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대하여 ..................................................... 마광수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팔리고 읽힌 소설을 꼽으라면 그건 아마 <삼국지(三國志)>가 될
것이다. 나관중(羅貫中)이 쓴 연의체(演義體)소설인 <삼국지>는 해방 전에 박태원이 처음
으로 직역체 완역본을 냈고, 이후 김동성, 김구용, 정소문 등의 직역체 완역본이 나온 후
박종화. 정비석, 이문열, 황석영 등의 번안체 역본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일본어 번안체
역본인 <길천영치(吉川英治) 삼국지>도 한국어로 번역 되어 꽤 많이 읽혔다.
내 독서경험으로는 번안체 역본보다 직역체 역본이 훨씬 더 낫다고 본다. 원작에다가 역자
가 임의로 추가하거나 재구성한 번안체 역본은, 담박하고 고졸(古拙)한 원문의 맛을 손상
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중국 고전들, 예컨대 <수호전(水滸傳)> <서유
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 <홍루몽(紅樓夢)>같은 소설에도 역시 똑같이 해당되는 사
항이다.
<삼국지>는 원래 진(晋)나라의 진수(陳秀)가 편찬한 정사서(正史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진수의 <삼국지> 역시 최근에 번역돼 나왔는데, 연의체(演義體) <삼국지>에 밀려 거의 읽
히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이 중국 삼국시대의 역사를 소설 <삼국지> 에 나
오는 대로만 알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정사라고 해도 저자의 일방적 관점이 개입
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일설에 의하면 진수는 삼국시대 때 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에게 찾아가 벼슬을 구했
다고 한다. 그런데 제갈량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자 화가 나 위(魏)나라 편에 붙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뒤 사마염(司馬炎)이 위나라를 뒤엎고 진(晋)나라를 세운 후 삼국을 통일하
자, <삼국지> 편찬을 맡아 촉나라의 위상과 제갈량의 치적을 가혹하게 깎아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진수의 <삼국지>는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중 촉나라에 할 당한 분량이 가장
적다. 그리고 진(晉)나라의 전신인 위나라를 역사의 주역으로 삼았다. 그래서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간웅(姦雄)으로 묘사된 조조(曹操)를 구세(救世)의 영웅으로 기술하고 있
다. 사실 객관적으로 역사를 들여다 보면 진수의 역사관이 현실과 사실에 더 잘 부합된다.
촉나라는 땅덩이 자체가 가장 협소하고, 궁벽했을 뿐만 아니라 제갈량을 빼면 변변한 인물
조차 별로 없었다.
우리가 연의체 <삼국지>를 읽으면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이 마치 제갈량인 것처
럼 착각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유비(劉備)라고 해봤자 한(漢) 나라 왕실의 피를 이어
받았다는 점만 장점으로 부각될 뿐, 인품이나 기량 면에서 볼 때 쩨쩨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다. 또 한나라 왕실의 혈통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중국이 태고
이래로 한나라 하나로만 이어진 게 아닌 만큼, 왕실이 부패하고 무능하여 쓰러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삼국지>를 읽을 때 조조의 월권과 지략에 분노하고, 유비의 복고주의와
제갈량의 충성심에 감동한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아직도 봉건적 충효사상으로 단단히 무장
된 나라라서 그런 것 같다. 자기네들이 무능하고 우매하여 자멸을 자초한 조선조 왕실에 대
해서도 여전히 동정과 추모(追慕)를 계속하는 한국인들의 이상한 복고주의 심리가 <삼국
지>를 읽을 때도 여전히 크나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삼국지>가 여전히 우리나
라 독서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우려를 낳게 한다. 참된 민주화란 수구적 봉건
윤리의 극복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그냥 '싸움 책' 정도로만 읽으면 모르겠으되, 충효사상이 주제로 돼있는 '우국
충정의 서(書)'로 읽으면 곤란하다. 유비나 제갈량, 또는 관우나 장비가 그토록 악을 써 싸
웠던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였지 진짜로 민중을 걱정해서는 아니었다. 그렇게 볼 때 유비
가 조조보다 특별히 더 낫다고 볼 수도 없다.
또 제갈량이 화공법(火攻法)을 자주 쓴 것만 해도 당시의 전쟁윤리로서는 아주 잔인하고
파격적인 것이었다. 당시의 전쟁방법은 주로 대장 대(對) 대장의 승부겨루기에 있었지, 졸
병들을 몽땅 태워죽이는 식의 치사한 방법은 가급적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사(正史)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을 그저 '꾀돌이'로만 묘사할 뿐 소설 <삼국지>에서처럼 '신의 도
움을 받아 도술을 부리는 신비한 인물' 로는 묘사하지 않고 있다.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