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거의 살다시피... ㅎㅎ
이사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촌민 여러분 잠시 후 마을회관에서 촌민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광화문 캠핑촌의 하루는 오전 9시 촌민회의로 시작합니다.
시골마을의 이장님 방송처럼 정겨운 멘트로 텔레그램 소통방의 알림이 울리면 매서운 바람과 추위 속에 각자의 텐트에서 밤을 지새운 촌민들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하나둘 마을회관으로 모여듭니다. 캠핑촌의 하루 일정을 공유하고 캠핑촌 운영에 대한 간단한 논의들을 거치면 각자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와 있어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널리 알려져서 우리 캠핑촌을 블랙리스트 예술촌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계세요. 여기 사는 분들이 모두 예술인인줄 알고 계시더라고요. 문화예술인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블랙리스트로 찍힌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노조파괴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 홀로 싸웠던 일반 시민들, 신부님, 스님, 목사님처럼 종교인들도 있어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활동가들도 있고요. 각자의 방식으로 때로는 같은 방식으로 박근혜 정권과 싸우는 사람들이지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만큼 광화문 캠핑장은 무척이나 바쁜 곳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리고 생각만 했던 많은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실행되는 곳이지요. 지난해 11월4일 첫날, 새로 구입한 텐트 30동이 경찰 때문에 갈기갈기 찢어지고, 은박롤 하나로 밤을 지새우며 버텼었죠. 이후에도 비닐 하나, 텐트 하나도 경찰과 싸워서 쳐야했어요. 비오는 날 때마침 시국 미사로 모여 계셨던 신부님 수녀님들이 함께 지켜주셔서 비닐 한 장 치고 세상을 다 얻었던 것처럼 기뻐했던 날이 기억납니다.
조그만 텐트들과 작은 기자회견용 앰프하나로 시작했던 행사들이 거대한 무대와 빵빵한 음향, 광장극장 블랙텐트, 궁핍현대미술광장(전시관), 대형촛불, 조각광장 등의 예술공간으로 변신했고, 노동자들은 ‘재건축 붐’이 일어서 각자의 사업장과 투쟁을 형상화하는 집들을 파견미술팀과 함께 만들고 있죠. 코란도 모형과 굴뚝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집, 청와대와 노조탄압을 표현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2층집,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모형 기륭전자 노동자의 집, 10년 투쟁의 고참 선배님들인 콜트콜텍 노동자 기타의 집 등이 지어졌어요.
여러 가지 길들이 모여 광장이 이루어진다고 하죠. 광화문 캠핑장은 그런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활동들이 전체를 만드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갇혀있는 틀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요. 큰 무대에서 다 담지 못하는 작은이들의 목소리가 크게 이야기 될 수 있는 곳. 다양한 상상력으로 표현되는 활동 방식들, 실제로 저희를 막으려고 왔던 경찰들이 기가 막혀 웃는 일들도 비일비재합니다.
대표적인 활동이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 활동입니다. 청와대 청소에서 재벌 청소와 국회 쓰레기들 청소까지 오지랖 넓은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청와대 앞에 저희가 출동하면 경찰보다 청와대 보안팀들이 나와서 긴장을 하죠. 지키는 경찰들은 자기들끼리 웃다가 정색하다 난리구요. 심지어 문화노동자 연영석님을 모시고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었습니다. (유투브에 가면 보실 수 있어요.) 블랙리스트버스 때도 세종시까지 가서 문화광광부 청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국정원 청소를 가볼까 고민 중이기도 해요.
캠핑촌이 농성장이다 보니 많은 일손들이 필요해요. 집 짓는 것부터 보수 작업, 청소 정리작업, 캠핑촌 운영 및 정리, 발전기 수리 등등 역시나 농성의 달인들인 기륭전자, 콜트콜텍, 쌍용차, 현대기아,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만물 수리점이죠.
그 중에서도 노동자이자 문화예술인이기도 한 콜트콜텍 김경봉님은 공간운영 및 프로그램 진행까지 캠핑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분이시죠. 10년을 싸워온 투쟁사업장의 선배이자 콜밴의 베이스 주자로, 또 연극배우로 다양한 문화예술영역까지 활동하시지만 캠핑촌에서는 음향 담당이고 건축가이고 청소부로 항상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저랑 같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옆에 안계시면 항상 찾게 되는 분이예요. 민중가수 박준님이 기증해 준 기타로 장식한 콜트콜텍 노동자의 집을 완성하고 뿌듯해 하시는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제일 먼저 들어와 계셨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 텐트 만들어 주시느라 제일 늦게 완성된 텐트이거든요.
캠핑촌 엄마라고 불리는 기륭전자의 유흥희 분회장, 촌장이라는 직함을 한사코 거부하는 일꾼대장 송경동 시인, 처음에는 덩치를 보고 기도 역할을 했으나 타고난 심성이 착하다는 걸 알고 사람들이 막 부려먹는 문화연대 이두찬, 일주일에 수 십개의 웹자보와 선전물들을 그냥 ‘슝슝’ 쏟아내는 오진호, 캠핑촌의 상징이 된 박근혜, 정몽구, 이재용, 김기춘, 조윤선 등의 조형물들을 만들어낸 신유아와 파견미술팀 등등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투닥거리다가도 즐겁게 캠핑촌을 만들고 있어요.
그 외에도 광장신문 발행위원회, 광장 토론위원회, 블랙텐트 극장위원회 등 다양한 활동들이 자체적으로 벌어집니다. ‘하야하롹’ 콘서트, 노동자들의 역사를 노래하는 고백콘서트, 전국풍물시국굿판, 민족춤협회 시국공연 등이 진행됐고 각종 시국선언, 기자회견, 광장토론회, 문화행동 작품제작 및 전시, 퍼포먼스, 블랙마켓, 연극인들의 대본 연습, 마술공연(심지어), 노동자들의 토론회, 시민자유발언대, 어린이책 작가들의 참여프로그램…. 100일 만에 이루어 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광장에서는 현실이 됩니다.
광화문광장 주변 상가를 돌며 주말 촛불 때문에 고생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노고를 생각하자는 캠페인을 촌민들과 한 적이 있습니다. 캠핑촌의 마음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1200백만의 촛불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소리 내는 곳. 바로 광화문 캠핑촌에서 하고 싶고,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박근혜 퇴진만으로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근혜와 부역자들의 적폐를 청산하고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과 재벌의 권력구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근혜 퇴진을 외쳤던 촛불들이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작은 공간의 광화문 캠핑촌은 오늘도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잠시 후 7시 매일 촛불을 준비해야 해요. 5시30분 광장의 상징이 된 대형 촛불 전기를 켜고 매일 촛불 음향을 준비하기 위해 짐차로 쓰고 있는 리어카를 가지러 갑니다. 일은 힘들고 날씨는 춥지만 내일은 또 뭘 해볼까, 이번주는 무슨 일을 벌여볼까 궁리를 하면서 오늘 하루도 지나갑니다. 고되지만 행복한 시간이 지나갑니다.
첫댓글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