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칼럼
왜 사는지 모르겠거든
글쓴이/봉민근
내가 태어나서 목숨을 걸고 그것에 올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그냥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삶의 이유가 분명한 사람이 성공한다.
목적이 있기에 그것을 향해 질주하기 때문이다.
분초를 다투며 시간을 아깝게 여기며 살 수 있다는 것은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할 일 없이 T.V 앞에서 소모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인생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다.
의외로 남는 시간을 할 일 없이 빈둥대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하기보다는 연명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 하셨다.
할 일 없이 있으면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마음만 분주하여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전도가 어렵다고 한다.
사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없으며 믿음이 없고 게을러서 하지 않는 것이다.
밥 먹을 시간과 잠을 잘 시간은 꼬박 챙기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소홀한 사람이 있다.
핑계는 자기 합리화다.
선악과를 따먹고 핑계 대다가 에덴을 잃은 것이 우리 인간들이다.
게으름은 만악의 근원이요 자신을 퇴보시키는 질병과 같은 것이다.
게으름에 잠식당하면 인생의 꽃을 피울 수가 없다.
목적 없이 산다는 것은 세상을 헛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달란트를 주셨고 사명을 위하여 이 땅에 부르셨다.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있음은 할 일이 있어서 일꾼으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목적을 모르겠거든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부터 시작하라.
그가 지도하시리라.
그가 인도하시리라.
☆자료/ⓒ창골산 봉서방
용서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온전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남김없이 다 행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숨을 거두시기 전까지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헌신적인 사랑은
일시적이지도 않았고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극도로 사랑하셨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 없이 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인간에게서는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신적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말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인들을 위한 용서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즉흥적이고 감정적인것은
마지막 때 신자가 분명하게 가져야할 것은
말씀에 입각한 분별력입니다.
무엇이든지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가 많습니다.
더 높은 것과 더 낮은 것,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
순결한 것과 더러운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기 쉽습니다.
신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는 교회의 교인으로서
모든 것을 생각 하고 행하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십시오.
말씀을 읽으시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주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형통의 비법
형통의 비법을 구하는 것은
대부분은 이 땅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에게
늘 있어왔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잘 살아야하고 성공해야하고 평안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있는 형통의 기준은 다양합니다.
건강에 약간의 문제가 있더라도 성공하는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성공은 하지 못하더라도 건강하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
형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각자의 기호에 따라 형통의 메뉴판은 언제든지 달라집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이라는 것은
사실 이 땅에 관한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조 이래 단 한 번도 변하지 않는 형통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록된 그 말씀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바로 형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그분이 바로 우리의 형통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신명기 29
자기 자신외에 왕이 없으므로
신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중요한 신앙인격의 덕목은 겸손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천사조차도 마귀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왕으로 섬기는
권력이요 군대이며 막강한 무기입니다.
이 막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군대의 권력 앞에
그 누구도 복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군대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이 군대를 거느린 자기 자신입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군대로 인해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 외에 왕이 없으므로
그는 다른 왕의 통치를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그 왕좌에서 내려 와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