직 참된 기쁨과 평화는 거기 곧 아버지의 품속이요 하늘의 예루살렘인 거기에만 영원히 존재한다.
바로 이 나라 곧 영생을 주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고 다시 그 죽음에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살려내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평화의 근본이다.
나는 이 땅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하여 목이 터져라 부르짖던 자였다.
그런 기도에 응답을 받으면 내 믿음이 좋아서 응답받은 줄로 착각하기도 하였다.
그런 착각 덕에 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은 무지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땅의 것이 아니라 참된 기쁨과 평화가 있는 그곳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목이 터져라 외치셨건만 당시 군중들은 그런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엉뚱한 소리만 내뱉었다.
“당신의 말이 너무나 어려운데 누가 과연 그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주님을 떠나버리고 만다.
제자들도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오해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로마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서 이룰 그 나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주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죄편에 앉혀달라고 청탁도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내가 과연 그들을 판단할 자격이나 있는가?
나는 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았으니 말이다.
적어도 제자들은 주님을 부인하고 다 도망갔을지라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용납하시고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이후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지 않았는가?
그들에 비하면 나는 그들의 발가락 사이의 때만도 못하다.
나는 복음을 알고 아들의 생명을 얻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를 먹고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나 히브리서가 끊임없이 외치는 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들이신 예수를 힘입어 다시 아버지께로 나아갈 담대함으로 일어선다.
나 자신을 보면 자빠져 일어설 용기조차 없지만, 내 안에 나를 용납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주신 주님을 보면 다시 일어날 담대함이 생긴다.
이것이 믿음이라고 히브리서는 말한다.
나는 육신으로는 죽기에만 합당하지만 오늘도 영으로 담대하게 일어나 주님의 손을 붙든다.
그리고 내게 주신 흔들리지 않는 나라인 아버지의 품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에만 진정한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비록 죄가 난무하고 거짓이 가득한 만물 안의 세계일지라도 바로 이 말씀의 자리요 존재로 거하시는 아들이 있는 아버지의 품속이 영생의 자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내게 평화를 주신 평강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송영으로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가 무엇으로 주께 드릴 수 있겠나이까?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데 내가 무엇으로 주께 드리리이까?
미가 선지자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께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하면서 하나님께서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맏아들을 드리면 받으실까? 아니면 내 영혼의 죄로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하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주님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음을 고백하합니다.
그것은 곧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 하였사오니 이는 평강의 하나님과 교제와 사귐을 놓치지 않고 날마다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과의 평강의 교제를 놓치지 않게 하시고 주의 품, 아버지의 품속인 영생의 자리로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불쌍한 죄인을 긍휼히 여기사 오늘도 아들의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