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영도에서
55년생인 우리 누나는 아주아주 공부를 잘했는데도
부산여중에 낙방하고 남여중으로
남여중에서도 부산여고엘 낙방하곤 남성여고로 진학했다
얼굴이 아주아주 예뻤던 우리 누나
그런 누나들의 남동생이 겪는 경험 하나
침흘리며 맛있는거 사주는 형빨들의 러브레터 심부름해주기
참 우연히도 누나랑 같은 이름의 형은
그당시 부산상고 3학년이었으며 중앙대 법대 4년 장학생으로 확정된 상태였었다
그 형은 참 모질게도 우리 누나를 좋아했고
우리 누나는 참 끔찍스럽게도 그 형을 싫어했다
근데 더 웃기는건
우리 누나와 너무나 친한 동네 두부공장집 딸 영주 누나는
그 형과 초등학교 동창이면서 그 형을 너무도 좋아했는데
그 형은 그 누나 따윈 안중에도 없었고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던 (그 둘과 초등학교 동창생인) 내 친구 동식이의 사촌 말숙이 누나는
무단히 우리 누나를 싫어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33년전 이야기구나
우리누나는 그눔의 부산상고와는 모진 인연이 맺혔던지
우리 둘째 형과 부산상고 56회 동창생인 자형을 만나서 일찍 결혼해서
아들 둘낳고선 전업주부로 오로지 남편, 자식 뒷바라지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얼마전 친구 동식이 엄마 초상때 영안실에서
말숙이 누나, 우리와 동갑내기인 정숙이, 나
이렇게 셋이서 예전..아주아주 오래전 바람부는 영도 이야기하며
밤늦도록 소주 한잔꺽었다
"정숙"이는 말숙이누나 동생인데 얘가 무식해서 우리가 같이 친 부산 고교선발 연합고사에서
만점을 받고 부산 n여상을 수석으로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한 애다
게다가 얼굴까지 예뻐서 고교시절 우리보기를 돌대가리 보듯이 하면서 그 콧대가
하늘 똥구녕을 찌르던 약간은 재수없는 가쑤나였었다 ^^
지금은 매스컴에도 자주 나오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면서 딸 둘을 대원외고를 졸업시켰다
그날 정숙이는 술에 취해 두손 가리고 엉엉엉~ 소리내어 울기도 했었다
첨엔 작은엄마가 돌아가심이 너무 슬퍼서 우는줄 알았는데 진정된 후 한다는 말이 그랬다
..내 설움에 울었다~ 울 아부지 일찍 돌아가시고 우리 너무 못살 때 우리 쪼매 도와준다꼬 우리 자존심 너무 짓밟던 작은엄마..나는 돈이 없어서 대학도 못갔는데 동식이는 4수를 다 했다
쪼매 기가 찼지만 나도 집이 몰락하고 없는 자의 존심상함, 비참함을 맛봤기에 동감했다
그 자리에서 누나를 짝사랑했던 형이 대학 졸업후 아주 잘 나갔으며 현재는 미국으로 이민간 뒤
가족은 뉴욕에 있고 혼자서 금감원에 고위직으로 근무한다는 사실과
두부공장집딸 영주누나는 애 하나 딸린 이혼녀로 서울 한남동에서 한정식집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셋은 초딩동창생들이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연락은 된다고..
새벽에 동래 남산동 침례병원에서 택시타고 사상으로 와서 직행버스타고 진해로 오며
누나에게 그형과 영주누나의 전번을 알려주며 모든 얘기를 해줬다
현재 우리누나는 오랜 밀양생활을 접고 서울 목동에 살고 있다
지나간 추억 속에..지금은 단절된 사람들의 소식이기에 누나는 특히 영주누나 소식에 뛸듯이 기뻐했다
내 친누나에게.. 지금은 50 초반의 정숙한 여인에게.. 불륜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스무살때..그 미완의 계절에.. 온 정열을 다바쳐서 미친듯이 한 처녀를 사랑했던 아름다운 청년을
더 늦기 전에 만나서 미안했었다는 의미가 담긴 식사 한번이라도 같이 하라고
내가 더 흥분해서 미주알 고주알 얘기해줬다
나는 진정코 누군가를 가슴찢어지도록..
까만밤을 하얗게 밝히며..
사랑한적이 있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목말라 한다
그 사람의 육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사람만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는 그런 사랑하는 이들이 지금도 나는 참 부럽다
누나는 영주누나에게 전화해봤을까?
바람부는 영도에는 아주아주 오래전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었더랬습니다 ^^
부산 影島 영선동 해안가 동네의 한 풍경입니다
하늘 아래에 이런 동네가 또 있을까요?
문만 열면 바다가 보이고..
영혼마저 날려 버릴듯한 바람 바람 바람이..
그래서 영도 사람들은 다른 동네로 이사가면 속에서 천불이 일까봐
눌러 붙어서 오래오래 살았었나 봅니다 ^^
(08.3)
윗그림은 영도 2송도 버스정류장에서 함짓골가는 길 오른쪽 동네입니다
인구밀도 빡빡한 영도는 교외로 이전한 학교부지에 지은 새 아파트 외엔
거개가 구리구리한 모습이지만 이 동네는 특히 가난해 보이죠?
영도 출신 카페 여친은 그럽디다
..얘~ 감자야~ 니 그 사진 인터넷에 올리지마 다른 동네 사람들이 보면 영도사람들은 다 저런데서 사는줄 알거아냐
난 저런데서 안 살었거등? 쪽팔린다얘~
그럴 수도 있겠죠
허나 나는 저동네에 가서 살 수만 있다면..
사모아 참치잡이가서 바다에 빠져죽은 남편 생각하는 여자처럼
진종일 바다만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라다가 기분내키면 파도따라 멀리멀리 가고싶고..
첫댓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곳에서....좀더 시간이 흐른뒤 노후를 ...희망사항입니다...어릴적 살던곳이 저런곳이거든요..보기만해도 가슴이 확트입니다...시원해서 좋습니다.
바닷가에서 사셨군요..인간성 대낄이시겠다..본래 넓은바다와 강한 해풍을 맞고 산 사람들은 거짓이없고 순수하죠..대표적인 인간이..바로 접니다 ㅋㅋ(자~~ 우리 감자녀석에게 돌을 던집시다)
술술 편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글...참 잘 쓰십니다!
뭔 말씀을요..저는 아직도 까맣습니다..송풍님을 비롯 이방 고수분들 글보고 학습중입니다 ^^
저 노란 탁자앞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네........
사람이 같은 배경을 보고 느끼는 욕망은 쪼금씩 차이가 있네요..저는 여름 저녁 무렵 화끈하게 삼겹살 한판뒤비고 찬맥주와 찬수박 썽글어 놓고 정다운 사람들과 우아하게 아주 우아하게 고스톱 한판째고 싶어요..오고가는 현찰속에 밝아오는 고도리질서라는 말을 슬로우건으로 걸고..안면몰수하고 악착같이 치는 겁니다 ㅋㅋ(니가 글케 말 안해도 감자놈 니는 쌩긴 꼬라지가 딱~ 천박 그 자체다..언제 잉간될래?...쓰밤아~ 지랄떠십시오 놀면 뭐하노? 한푼이라도 벌지)
해풍에 불어라 좃심더!
좃심다..좋심다..수려한 문장력으로 사람의 가슴에 풍파를 일으키는 글을 쓰시는 미리님이 설마 맞춤법이 틀릴리는 없고..아락,가울,콩팔,미리님으로 이어지는 몽디예찬계보라고 보면 되는겁니까?(감자야~ 니는 미리님을 우째보고 하는 소리고? 미리님은 해풍에라도 끝없이 불어나라 남자들의 좃심이여~ 자나깨나 허약한 남자들 생각에 잠을 못이루시는 님이다 알간? ㅋㅋ..그라고 한번만더 고의적으로 콩팔님이라 칭하면 죽는다? 뭐꼬? "칠팔콩팔거린다"할 때 콩팔도 아이고? 얼마나 기분나쁘시겠노?)
아~ 그리워라~ 그때그시절~ 저도 이제는 나이들어서 그런지.. 옛날 친구들.. 고향친구들.. 마니 생각나고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첫사랑도 보고싶고.......... ㅎㅎ
아가님 첫사랑이 어제 내한테 전화해서 아가님께 전해달라카데요..사귀던 세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고..제발 잊고 니 갈길로 가달라 합디다 ㅋㅋㅋㅋ(감자야~ 이 말 읽응께 내가 다 꼬시다^^)
2송도 해안을 지금은 길을 만들어 잘 포장해 놧군요,, 그옛날 저짜저서 낚시하다 쥐고기 올라오면 못먹는 고기라고 다 내삐릿는데..영선동 신선동 남항동 봉래동 청학동 영도다리 산복도로 고갈산 태종대 대양극장 대한.경남 조선공사,,등등등 그리운 이름들입니다,,불타는감자님 글을 읽다보니 저도 그 옛날 영도에서 주거라 고생하며 지냇던 4~5년이 무척이나 그리워 집니다,,
공파리짜스가 니 똑빠로 몬기리나 불타는감자가 아니고 뜨거운 감자님이다 알긋나?
그때가 몇년도 일까요? 저는 본적은 대평동..남항,영선,신선동에서 살았슴다..예전엔 2송도 해안이 막혔는데 지금은 舊해양대학 앞 동네까지 연결되어 있답니다..혼자서 걸어도 가슴이 열리는 길입니다..어느 정도걷다가 백련사 정도에서 봉래산에 올랐다가 하리로 내려와서 승마장가는 길로 태종대까지 갑니다..자갈마당에서 해물모듬으로 소주 한잔하면서 듣는 몽돌구르는 소리..영도는 내 유년과 청년의 기억이 담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곳입니다..고향이지요 ^^ 오잉? 불타는감자? 너무 좋습니다..바꿀까 오늘밤 깊이 생각해보렵니다 ㅎㅎ
ㅋㅋㅋㅋㅋㅋ감자님 똑바로 안하다가는 둑는수가 있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