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549〉
■ 고향 (곽재구, 1954~)
흐린 새벽
감나무골 오막돌집 몇 잎
치자꽃 등불 켜고 산자락에 모이고
깜장 구들 몇 장 서리 내린
송지댁네 외양간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콩대를 다독이며 쇠죽을 쑤고
약수골 신새벽 꿈길을 출렁이며
송지댁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
에헤라 나는 보지 못했네
에헤라 나는 듣지 못했네
손시려 송지댁 구들 곁에 쭈그린 동안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생솔 부지깽이 아내에게 넘겨주고
쓱싹쓱싹 함지박이 쌀 씻는 모습
쪼륵쪼륵 양은냄비에 뜨물 받는 소리
에헤라 대학 나온 광주 양반에게서도
에헤라 유학 마친 서울 양반에게서도
나는 보지 못하였네
듣지 못하였네.
- 1983년 시집 <사평역에서> (창작과 비평사)
*시골에서의 겨울은, 특히 전원생활을 하는 귀촌인들에게는 잡초와의 전쟁이나 다른 잡일도 없는 때라 한결 여유롭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주업으로 예전 방식으로 살아온 시골 분들에게는 겨울에도 번잡한 일들이 제법 쌓여있습니다.
무엇보다 난방 문제가 쉽지 않은 듯하더군요. 기름보일러가 설치되어 있다고는 해도 적잖은 비용이 발생하는 관계로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워야만 집안이 따숩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2월이 되면 남자들에게는 땔감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상황이더군요. 나이가 들어 홀로 지내는 분들은 대개 전기장판에 의지하기도 합니다만.
이 詩는 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향에 남아 힘든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아내를 위할 줄 아는 송지댁네 바깥양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예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詩의 내용을 보면 초겨울의 새벽녘, 정답고 평화로운 고향 마을 풍경을 그리면서 송지댁으로 시선을 옮겨 주인공인 바깥양반의 일상적 행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즉, 그는 힘든 머슴살이도 즐겁게 하는 착한 성품을 지녔으며, 늘 부지런하게 집안의 잡다한 일들을 묵묵히 처리하며 무엇보다 아내를 우선 배려하고 챙겨주는, 사회적으로 출세한 다른 사람에게서 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송지댁 바깥양반의 이런 태도를 보면서 시인은, 그를 칭송하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평가는 신분의 고하나 학식의 다소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근본적인 성품과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자세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