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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색소폰 소고 28화
쟌다크 같은 소녀..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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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살아오면서 여자들과 항상 좋은일만 있었을까 ?
먼저 우리 동네는 내가 이글 군데 군데서 이야기 했듯이 좀 독특한 분위기라
동네애들이 많이 거칠고 특히, 술들을 고래급으로 마시는 애들이 대부분이였고
심지어 겨울동복 검은 교복바지에 흰 막걸리가 묻었는데도 3일 후에 봐도 그걸 그냥 입고다닐 정도이고
세상사에 초연한 것이 특징이며=(더러운 놈들?^^)
애들이 거의다 학업을 중도 포기했는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러더니 그냥 평생을 동네 양아치로 살아감..
집들도 나름 형편이 좋았는데도 이상하게 동네 전통이 그러했다.
風水탓인가?
그 덕에 인근 동네는 우리가 완전 접수,통치? 했는데
그 지역이 자못 광활해서 거의 광개토왕님 수준이였다.
수도?인 우리 남산동에서 북으로는 영남대 로타리까지~
서쪽으로는 서문시장옆 계성고등학교까지~
동쪽으로는 우리와 서로 不可侵 조약을 맺은 교동까지,
북쪽으로는 멀리, 지금 내가 연습실을 하고 있는
針山洞 코리아극장앞, 또는 제일모직까지 였다.
그래서 여름방학이면 우리는 방학이 시작되는 8월초에 벌써 텐트를
지금의 가창수원지 위의 정대 골짜기에 치고 여름 내내
그 곳에서 지났는데 식량이며 부식은
고구려처럼 약탈로 살아가기에는 아직 꼬마들이라 안되고..
그 대신 우리 점령?지역의 여학생들이 교대로 가지고 올라왔는데
(조 편성의 大家가 우리 중에 있었다. 그래서 여자애들은 절대로 눈치를 못 챘다.)
한 동네 마다 여자애 5~6명이 식량과 부식을 가지고 와서
우리와 놀며 지내다가 가고,다시
로테이션으로 다음 동네 애들이 올라와서 교대를 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재벌 3세나 오나시스가 되어도 못 누릴 호사를 누렸는데,
나는 애들이 개울가에서, 또는 물레 방아간에서 여자애 들과 꿈의 대화를
나눌 때도 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조금 내성적인 성격에다
지지리 찌질했던 나는
혼자 잘난체 하느라,
평소에 낮이면 여자애들에게 완전 사기캐릭터로
義理며,禮節,基督敎 교리까지 설파 했고..
밤에는 모닥불 앞에서는 드럼도 치고(석유통드럼)
기타도 치고했기 때문에
갑자기 밤이 되었다고 평소의 잘난체하던
태도를 바꿀 수는 없어서
그냥 내가 가져간 1인용 스립핑백에서 속이 쓰리지만 나 혼자 잤다..
남 들이야 뭘 하거나 말거나..
그 중에는 물레 방아 간에서의 정분에 그만
서로 애틋해져서 계속 만나다가
나중에 결혼한 애들도 있고( 그래도 매일 싸운다고,)
그냥 나머지 애들은 기억도 잘 안나는데
역시 걔들도 보통은 아닌 애들이여서
나중에 들으니 지금은 나이들이 들어도
지역사회의 무도유흥업과
(주로 주점경영)
지하경제에(사채,산통..카드깡.)이바지 하며 잘~ 들 살고 있다는데
문제는 내가 30초반 이던,그러니까 그 여자애들과 수원지에서
합동야영 훈련?을 한 후
15~17년 정도 세월이 흐른 시점 이라는게 문제...
어느 여름에, 나의 밴드 멤버중 한명이 간밤에
술을먹고 남들과 싸우다가
(남의 싸움에 휘말린것 .. 착한 애들이였음.)
즉결 재판소에 있다고 연락이 와서,
마스타는 거의 부모님과 동등한 책임을 가진지라,
벌금이라도 나오면 대신 내줘야 되고해서 그곳에 가려는데
언도될 예상벌금과 내 수중의 돈을 계산하니
좀 많이 모자랐다
아... 쪽 팔리지만 버스를 타야 되겠구나..해서
자가용들도 별로없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한 발짝만 움직여도 택시를 탔는데 ...버스라니..
더구나 한여름.. 대구는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란 별명이 있듯이
무지무지 하게 덥다..
그리고 그때 의류 메이커의 이름이
"레드옥스"라고,
주로 지역의 건달및, 술집 웨이터, 일수놀이를 하는양아치,
그리고 좀 한량 기질있는 동네형들 정도가 입던,
요즘의 날라리 아줌마들의 샤넬? 수준의 남자 의류 메이커가 있었는데
나는 좀 무리해서 비싸게 산,하얀 마(麻)소재로 된
내 자랑스러운 새옷 레드옥스를 그날 세탁소에서 찿아 입었는데..
그 새옷을 입고 버스라니.... 아.. 진짜...쪽 팔렸다..
그래도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할 수 없이
버스 토큰을 하나사서 즉결재판소까지 거리가 그래도
버스로 한 5 정거장을 가야만 하는 거리라서
할 수 없이 버스에 탓는데, 오전이라 승객이 나를 제외하고는
무슨 여자들 3명이 전부 였는데,
멀쩡한 젊은 사나이가 대낮에 버스 탄 것도 쪽 팔리고
또 혹시 하얀 내 새 옷에 뭐가 묻을라 ..해서 그냥 선 채로 가는데..
뒷 좌석에 앉아있던 그 여인네들이 전부
슬슬 내게로 다가 오는게 아닌가..
그녀들의 나이는 내 또래 정도들 인데
다들 포스가 작살이였다..
남들은(보통의 여자들)은 좀~ 처럼 안 신는 새빨간 농구화며
그 때는 보기조차 어려웠던 커다랗고 시~커먼 선그라스에
샛노란 물을 들인 단발 형태의 곱슬곱슬 라면 파마!!.
그 뿐일까? 바지 뒷쪽의 엉덩이 골과 앞판의 도끼? 자국이 자랑스럽게 드러나는
꽉 붙는 스판바지... 그리고 그녀들이 공통으로 씹는건 껌...
딱 봐도 술집주인 아니면 포주 였다..
"아..씨ba.. 이것들이 왜 내게 다가 오는겨?.. 나는 너희들 스타일 졸라 싫어하는데..
"야! 오랜만이네.."하고 여자 중 하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야.. 야.. 라니??.. 적어도 반경 10KM 내에서, 나에게,
그것도 백주 대낯에 나에게 "야" 라고 부르는
간 큰 여자는 없는데... 이것들이..죽을라고 아주 스텝을 밟는구나
해서 쳐다보니...아 si baaa.. ~~
아... 젓 됐다.... 그 예전의 여름 정대골짜기 물레방아,냇가에서,
우리와 단체 캠핑을 갔었던 팀들 중,
가장 극렬하게 남자애들과 싸우다가
(밤에 왜 산에 까지 와서 물레방아간에까지 가서 싸웠을까? )
마침내 같이 간 모든 남자애들이 애들만은 접수를 포기하고 항복,
일주일 내내 오히려 우리가 밥을 지어서 봉양하며
잘~~~모시던?그 여자애들 이였다.
생각해 보면 그때 제일 때깔나게 잘 싸우던 여자애가
캠핑 첫날, 내 슬리핑 백에서 같이 자기로 나와 미리 약속 했는데
어쩌다가 다른 남자애가 그애를 데리고 이야기 한다며 물레방아간으로 간 직후 부터,
그 여자애의 극렬 저항과 난동이 시작 되었는데
얼마나 소란스럽고 독살스러웠으면 평소에는 우리가 무슨 짓을해도,
심지어 자기들 밭의 호박이며 풋고추를 따가도
아무말 없던 마을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등불을 들고 찿아오심...ㅋ
그런 무서운 과거를 가진 여자들이 나를 에워 싸면서 슬슬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야~ 너 요즘 추운가 봐 (돈 없는가 봐) 버스를 다 타고 다니네..."
(나는 속으로 내가 뭐.. 치.. 지 들도 뭐.. 버스 타면서 뭐..중얼중얼..)
나는 그러면서도 그녀를 옆눈으로 힐끗 보니 이제 그 여자의 눈옆에도
잔잔한 주름이 3~4개 지고 얼굴도 군데 군데에 거뭇거뭇 기미도 좀 끼인,
그때의 바로 그 여자, 잔다크 였는데!!
이상하게도 밉다, 추하다는 생각보다 또 가슴이 뭉클한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그만 우리 같은 양아치들을 만나서 놀더니..
결국 니네들 인생이.. 순탄치가 않구나.. 생각하고 미안하고 쪽 팔리는 마음에
버스출발 한 정류장 만에 버스에서 내려 버렸다..
거짓말로 "아! 다 왔다..나 간다아~~~ " 하면서
목적지 까지는 아직도 버스로 4코스나 남았고,날은 지독하게 더웠고,
더구나 돈도 별로 없는데...
시파... 딴 놈들이 싼 똥을 내가 20년이 다 지나서 치우는 구나... 하고
나는 그 뜨거운 여름의 가로수도 거의 없는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야 했다.
비싸게 산 레드옥스는 속절없이 흐르는 땀에 등에 달라붙고...
니네들도 여자들 한테 나쁜짓하면 언젠가는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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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그때 허벌나게 걸어서 즉결재판소에 가니 그 잡혀간 멤버는
마침 지네 엄마가와서 나는 돈 걱정은 더 이상 안 하게 되었는데
나는 "햐..이럴 줄 알았으면 택시나 타고와서 쪽 팔리는 일이나 안 당했지..."하고 생각하며
*나는 살아오면서 즉결 재판소를 야간통행위반,고성방가,노상방뇨,무전취식,
보행자법위반,장발족단속법, 향군법위반등의 자잘한 경범죄들로 자주 감..
(夜間通行違反, 高聲放歌, 路上放尿, 無錢取食, 步行者法違反 ,長髮族, 鄕軍法違反
햐~~그러고 보니 나 완전히 빵잽이아님??)
그런데 저쪽 구석을보니 아까 그 쟌다크네 일행이...!!
그들이 아직 나를 못 봤길래 무슨일인가 궁금해서 가까히 가서 슬쩍 들어보니
아마 자기 신랑이 자기 가계손님을 줘 패서 온듯
(필시 유흥업소(실내포장)를 경영하는듯)
"야, 피해자하고 합의는 봤나?" 어쩌고 하는 폼들이 이런 일에는 자못 익숙한듯 했는데..
나는 또 한번
내가 애들을 이렇게 만드는데 일조를 하지 않았나 생각에 그날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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쟌다크야 미안해... 그리고 진짜 고마워, 그때 너랑 산에서 처음 본 그날,
니가 내 스립핑백에 나랑 둘이 같이잤으면 너는 절대로 나를 그냥 보낼 애가 아니고,
그랬다면 나는 아마 지금쯤 직업이 음악이 아니라 네가 하는 술집 주방에서
대파를 다듬거나 영업이끝나면 셧터를 내리는 일이나 하고 있겠지..
그때 캠핑 첫날 밤에 니가 내 스리핑백에 쓱~ 들어와서
네 몸을 나한테 딱 붙여오면서 갑자기 내 꼬추를 예고도 없이
막 꽉~ 잡고 그래서
나는 이미 여자가 한 스립핑백에 같이 잔다는 겄만으로
꼬추가 full Standing 되어 있던 나는
빳빳해진 내고추를 너한테 들킨게 너무 부끄러웠고
또 그걸 손으로 서슴없이 꽉잡는 니가 너무 무서워서
너를 억지로 내 스립핑백에서 막 내 보냈었지...
그러자 처음부터 너를 좋아한 딴 남자애가 너를 얼씨구나하고
물레방아간에 데리고 간거 다 안다..
근데 그때 버스에서 얼핏보니 너 눈옆에 주름도 몇개 있었고 기미도 좀 있었는데도
여전히 이쁘긴 이쁘더라.. 그러니 이제 담배 좀 끊어라.. 기미 더 생긴다.
그리고 진짜, 진짜, 이건 세월이 흘렀으니 하는 말인데
너 그때 몸에 꽉 끼던 그 스판 바지와 앞판의 도끼자국, 아직도 생각난다..휴..
제발 낮에 어디 다닐때는 팬티 좀 입고 다녀라..
팬티라도 바지안에 입으면 도끼자국이 안 보인다..너..
쟌다르크=무섭고 반항적인 여자투사의 대명사.
*쟌다르크
출생 1412경, 프랑스 바르 동레미
사망 1431. 5. 30, 루앙
국적 프랑스
농촌 출신의 소녀로서 성령의 부름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군대를 이끌고 오를레앙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프랑스를 정복하려던 잉글랜드의 시도를 좌절시켰다. 출정하고 1년 뒤 사로잡혀 잉글랜드군 및 그들과 손을 잡은 프랑스 진영에 의해 이단으로 화형당했으나 이후 프랑스 최고의 국가영웅이 되었다. 그녀의 활약은 프랑스 국민의식의 각성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녀는 대천사 미카엘, 성 카테리나, 성 마르가리타의 '음성'을 듣고 발루아 왕조의 프랑스에서 잉글랜드 세력 및 그들과 동맹한 부르고뉴를 축출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잔은 신앙이 매우 독실하고, 성인들과 직접 교류하는 능력이 있음을 주장하며, 교회라는 제도의 틀을 넘어 하느님이 자신의 안에 내재하고 있다는 개인적 체험을 내세우는 등 예언자로서의 여러 특성을 보여주었다.
경범죄/ 고성방가(高聲放歌)=밤 등의 시간에 길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 남에게 혐오심을 주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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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발놈들 쌔빠지게 올려 놓으면 지우고..니들이 뭔데? 클래식은 작곡가 사후 50냔이면 저적권 소멸 되는데도 지우고 미국놈들 영상 쓰는데 왜 니들이 지우냐/
같은 내용을 밴드에도 열려도 아무 제제가 없는데 다스러 져 가는 다음이 어ㅐ 갑지기 칼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