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
- 김나영
시가 뭔지도 모르는 아들 녀석이
평소엔 시에 관심도 보이지 않던 녀석이
오늘은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오늘 날씨 짱 좋아!
이런 날 집에만 있으면 돼!
이런 날은 밖에 나가서 시를 써야지, 시를!
빗소리에 온 세상이 타악기로 변해가던 어느 날
베란다 문을 닫으려던 내게
엄마! 문 닫지 마, 빗소리 좀 들어 봐!
가끔은 내 머리 꼭지 돌 정도로
말 안 듣는 녀석에게 마구 욕을 퍼부어대면
시인이 그렇게 막 욕을 하면 돼! 하질 않나
안 보는 척, 모르는 척 녀석은
이런 식으로 나의 빈틈을 조목조목 공략한다
내가 시를 개관하고 있음을 녀석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김수영이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이
내 급소 꼭꼭 짚어가며 시를 개괄하고 있다
―시집『수작』(애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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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예술 한다는 사람들의 행위 자체가 예술로 비쳐지던 적도 있었습니다
날선 말투, 시린 눈빛, 허름한 옷매무시 조차도 예술인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이해되던...
시를 끼적이면서 예술판 구석자리에 끼고 보니 모두가 빈틈 많은 그저 사람임을 알겠습니다
부모자식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며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수인사에 더 열중하는 나를 봅니다
한 편의 글을 쓰려면 자연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한 장의 그림을 사진을 남기려면 자연의 빛깔을 느껴야 하는 것임도 알겠습니다
시 속 화자의 약점이 바로 우리들의 현 주소일 듯 합니다
시인의 아킬레스건은 내게도 오늘 아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