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생물시계(Biological clock)가 있고, 자연에는 빛과 어둠, 추위와 더위 같은 자연시계(zeitgeber)가 있다. 생물시계와 자연시계의 조화를 통해 신체는 생체주기를 조절해 나간다. 빛은 인간을 치유한다. 우울증은 어두움과 관련이 있다. 어느 초겨울에 영국 리버풀을 방문했다. 겨우 오후 4시인데도 이미 해는 지고 사방이 깜깜하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거리에는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고요 속에 음산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때로 백야현상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고위도에 위치하는 북유럽지역에는 언제나 따스한 햇살이 부족하다. 그래서, 북유럽 사람들은 구름사이로 햇살만 나오면 어디서든지 남녀노소 모두 벌거벗고 일광욕을 즐긴다고 한다. 달리 보면, 삶 속에 배어 있는 우울함을 밝은 햇볕으로 치료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햇살만 비치면 조금이라도 더 햇살을 많이 받아들여 어두움을 몰아내려고 애쓴다. 자연과 인간사이의 교감이란 이토록 오묘한 것이다. 북구에는 계절성 우울증이 많다고 한다. 가을이나 겨울에 우울 증상들이 나타났다가 봄이 되면 증상이 호전된다. 낮의 길이가 줄어들면서 증상이 심해지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다. 이런 계절성 우울증에는 어두움과 관련된 증상이 많다. 지나치게 많이 자고,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서 특히 탄수화물이 많은 든 음식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통상적인 우울증과 다른 비특이적인 증상을 보인다. 우리는 주변에서 어두운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이들에게도 빛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내에 발생하지는 않더라도 장기간 이런 생활방식이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빛속에서 오래 생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다.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의 조화로운 생활이 필요하다. 연전에 융 심리학 분석가 Gothilf Isler박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자연의 빛 (Lumen Nature)'이라는 강연에서, '내면 세계에서 비치는 빛이야말로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어 자기 자신에 가깝게 한다.'고 하였다. 내면의 어두움을 외부의 빛으로 치유할 것이 아니라 내면의 빛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내면의 빛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의 삶의 태도에 달려 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볼 줄 알고, 등잔 밑이 어두워 잘 보지 못 하는 나의 허물을 발견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신성하기 조차한 내면의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해 부단히 정진하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나의 어두움을 빛으로 채우고자 한다면, 나의 내면의 소리에 경건히 겸손하게 귀기울이고 끊임없이 내성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