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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게다가 여가탈입을 막기 위해 도입한 대응책이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을 낳았다. 정작 집이 필요한데도 셋집을 못 얻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으니, 요즘 말로 하면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본 꼴이었다. 특히 힘도 없고 가난한 양반들이나 말단의 군인들이 한양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_ 36쪽 〈1장 공급난이 끌어올린 한양 집값〉 중에서
왕자, 공주가 결혼할 때, 즉 출궁해서 새집으로 이사할 때가 되면 민가의 철거 문제가 심심찮게 불거졌다. 어느 날 갑자기 ‘왕자, 공주의 새 보금자리를 지을 예정이니, 당장 집에서 나가시오’라고 통보받게 된다면 그야말로 하늘이 노래지지 않겠는가. 졸지에 재개발 난민이 되었으니 말이다.
_ 59쪽 〈1장 빛나라, 조선 금수저의 삶〉 중에서
조선 역사 500년 내내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경전들만 읊어댔을 법한 성균관의 수장이 이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다니! 정말로 대단히 어이없는 일이었다. 공식 석상에서 나온 말이니 만큼 정조는 차마 대사성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염해전의 권리를 다시 반인들에게 돌려줬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6년 뒤인 1788년 마포 사람들은 다시 한번 징을 두들기며 염해전을 돌려달라고 외쳤다.
_ 105쪽 〈2장 황금알을 낳는 소금?〉 중에서
정성을 듬뿍 쏟은 덕분에 이황은 목화 농사로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논농사와 밭농사는 기본이요 목화 농사에도 뛰어들어 쉼 없이 이익을 만들어냈으니, 조금 과장해 이황을 ‘헤지 투자’의 달인이라고 불러도 될 듯싶다.
_ 118쪽 〈2장 헤지 투자의 달인이 된 이황〉 중에서
끝으로 숙종이 사랑한 것은 장희빈의 미모가 아니라 그녀가 가진 엄청난 돈일 수 있겠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만약 장희빈이 후궁, 또는 왕비가 아니라 상궁의 길을 걸었다면, 그래서 친척 언니와 함께 손잡고 조선을 대표하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밀수라는 가업에 충실했다면, 그때도 결국은 재산을 둘러싸고 서로 물어뜯으며 나라를 시끄럽게 했을까. 그래도 우리가 아는 장희빈의 인생보다야 훨씬 더 오래 살고, 더 행복했을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라니까!
_ 153쪽 〈2장 인삼 밀수와 패밀리 비즈니스〉 중에서
중국 상인들은 일부러 인삼을 사지 않으면서 사신들이 떨이로 싸게 팔 수밖에 없게끔 버텼다. 똑같은 일을 겪게 된 임상옥. 하지만 그는 여간내기가 아니었으니, 팔려고 가져온 인삼들을 공터에 쌓아놓고 불을 질러버렸다. 떨이로 나올 줄 알았던 귀하디귀한 인삼이 ‘캠프파이어 장작’이 되어 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중국 상인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불길 속에서 인삼을 건져내는 그들의 모습이 가관이었다고. 이후 인삼 가격이 10배가 폭등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조선판 ‘자사주 소각’의 전설이다.
_ 163~164쪽 〈2장 ‘J-인삼’의 시대〉 중에서
그런데 무언가 찝찝하다. 김재순이 사형당함으로써 정말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사실 정말 근본적인 원인은 나라 차원의 곡물 유통 인프라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민간인인 경강상인들이 그 일을 대신한 데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후로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당시 임금은 정열이 넘쳐 온갖 데 끼어들고 참견하던 아버지(정조)와 다르게, 무기력하고 축 늘어져 할 일을 내팽개치고 신하들에게 떠맡겨 그 이름도 빛나는 세도정치의 기틀을 옴팡지게 닦아놨던 순조였다. 결국 이날의 폭동은 경강상인들의 욕심과 무능력한 공권력이 빚어낸 ‘환장의 콜라보’였다.
_ 190~191쪽 〈2장 유통업체‘㈜경강’의 횡포가 선을 넘으니〉 중에서
그렇다면 황금광 시대에 파헤쳐진 금광들은 모두 채산성이 좋았을까. 그럴 수도 있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무슨 말이고 하니, 금의 가치가 이전보다 몇십 배, 몇백 배 뻥튀기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전이라면 채산성이 나쁘다고 판정될 금광도 1930년대에는 캘 만하다고 인정되었다. 이처럼 금의 가치가 치솟았으니, 건전한 투자도 투기에 물들 수밖에 없었다. 주식시장에 거품이 낄수록 투기꾼들이 법석을 떠는 것처럼 말이다.
_ 226쪽 〈3장 나라는 망해도 금광은 남는다〉 중에서
이미 돈 내고 돈 먹기 판이 되어버린 이상 그 누구도 쌀 자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쌀 유통의 흐름과 주변 환경을 찬찬히 뜯어보기보다는, 숫자(가격)가 커지고 작아지는 데만 목을 매니 도박과 다를 게 없었다.
_ 248쪽 〈3장 사람을 잡아먹는 미두시장〉 중에서
일본이 직접 전쟁에 뛰어들자, 경제가 철저히 통제되기 시작했다. 이때도 사람들이 궁금했던 것은 주식시장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 것인지 따위였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를 다룬 기사가 쏟아졌다. 일제강점기에도, 전쟁통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돈이었다, 당연하게도.
_ 267쪽 〈3장 100년 전 원조 개미들의 주식 잔혹극〉 중에서
그리하여 정말 많은 조선 사람이 ‘만주 대박’을 노리며 북쪽으로 향했다. 기차역마다 만주행 열차에 몸을 싣고 가족과 눈물의 이별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만주에 농사지으러 가는 사람도 있었고, 그곳의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절대로 어리석지 않았다. 만주행은 그들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이 모든 것이 일본과 조선총독부 그리고 관동군이 짝짜꿍해 짠 거대한 사기극이었다는 것이다.
_ 282쪽 〈3장 만주 개척이라는 거대한 사기극〉 중에서
“그때 살걸!” 1930년대 조선 사람들이 나진을 바라보며 숨 쉬듯 뱉었던 말이다. “나진에 땅 좀 사뒀다면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텐데” 하는 한탄이 끊이질 않았다. 왠지 오늘날에도 비슷한 레퍼토리가 반복되고 있는 것 같은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하지 않은가.
_ 286쪽 〈3장 나진 대박의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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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경제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원조 개미’들의 진짜 투기 잔혹사
수많은 역사책이 조선의 경제가 사농공상의 유교적 질서를 바탕으로 돌아갔다고 설명하지만, 작가는 ‘역사 덕후’의 기질을 발휘해 그 빈틈을 파고든다. 즉 법과 제도, 사상과 질서의 틈바구니에서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그 온갖 수단과 방법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조선 경제의 풍경은 매우 역동적이었다. 가령 조선 중기 이후의 은광 개발과 은화 유통은 ‘임진왜란의 영향’이나 ‘동아시아 은본위제의 성립’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거기에는 은맥 찾기에 투신한 농민들, 정제 기술을 개발한 장인들, 그 기술을 일본에 판 산업 스파이들, 큰돈을 투자해 은광을 사업화한 양반가의 물주들, 그들의 뒤통수를 노린 무뢰배들, 이들 모두에게 빨대를 꽂은 탐관오리들의 물고 물리는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있다(204~220쪽).
책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춘다. 임금부터 천민까지 수많은 사람이 부동산부터 주식까지 나름의 패를 쥐고 펼친 ‘쩐’의 전쟁이라 하겠다.
[한양 집값 앞에 장사 없다]
조선의 수도 한양에는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 많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서울 자가’가 그러하듯, 조선 사람들도 ‘한양 자가’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애민 정신의 대변자 정약용조차 아들들에게 “한양에서 10리 안에 살게 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을 정도다(19~23쪽). 이처럼 행정과 경제, 학문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한양으로 향했고, 그만큼 땅값과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 돈을 번 인물로 어영청의 대장 윤태연이 유명했다(28~91쪽). 그는 권력을 이용해 어느 백성의 10칸짜리 집을 싼값에 사들인 다음, 전격적인 리모델링으로 방을 하루 만에 총 30칸까지 (쪼개어) 늘렸다. 그런 다음 이 쪽방들을 세놓아 월세를 받다가, 비싼 값에 집을 되파는 데 성공했다. 지금처럼 세련된 ‘집테크’는 아니었지만, 집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만큼은 확실히 알았던 셈이다.
이 외에도 책은 다중 계약으로 보증금을 슬쩍한 전세 사기(51~53쪽), 도시 정비나 유력자들의 대저택 건설로 발생한 재개발 난민(33~34쪽, 59쪽, 73~76쪽),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초래한 조정의 부동산 정책(36~38쪽) 등을 소개한다. 이로써 바로 어제 일이라 해도 믿을 만한 500년 전 부동산 희비극이 펼쳐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eY1eZ98ldp4
[돈 앞에 양반, 상놈이 따로 없다]
조선 사람들은 돈을 벌 때만큼은 자기 신분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왕족이라도 돈이 없으면 숨죽여 살았고, 천민이라도 돈이 많으면 양반 부럽지 않게 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선 후기가 되면 돈으로 신분까지 사니,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라는 속담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유정현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124~140쪽). 그는 조선 초 나라 살림을 책임진 관리로, 그 능력이 굉장히 탁월했다. 특히 화폐 발행과 정착을 진두지휘하며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부국에 이바지한 명재상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유명한 대부업자이기도 했다. 그것도 아주 악독해 고리로 번 돈만 오늘날 시세로 2000억 원에 달했다. 영의정이나 되어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어찌 보면 돈 버는 데 물불 가리지 않은, 가장 조선 사람다운 태도였다. 그렇다면 화폐 도입을 위해 애쓴 것도, 돈 빌리려는 사람을 늘리려는 수작 아니었을까.
이 외에도 책은 성실한 재테크로 오늘날 용산공원 규모(약 100만 평)의 농장을 소유하게 된 이황(114~118쪽), 인삼 밀수에 임금까지 끌어들인 역관 장현(144~148쪽), 고위 관리를 사위로 맞아 신분을 높이려 한 천민 부자 김내은달(173~175쪽), 유통 공룡이 되어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한 경강상인(184~186쪽) 등을 소개한다. 이처럼 조선은 임금부터 천민까지 모두가 애써 부자 되려 한 나라였다.
[야수의 시대, 야수의 심장]
20세기에 들면 새로운 돈벌이 방법들이 조선에 상륙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식과 선물이었으니, 수많은 조선 사람이 생전 처음 보는 시장에 열광했다. ‘기업공개’나 ‘서킷브레이커’ 같은, 지금은 상식이 된 안전장치들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아 한순간에 큰돈을 벌고, 또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신문들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과 “실성해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253~255쪽).
이 와중에 거의 유일하게 큰돈을 벌고, 또 지켜낸 사람이 바로 조준호다(270~273쪽). 그는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한 엘리트였는데, 단순히 머리가 비상한 차원을 넘어 ‘멘탈’이 대단했다. 1936년 일본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나라’의 존망을 걱정한 식민지 조선의 개미들이 ‘패닉 셀링’을 이어갈 때, 홀로 초연히 ‘줍줍’에 나서 오늘날 시세로 2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실현했을 정도다. 또한 조준호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투자처를 다양화했는데, 한국전쟁 후 곧바로 벽돌공장을 지어 큰돈을 벌기도 했다. 이에 ‘투자의 신’으로 불렸으니, ‘투기의 민족’이 낳은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이 외에도 책은 나라 팔아먹은 돈을 선물로 튕긴 매국노 윤택영(254~255쪽), 기생을 사 첩으로 삼기 위해 선물에 뛰어들어 오늘날 시세로 400억 원 가까이 번 유영섭(256~259쪽) 등을 소개한다. 낯설지 않은 이 이야기들은 100여 년 뒤에 벌어질 아수라장의 ‘프리퀄’ 아니었을까.
“그때 살걸!” “그때 팔걸!”
‘그때’로 돌아간다면 ‘떼돈’을 벌 수 있을까
이처럼 500여 년의 조선 역사에도 투자와 투기의 경계에서 웃고 울기를 반복한 수많은 사람이 존재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본 후 내린 저자의 결론은 그리 밝지 않다. 역사에 아무리 빠삭한들, 설사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부자 되기는 어렵다는 것! 왜냐? 인간은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이 소개하는 돈벌이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실패의 공식은 단 하나다. 조금만 더 벌려다가 몽땅 잃는다는 것이다. 가령 1900년대 활동한 반복창은 쌀 선물시장에서 오늘날 시세로 수백만 원의 돈을 300억 원 가까이 불리는 데 채 2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리한 투자 끝에 그 큰돈을 몽땅 잃고는 선물거래소 근처를 전전하다가 객사했다. 그의 유언은 “쌀값이 오른다! 떨어진다!”였다고 한다(248~253쪽).
이와 비슷한 경우가 조선 역사 내내 반복되었다. 고리대까지 동원해 산 한양의 100칸짜리 기와집이 1년 만에 ‘깡통’이 되어 정말 깡통 찬 유만주(68~71쪽), 은광과 보가 돈이 된다는 소문에 앞뒤 따지지 않고 가산을 모두 처분해 뛰어들었다가 쫄딱 망한 안명관(199~200쪽, 209~211쪽), 제국주의의 피해자인데도 제국들이 계속해서 날뛰길 바라며 전쟁 관련 주식을 쓸어 담은 결과 평생 ‘존버’하게 된 식민지 조선의 개미들(266~267쪽)까지 그 예는 정말 무수하다.
하지만 이 욕심 많은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고 싶지 않은 건 왜일까. 오늘도 오르는 부동산 대출 금리에, 물도 못 탈 정도로 낮아지는 주가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사람이라면 ‘원조 개미’들의 이야기에 빠져보자. 묘한 동질감과 카타르시스에 위로받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