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목회하던 동안의 경험 중 잊히지 않는 이야기를 책에서 하나 발췌해 싣습니다. 젊어서 부모님 반대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나이 70 넘어 이루려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 집사님의 영화 같은 애틋한 순애보입니다.
‘우정숙 할머니의 순애보’
금곡성문교회 초창기 교인으로 우정숙 집사가 있다. 칠십대 중반이었고 잘 사는 자식들이 있었지만 다 두고 주공 1단지에서 혼자 사셨다. 평소 교회 출석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도 잘 해온 분이었다. 쾌활한 성격으로 노래와 찬양도 참으로 잘 하셨다.
우 할머니의 고향은 경남 함양이다. 어린 시절, 함양교회에서 믿음생활을 신실히 하고 봉사 생활도 열심히 하던 중 교회 오빠를 만나 순애보 같은 연애를 하였다 한다. 결혼 약속도 하였다. 그러나 양가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각각 다른 이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서로를 잊어버리고 이날까지 살아왔다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들렀던 고향에서 옛날 그 오빠를 몇 십 년 만에 만났고 배우자 먼저 저 세상 보내고 혼자 남은 모양이 둘 다 똑같더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난날 그 시절로 돌아갔고 잊었던 간정이 새롭게 살아와 정신없이 몰입하게 되었다 했다.
우 할머니는 자주 함양을 다녀왔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나를 찾아왔다.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노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는 “목사님 나 그 오빠와 결혼 할래요. 목사님이 주례 좀 서주세요” 하였다. 양가 자식들에게는 이미 알렸는데 반대가 심하다 하였다.
그러나 그 옛날 못 다한 사랑, 이제라도 만났으니 결혼을 꼭 해야겠다 한다. 더 늙기 전에 소원을 풀어야겠다며 곧 날짜를 잡고 연락을 하겠다 하였다. 몇 주 지나 우 할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옆구리가 결리고 아파 부산 백 병원을 찾아갔는데 정밀검사를 받으라 하였고 검사 결과 담낭 암 진단을 받았다 했다.
병이 많이 진행된 상황이었는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우 할머니는 세상을 떴다. 다행한 일은 입원기간 오빠라는 이가 병원에 머물며 끝까지 병간호를 해 주었던 일이다. 우 할머니는 처녀 시절에는 부모 반대로, 노년에는 자식들 반대로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이 성사되지 못했다.
이렇든 사람 중에는 끝끝내 비켜가는 인연도 있는 모양이다. 노년에라도 뜻을 이루어 보고자 나에게 주례 부탁까지 하였지만 찾아온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함께 지냈을 병실에서의 몇 주를 두 노인은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까.
인생 막바지에라도 만나서 다행이었을지, 이렇게 또 어긋나게 되어 더 가슴 아팠을지...
결혼주례 대신 장례 집례를 하게 되었지만 보내는 노인도, 떠나는 노인도 덜 애달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보내주었다.
- 오지랖 목사의 인생편지에서 - (부산 금곡 성문교회 민영란 원로목사의 목회 회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