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나는 어릴적에 만화를 좋아했다 누군들 만화를 좋아하지 않으랴만, 중뿔나게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한동안 한글조차 제대로 깨치지 못했던 내가, 이렇게 쓰게 된 것도 다
만화를 더 재미있게 읽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림만으로는 도저히 아기자기한 그
맛을 마음껏 누릴 수 없었던 탓이다.
나는 돈이 생기기만 하면 만화방엘 갔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에게 담배 심부름을 보내지
않으셨다 담배 심부름을 하면 으레 남는 동전은 내 몫이었고 나는 곧장 만화방으로
가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아들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과 담배를 태우고 싶은 생각을 참지
못한 아버지는 기어이 형들을 다시 보내야 했다 처음 만화방에서 끌려나와 아버지 앞에
대령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버럭 고함을 지르시며 한쪽 구석에 무릅을 끊게 하셨다. 변학도 앞에 끌려 나온
춘향이처럼, 하지만 춘향이는 풀어헤친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었지만, 나의 머리는 왠지
자꾸만 밑으로 기어들기만 했다. 아버지는 기다리던 담배를 맛있게 태우시면서,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모든 세상사의 순서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의 불벼락을 맞으면서도 나는 읽다가 그만둔 만화의 장면 장면들을 이어가기에
정신이 없었고, 보육원에서 자라 비뚤어진 성격의 주인공 "독고탁"의 비극적인 운명이
너무도 애처러 와 끝내 눈물을 찔끔거렸다 물론 눈물 덕분에 쉽게 아버지의 노여움에서 풀려
날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할머니 제사날이었다. 제사에 쓸 막걸리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 끝내 만화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다. 저녁도 먹었겠다 제사를 지내는 자정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고,
더욱이 이렇게 복잡한 날에 어머니는 제대로 거스름돈을 챙기시질 못하는지라, 나는 콩나물 사고,
식용유사고 조금씩 떼어서 그런대로 큰돈(?)을 손에 쥐고 있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독립군 아우와 일본 형사가 된 형이 서로 형제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마주칠 듯 마주칠 듯 비켜
가는 이야기에 빠져든 나머지 만화책을 읽으면서 그 시큼텁텁한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셨다. 급기야
만화를 다 봤을 때는 막걸리는 이미 반도 남지 않았고,나는 제대로 일어서서 걷지도 못하였다. 겨우
도착한 나는 비틀거리며 다락에 올라가 잠을 자고 말았다.
그 다음날 아버지의 불호령이 걱정이되었으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할머니께서 아버지에게 "막내를 좀
사랑해 주라" 는 말씀 때문에 죽었다가 살아난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만화방을 드나들었다. 만화에서 손을 놓은 것은 결혼 후부터 이다. 나 같은 아이가 태어날까 봐 걱정(?)이
되어서이다. 집 사람에게도 면목이 없는 일은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고희를 넘긴 지금은 그때 만화를 본 것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며 위안을 하곤 한다
요즘 어린이들이 놀지도 못하고 공부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공부하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 세태가 참으로 많이 변했다.
최택만
첫댓글 저도 만화를 무척 좋아해서
어렸을 때 동네 만화가게에 갈 때는
집일을 도와주던 언니를 앞세우고 갔었죠
그럼 언니가 데리고 놀다 왔다고 말해주었어요
아이들 키울 때는 그 재밌고 유익한
만화를 실컷보게 했지요 ㅎㅎ
새편들이 나오면 주인 아저씨가
꽁쳐 놓으셨다가 우리애들한테 젤 먼저 넘겨주시곤 했어요
애들이 바쁘다 보니 제 때 반납을 못하곤 하여 연체료 꽤나 물었더랬습니다 ㅎ
단골에게는 특별 대우를 하죠
저도 만화 가게에서 살았습니다.
순정 만화는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인물을 길쭉길쭉하게 그리던
이근철이라는 만화가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네요.
미술 숙제로 등에 쌍칼을 X 자로 꽂은
'황금 박쥐'?였던가
그걸 그림이라고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ㅋ~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며는 표를 주죠
그 표를 가지고 저녁에 만화방에서
티브이를 보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추억을 소환하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처음으로 만화방에 갔는데 아버지 한테 걸려서 많이 혼났어요
그시절 추억이 새삼 그리워 오네요
정말 요즘 아이들의 훗날 추억은 무엇일까 걱정도 해 봅니다
옛날 칠성이 멍청이 만화 엄청나게 재미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