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냐히힝
내 나이 벌써 스물 후반 스펙도 모아둔 돈도 고만고만. 고만고만 이라는 말이 딱인 회사에서 월급 쥐꼬리만큼 받으며 일한다. 부모님한테 좋은머리에 빵빵한 지원까지 받을 거 다 받아놓고 제대로 이룬것 하나 없네. 물론 부모님도 아직 괜찮다 하고싶은거 찾아서 노력 해 보렴 하시지만 남들 앞에서는 딸래미 학벌, 직업, 소득, 뭐 하나 내세울게 없어서 슬퍼하시는거 나도 다 알지. 얼마나 변변찮았으면 시험 준비하겠다는 내 말에 너도 드디어 마음 잡고 하는게 생겼구나 만족하실 정도인걸.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라는 인간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아주 구리다 이 말 되겠다. 가성비 개씹하타취라고.
어릴땐 머리빨로 벼락치기라도 해서 수능이며 자격증이며 그나마 좀 비벼볼 수 있었던것 같은데, 타고난 쓰레기 같은 인내심과 지구력으로 제대로 끝마친 일도 없을 뿐더러 무언가를 이뤄내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한 가지에 전념하거나 목 매달아 본 적도 없다. 위는 일은 고사하고 사람에도 해당되는 사항으로써 그간 수 많은 길고 짧은 연애를 하면서도 나 정말 네가 좋아 죽겠다 하며 누구를 만나 본 적이 없는 그런 인간이라는 간증이다. 언제나 내가 가장 관심 있었던건 단지 내 상태 그 자체 뿐이라 하다못해 그 흔한 입덕조차 제대로 해본 적도 없거니와 깔짝대며 해봤자 짧으면 며칠에서 길면 몇 주 정도면 끝. 쉽게 말해서 지금 괴롭지만 않다면 만사 오케이로 여겨왔으며, 아무런 목적조차 품지 않았다는 말이자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고 그저 현재 불편함이 없는 상태만을 추구했다는 뜻.
이러한 상태로 근 삼 십 년을 쭉 살아왔는데 이 나이쯤 되니 나보다 원래 잘났던 친구들은 한참 전에 저 멀리 나보다 앞서있음은 차치하고 나보다 뒤쳐져 있는걸로 느껴졌던 친구들조차 이제는 다들 자기 갈 길 찾아 나선지 오래야. 돈을 잘 벌고 못 벌고를 떠나서 나처럼 정상적인 인생 궤도에서 멀어진건 정말 딱 나같이 의욕없고, 목표의식 결여된 채로 그때그때 되는대로 헤쳐나가면서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온 사람들 뿐이야. 내가 학생때, 학부생때, 직장 다니며 와 뭐 저렇게 아무 생각없이 사냐? 하고 속으로 비웃고 넘겼던 사람들이 지금 곱씹어보니 나라는 존재 그 자체.
그제서야 이렇게 살면 십 년만 지나도 정말 비참해 질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좆됐음을 직감하게 되지. 비로소 열심히 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지만 평생 도망만 쳐 다녔으므로 진정한 패배의 고배 같은건 마셔보지 못한 나의 머릿속은 아직 꽃밭이라 내가 또 하면 해낼 수 있지 생각하며 나름 현실적이고 또 필수적인 목표를 세워 보기로 마음 먹어. 진정한 목표가 생긴듯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나는 내가 이걸 이룰 수 있다면 내가 뭐든 할 것만 같았다? 그럴 줄 알았어 정말. 하지만 만물에는 관성이라는 자연의 법칙이 작용하는 법. 나도 그 안에 속해있는 하나의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지라 그 와중에도 싫어하는건 꾸역꾸역 피하고 있는것이 팩트.
그냥 돌아가서 했던거 다시 하면 되는데, 새로 시작하면 되는데 경험 해 본 어려움에 다시 도전하는게 싫어서 (솔직히 말하자면 실패하는게 겁이나서, 더더욱 까놓고 말하자면 다시 돌아가봤자 나라는 인간은 그 시련을 견뎌 낼 수 없음을 나의 내적 어딘가는 감지하고 있었고 그 좌절을 견뎌낼 자신이 없음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고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존나 모색하기 시작하지. 그렇게 또 데드라인에 임박해서야 비로서, 남들 출발선 앞서서 달려나간지 오래인 이제서야 나는 비로소 시작선 앞에 서. 이 자리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겁이 나서 미뤄 둔 덕분에 시간이 촉박하네.(사실 이게 바로 도망자의 말로인 동시에 그들의 인생 전반에 있어 가장 문제되는 부분임)
막상 끝나고 보니 나는 고작 삼 주 남짓 해놓고 왜이렇게 힘들까 싶어. 그런데 이렇게 일 년 정도 더 하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다만 이걸 내년에도 또 해야한다니 벌써 깝깝하고 지칠 뿐. 다들 이런걸 어떻게 몇 달 몇 년을 하는지 몰라. 웃기게도 그리고 슬프게도 이 순간 가장 실망스러운건 내 점수, 이 결과가 아니라 이정도 쏟아부었으면 당연히 성취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단정했던 내 자신.. 문득 내가 그만 둔다고 했을때 다들 힘들다며 버텨 보자고 끝까지 가보자고 하던 동기들이 떠올라. 벌써 몇 년이나 지난데다 내가 선택한 일이고, 이제는 연락조차 하지 않는 걔네가 말이야.
왜 이 모든걸 빨리 시작하지 않았나 다음에 또 이렇게 해야하는데 같은 그런 표층적인 후회가 아니라 아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이었는데, 뭔가를 미친듯이 준비하고 몰아붙여 볼 수 있는 인간이었는데 옛날엔 왜 그랬을까 왜 모든걸 그렇게 쉽게 놔 버리고 버려버리고 포기하고 그랬을까 하는 뭐랄까 내 삶의 전반적인 자세 전체 그리고 이미 지나가버린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관한 근본적인 후회가 사무쳐. 분명히 오늘 이렇게나 섬짓하게 느낀점이 있는데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오늘의 성찰과 고뇌가 흐려져 버릴 것 같아.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에 내가 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무용하게 표류하듯이 살고있을 것만 같아서 벌써부터 스스로가 한심해. 바뀌어야지 하며 칼날을 벼리려 해도 맘 속에 벼릴 칼날이 있어야 말이지 하는게 솔직한 심정. 그러면서 이 순간에 눈물은 왜 흘리는지 참 한심도 해라. 지치지고 싶지 않은데, 지쳐서는 안되는데 그게 정말이지 쉽지가 않네.
- 21.07.25
사진 출처는 나도 카페 댓글에서 주운거라 모르지만 한참 전에 저장해놨다가 힘든 시기에 앨범 돌아보는데 문득 눈에 띄여서 배경화면으로 해놓고 보던거. 점점 흐려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일기를 공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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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08 21:38
첫댓글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이랑 비슷하다 나는 가라앉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저 멀리 헤엄쳐나가는 것 같아 그래서 뒤쳐지지 않으려 팔을 뻗어보는데 미래의 불확실함과 내 우유부단함 때문일까 몇일 못가서 또 가라앉고 말아
글을 잘쓰네 여시는
나도 어릴때 의욕없는 삼십대 보면서 되게 한심해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 나더라^^
에효ㅠ 어릴땐 진짜 벼락치기라도 통했는데ㅠ
인스턴트식에 길들여져서 빨리 결과를 보려해서 그런것같기도 하고
요즘에 나는
보통의날들 매일매일습관이 나를 만든다 라는 말들을 자꾸 새기면서 다잡으려 노력하고 있어.
인생에 있어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하더라.
지금 이렇게 헤매는 것도
나중에 언젠간 아 그때 헤매서 이렇게 잘되었지 하고 같이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었음 좋겠다.
좋은글 고마워
오늘밤은 꿈도 꾸지말고 평안히 자길 바라.
여시댓글 너무 위로된다ㅜㅜ
어쩜 나랑 똑같냐 소름끼치게 느낀점이 같음 아마 나같은 부류가 또 있다는 사실에 미약한 위안을 삼는것도 싫다ㅎ
나도...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08 22:46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랑 너무 같다
후회뿐인 일기네.,, ㅠ
와...지금 내 감정이랑 똑같아서 놀랐는데 댓글에 공감하는 여시들이 많은 것도 신기해ㅠ 위로받음
소름돋는다..진짜 누가 내 감정써놓은줄..ㅜㅜ
너무 나같다..... 오늘 이렇게 다짐하고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결국 오늘의 다짐이 내일 자고 일어나면 또 다시 흐려질 내 자신을 너무 잘 알아서 한심하고, 또 이런 과정을 반복할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어떻게하면 내가 변화할 수 있을까....
글잘쓴다...
그저그런어른 끈기도없는 나 공감되너
잘보고갑니다💌
글 잘 읽었어 넘 공감
내가 언젠가 썼던 일기 내용이랑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정말 공감하면서 봤어 글 써줘서 너무 고마워 잘 봤어 여샤💜💜
글 너무너무 잘 읽었어
난 이런 글 자체도 누가 보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꺼내 놓지도 못하는데
나한텐 너무 용감하고 멋있는 일기야!
제목 나야 진짜...
내 상태를 나보다도 더 잘 표현한거같아ㅠㅠ
도전했다가 실패하는게 내게 두려운 일이라 20대초중반에 도전을 하지않고 그저 내가 할수있는 것만 해왔어..
어찌저찌 직장에 들어왔지만 의미없이 반복되는 일들..10년 뒤, 20년 뒤에도 이 일을 해야하는게 조금 답답하더라구..
그동안 공부해야겠다는 마음만 먹고 의지가 다시 약해지고 있었어..이 시기에 여시 글 읽어서 다시 시작해야겟다는 생각이 들어..
여시의 좋은 글 잘 읽었어 고마워!!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09 01:0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09 01:19
글 내용이 소름돋게 나같아..ㅎㅎ 글 정말 잘쓴다
나만 이런줄 알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같지 않은건 사실이겠지 그래도 ...
고마워
고마워...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내가 딱 이심정이야
차라리 끈기있게 매달리지 않는이상 잘 못했더라면.. 뭐 하나 할 때 대충 얼렁뚱땅 하지라도 않았을텐데 싶어 결국 세상은 하나를 정말 잘 하는 사람을 원하지 이것저것 어정쩡하게 하는사람을 찾지 않으니까...ㅎㅎ
나같아서 보면서 공감이 많이된다
순간의 자극도 잠시일뿐, 지나고나면 그랬었나 싶은 마음들이 자꾸 머리속에서 떠나지않고 오늘만 오늘만 하다 오늘 내일 모레 지나보면 그러다 일주일이 되고, 또 후회하고 자극받고 작심삼일이 반복인게 아쉽다 늘 나에게.
학벌 직업 그 뭐하나 뛰어난것 없이 물 흐르듯 그냥그런대로. 항상 그게 아쉽다느끼면서도 노력하지 않는 나에게 여시의 일기가 큰 위로가 된다. 또 이 글을 통해 서로에게 자극이 될 수 있기를
존나 내가 방금도 생각했던 글이 여깄네... ㅛㅣㄴ기해...
도망친 자의 말로는 시작조차 어렵다 ㅠㅠ
너무 나야....자괴감은 드는데 새로운 도전에 시작이너무 무서워서 못해...여샤 잘봤어 고마워💕
뭐야 눈물나 나 왜ㅠㅠ...
나 같다..잘봤어 고마워♡
내가 쓴글인줄 알았어.. 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10 11:1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11 09:38
뼈맞고갑니다...공감..인풋대비 아웃풋떨어지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