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살롱이 열리는 한옥 #일루와유 달보루
목적지가 어디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는 것만으로 여행은 의미가 있다. 여행지에 영감을 주는 공간, 고요한 휴식, 마음이 충만해지는 배움이 함께한다면 인생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작가 김영하는 에세이집 《여행의 이유》에서 우리는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남으로써 일상을 다시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머물고, 배우고, 성장하는 감성 숙소 여섯 곳을 소개한다. 이 공간이 새로운 일상을 씩씩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면!
2층 대청에 오르면 중심 마당과 행랑채, 북한산이 겹겹이 쌓인 풍경이 펼쳐진다.
온돌방에서 바라본 누마루. 사방으로 트인 누마루에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넉넉히 품어주는 너른 마당이 있는 한옥
지난 11월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올해의 한옥 대상’의 영광을 안은 이곳의 이름은 ‘일루와유 달보루’. 은평 한옥마을에 위치한 한옥 게스트하우스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힙스터들이 붐비는 도심도, 버려진 폐공간도 아닌 한옥에서 어떤 문화를 복합적으로 공간에 담았을까? 일루와유 달보루(壹樓臥遊 達寶樓). 한자어대로 풀이하면 ‘제일가는 누각에서 누워 놀다’이지만 읽히는 대로 ‘이리 와서 달을 보라’는 친근한 인사말이기도 하다.
북한산의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늦은 밤 2층의 대청에 서서 밝은 달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일루와유 달보루의 이름을 짓고, 공간을 직접 기획하고, 각종 문화 행사를 만들어가며 하루에 1~2시간씩은 꼭 마당을 직접 쓸고 있다는 조진근 관장은, 아내와 함께 이곳에 살면서 직접 공간을 돌본다.
3년 전 한옥에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뒤 전국 각지의 한옥을 관찰하던 그는 북한산의 경치가 좋고, 달도 잘 뜨는 지금의 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다음 설계에 돌입하면서부터는 줄곧 ‘집에서 무엇을 할까?’를 집중적으로 고민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들을 많이 만나는 편이에요. 우리 집이 좋은 만남의 장소, 옛날 같으면 산 밑에 있는 주막처럼 즐겁게 노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다실에서 차도 마시고, 히노키탕에서 와인도 한 잔 하며 하룻밤을 보내고, 마당에서 바비큐도 해 먹고! 이런 모임의 기능을 확대해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여럿이 즐기는 한옥을 만들어야겠다는 확장된 목표를 세웠습니다.”
일루와유 달보루는 마당을 넓게 할애하고 3칸의 넓은 대청을 확보해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열린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일루와유 달보루의 구조도.
은평 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일루와유 달보루에서는 창밖으로 고요한 한옥의 정취를 느낀다.
이곳에서 매일 지내며 마당을 쓸다가 북한산을 바라보고, 가마솥에 불을 때며 불멍도 하는 이런 사색의 시간이 참 좋아요. 한옥을 천천히 둘러보고, 시간이 된다면 1시간 정도 북한산에 다녀오는 것도 추천해요. 산을 직접 오르고 나서 이곳을 바라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이고, 감회가 새로워질 거예요.
조진근 관장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큐레이터로서 경력을 쌓아온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팀에서 굵직한 전시들을 열었던 그는 미학, 현대미술, 대중문화에 대한 강의도 직접 한다.
지하의 작은 서재 겸 갤러리에서 매달 새로운 미술 전시가 준비된다. 11월 29일까지 열리는 정해나 작가의 <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라> 전시 중. 은평 한옥마을 인근의 토끼골을 테마로 한 6폭 병풍과 괴석도 4점 등을 전시한다.
입구에서 바라본 일루와유 달보루의 중심 마당. 중심 마당을 무대 삼아 안채, 큰사랑, 작은사랑이 객석이 되어 공연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대청이 무대가 되기도 한다.
누구든 쉬어갈 수 있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곳
일루와유 달보루는 올여름, MBC <놀면 뭐하니?> 55회에서 그룹 ‘싹쓰리’의 마지막 에피소드 촬영지로 큰 관심을 받았다. 9월에 열린 콘서트 <페스티벌 목목(木木)>에서는 이날치 밴드와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일루와유 달보루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준비된 공연이 미뤄지기도 했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를 비롯해 클래식, 인디밴드, 포크 아티스트 등 다양한 장르의 콘서트가 열렸다.
1년 새 한옥에 대한 기대와 편견을 넘는 다채로운 경험이 쌓여가는 중. 11월엔 양초에 대나무를, 우산에는 매화를 그려보는 수묵화 수업과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다도 프로그램을 비롯한 전문가의 특별 강연회를 열어 작은 모임들이 생겨났다. 공연을 보고 새로운 문화를 배워가는 것도 좋지만 하루쯤 이곳에 머문다면 꼭 해야 할 일은 북한산을 마주하는 것이다.
“일루와유의 대지는 북한산을 향해 열려 있어 실내 곳곳에서 북한산 산등성이를 감상할 수 있어요. 히노키방, 누마루방, 2층의 달보루방 등 각각의 객실에서 보이는 풍경이 다 달라요. 방 안보다는 시선을 밖으로 두면서 즐겼으면 해요.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이런 게 명당이거든요.”
위치 서울시 은평구 연서로 50길 7-9(진관동)
문의 ILWYDBR@gmail.com
숙박료 21만원부터
2020 일루와유 한옥 문화 프로그램 중 총 6회에 걸쳐 열린 남리 최영조 화백의 수묵화 수업. 부채에 난초 그리기, 양초에 대나무 그리기, 우산에 매화 그리기까지 즉석에서 따라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었는데 회당 가격이 5000원이라 부담이 없다.
2020 일루와유 한옥 문화 프로그램 중 총 6회에 걸쳐 열린 남리 최영조 화백의 수묵화 수업. 부채에 난초 그리기, 양초에 대나무 그리기, 우산에 매화 그리기까지 즉석에서 따라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었는데 회당 가격이 5000원이라 부담이 없다.
히노키방에서는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북한산을 조망할 수 있다.
누마루방에서의 다도 시간.
누마루방에서의 다도 시간.
CREDIT INFO
출처 리빙센스 기획 심효진,김의미 기자,박민정, 김도담(프리랜서)
어시스트 양희지
사진 이지아,정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