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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 5. 큐티
요한복음 20:1 ~ 11
빈 무덤을 확인하는 이들
관찰 :
1)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확인하다
- 1절.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a. 막달라 마리아는 마르다의 동생 마르다와 다른 별개의 인물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장례에 보다 더 깊게 동참하고자, 즉 유대인들의 전통대로 시신에 향유를 바르고자 예수님을 누인 무덤에 나아갔습니다.
b. “안식 후 첫날”은 최초의 주일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쓸 때 “The Lord’s Day”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예수님께서 바로 그 주일에 부활하신 것을 강조하여 표현하고자 “안식 후 첫날”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c. 이 돌은 장정 다섯명이 힘을 합쳐서 움직여도 간신히 굴릴 수 있을까 말까한 것이었습니다. 그 큰 돌이 경사진 홈에 올려져서 굴을 막았던 것인데, 그 돌이 굴려져서 무덤이 열려졌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로부터 무덤을 호위하던 로마 군병들도 모두 사라진 상황에 막달라 마리아와 그 일행은 너무나 놀랐던 것입니다.
- 2절.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a. 여기서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서 막달라 마리아 혼자서 예수님의 무덤에 나아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관복음과 다르고, 사도 요한이 그것을 몰라서 막달라 마리아 혼자서 예수님의 무덤에 간 것처럼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은 틀린 것입니다.
b. 막달라 마리아와 그 일행은 빈 무덤을 본 것으로 놀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의 주장은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서 장례의 마무리를 하게 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 3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a. 막달라 마리아와 그 일행들의 요구를 듣고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그 다른 제자“는 사도 요한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피하던지 표현을 달리하던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자신이 이 일들의 증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b.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어거지를 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면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에 주일날 그렇게 달려가는 해프닝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당시에 홀로 남은 사도의 권세를 가지고 분명하게 증언했습니다.
- 4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a. 막달라 마리아와 그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빈 무덤을 향하는 베드로와 요한의 마음은 침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흥분했고, 놀랐고, 그 어찌 된 일인지에 대해서 알게 되고자 열정적으로 무덤까지 달려간 것입니다.
b. 사도 요한은 베드로보다 젊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기에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렸고, 무덤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이 말이 요한이 베드로보다 영적으로 더 큰 권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5절.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a. 요한은 무덤에 머리를 넣어 그 안의 상황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베드로보다 이성적이고, 행동파가 아니었다는 것을 엿보게 됩니다.
b. 기질이 전혀 다른 베드로와 요한은 이제까지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이렇게 다르던 이들이 하나가 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일하게 되는 것이 위대하고 놀랍다는 것을 당대의 성도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 6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a. 빈 무덤 안에는 세마포가 놓여있었습니다. 시체를 싸서 향유와 몰약을 두껍게 발라놓은 세마포를 벗겨서 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미 향유와 몰약이 굳어서 세마포 안에 있는 시신을 미이라 처럼 만들어 버리게 되기 때문에 그 세마포가 벗겨진 채로 시신만 어디로 가져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b. 당시의 유대인들의 장례 풍습을 조금만 아는 자들이라 한다면,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 같은 주장인가에 대해서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 7절.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a. 예수님을 쌓아두었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다른 곳에 쌌던 대로의 모습 그래도 놓여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시신을 누군가가 훔쳐갔다는 설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b.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와 수건을 이렇게 분리해서 놓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세마포와 수건은 예수님을 쌌던 모습 그대로 놓여있는 특별한 형태로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날 그 무덤에 들어가 본 사람만이 증언할 수 있는 증거였습니다.
- 8절.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a. 사도 요한은 베드로의 증언에 그 무덤에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에서 있는 바의 상황을 보고 예수님의 시체가 도난당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것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b. 그 날 그 무덤의 정황이 그랬습니다. 무덤에 실제로 들어가 보았던 요한은 지금 생생하게 그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고, 제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요한이기에 그 때의 상황이 어떤 정황인가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예수님이 부활한 것을 바르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
- 9절.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a.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에서의 정황을 통하여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에 대해서 짐작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갖는 바의 바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b. 베드로와 요한은 단순히 의인의 부활의 차원 정도로 이해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랴 하리라“고 하신 말씀의 그 엄청난 무게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c. 이것은 사도 요한의 주석입니다. 그 때를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그가 8절에 ”믿었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온전한 믿음이 아닌 매우 부족하고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고자 한 바의 그런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부연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 10절.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a. 베드로와 요한은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짐작하고 믿게는 되었지만 조심하게 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와 그 일행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말씀대로 부활하셨다고 증거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아마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에 대해서는 혹시 궁금해 하면서 그저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b. 이렇듯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공작에 의해서 발생한 시신을 훔쳐서 만들어낸 가공의 스토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 날의 가장 중심에서 이 일을 겪고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 까지 살아있던 초대 교회 공동체의 최종 권위를 지니고 있는 사도 요한이 그렇게 기록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3)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 11절.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a. 제자들의 대표 격인 베드로와 요한이 제자 공동체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마리아는 여전히 그 무덤에 남아서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b. 물론 이 장면은 사도 요한이 향후에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들은 바의 증언을 통해서 기록한 내용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모했고, 그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순식간에 비참하게 수난을 당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충격이었을지 알게 됩니다.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무리들이 예수님을 옹위해서 왕으로 삼고했던 것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예수님의 죽으심은 마리아와 모든 제자 공동체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c. 예수님은 수많은 이적을 일으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무리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게다가 그 시체마저 사라져 막달라 마리아는 슬프고 또 슬펐던 것입니다.
d. 이 여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만나주시지 않았더라면 막달라 마리아의 삶은 슬픔과 고통에 점철된 삶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초대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의 남은 여생을 알고 있는 이들이 있었고, 그 여인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남은 여생을 살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곳 빈 무덤에서 통곡하고, 절망을 느끼는 막달라 마리아의 통곡이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르침 :
1)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유월절이 마쳐지고, 그 유월절의 오후와 그 다음날의 정오까지가 안식 후 첫날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오히려 미명에, 즉 예수님이 종종 기도하시러 가시던 시간에 예수님의 시신에 장례의 마지막 처리를 하며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고자 예수님의 무덤에 나아간 이들을 통하여 무덤이 비었다는 것이 증거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누구보다 먼저 그 빈 무덤에 달려갔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제자들이 그 무덤에 갔을 것입니다. 또한 이 사실을 전해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의 군인들도 그 빈 무덤에 나아가서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물론 지진이 일어나고 천사가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경험한 로마의 군병들이 그곳을 벗어나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결탁하여 돈을 받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거짓 증언하게 된 것도 다 그런 배경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일 이후에 60여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들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지 않으셨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시신을 훔쳐서 다른 곳에 숨겨두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거짓 증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 날의 생생하고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었던 사도 요한은 그날의 생생한 상황을 본문과 같이 기록을 통하여 증언한 것입니다.
2) 막달라 마리아와 그 일행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에 대한 짐작과 믿을 수밖에 없는 정황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이 구약의 말씀과 어떤 관계가 있고, 또 앞으로 이 일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오게 될 것인지 이들이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나고 위대한 일은 이렇듯이 너무나도 조용하게,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날이었고,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3)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을 처음 발견한 여인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여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 막달라 마리아는 그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고, 그 일에 대한 증인들이 그로부터 6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존재했던 것입니다.
적용 :
1)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고 증명하고자 했지만 그 모든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은 fact이기 때문입니다. 부정한다고 부정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실제로 이루신 일들의 결론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을 사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증명해야 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하고자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요한의 증명의 결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역은 앞으로도 예수님의 부활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나의 삶과 사역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에 맞추어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과 사도 요한은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자들 즉 영지주의자들과의 싸움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이렇게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증거되면,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오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전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만큼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성육신과 부활을 아는 것이 예수님을 바르게 아는 시작과 끝입니다. 그러한 진리를 바르게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사역에서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