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최북단 군사적 요충지 백령도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지난 17일 오전 7시 반에 인천항여객터미널에서 하모니 플라워 호를 타고 소청도, 대청도를 경유하여 백령도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의 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백령도는 황해도 장연군과 17Km 떨어져 마주하고 우뚝 솟아, 우리나라의 영토를 사수하고 있는 최북단의 끝 섬이라 하였습니다.
승선 후 네 시간 동안 평균 35노트로 항해하는 페리호는 파도가 전혀 없어서 230여 Km를 순항하였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백령도는 효녀 심청의 인당수와 천연기념물 제391호인 점박이 물범 그리고 백령중 종합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다가 은퇴하신 백00 선배님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이곳 방문 목적은 저희 회사 ETC두레환경이 판매하고 있는 [음식물쓰레기 감량기기 -미생물 활용 완전 소멸 방식 : 린클] 홍보 마켓팅이기 때문에 관광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두 용이 싸웠다는 용기포 선착장에 내린 우리는, 렌트카가 없어서 공영버스를 타고 면사무소를 향했습니다. 농협 근처에서 집밥으로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백령면 사무소 산업경제팀과 2Km떨어진 소각장 옆 환경관리팀에서 상세한 설명을 드렸습니다. 부녀회장님과 18개 리 이장님들을 파악하였지만 만나지는 못하고 그날 일정이 끝났습니다.
면사무소 옆에 KT에서 섬주민들의 교육 문화 경제 건강을 위해 조성한 기가 아일랜드를 둘러보니, 우리를 태우고 온 배는 이미 육지로 떠나서 인천으로 돌아갈 길은 막히고 말았습니다.
저는 동행했던 분의 양해를 구해 도보로 가능한 거리에 있는 진촌장로교회를 찾아갔습니다. 112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진촌교회는 항상 문을 열고 있어 내부로 들어설 수가 있었으며, 기도 사랑 사역의 공동체라는 주보를 제게 선물하였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는 선교와 구제에 대하여 묵상하였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심청각 가는 길 안내판이 눈에 들어와 자연히 발길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패륜적인 범죄가 횡횡한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며, 자신을 돌아볼 새 없이 학교생활에 쫒기며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정체성 확립을 위해 추천할 효가 절규하였습니다.
약 8백 미터를 부지런히 걸어가니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담은 벽화가 나를 맞이하였습니다. 사진을 몇 차례 찍고는 급한 경사길을 숨 가쁘게 오르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심청각이 정중하게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심청을 만나자니 15년 전에 77세로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 생각에 눈시울이 달아올랐습니다. 1층에서부터 2층 까지 꼼꼼히 둘러보고 뒤편에 외롭게 서있는 효녀 심청의 동상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나오는 길에 좌측 언덕에 선채 눈에 들어오는 탱크는 남북 분단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대청도 어장에서 백령도로 넘어왔다는 도다리 회를 먹고는, 백령문화투어에서 소개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지인께서 소개한 분이 연락이 되어, 저는 식전에 백령파출소 경위 한 분을 찾아갔습니다. 차를 마시며 인사를 나누고 백령도 방문 목적도 설명하였습니다. 자녀분들을 모두 출가시킨 그 분은 부부가 이곳에서 함께 살고 계시다고 하며, 주민 5,600명 군인 6,000명 근로자(다문화 가정 포함) 1,500명인 백령도의 안전 사고 대처의 애로 사항을 토로하였습니다.
10시 경 아침 겸 점심을 먹고는 천연기념물 제391호인 사곶 해변, 392호 콩돌 해변, 393호 하늬 해변, 명승지 8호 두무진, 향토 유적 2호 패총 등을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전설과 실화의 고장 백령도를 떠나는 선착장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천안함 위령비가 있는 백령수호길,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작품 두무진 비경길, 최초의 기독교 복음 전례지인 중화포구길도 저를 잡았지만 해병여단사령부 소속 사병들의 수를 헤아리며 배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용기원산 끝섬 전망대를 바라보다가 대청도 소청도를 거쳐, 네 시간 후 저는 무사히 인천 항을 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