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기
책 속으로
이 예는 이타성이라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잘 보여준다. 집단의 구성원들끼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자신에게 돌아올 어느 정도의 손해를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만, 이들의 시선은 오직 그 집단의 내부로만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렇다고 이들이 드러내놓고 외부인을 차별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들은 외부인에게도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정을 보면 은연중에 내부인/외부인의 구분이 드러나곤 한다는 말이다).
이타성은 많은 경우 ‘좋은 것’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집단이라는 경계가 분명해지면 분명해질수록 이타성은 안쪽으로 향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이타성은 오직 집단 ‘내부’를 향한 것이 되고, 때로는 ‘외부’에 대해 적대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나기도 한다.(개정증보판 서문, 8쪽)
우선 9장에 보론을 하나 더 추가했다. 원래 9장에는 반복-상호성 가설을 좀 더 엄밀히 소개하는 보론이 있었는데, 여기에 행위자들이 실수를 하는 경우 여러 조건부 협조 전략들의 유효성이 각각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비교, 검토하는 내용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리고 10장을 다시 쓰면서, 무임승차 행위에 대해 보복을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최근 연구들을 소개했다. 15장에도 보론을 추가하여, 인류의 역사에서 집단선택이 사회적 제도와 어울리면서 어떤 방식으로 이타성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16장은 새로 추가된 장인데, 집단선택이 어떻게 이타성의 진화를 가능케 하였는지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 왜 집단 간에 경쟁이 일어나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를 외부인에 대한 적대와 연결지어 그 진화적 기원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맺음말을 다시 쓰면서 이러한 논의가 경제이론에서 왜 중요한지를 최근 경제학에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 ‘사회적 선호’에 대한 논의와 연관짓고자 했다. 경제이론은 계속 변화해나가고 있으며, ‘변방’(!)의 목소리가 몇 년 후에는 많은 이들의 논의의 중심에 서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경제주체들이 이기심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결과 경제학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맺음말에서는 바로 이러한 논의들을 소개하고자 했다.(개정증보판 서문, 9쪽)
* 본문에 등장하는 게임이론의 예
1) 저녁식사 모임의 딜레마(49쪽)
동창회, 그것도 몇 년 만에 모이는 동창회가 있어서 모처럼 멋들어지게 꾸미고 약속장소인 모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다들 바쁜 까닭에 못 나온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레스토랑이 북적북적할 만큼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동안 어느덧 식사를 주문할 때가 되었다. 차림표에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값싼 음식부터 정말 맛있어 보이는 비싼 요리까지 다양하게 적혀 있었다. 식대는 계산서에 나온 총액을 사람의 머릿수로 나눠 내기로 했다. 무엇을 시켜야 할까? 독자들도 이미 눈치 챘겠지만, 여기에도 딜레마가 숨어 있다. 다른 친구들이 뭘 고르든 상관없이, 난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시킴으로써 내 비용을 다른 사람들이 부담하도록 할 수 있다. 다른· 친구들이 비싼 걸 시킨다면, 내가 굳이 싼 음식을 시킴으로써 맛도 없는 음식을 먹고 남이 시킨 비싼 음식값의 일부까지 내가 부담할 이유가 없다. 상황을 극한으로 몰고 가보면,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차림표에서 가장 비싼 걸 시키고 지갑을 탈탈 털어낸 후, 다시는 동창회에 안 나가겠다고 툴툴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2) 골목길 청소의 딜레마(60쪽)
두 집은 골목을 사이에 놓고 마주보고 있다. 조그만 골목길이어서 사람이 그다지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청소를 해주어야 한다. 깨끗한 골목길이 주는 효용보다 청소하는 데 드는 비용이 더 크다고 해보자. 하지만 둘이 함께 골목길을 청소하면 힘은 절반밖에 안 들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깨끗한 골목길이 주는 효용이 청소를 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커진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혼자 골목길을 청소하는 데 드는 수고를 150으로 나타내고, 둘이 함께 청소를 하면 수고가 절반만 들기 때문에 75씩의 수고스러움만 부담하면 된다고 치자. 그리고 깨끗한 골목길이 두 사람에게 주는 효용을 100이라고 하자. 내 이웃이 청소를 하고 나는 돕지 않는 경우, 나는 힘이 전혀 들지 않으면서도 깨끗한 골목길이 주는 효용을 맘껏 누릴 수 있다. 상대방이 청소를 하는 경우 나는 청소하지 않는 게 이득이고(내가 돕든 안 돕든 골목길은 깨끗해질 테고, 청소를 돕지 않음으로써 나는 전혀 힘이 들지 않으니까), 상대방이 청소하지 않는 경우에도 난 청소를 하지 않는 게 이득이다(깨끗한 골목길로부터 효용을 얻을 수 있지만 나 혼
접기
출판사 서평
더욱 깊고 넓어진 4년 반 만의 개정증보판,
‘이타성의 진화’와 게임이론에 관한 최적의 안내서!
진화적 게임이론이란 사회의 복잡한 현상들을 모형화하여 진화라는 패러다임하에 게임으로 구성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상호작용의 결과가 어떻게 규범이나 관습이 되어 다시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경제학과 생물학의 만남으로 탄생한 진화적 게임이론은 이제 ‘합리적=이기적 개인’을 전제하는 기존의 경제학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넘어서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사회심리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 간의 공동의 언어로서, 그리고 행위이론의 미시적 기초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책은 2007년 10월 『사이언스』에 자기집단중심적 이타성과 전쟁의 공진화라는 논문을 실어 학계와 언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세계적인 진화적 게임이론 연구자 최정규 교수가 초판 출간 이후 4년 반 만에 ‘이타성의 진화’에 관한 최신의 연구성과들을 녹여낸 개정증보판이다.
개정증보판에는 각 장의 내용에 대한 수정보완과 함께 ‘눈에는 눈’ 전략, 방아쇠 전략, 파블로프 전략 등 여러 조건부 협조 전략들의 유효성과 진화가능성(9장 보론), 무임승차 행위에 대한 보복의 동기(10장), 유유상종 현상과 소득재분배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이타성과 함께 진화해왔는지, 즉 선호와 제도의 공진화(15장 보론), 자기집단중심적 이타성과 전쟁의 공진화(16장) 등에 관한 새로운 이론과 연구성과들이 추가되었다.
이타적 인간은 어떻게 이기적 인간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진화했는가? 저자는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출발하여 공유지의 비극 게임, 공공재 게임, 최후통첩 게임, 독재자 게임 등 20여 개의 게임들을 통해 고등학생에서 성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고도 재미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부록으로 실린 ‘게임이론 입문’과 심화학습에 해당하는 각 장의 보론 ‘게임이론 돋보기’의 구성에 더해 적절하게 배치된 상자글들이 대중교양서와 전문연구서 양쪽을 아우르는 이 책의 장점을 잘 살려주고 있다. 가히, ‘이타성의 진화’와 게임이론에 관한 최적의 안내서라 할 만하다. 뿌리와이파리, 1만 5,000원.
https://www.youtube.com/watch?v=1vyW-SUKJfo
이타적 인간은 어떻게
이기적 인간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진화했는가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합리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기성’이다. 게임이론에서도 기본적으로 가정하는 것은 경쟁주체의 이기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 두 죄수는 함께 부인하는 것이 최선임에도 둘 모두가 순순히 자백을 하여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죄수의 딜레마), 서로 절제함으로써 공유지를 푸르게 가꿀 수 있는데도 자신의 소에게 오늘 열심히 풀을 뜯김으로써 공유지를 황폐하게 만들어버리는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공유지의 비극).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헌혈을 하고, 자원봉사를 하며, 내 집만이 아니라 골목길을 청소하는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타적 행위’란 남들에게는 혜택을 주지만(즉 사회적으로는 이익이 되지만) 정작 행위자 자신에게는 손해(희생)인 행위다. 그동안 경제학자들은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이 이타적 행위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여러 해 전에 소개된 『이기적 유전자』, 『이타적 유전자』는 이 과제에 도전한 유명한 예다(전자는 인간의 이타성을 이기적 유전자의 작용으로 보았고, 후자는 반복-상호성 가설로 도덕적 가치의 진화를 설명했다).
이 책은 진화적 게임이론을 전공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최정규 교수가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이기성과 이타성의 진화라는 수수께끼에 던진 도전장이다. 저자는 인간이 과연 이기적 존재인가, 이타적 존재인가라는 해묵은 논란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타적 인간은 이기적 인간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으로 인정받아왔던 혈연선택 가설이나 반복-상호성 가설과 같은 기존의 가설?이론들을 차례로 검토하고, 그것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2% 부족한 결점을 보완하는 대안이론을 제시, 보충함으로써 이타적 인간의 생존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저자는 특히 게임이론이라는 틀로써 인간의 이타성을 둘러싼 현실과 이론의 간극을 분명히 보여줄 뿐만 아니라 게임이론의 다양한 실험결과를 통해서, 인간 본성을 설명하는 기존의 이론과 대안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있다.
‘이타적 행위’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들
『이기적 유전자』에서 주장하는 혈연선택 가설의 경우, 혈연관계에 놓이지 않은,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선행이나 친절에 대해 설명해주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반복-상호성 가설 또한 반복되지 않는 상황, 다시는 마주칠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보이는 호의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저자는 이 가설들과 함께, 이타적 인간은 이타적 인간과 만나고 이기적 인간은 이기적 인간과 만날 확률이 높다는 유유상종 가설과 토론과 대화가 인간의 이기적 본능을 억제하고 공동체의 협업을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사소통 가설, 자연선택에 있어서 개인선택보다 집단선택의 압력이 커질 때 이타적 인간이 살아남는 데 더 유리하다는 집단선택 가설, 그리고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임의적이지 않고 국지적인 것으로 보는 공간구조 효과를 대안이론으로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이론이 풀지 못한 빈 구멍들을 성실히 채워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이타적 인간은 어디에 위치지어져야 하는가? 저자는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타적 인간, 상호적 인간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계약이 상품의 모든 측면을 포괄해낼 수 없는 불완전한 계약인 경우가 오히려 일반적인 시장상황에서 상호적 인간의 존재는 거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최후통첩 게임까지, 20개가 넘는 흥미진진한 ‘게임’ 이야기가 독자로 하여금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이 책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이 책의 주가 되는 제1부는 바로 위에서 말한 수수께끼를 제기하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제2부는 이타적 인간이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 형평성이라는 사회규범을 유지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되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규범이 시장경제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가에 대한 탐구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 해당하는 부록에는 초보자를 위한 ‘게임이론 입문’을 실었다.
인간 본성, 특히 인간의 ‘이타적 행위’의 진화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경제학, 진화생물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등 인문?사회?자연과학을 넘나드는 다학제적 연구가 돋보이는 뜻 깊고 재미있는 책이다(진화적 게임이론의 세계를 더욱 깊이 탐구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같은 저자의 『게임이론과 진화 다이내믹스』[이음, 2009. 8]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