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는 달력 / 허정진
시골 친구 집에 들렀다. 농사도 짓고, 자기 좋아하는 일도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사는 친구다. 시골집이라 대청마루도 시원하고 공간마다 삶의 품이 넉넉하다. 여기저기 벽에 달력이 걸려 있다. 그런데 달력마다 해당 월이 다르다. 지금이 한여름인데 어떤 것은 3월에, 또 어떤 것은 6월에 멈춰 섰고 심지어 지난해 달력도 버젓이 그대로였다. 그저 세월이 별 의미가 없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물론 은퇴했으니 시간에 쫓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저렇게 무관심할까 싶다가도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쉽고, 단순하고, 천천히 사는 삶. 하긴 자연과 더불어 살면 낮과 밤, 계절이 달력인데 날짜와 요일과 달을 정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움직이는 인간의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물고기에게는 물고기의 시간, 새들에게는 새들의 시간이 있어서 그날의 햇빛과 바람과 물결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한다고 하지 않던가. 저 느리게 가는 달력도 카이로스처럼 절대적 시간을 임의로 해체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시간을 만들어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평생을 달력에 매여 살았던 것 같다. 연 월간 계획을 세우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생활계획표였다. 시간의 지배를 받는 꼭두각시처럼 젊었을 때는 달력 없이는 불안하고 초조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시간에 길들어져 그 하루도 시간과 분 단위로 나눈 시계를 차고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던가. 밤늦게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마치 심장을 바락바락 쥐어짜거나 천둥이 저벅저벅 쫓아오는 것처럼 조급하게 들릴 때도 많았다.
시계는 현재의 시간을 알려줄 뿐이다. 하지만 달력은 과거와 미래, 보이지 않는 시간의 거리를 느끼게 한다. 달력은 가시적이고 공간적인 시간이다. 멈춤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일과 일, 주와 주, 월과 월 사이의 멀고 가까움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만큼 시간이 지났구나 저만큼 남았구나, 무슨 요일이구나 무슨 계절이구나, 세월이 가고 오는 감각은 달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부분이 아니라 전부를 관통하고 순간이 아니라 전체를 관장하는 일이다.
달력의 시간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달력에 벌겋게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날짜는 상황마다 기분이 다르다.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반가움이고, 시험 날짜가 다가오는 것은 긴장감이다. 힘든 일에는 시간이 느리고, 즐거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깝지 않은 법이다.
달력 한 장이 귀한 시절도 있었다. 한 장에 열두 달이 들어있는 농민 달력이나 국회의원 달력을 안방에 붙여놓으면 일년내내 온 식구가 매달리곤 했다. 하루 한 장짜리 일력은 모두가 잘 보이는 마루 한가운데에 걸려 있었는데 마치 집안의 좌표이자 등불 같았다. 습자지처럼 얇고 부드러운 일력을 아침마다 한 장씩 뜯어내는 일은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침을 여는 수행자처럼 하루의 첫 일과였고,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그 행위는 가족의 무탈과 안녕을 기원하는 경건한 기도 같았다.
지금은 달력이 넘쳐난다. 보이는 벽마다, 방마다 자기만의 달력을 내걸 만큼 풍부해졌지만 정작 별반 사용하지 않는다. 미관상이기도 하고, 요즘 편리하고 실용적인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굳이 달력이 필요치 않은 탓이다. 달력이 없으니 시간을 멀리, 넓게 보는 거시감도 없어지는 것 같다. 동서남북 방향감각도 없이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운전하는 것처럼 날짜가 되면 기계가 알려주는 대로 단편적으로 움직이는 현대인이다.
내 서재에는 간지 달력이 벽에 걸려 있다. 제삿날을 찾고 축문을 쓰기 위해서는 양 음력 날짜와 한자, 24절기, 간지를 모두 표기해 놓은 달력이 필요해서다. 그림도 없이 숫자만 덩그런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치고, 별표도 하고, 간략한 메모도 적어둔다. 그러면 그 달력에 우리 식구들 기념일이 들어와 살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상상과 풍경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지나간 달력을 보고 있으면 숫자마다 색소 분리 실험처럼 그 어디쯤의 시간이 뚝뚝 떨어져나올 것 같다. 기억의 방처럼 어느 날과 계절이 들락날락하고, 삶의 편린처럼 그리움과 아쉬움이 배회한다. 그곳엔 출생, 입학, 졸업, 입사, 결혼, 퇴직 등 가족들의 연대기가 필사본처럼 저장되어 있다. 달력을 한 장씩 뜯어내면서 삶의 고비를 견뎌낸 한숨 소리도 있을 것이고,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도, 떨쳐버리고 싶어도 끈질기게 남아있는 고통이나 상처의 흔적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쉬움이 많다. 성취와 성공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왜 보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이다. 달력을 넘기기 전에 해야 했던 미안하다는 사과도, 사랑의 말도, 아픔을 나눌 위로도 모두 되돌릴 수 없는 어제의 일이 되고 말았다. 인생은 왕복이 없는 편도승차권이다. 이미 지나버린 일들이 삶의 주제이며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이나마 아쉬움과 후회 없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나도 느리게 가는 달력을 갖고 싶다. 남과 비교하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은 이제 지쳤다.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삶을 살고 싶다. 직선보다 훨씬 먼 곡선의 길일지라도 내가 즐겁고 마음이 편해지는 일, 본연의 나 자신과 함께하는 삶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시간을 주물럭거려 느리게 살 수 있다면 그것도 노년의 행복이고 미학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는 내 방의 달력도 멈출 날이 있을 것이다. 죽음이 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식들이 나의 유품을 얼마나 더 그대로 둘지는 모르지만 어느 계절, 어느 달에 달력이 그대로 머물 것이다. 그 달력을 이제 더 이상 들여다볼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운 사람을 만날 날짜를 세고, 부모님의 제삿날이나 생일날을 챙기든 소박한 한 인생이 끝난 것이다. 나의 시간도 드디어 멈춘 것이다.*
<한국수필 2021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