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9일은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 한글창제를 반포하신지 578주년이 되시면서 동시에 필자의 21대조부이신 감찰공(監察公) 박여해(朴汝諧) 선조(先祖)를 연구한지 5개월이 되는 날이다.
이러한 날을 맞이해서 그동안 감찰공에 대해 연구한 중간결과를 발표한다.
1. 감찰공의 장인이 되는 감무공(監務公) 김윤남공(金允南公)의 만시(輓詩)를 지은 인물이 독곡공(獨谷公) 성석린공(成石璘公)이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 얼마전에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감무공의 이모부(姨母夫)가 독곡공이 된다는 것이다.
덧붙이면 감무공의 선친 판서공(判書公) 김추공(金錘公)과 독곡공이 동서관계(同壻關係)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와 관련해 순흥안씨참판공파족보(順興安氏參判公派族譜)에서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문혜공(文惠公) 안원숭공(安元崇公)의 사위에 판서공과 독곡공이 기재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감무공이 별세한 이후 왜 독곡공이 만시를 짓게 된 것인지 그 미스터리가 풀렸다.
2. 1390(공양왕 2)년에 실시된 경오방(庚午榜)에 독곡공이 지공거(知貢擧)[과거시험을 주관한 시관)로서 33명을 선발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와 관련해 고려시대의 과거제도의 특징중에 ‘좌주문생제(座主門生制)’라는 것이 있는데 ‘좌주’는 지공거(知貢擧)를 의미하는 것이며, ‘문생’은 지공거에 의해 선발된 문생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여기서 ‘좌주’는 스승을 의미하는 것이고 문생은 조선시대의 문인(門人)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지공거가 선발한 33명은 독곡공의 문생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현재 33명중에서 5명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구체적으로 경오방(庚午榜)에서 장원(壯元)을 한 이조(李慥)를 비롯해, 정수홍(鄭守弘), 오일덕(吳一德), 김분(金汾), 허조(許稠) 공(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장원을 한 이조공(李慥公)이 바로 감찰공의 매부(妹夫)가 된다는 사실이니, 그는 세종대왕의 스승으로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였다.
이와 관련해 감찰공이 과거시험 급제 여부를 떠나서 시험에 응시하였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인데, 감찰공의 입장에서 볼 때 매부의 스승이 독곡공이며, 또한 독곡공이 장인의 이모부로서 만시를 지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감찰공이 독곡공과 어떠한 식으로든지 교유(交遊)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된 것은 아니다.
덧붙이면 독곡공이 74세가 되시는 1411(태종 11)년에 실시된 식년시(式年試) 지공거로서 권극중(權克中)을 비롯해 33명을 선발하였다고 하는데 고려시대에도 지공거로서 33명을 선발하고 조선시대에도 33명을 선발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선발된 인원(人員)이 총 66명에 이른다는 것인데, 일단 이 인원은 독곡공의 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 감찰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실은 아니나 독곡공이 필자의 외21대조부이신 통계공(通溪公) 강회중(姜淮仲) 선조에게 보낸 시가 발견되었다.
독곡공이 1338년생이시고 통계공이 1360년생이시니 독곡공이 22년 연상이 되시는 관계인데 두분이 교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감찰공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이 발견된 것은 아니나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바탕으로 감찰공과 독곡공이 과연 어떤 관계이었는지 여부를 밝히는데 혼과 정성을 다할 것이다.
2024년 10월 9일(수) 문 암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