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우수(雨水)는 24절기 중에 두 번째로 음력 정월 중기에 오며 양력으로는 2월 19일 혹은 20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330도에 위치하는 날로서 입기일(入氣日)이다. 예로부터 ‘봄을 알리는 단비가 내려 대지를 적셔 건조한 대기가 습윤(濕潤)해지는 계절로서, 얼음이 녹아내리거나 겨우내 맹혹한 모습을 띄던 눈이 녹아 비로 내려 물이 된다.’는 의미에서 ‘우수’이다. 이 같은 계절의 변화로 혹독하게 춥던 날씨가 많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면서 산야의 초목도 삼동의 웅크림에서 깨어나고 땅속의 잔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이며 움이 틀 준비를 하고, 새싹이 돋아날 채비를 차근차근 조신하게 시작한다.
우리의 겨울은 가뭄이 지속되는 건기이기 때문에 우수 절후(節侯)*에 이르면 대체로 대기는 매우 건조하고 대지는 목이 말라 허덕이는 꼴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대자연이나 산천초목의 입장에서 보면 소생의 계절을 맞아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움이 트거나 새싹이 돋아나는 소생의 진통을 이겨내기 위해 물이 절실한 시가가 바로 우수 무렵이다. 그렇다고 하늘에서 의무 방어전을 치르듯이 비를 내려 주는 게 아니다. 절실하게 물이 필요한 시기에 하늘에서 알아서 비를 내려 주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나타낸 게 우수이다. 결국, 우수는 ‘겨우내 가뭄이 지속되다가 만물이 소생할 준비를 해야 하고, 농사를 짓기 위해 비를 내려야 할 적기’를 뜻한다.
우수를 전후한 계절에 대지는 푸석푸석해 먼지를 날리고 잔디나 마른 풀의 어디에서도 머금고 있는 습기를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나무가 무성한 산에도 바삭바삭하게 마른 낙엽과 겨울을 나며 생기를 잃은 나무의 모습이 처연할 지경이다. 이렇게 생기를 찾을 수 없는 정황에서 해동과 함께 하늘에서 비가 내려 대지를 적시며 땅으로 스며들어 풀이나 나무의 뿌리가 물을 충분히 빨아들일 형편이 이를 수 있다면 아름다운 봄의 향연은 엇박자로 치닫지 않고 우순풍조를 노래하리라.
예로부터 우수나 경칩을 지나면 매섭던 날씨가 몰라보게 순하게 변하며 점차 따스해지는 자연현상을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일렀다. 이들 절기를 지나면 한데서 험한 잠을 잘 수밖에 도리가 없는 거지나 떠돌이가 얼어 죽는 동사자가 없다고 얘기할 만큼 날씨가 온화해진다.
옛 기록에 따르면 우수 입기일(入氣日) 이후 보름 동안을 셋으로 나누어 3후(三候)*로 규정하고 ‘초후(初候)에는 수달이 물고기를 잡다 늘어놓고, 중후(中候)에는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말후(末候)에는 초목에서 싹이 튼다.’고 하였다. 이 내용이 시사하는 바는 우수 무렵이 되면 분명 봄이 오고 있다는 메시지이다. 먼저 겨우내 얼었던 큰 내(川)나 강이 풀려 물이 흐르면서 고기가 노닐어 수달이 먹이로 그 고기를 잡을 정도가 된다. 그리고 혹독한 시베리아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던 철새가 본디 제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간다. 거기다가 산야에서 잔뜩 웅크리고 신음하던 초목에 싹이 틀 준비에 눈 코 뜰 새 없이 분주한 모습을 띈다. 이런 기상 변화의 조짐이 대지를 뒤덮고 있음은 봄이 어느 사이 코밑까지 밀고 들어왔다는 방증이 아닐까.
우리의 전통 습속을 보면 정월대보름부터 논밭두렁에 불을 놓아 태움으로써 병충해를 예방한다고 믿었다. 병충해 방제를 위한 불 놓기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정월대보름을 넘기고도 이어지는 게 보통이었다. 그 순수한 취지는 백번 타당하고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뛰어난 농약이 널리 보급되어 구태여 불을 놓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고, 실화로 산불을 낼 위험성 때문에 논이나 밭두렁을 태우는 행위는 점점 자취를 감춰가는 추세이다.
대부분이 천수답인 상태로 벼농사를 짓던 지난날 겨우내 가뭄이 지속되다가, 물이 절실한 우수 무렵에 봄비가 내리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런 절실함과 꼭 비가 내리기를 염원하는 간절한 바람을 진솔하게 나타낸 게 우수이다. 그 옛날에 비하면 상전벽해를 연상할 만큼 농사용 물을 가두어 갈무리하는 댐이나 저수지가 즐비해진 지금도 우수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들것이라 점치는 순박하고 진솔한 농심(農心)을 넌지시 알아채며 내 마음도 거기에 기꺼이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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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후 : 24절(節)과 72후(候 : 24절 ˟ 3후)를 합해서 ‘절후’라고 한다. 태양이 일 년 동안 가는 길을 황도(黃道 : 360도)라고 하며, 각각 15도로 나눈 점을 24절(12절(節) 12중(中)), 각 절을 5도씩 나누어 후(候 : 초후, 중후, 말후)라고 한다. 24절이 월초(月初)에 있으면 ‘절기(節氣 : 매월 4~8일 사이에 옴)’, 월중(月中)에 있으면 ‘중기(中氣 : 매월 19~23일 사이에 옴)’라고 한다. 이와 같은 12절과 12중을 합해서 ‘절기(節氣)’라고 한다.
* 3후 : 한 달에서 5일을 1후(候), 3후인 15일을 1기(氣)라고 하는데, 이것이 기후를 나타내는 기초가 된다. 1년을 12절기(節氣)와 12중기(中氣)로 나누고, 이를 24절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절기는 한 달 중에 월초(月初 : 매월 4~8일 사이에 옴)에 해당하며, 중기는 월중(月中 : 매월 19~23일 사이에 옴)에 해당한다.
한편 2011년의 경우 양력으로 2월 19일이 우수의 입기일(入氣日)로서, 이 날부터 보름(15일) 동안이 ‘우수 절기’이다. 그런데 이 보름 동안을 닷새씩 구분하여 3후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수 절기’의 경우를 예를 들면 첫 번째를 초후(2월 19일~23일까지), 두 번째를 중후(2월 24일~28일까지), 세 번째를 말후(3월 1일~5일까지)라고 한다. 24절기에서 3후는 모두 이 같은 원리로 계산한다.
2011년 2월 1일 화요일
첫댓글 잘읽고 갑니다 교수닝ㅇ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무술년 새해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