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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장 잘 만드시는 요리 중 하나는 시래기 된장국이었다 수년 묵어 색깔이 거무튀튀하게 변하고
뭉실뭉실한 된장에 겨우내 두광 시렁에 매달아 햇볕 못 보게 말린 무청을 서걱 서걱 썰어 넣고
한참을 보글보글 끓여내는 시래깃국은 가히 천하 일미였다 그때야,모두들 형편이 넉넉지 못
한 탓으로 그 흔한 멸치도 장화신고 건너갈 정도로 몇 마리 헤엄을 쳤지만,
다만 파 마늘,
그리고 소금과 고춧가루만으로 간을 맞춘 그 시래기 장국 맛이 어떻게 그리 입맛을 얽어매었
던지 국민학교 다닐 때 운동회 때마다 생선이니 전이니 제사 때나 얻어먹을 수 있는 갖가지 반
찬이 있었어도 꼭 시래기 장국만 찾아서 어머니께서는 우리 영이 시래깃국 귀신이네 하고 놀
려 대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게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옛 어머니들은 음식에 간을 볼때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던 눈물 맛의 간에
맞추었다 국물을 덮일 때 새끼손가락을 휘저어 음식의 온도를 체온과 맞추고 간을 볼때입으로
가져가 눈물이라는 체액의 염도(鹽度)와 같게 했는데 그래야만 음식 맛이 제대로 난다는 전통
적 지혜(智慧)를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된 시집살이로 '눈물 서 말'흘리지 않고는 음식 맛을 못 낸다는 속담이 실감갖게 한다 아무리
칼로리를 측정하고 저울에 달아서 몇 그램 몇 스푼 하고 과학적 기준으로 조리해 봐도 내지 못
한다는 '어머니 맛'은 그렇게 슬프디 슬픈 맛인 것이다.
남도 잡가(雜歌)
중에 고추 방아 눈물은 싱겁기 싱겁고 시엄니 구박은 누리디 누린데 내 팔자 눈물은 이다지 짜
디짜냐 주르르 흐르는 눈물은 시큼한데 괴였다 넘치는 눈물은 매캐하더라 했으니 얼마나 많이
울었기로 눈물 맛까지 구별할 수 있었을까 숙연해 지기까지 한다.요즘음 이 눈물 맛의 간 을 낼
수 있는 맛꾼들이 몇이나 될까 우리 전통적인 요리의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요리의 결과(result)
보다 요리하는 과정에(process)뜻을 두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가 하는 정신적
가치에 보다 비중을 두엇었다.
같은 숯불도,
불길이 센 무화(武火) 불길이 은은한 문화 (文火) 로 구분하고, 탄재로 덮어두는 여화(女火)
가 있었는데 된장찌개를 끓일 작 시면 이중 은은한 불길인 문화로 달구어야 제맛이 난다 된장
맛으로 이불속 며느리 들여다본다 는 우스개는 바로 된장 끓이듯 하는 정성으로 이불 속의 은
밀한 정서를 은유한 것일 게다
부산 해운대,
촌놈 한양 유학시절 예전 마포 로터리 에서 조금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최 털보네 갈빗집 이
있었다 쇠갈비도 취급한다고 써 놓았지만 찾는이는 보지 못했고 주메뉴는 돼 지갈비였는데
혼자와서 1인분이 부담 가는 손님에게는 반인 분도 군말 없이 팔았다.
하도 오래돼서,
가격은 얼마인지 기억이 없는데 그 기막힌 맛일랑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눈에 삼삼하다
빈 드럼통 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탄불 냄새에 코를 막으면서도 노릿노릿 구워지는 돼지갈
비 한점 은 입안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스르르 녹아둘어 씹히는 감각도 느끼기 전에 목구멍으로
넘어갔으니 한번 온 손님들은 단골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의 비결을 묻으면 주인장은 망설
이는 기색도 없이 툭 대답한다 손맛이지요
이 집은,
갈비 재우는 것은 물론 양념 하나하나도 종업원을 시킴이 없이 주인장이 직접 손으로 한다고
한다 고기를 재울 때 양념장에 버무리거나 적시어 두면 한결 간편하다 한데 우리 최 사장은 고
기 겹겹을 들쳐 낱낱이 앞뒤를 뒤집어 가며 양념장을 골고루 빈틈없이 손가락 끝으로 칠한다
손가락을 빈틈없이 들인다 하여 이를 맛손 들인다 하는데 미나리나 콩나물 다듬는 것도 맛손
들이고 김에 들기름 칠할 때도 맛손 들인다.
그렇게,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니 그 음식은 연하고 별미가 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토록 품과 정성을
들이는 음식은 사람의 건강은 물론 부부간의 사랑과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북돋우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영국의 80대 노 작가 카트랜드 여사가 쓴 음식의 로맨스(romance) 라는 책을
보면 음식에 정성을 들인 과정이 적은 소위 인스턴트(instant)식품을 많이 먹는 가정일수록,
이혼이나,
가정폭력이 심하고 자녀들의 일탈이 높으며 반대로 인스턴트를 거부하는 프랑스 같은 나라의
가정이 선호하는 미국이나 영국의 가정보다 더 화목하고 안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바쁘다는
핑계로 음식 만드는 것으로부터 가급적 유리(遊離)되는 우리나라 젊은 주부들 에게는 경종이
요 맛손 들인다 는 우리 심오한 전통을 재 발견하는 데는 청신호 이기도 하다.
눈물 맛의 간
아직까지 우리 나이 또래의 주부들은 이 정성의 음식 맛 에 완전히 등 돌리지 않은 것같으니
그나마 위안은 된다 우리 집 마나님만 보더라도 한밤중에 슬그머니 손이라도 잡을라 치면 몸
서리 치듯 홱 뿌리치지만 식탁 위 음식 만드는 데서는 신혼 때의 조신한 새색시니 그 아니 다
행이랴 그래도 고요할수록 곧 태풍이 올 징조라 했으니 미리미리 주부 수업은 득해야 할 듯
어느 날 홀연 마나님의 반란 이 있어 온통 인스턴트 식탁이 된다면 그때의 슬픔이야 어찌 눈물
흘리는 것 만으로 사태가 감당되겠는가.
이맘때면
보리밥 한 그릇을 구수한 된장국에 말아 넣어 맛있게 먹던 옛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은 다시
들을 수 없는 어머니의 그 목소리 우리 김여이 시래깃국 잘 먹네 오늘따라 어머니 생각이 유달
리 많이 나는구나 우리 김여이 시래깃국 잘 먹네 또 듣고 싶은 목소리는 이제는 메아리에 그쳐
귓 전에만 맴돌는 구나 ~~어머니이이이
~단 결~!!
첫댓글
우리 김여이 시래깃국 잘 먹네 인자하신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언제 들어봐도
정답고 가슴저리는 말 어머니자고로
어머니 만큼 자식을 귀여워하는 사람
없고 자식도 어머니를 제일 따른다 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께서-
자식을 위해 된장국 시래깃국을 끓이고
무우만 넣고 끓여도 맛있었던 음식들을 죽기
전까지 어찌 잊겠습니까
그것도 순전히 어머니의 손맛을
자식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흐뭇하고 배가
부르다 는 어머님의 말씀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이제는 그 맛을 볼 수 없으니 눈물만 나는군요.
어머니이이이
단 결~!!
된장이 맛있으면
뭘 끓여도 맛나지요.
요즘은 집에서 담근된장이 아닌
시판 된장을 먹으니
소고기를 넣어도 맛이 안납니다.ㅠㅠ
댓글
고맙습니다
우리 세대들 대부분의 몸 구성원 이 된장과 김치 일 걸요
어머니 이이이 ~~
꺼이 넘어오는 그 심정 알고 말구요
그것도 토종음식
하루의 바이타민 같은 멘트
감사합니다
의자를 좀 더 모니터 앞으로 당기고 돋보기를 걸칩니다
글이 품은 맞손맛을 놓치기 싫어서이지요.
작고하신 피천득 교수의 수필을 몇 편 읽고 그 오묘한
표현력에 감탄하곤 했는데 바로 지근에
그만 못지않은 글을 가끔 대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말씀대로 그 시절엔 시래기 된장국이 누구에게나
낮 익은 음식이었죠. 제경우도 이맘때쯤이면
아랫목 베보자기 밑에서 실하게 자란 콩나물을 듬뿍 넣고 끓인 시래기 콩나물국에 막 짠지를 얹어
게걸스럽게 먹던 시절이 어제일 같이 기억됩니다.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저역시도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이 불현듯 그리워집니다.
마초님 유려한글 고맙습니다~^^*
행복한날 되시고요
이런글은 게시글에 올렸으면
하는 저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귀티나는 글마중 고마움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