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강론>
(2024. 2. 22. 목)(마태 16,13-19)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5-19)”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또 교회를 하나의 조직으로
만드신 것은,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는 일을 인간들이 스스로
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고, 인간들이 서로 협력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모든 일을, 인간들을 구원하는 일도,
협력자 없이 당신 혼자서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하느님의 뜻과 맞지 않게 됩니다.
<만일에 자유의지가 없다면, 죄를 지어도 책임이 없고,
신앙생활을 아무리 충실하게 해도 공로가 되지 않습니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사실상 인간들은 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과 악, 구원과 멸망을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고,
좋은 선택과 실천을 했다면 그 공로도 우리의 것입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하기를 주님께서 바라신 것은
천지창조 때부터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8.15.18)”
하느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드신 일까지만 하셨고, 그 동산을
일구고 돌보는 일은 사람이 스스로 하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하느님의 집’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스스로 돌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외로운 존재’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협력자와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사랑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렇지만 협력자를 만들어 주신 일까지만 하셨고,
함께 일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협력하는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게 하셨습니다.
<스스로, 마음으로부터 하지 않으면, 또 주님께서 시키신
일이니까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랑도 아니고,
협력도 아니고, 함께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에덴동산을 사람에게 맡기신 그 뜻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일에서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19-22).”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에페 4,15-16).”
교회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함께 나아가는 ‘한 몸’인
공동체이고, 그래서 모두가 똑같이 귀하고 소중합니다.
맡은 직분과 직책이 무엇이든지 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 일은,
‘베드로 사도’ 라는 ‘한 개인’을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
일이기도 하고,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앙인들의 공동체’이기도
하고, ‘신앙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신앙인들의 일치도 중요하고, 신앙의 일치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신앙인들)의 일치는 명령과 복종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은 겉으로만 보면 이해관계 때문에,
또는 의견 충돌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신앙의 일치’도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그를 알아주십니다(1코린 8,1ㄷ-3).”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를 보면,
겉으로는 각자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달라서
그렇게 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또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그렇게 됩니다.
<오백 여 년 전의 교회 분열도 신앙의 차이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다시 일치를 회복하려면 우선 먼저 사랑부터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 다, 서로 함께.>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신앙의 일치’도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