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보 태생의 러시아 작곡가인 무소르그스키는 대 지주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 그의 소년시절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잇지 않으나 13세때 근위 사관학교에 입학해서는 피아노 솜씨가 상당히 향상되어 자선 음악회에까지 나갈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1856년 사관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소속된 부대의 병원에서 당시 젊은 음악가로서 군위관이었던 알렉산더 보로딘과 알게 되자 그와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비롯한 많음 음악가들과도 사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발라키레프에게서 받은 작곡의 지도는 훗날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858년 여름, 교외의 어느 부대에 전속되는 기회를 틈타 제대한 그는 그 이후로 계속 음악만을 전공했으며, 1860년 1월에는 그의 처녀작인 Bb장조의 관현악곡 "스케르쪼"가 안톤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공개 연주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얼핏 보아 행복스러운 첫 출발인 듯도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으로 이때부터 무소르그스키는 불안한 신경쇠약에 걸리게 된 것이다. 메그덴 남작의 희곡인 "마녀"를 위한 부수음악의 작곡에 뜻을 둔 것도 이때부터였는데 실제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벌거숭이산의 하룻밤"의 기초가 된 것은 바로 이 부수음악이었다.
창작적 재능이 한창 성숙할 무렵인 1865년 당시 러시아를 휩쓸던 농노 해방운동의 여파로 가세가 기울어 지게 되자 그는 공무원으로 취직해서 생계를 도와야 했으며,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몇몇의 특색있는 곡을 작곡하긴 했으나 그 해 봄에 어머니를 여의고 공무원 생활에도 염증을 느끼게 되자 점차 알콜중독에 빠져 한때는 이로써 중태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리생활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건강도 되찾아, 1867년 봄부터 1870년 대에 이르기까지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을 비롯하여 오페라 작품을 작곡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의 러시아에서는 작곡만으로는 생활을 지탱할 수가 없어서 관리 생활을 그만둔 뒤로는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1881년 2월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졸도한 후, 스모르나 교외에서 육군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 쓸쓸히 돌보는 사람조차 없이 지내다가 42번째 생일을 맞아 "모든 것은 끝났다.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인간이었던가."라고 울부짖으며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 "전람회의 그림" 역시 작곡가인 무소르크스키처럼 기구한 운명을 겪은 곡으로 그 진가가 널리 알려지고 있다.
무소르그스키와 절친했던 친구들 중에는 하르트만이라는 천재적인 건축가가 하나 있었다. 그러나 이 하르트만은 아까운 재능을 가진채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자 남은 그의 친구들은 젊은 천재의 요절을 추모하는 뜻에서 1874년 하르트만이 남긴 그림들을 가지고 전람회를 열기로 했다. 이때 무소르그스키는 필생의 대작인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끝내고 많은 각고 끝에 어떻든 성공을 거둔 뒤였다. 마음이 내킬 때만 붓을 들곤하던 괴팍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무소르크스키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탈출구를 찾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무소르그스키는 다정했던 친구를 추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눈으로 보는 그림을 귀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음악으로 옮겨 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러한 결과 생겨난 것이 바로 "전람회의 그림"인 것이다.
그러나 원래 피아노 곡으로 작곡된 이 걸작도 무소르그스키의 생존시에는 별로 관심을 얻지 못하다가 작곡된지 12년 후에 출판되었으나, 이때는 이미 무소르그스키가 세상을 떠난 뒤였던 것이다. 무소르그스키는 생존시 단 한번도 공개적인 음악회에서 이 곡이 연주되는 것을 들어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 곡은 후에 드뷔시를 위시한 많은 인상주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주고 있다.
오늘날 이 곡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대 지휘자인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의 위촉을 받고 관현악 조곡으로 편곡해서 1922년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뒤였다.
전곡은 10편의 음화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람회장에서 진열순으로 연주된다. 먼저 보행의 주제에 의해서 시작된다. 이 보행 주세는 그 뒤에 오는 각 곡 사이에서 연주되면서 전람회장의 작품에서 작품으로 옮겨지는 보행을 나타내며 동시에 관람자를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제는 끊임없는 박자의 변화로 러시아 음악의 특성을 보여주는데, 그림 하나하나에서 받은 작곡가의 인상이 그대로 보행주제 위에도 반영된다. 먼저 전주와 같이 연주되는 보행주제에 이어서 아래와 같은 10점의 그름이 음으로 묘사된다.
다리가 짧은 난장이의 그로데스크한 걸음걸이가 빠른 템포로 묘사된다.
이 곡에 해당되는 그림은 본래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하르트만이 공부했던 페트르스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 그의 졸업작품으로 보관된 직품이
제 1곡 "난장이"를 묘사한 그림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2곡 "옛성" 푸슈킨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무대 장치를 위해 그려진 데생이다
중세기의 몇 백년이나 오랜 된 성이다. 돌로 쌓은 탑 앞에서 고요한 밤에 젊은 음유 시인이 애인을 위하여 세레나데를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림이다. 애조를 띤 멜로디가 파곳 악기에 의해 도입되며 색소폰이 연주되는 등 서정적인 선율이 흘러 내린다.
제3곡 "튈르리 정원"에 해당하는 그림으로 꼽힌 스케치 2장
모두 "하르트만"이란 서명과 "파리"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튈르리리"는 파리의 중심지에 있는공원으로 아이들이놀기에 좋은 곳이다.여기 해당되는그림도 발견되지 않아 왔으나 러시아 미술관에 소장돼 이는 두 장의 스케치 그림이 가장 가까운 직품으로 꼽혔다.
이그림들에는 "하르트만"이란 서명과 함께 파리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여기서는 두 사람의 인물이 묘사되고 있는데, 그것은 폴란드의 대표적인 두 사람의 유대인으로 이것은 그가 특히 정성을 들인 제목의 소재라고 하겠다. 여기에 나오는 사무엘은 아주 훌륭한 남자인데 부자이고, 시뮈일레는 가난한 사람으로 조금 아첨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나중 음악에는 사무엘이 시뮈일레의 경박한 행동에 참을 수 없어서 한 대 때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제7곡 "리모쥬 시장"에 해당되는 14장의 연필 스케치들
리모쥬는 프랑스 중부 지방의 한 마을인데, 이곳에서 열린 시장의 풍경을 묘사한 곡이다. 이 부분에 상당하는 그림도 그간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하르트만이 프랑스에서 그린14장의 연필 스케치들이 해당 그림으로 꼽혔다.
이 그림들은 사르티코프-시체드린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곳은 옛날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믿던 신자들의 무덤이 많이 있는 곳이다. 카타콤베가 로마에서는 특히 유명하지만 이것은 파리에 있는 것이다. 옛 신도들이 부르던 찬송가의 소리를 연상케 한다. 여기서는 관악기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제 9곡은 "바바야가의 오막살이집"
슬라브 전설 속의 마귀할멈 바바야가의 오막살이집 정면은 시계 문자반으로 되어 있다. 음악은 어떤 모티브를 움켜쥔 듯,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며 나아간다.
여기 해당되는 그림으로는 일반적으로 사르티코프-시체드린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하르트만의 시계 데생을 꼽는다. 연필 스케치다.
마지막으로 제 10곡 "키에프 대문"에 이른다.
장중하면서도 흔쾌한 화성, 문을열고 나아가려는 듯한 역동성으로 곡 전체가 완결을 향해 전진한다. 여기 해당되는 하르트만의 그림은 푸슈킨 문학연구소에 소장돼 있는데, 11세기에 건축된 키에프의 "황금의 문"재건을위해 그가 그린 데생이다. 그러나 "키에프 대문"을 재건하려는 하르트만의 이 구상은 끝내 세상의 빛을 보지못했다.
음악은 시계 소리로 묘사되고 있다. 하늘을 나는 바바야가를 중심으로 하여 귀신들이 춤을 추는 악마의 잔치로 된 환상을 그렸는데, 이것은 작곡가의 위대한 상상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 대문은 옛날 러시아의 웅대한 건축양식으로 된 것인데, 이 건축을 위해 하르트만은 설계도를 그렸다. 프롬나드와 흡사한 테마가 변주곡으로 시작된다. 러시아 군대들이 개선하여 돌아오는 모습을 그의 환상으로 묘사해 낸 그럴 듯한 음악이다. 나중에 탑 위에서 엄숙한 종 소리가 들려온다.
작곡가가 여기서 러시아의 고유한 민요와 농민의 무곡 등을 중심으로 작곡했기 때문에 멜로디와 리듬에서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무소르그스키(Modest P. Mussorgsky, 1839∼1881)
<1881년 레핀이 그린 무소로그스키 초상화>
19세기 러시아의 최대 화가인 일리야 레핀(Ilya Repin, 1844∼1930) 이 작곡가 무소르그스키(Modest P. Mussorgsky, 1839∼1881) 가 죽기 바로 전에 그린 초상화는 미술작품으로서도 걸작이지만, 특히 사실적인 표현이 감동을 준다. 1881년 무소르그스키가 42세로 인생을 마감할 무렵에는 술을 마시는 일이 더욱 잦아졌기 때문에, 레핀은 짓궂게도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있는 무소르그스키의 얼굴을 실감나게 그린 것이다. 쇼팽을 그린 들라크루와의 초상화를 비롯해 수많은 음악가의 초상화가 있지만, 유별나게도 레핀이 그린 무소르그스키의 초상화는 술고래의 모습을 그린 것이어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방불케 한다.
빅토르 하르트만(1834~1873)
그는 뛰어난 건축가일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러시아의 젊은 예술가였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데는 한가지 일화가 있다. 하르트만은 불과 35살의 나이로 요절하고 마는데... 그를 추모하기 위한 유작 전시회가 열리게 되고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음악가인 무소르그스키(Musorgsky 1839~1881) 역시 작품을 보러온다. 그는 하르트만의 건축 스케치와 그림들을 보고 난 뒤 크게 영감을 받아 그것을 순식간에 피아노 곡으로 옮겨놓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곡이 바로 <전람회의 그림>이다.
<전람회의 그림>은 10곡으로 되어 있지만, 중간중간에 전주와 간주의 구실을 하는 프롬나드 (산책이라는 뜻)도 연주된다. 이 모음곡은 배열도 매우 훌륭하지만 독창성이 넘쳐 흐르기 때문에 1백여 년이 지난 현대에도 새로운 시대 감각을 느끼게 한다.
무소르그스키는 국민음악파 5인 그룹이 거의 다 그렇듯이 정규적인 음악 수업을 받지 않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었지만, 일찍이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워 7세 때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치고 9세엔 존 필드의 피아노 협주곡도 칠만큼 천재성을 보인 바 있다. 이같은 자질이 나중에 <전람회의 그림> 같은 최대 걸작을 낳은 것이다.- <월간 미술 발취>
오늘 다녀온 요즘, 방송녹음 등. 이태리에서도 활약이 좋은 신예 피아니스트 박종훈 연주회에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전곡에서 몇곡 빠지지만 인상깊게 감상하여 올릴려고 검색해 보니 캔디님이 이렇게 멋지게 올려주신게 있어 다시 옮겨와 봤어요. 이렇게 아까운 자료가 사장되는게 안타깝죠?
우리의 존님께서도 늘 말씀하시잖아요..제가 작곡한 것이 아니니 얼마든지 가져가라구요... ㅎㅎㅎㅎ.. 서로서로 편협된 마음 버리고 나누고 함께하는 그런 정신이 우리 아트힐의 매력아니던가요?.. 저도 그래서 '와 있어도 또 오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걸랑요,, 아부가 넘 심했남..ㅎㅎㅎㅎ
ㅎㅎㅎ 항상 그렇게 생각하죠...내가 작곡한 것이어도 그냥 주고 싶은데..음악을 클래식을 다른 분의 귀를 즐겁게 하는데 쓰이는데 아까울것은 없죠..그런데 이렇게 만든 정성은 정말 아까워요...다른 데서는 그냥 아무런 마음없이 들을 것이고,,,어떤이는 그냥 슬쩍 눈흘김으로 지나치고 말 경우도 있을것이고...좋은 날!
첫댓글 캔디님 좋은 자료 넘 감사해요~^^* 아마도 님들이 좋아하실듯~~!!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래요,ㅎㅎ,
와~멋진 해설과 무소르크스키의 대표 모음곡인 전람회의 그림 키예프의 대문까지...멋지게 꾸며주셔서 감사드려요.화가 친구의 전람회를 보고서 만든작품이라 곡의 전체적 흐름이 철학적인듯...캔디님,오늘도 아름다운 하루 되셔요~!
이런 멋진 자료를~~!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키예프의 대문은 넘 유명하죠? 캔디님 감사드립니다.
캔디님~~ 반가워요. 이제 님이 올려주시는 곡 많이 듣겠지요? 감사하고, 언제나 함께 하길.... 평화로운 날 되세요.
마리오님, 안젤라님, 존님, 특히 고요님.. 격려의 말씀 감사 드립니다..전 요즘 아트힐에 아예 버선 벗어 놓고 있어요..ㅎㅎㅎ.. 좋은 오후 보내시구요.. ^^*
오늘 다녀온 요즘, 방송녹음 등. 이태리에서도 활약이 좋은 신예 피아니스트 박종훈 연주회에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전곡에서 몇곡 빠지지만 인상깊게 감상하여 올릴려고 검색해 보니 캔디님이 이렇게 멋지게 올려주신게 있어 다시 옮겨와 봤어요. 이렇게 아까운 자료가 사장되는게 안타깝죠?
와~! 역시 안젤라님이시네요.. 제가 이 자료 만드느라..3일 걸렸다는것 아닙니까.. 음원을 찾아서 하나하나 기워넣고,, (테그 실력이 지금 수준이었다면,, 아마.. 하루쯤이면 가능했겠죠?..ㅋㅋ) 음원이 죽지않아 다행이어요...그때의 열정이란,,ㅎㅎㅎ..햐~!!...그때가 새롭네요...^^
ㅎㅎ 제가 키에프의 대문을 언급했드니 올라왔다고 착각(?)해도 되져?? 표제음악의 대표곡으로 꼽을수있는 음악들이죠. 이 곡을 일본인 가주히토 야마시타란 사람이 기타독주로도 연주했답니다. 모두 미친짓이라 얘기했다지만 그의 녹음은 그런대로 들어줄만 하더군요..뛰어난 테크니션이기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govi 님이 말한 자료들이 다 올라왔으니 ..ㅎㅎ 그리고 이런 자료는 정말 다른 카페에서 그저 퍼가는건 좀 아까워요..ㅎㅎ 정성이 얼마나 들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처음 올라왔을때도..
전 그리 생각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보고 좋다고 느끼고 퍼가서 한 사람이라도 더 보면 그게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쁘게 포장한것 좋게 봐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죠.. 저 또한 타 카페가서 속(?) 자료 빼오기도 하니깐요..ㅎㅎㅎ
우리의 존님께서도 늘 말씀하시잖아요..제가 작곡한 것이 아니니 얼마든지 가져가라구요... ㅎㅎㅎㅎ.. 서로서로 편협된 마음 버리고 나누고 함께하는 그런 정신이 우리 아트힐의 매력아니던가요?.. 저도 그래서 '와 있어도 또 오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걸랑요,, 아부가 넘 심했남..ㅎㅎㅎㅎ
ㅎㅎㅎ 항상 그렇게 생각하죠...내가 작곡한 것이어도 그냥 주고 싶은데..음악을 클래식을 다른 분의 귀를 즐겁게 하는데 쓰이는데 아까울것은 없죠..그런데 이렇게 만든 정성은 정말 아까워요...다른 데서는 그냥 아무런 마음없이 들을 것이고,,,어떤이는 그냥 슬쩍 눈흘김으로 지나치고 말 경우도 있을것이고...좋은 날!
강충모 연주회에서 아이랑 듣고...그날 집에 오자 마자 이리 저리 찾아 헤매던 생각이 납니다...감사 드리며 가져갑니다...시원한 아이스 티 대접하고픈 마음만 남기고... .^^*
피아노로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또한 KBS교향악단에서 키타엔코인가... 한국에 데뷰하면서 연주했을 때의 그 다정한 지휘로 들었던 것도 생각나구요.
새로 오신 helena 님의 요청으로 앞으로 옮겼습니다.!
Wow!!! 정말 고맙습니다. It's nice of you.
와! 켄디님 넘좋은 음악를주셔네요~~~~감사합니다!
역시 캔디님이셔~~~ 고맙습니다. 너무나 귀중한 자료이네요....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캔디님 따라 가야쥐...ㅎ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저두 이곡 갠적으로 좋아하는 곡인데 참 피아니스틱하면서도 색채감이 돋보이는 곡이죠...멋진 해설과 그림으로 우리의 귀와 눈과 마음을 해피하게 만들어 주시는 캔디님 늘 감사드려요...(*^^*)
다시 들어도 좋습니다. 마지막 곡 '키에프의 대문'을 아트힐 대문에 걸어놓으면 어떨까요? 키타엔코도 다시 보고 싶군요.
너무 좋은 곡에 감사드리며,예전에 호로비츠.리히테르등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네요 거듭 좋은 음악과 그림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