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
2023년 3월 7일(화) 맑음, 안양 수리산
안양 수리산에서 가서 변산바람꽃과 한참 어울리고 나니, 어느덧 해거름이지만 노루귀를
모른 채 할 수는 없다. 시절이 이른지 아니면 하도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려서인지(나에게
도 책임이 있다)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야위기도 하고, 그나마 자취를 감추기도 하였다.
퍽 미안한 일이다.
트위터 현대시봇에 올라온 시 몇 수를 함께 올린다.
시는 전문이 아니라 일부분이다.
머리는 희어가도 마음은 붉어갑니다.
피는 식어가도 눈물은 더워갑니다.
사랑의 언덕엔 사태가 나도 희망의 바다엔 물결이 뛰놀아요.
―― 한용운, 「거짓 이별」
내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밤 고이맺는 이슬같은 보람을
보밴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혼자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미역 잎새 향기한 바위틈에
진달래 꽃빛 조개가 햇살 쪼이고,
창제비 제 날개 미끄러져 도네.
유리판 같은 하늘에.
바다는-속속들이 보이오.
창댓잎처럼 푸른
바다
봄
―― 정지용, 「바다1」
만일에 나의 몸이 불귀신이면
그대의 가슴속을 밤 도와 태워
둘이 함께 재 되어 스러지지.
―― 김소월, 「개여울의 노래」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김소월, 「초혼」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 꿈을 키웠다
―― 이용악, 「낡은 집」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뜰 앞에 버들을 심어
님의 말을 매렸더니
님은 가실 때에
버들을 꺾어 말채찍을 하였습니다.
―― 한용운, 「심은 버들」
머언 바다의
물보래 젖어오는 푸른 나무 그늘 아래
늬가 말없이 서 있을 적에
늬 두 눈썹 사이에 마음의 문을 열고
하늘을 내다보는 너의 영혼을
나는 분명히 볼 수가 있었다.
―― 조지훈, 「그리움」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나래의 감색 치마에
술집의 창 옆에, 보아라, 봄이 앉았지 않은가.
―― 김소월, 「봄밤」
첫댓글 작은것
관심과 사랑이 녹아납니다.
부럽습니다.
역시 봄은 시련과 아픔을 딛고 굳건히 피어낸 그리움,애틋한 사랑의 ..
어떤 시보다 모닥불 님 말씀이 노루귀에 썩 어울립니다. ^^
꽃도 물론이지만 시 감상하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노루귀는 현장에 가서 엎드려 보셔야 더욱 실감이 나는데...^^
안양 수리산이 꽤 좋은 산이네요...
멋진 슬기봉과 태을봉, 수암봉이 있고,
그 골짜기에는 변산바람꽃, 노루귀, 꿩의바람꽃 등이 자생하고 있으니
수리봉을 명산이라고 할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