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햇볕
나희덕
어떤 증오와 조롱의 말을 들었다
독기 서린 말의 과녁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잠시의 기쁨을 꺼버리기에는 충분했지
축하의 말조차 감정의 이물질이 섞여 있다는 것을
그들의 표정만으로 알 수 있었다
어쩌다 햇볕이 좀 더 느는 자리에 앉게 되면
치러야 할 몫이 있는 법
자신은 왜 그늘에만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 이에게
빛에 대한 변명을 해서는 안되지
모래 위에 뱉은 침처럼 부글거리는 말,
침이 얼굴에 쏟아지지 않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침에서 나온 날카로운 침,
급소를 찔리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할까
입에서 버석거리는 말
목에 가시처럼 박히는 말
심장을 뚫고 흘러 들어오는 말
혈관을 조여드는 말
내장을 찌르고 훑어내는 말
배설되지 않고 계속 꾸룩거리는 말
밀어내려 할수록 달라붙는 말
오후 내내 걸었더니 체기가 조금 내려간 것 같다
부디, 오늘의 햇볕에 대해
입을 다물자
입속에서 침과 모래가 섞여 울컥거린다 해도
― 《문학과사회》 (2023 / 봄호)
나희덕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접시의 시』, 산문집 『반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예술의 주름들』이 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