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개 봉우리 넘는 약 11km 코스
- 정상 서면 대구 시가지가 한눈에
- 하산길서 만난 적멸도량 용연사
- 부처님 사리 사수 수난사 간직
- 울창한 소나무숲 눈이 즐겁고
- 산세 급하지 않아 발걸음 경쾌
임진년(1592년)의 왜란은 나라를 거덜 내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데 그친 게 아니었다. 국내에 봉안돼 있던 부처의 진신사리도 왜적에게 빼앗겼다가 가까스로 되찾는 수난을 겪었다. 그 실상을 지난달 25일 대구 달성군 용문산(633m)에 가서 확인했다. 용문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용연사(龍淵寺) '석가여래비'에 그 전말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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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시 달성군 용문산 정상. 비슬산 줄기의 준봉들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비슬산 쪽으로 다가갈수록 기암괴봉이 즐비한 암산의 형세가 짙어진다. |
불사리를 국내에 들여온 이는 신라시대의 고승 자장율사(慈藏律師·590∼658)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 오대산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하면서 모셔왔다고 한다. 그는 이를 경남 양산 영축산 통도사와 강원도 인제 설악산 봉정암, 평창 오대산 상원사, 정선 태백산 정암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에 나눠 안치했다. 불사리를 봉안한 가람을 적멸보궁이라 일컫는데, 이들 사찰을 국내 '5대 적멸도량'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통도사의 불사리가 수난을 당했다. 용연사 석가여래비에 따르면 통도사에 안치한 불사리는 두 함으로, 각 함에 두 과의 사리가 들어 있었다. 전란 중에 왜적이 사리탑을 허물고 이를 탈취해 갔다. 사명대사(四溟大師·1544~1610)가 그로 인한 재앙을 타이른 끝에 다행히 왜적에게서 불사리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사명대사는 이를 받들고 금강산의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에게 가 보존대책을 물었다.
서산대사는 고민 끝에 함 하나를 태백산 보현사에 봉안토록 하고, 다른 하나는 통도사로 돌려보내 사리탑을 고쳐 모시라고 하명했다. 하지만 당시 영남지방은 전화에 휩싸인 상태라 사리탑 중수불사를 할 수 없었다. 그 후 사명대사가 어명을 받고 일본에 다녀온 뒤 입적하면서 그 불사리는 치악산 각림사에 남겨졌다.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淸振)이 불사리 두 과 중 하나를 용연사에 안치하는 한편 나머지 한 과는 통도사로 돌려보내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유지를 받들었다. 현재 용연사에는 불사리를 안치한 '석조계단(石造戒壇·보물 제539호)이 조성돼 있다. '계단'은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단인데, 용연사 석조계단은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 금산사 방등계단(方等戒壇)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계단형 사리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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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연사 석조계단 앞 적멸보궁. |
용연사 적멸보궁 배치와 건축양식이 독특하다. 다른 적멸도량처럼 용연사 적멸보궁에도 불상이 없다. 불사리가 곧 부처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불사리탑인 석조계단 앞에 적멸보궁을 두고 그 뒷벽을 틔워놓았다. 막힘없이 석조계단에 경배할 수 있게 하려는 조처다. 용문산은 대구의 명산 비슬산의 줄기여서 산세가 자못 수려한 데다 고승들의 불사리 사수 수난사까지 서려 있어 산행이 더욱 뜻깊다.
산행은 용문산 정상을 비롯한 3개의 봉우리를 넘어 용연사로 하산하는 코스다. 총거리 약 11㎞로 4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산행 초반 낙엽 쌓인 비탈길에서만 본지 리본을 잘 살피고 걸으면 나머지 구간은 순조롭다. 옥포면 반송리 용연사집단시설지구에서 출발한다. 반송삼거리 쪽으로 500m가량 가다 반송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30m쯤 가면 왼쪽에 동네 이름의 유래가 된 반송(盤松) 두 그루가 주민들의 보호 속에 자라고 있다.
마을 뒤쪽으로 100m가량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왼편 산길로 접어든다. 본지 리본을 따라 비탈의 자드락길을 10분쯤 올라 능선에 이른 뒤 오른쪽으로 10분가량 더 걸으면 기산 정상(276.6m)이다. 여기서 30분가량 능선을 타면 함박산 정상(432.3m)에 닿는다. 기내미재로 하산해 고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다 이내 오른쪽 용문산 자락으로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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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박산 정상. |
50분가량 외길을 오르면 용문산 정상(633m)이다. 용문산은 9부 능선까지는 토산이 펼쳐지다 정상부에 기암들이 왕관처럼 솟아 있다. 진행방향으로 비슬산 줄기의 준봉들이, 반대쪽으로는 대구 시가지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비슬산 쪽으로 진행한다. 이후 40분가량 이어지는 능선길을 걸으며 만나는 삼거리 두 곳과 사거리 한 곳에서 모두 비슬산 쪽으로 직진한다.
사거리에서 50m쯤 가면 약수터 삼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용연사 쪽으로 내려간다. 하산길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 별 부담이 없다. 또 내려갈수록 계곡이 넓어지는 데다 20m 이상 곧게 자란 늘씬한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뤄 눈이 즐겁고 발걸음도 가볍다. 2.2㎞가량 걸으면 용연사에 이른다. 1㎞가량 아래에 있는 용연사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떠나기 전에
- 남평 문씨 양반가옥·옥연지 둘러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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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연사 석조계단. |
산행 출발지인 용연사시설집단지구에서 4.5㎞가량 떨어진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남평문씨본리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가 있다. 이곳은 원래 절터였으나 약 300년 전 남평 문 씨 일족이 1만1000여 ㎡의 터를 닦아 정착했다.
마을에는 조선 말기 양식의 양반가옥 9동과 수학 장소인 광거당, 손님을 맞거나 문중 모임 때 사용하는 수봉정사 2동이 있다. 지은 지 200여 년에 불과하지만 영남지방 전통 양반가옥의 고졸한 아름다움이 눈길을 끈다. 특히 도로망과 건물을 에워싼 격조 높은 흙담이 주위의 산야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용연사 입구에서 약 2㎞ 아래에 위치한 '옥연지(玉淵池)'도 가볼 만하다. 이름처럼 물이 맑은 데다 주변 경관이 수려해 강태공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인근에는 매운탕촌이 형성돼 미식가들이 많이 찾는다.
이들 관광지를 포함해 달성군 내 명소들을 연결한 트레킹 코스도 조성돼 있다. 대구지하철 대곡역에서 대구수목원, 남평문씨세거지, 기내미재, 옥연지, 송촌리, 노이리, 약산온천, 달성보에 이르는 약 23.4㎞(소요시간 8시간30분가량)의 길이다. 용연사시설집단지구에서 기내미재를 거쳐 남평문씨본리세거지까지만 걸으면 거리가 6.5㎞(〃3시간가량)쯤 되며, 기내미재까지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교통편
- 동대구역서 도시철도로 갈아타 대곡역서 용연사행 버스 이용을
열차와 도시철도, 버스를 환승하는 방법이 가장 편리하다. 먼저 부산역에서 동대구행 열차를 탄다. 동대구역에서 내려 도시철도를 갈아타고 가다 대곡역에서 하차한다. 이어 도시철도 대곡역 버스정류장에서 용연사행 달성 5번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탄 뒤 용연사집단시설지구에서 내리면 산행 출발지다. 산행을 마치고 귀가할 때는 용연사버스정류장에서 달성 5번 버스를 타고 올 때와 반대로 이동하면 된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이경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