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안녕, 바이칼틸
지은이: 이주현
판 형: 148*210mm
쪽 수: 204쪽
가 격: 12,000원
발행일 : 2020년 8월 5일
ISBN : 979-11-86452-70-7 44800
펴낸곳 : 숨쉬는책공장
일제 강점기, 고려인 강제 이주에서 광복까지
역사 속을 걸어 나간 한 소녀의 이야기
우리 역사에는 기쁜 순간들도 많았지만 뼈아픈 시간들도 많았다. 그 가운데 일제 강점기를 뼈아픈 시간 중 하나로, 광복을 기쁜 순간의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역사의 흐름은 당시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 속을 파고든다. 잔혹했던 일제 강점기는 성인들뿐 아니라 아이들, 청소년들에게도 고통을 안겼다.
《안녕, 바이칼틸》은 주인공 설희가 뼈아픈 우리 역사인 일제 강점기를 살아 낸 역사이자 성장기다. 주인공 설희는 일제 강점기, 일제 탄압으로 일곱 살이 되던 해에 가족들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지냈다. 그러다 중앙아시아로 떠나는 고려인 강제 이주 열차에 몸을 싣게 되고 열차에서 가족들과 헤어지고 홀로 중국 하얼빈, 함경북도 온성 등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고향인 울릉도로 가족을 찾아 나선다.
설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상의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설희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타국에서 지내며 여러 설움과 고난을 겪고, 인체 실험을 하는 일본 731부대로 잡혀가기까지 한다. 독립운동을 하는 집안의 핏줄인 터라 더 많은 고초를 겪는다.
제목에 등장하는 ‘바이칼틸’은 설희가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서 의지했던 새로 한국에서는 가창오리라고도 불리는 철새다. 가창오리는 얼굴에 태극 모양이 있어 북한에서는 태극오리라고도 한다. 작가 이주현은 아픈 우리의 역사를 설희가 걸어간 길을 통해 청소년들과 함께 되새김 하고 싶어 《안녕, 바이칼틸》을 썼다고 말한다. 역사는 거대한 줄기로 뻗어나가지만 그 속에는 작아 보일 수도 있는 개개인의 인생이 담겨 있기도 하다. 《안녕, 바이칼틸》은 일곱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로 이어지는 설희의 이야기와 함께 한 개인의 성장과 역사의 흐름을 살필 수 있게 한다. 역사의 울림과 문학의 감동이 잘 어우러진 소설이다.
한편, 《안녕, 바이칼틸》은 《라희의 소원나무》를 이은 ‘숨쉬는책공장 청소년 문학’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지은이
이주현
문학박사이며 현재 아동청소년문학 집필과 21C교육포럼에서 발간하는 SNS 신문인 <21C신문> 편집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00년 계간지 《동시와 동화나라》에서 공모한 동화 부문에서 〈삼촌이 셋〉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2010년 제8회 푸른문학상 청소년소설 부문에서 〈캐모마일 차 마실래?〉가 당선되었습니다. 〈캐모마일차 마실래?〉는 《외톨이》(공저)에 실렸고, 〈동네 장학생〉은 《내 이름을 불러 봐》(공저)에 수록되었습니다. 또 다른 책으로 《샛별처럼 빛나는 방방곡곡 여성위인들》, 《멋진 대장!》도 있습니다.
▮차례
1. 호송 열차 406호실
2. 털보 아저씨
3. 까례야 마을
4. 브로에 카페
5. 안과 밖의 사람들
6. 지옥의 실험실
7. 조선인 마을
8. 함경북도 온성
9. 작은 새들의 날갯짓
10. 내 이름은 강설희
작가의 말
▮책 속에서
사방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엉덩이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바람이 차가웠다. 출발 신호가 울려 나는 배변을 시원스럽게 하지 못한 채 일어섰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차 레일이 암담하게만 보였다. 돼지우리 같은 열차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니 헛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본문 중에서
열차가 몇 시간을 달렸는지 밖이 또 캄캄해지고 있었다. 이젠 밤낮의 변화에도 무감각해져 밖이 환하면 낮인가 보다, 어두우면 밤인가 보다 생각했다. 오랫동안 먹지 못한 사람들은 얼굴에 핏기가 없고 야위어 갔다. 땜방은 가무잡잡했던 얼굴이 노랗게 변해 있었다.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이상한 눈빛으로 엄마와 할머니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본문 중에서
털보가 일본 사람이라면 할아버지 이야기를 잘못 꺼냈다가 그의 손에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모른다고 도리질만 했다. 털보가 계속 러시아어를 쓰고 있어서 조선인인지 일본 사람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그가 더 이상 묻지 않아 다행이었다.
-본문 중에서
‘털보가 일본 사람이라고?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이제 어쩌지?’ 일본 사람들이 조선인들을 강제로 데려가 일을 시키고 있다며 조심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할머니 말이 스쳐 지나갔다.
남자 중에는 징용에 끌려간 사람도 있었고, 여자들은 닥치는 대로 군대로 데려가 낮에는 일을 시키고 밤에는 시중까지 들게 한다고 했다. 심란한 발자국 소리들과 물건 던지는 소리들이 한동안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본문 중에서
몇 번 농사에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야 땅이 점차 기름진 옥토로 변하여 거두어들이는 식량들이 늘어 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농사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조선이 나라를 되찾게 되면 곧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리 조선인을 중앙아시아 버려진 땅에 강제 이주시켜 그 땅을 비옥한 농지로 개발하려고 속임수를 썼다는 것을 안 뒤로 우리 조선 사람들은 카자흐스탄에서 농사를 열심히 짓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식사가 끝나고 난 뒤 나는 알아서 설거지를 했다. 주인에게 특별히 잘 보여야 할머니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바냐도 눈치를 살피더니 그 테이블에 있는 접시들을 주방으로 가져갔다. 바냐와 나는 함께 설거지를 했다. 내가 접시를 닦아서 건네주면 바냐는 다시 맑은 물로 헹구어 엎어 놓았다. 바냐가 접시를 받으며 내 손을 일부러 만지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짓궂게 굴어 불편했다.
-본문 중에서
주인은 물을 컵에 반쯤 따르고 컵을 들어 탁자에 살며시 올려놓으면서 시범을 보이고는 내 쪽으로 컵과 주전자를 밀었다. 시범을 보이는 주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교양 있는 자태가 느껴졌다. 나는 주인이 가르쳐 준 대로 컵에 우선 물을 반쯤 따르고 쟁반에 올린 다음 옆의 탁자로 걸어가서 몸을 조금 수그리고 탁자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손이 떨려서 물을 엎지를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할머니를 찾으려면 주인의 비위를 잘 맞추어야 할 것 같아 최선을 다했다.
-본문 중에서
주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서슴없이 술 접대 일까지 시켰다. 두툼해지는 월급봉투는 앞날의 고단함을 예고하는 것 같아서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내가 주인의 딸이었어도 술 접대 일을 시켰을까? 주인은 술손님이 들어오면 바냐보다는 내가 가도록 지시했다. 그러다 보니 바냐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일자리에 대한 위협을 느낀 모양이었다.
-본문 중에서
우리 방에 있던 14번 중국인 아주머니도 불려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아주머니가 14번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 오면서도 번호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 번호가 왜 눈에 띄었을까? 내 가슴에 붙은 번호를 보았다. 18번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18번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번호 순서대로 불려 나가는 것이라면 나는 앞으로 네 번째였다. 섬뜩했다.
-본문 중에서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리쉬며 눈물을 훔쳤다. 나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17번 러시아 언니는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해 답답해하는 눈치였다. 19번 아주머니와 나눈 이야기 중에 마지막에 한 말을 통역해 주었다. 언니는 생체 실험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일어서서 도망이라도 칠 듯이 안절부절못했다. 순찰 군인이 들어왔을 때 17번 언니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군인이 놀라 뒤따라 나가 잡아 왔다. 그날 저녁 17번 언니는 불려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태극기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태극기가 엄마처럼 느껴져 가슴에 안았다. 가슴이 뛰었다. 태극기가 소중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가족과 헤어지게 된 것도, 이곳으로 납치되어 와서 엄청난 고초를 당하고 있는 것도, 아빠가 독립운동으로 불안한 삶을 살아온 것도, 엄마가 혹한 속에서 아기를 낳고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 것도 모두가 우리를 지켜 줄 든든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꼭 살아남아 내 나라 조선으로 무사히 돌아가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본문 중에서
가족들과 떼를 지어 날아가고 있는 새들이 부러웠다. 가족이 그립고 보고 싶었다. 설국이는 고아원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아빠는 어떻게 되었을까? 할머니와 어린 동생은 조선인 마을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아빠도 끌려가서 혹시 죽은 건 아닐까? 가족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