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복산 언저리로
구월 첫째 토요일 서해안을 따라간 태풍이 지나면서 우리 지역은 피해를 그리 주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일요일 오전은 집안에 머물다 점심나절 짐을 꾸려 고현으로 떠남이 상례다. 그런데 이번은 예외로 시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는 대학 동기와 산행을 나섰다. 우리는 지난 칠월 어느 날 산행을 갔다 왔으니 달포가 지난다. 그새 초등도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었다.
둘은 지난해 여름 양곡 웅남 주민운동장과 인접한 장복산 기슭에서 영지버섯을 따 온 적 있다. 동기는 올해도 그곳에 가보자고 제안해 왔다. 나는 아침나절만이라면 산행이 가능할 듯해 동의해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충혼탑에서 116번을 갈아 타면서 약속된 버스를 탄 동기를 만났다. 창원대로를 건너 신촌삼거리에서 양곡중학교 앞을 지날 때 내렸다.
나는 동기에게 손가락으로 양곡 뒷산을 가리키면서 우리가 넘어갈 산자락 방향을 안내했다. 웅남 주민운동장으로 향하는 육교를 건너 쉼터에서 동기가 마련해 온 곡차와 안주를 들며 그간 밀린 안부를 나누었다. 동기는 방학 중 다녀온 터키 여행 후일담을 들었다. 오랜 교류가 있는 울산의 한 친구가 정년을 몇 년 남겨두고 암 투병 중인 아내 간병을 위해 명퇴한 얘기도 올랐다.
곡차를 비우고 배낭을 추스르면서 진드기 기피제를 서로에게 뿌려주었다. 숲으로 들 때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게 진드기였다. 쉼터에서 얼마 오르지 않아 우리가 가늠한 숲으로 들었다. 생태계는 자꾸 변하는지라 작년에 보이던 영지버섯이 올해라고 꼭 붙는 법은 아니다. 숲으로 들어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를 살피니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목표한 영지버섯을 몇 개 찾아냈다.
돌부리를 붙잡아가면서 가파른 비탈을 힘들게 올라갔다. 습도가 높아 땀을 많이 흘렸다. 산마루로 오르니 멧돼지가 금방 부엽토를 헤집고 지난 흔적이 보였다. 뒤따라 올라온 동기가 많이 지쳐 바위에서 잠시 쉬다 일어섰다. 한전에서 산등선을 넘어가는 송전탑을 관리하는 어렴풋한 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 바로 앞 숲속에는 멧돼지가 사라지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원과 진해의 경계를 이루는 장복산은 그 산자락 품이 아주 넓었다. 남사면보다 북사면은 더 웅장하고 골이 깊었다. 우리는 웅남동으로 흘러내린 산자락을 따라 걸었다, 예전보다 더 높은 송전탑이 세워져 있었다. 창원공단으로 공급되는 고압 전력선인 듯했다. 등산로가 있긴 해도 산행객이 많이 다니질 않아 묵혀져 있다시피 했다. 남겨둔 곡차를 비우면서 나아갈 방향을 의논했다.
장복산 정상으로 오르질 않고 상복이나 완암 골짜기로 빠져나가기로 했다. 둘은 예전에 한 차례 지나친 적 있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면서 제법 큰 영지버섯을 찾아냈다. 이제는 산비탈을 내려서는 곳이라 힘은 덜 들었다. 동기는 집에서 햇김치나 추어탕에 쓸 제피열매를 따 모았다. 절로 자란 제피열매가 잘 영글어 갔다. 나는 앞서 가면서 운지버섯을 만나 배낭에 채웠다.
숲에서 영지버섯을 더 찾아보았으나 기대만큼 아니었다. 대신 숲이 우거진 곳이라 삼림욕을 톡톡히 했다. 산비탈을 내려서니 암반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나왔다. 완암에서 아주 깊숙한 골짜기였다. 바깥으로 나가다가 동기가 구하려는 열매가 가득 달린 제피나무를 발견했다. 그 곁에는 어름이 주렁주렁 달린 넝쿨도 있었다. 나는 어름을 따고 동기는 제피를 따 모았다.
어름은 껍질째 말려 차로 달이면 맛과 향기가 좋다. 나는 어름을 먼저 따고 제피를 같이 땄다. 짊어진 배낭은 묵직해왔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힘들게 빠져나와 등산로와 만났다. 장복산 숲속 길에서 갈라진 듯해도 사람이 잘 다니질 않는 데였다. 바깥에 농막을 앞둔 계곡에서 땀을 씻고 아껴둔 곡차를 마저 비웠다. 공단배후 도로에서 상남시장으로 가 돼지국밥을 들고 일어섰다. 1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