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만 켜고 살아온 산중 평화 18년째
_ 정선 민둥산 자락 기림산방의 김종수
삶에는 터닝 포인트라는 게 있다. 그것은 느닷없이 찾아들기 십상인데, 때로는 불행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김종수(58세)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서울 토박이로 줄기차게 서울에 살았다. ROTC 출신의 유능한 회사원이었다. 대학 산악부 시절부터 백두대간을 탔던 산꾼이었다. 부족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도시민이었다.
널리 알려졌듯이 롤러코스터처럼 어지러운 도시의 살이란 고독하거나 고역스런 행사. 그래서 우리는 때로 술을 퍼마시게 되어 있는데, 김종수 역시 못 말릴 술꾼이었다. 산꾼치고 술꾼 아닌 이가 드무니 그 역시 마셨다 하면 7차, 8차가 예사였다. 술이란 잘 마시면 주선 으로 진급한다. 그러나 취중에 달 잠긴 연못 속으로 뛰어든 이태백의 이상한 종신처럼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김종수의 과도한 음주활동 의 종장도 전혀 바람직한 게 아니었다.
몸이 망가져 수습할 가망성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에 구멍이 생기고 기가 쇄해 거의 사경에 이르렀다. 백약이 무효였다. 어이하나. 김종수는 모든 일상을 중단하고 서울을 떴다. 이판사판에 막가는 판이었으니 미련을 둘 여지가 없었다. 산으로 가자, 산이 나를 살리리 라. 그렇게 산에 들었다. 강원도 정선땅 만둥산 자락으로.
그렇게 허겁지겁 입산한 게 18년 전의 일이었다. 18년. 긴 세월이다.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나. 모든 게 바뀌었다. 죽을 것 같던 몸이 부활했다. 욕망의 구성 요소가 달라졌으며,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했다. 나는 지금 김종수와 마주 앉아 있다. 눈빛이 맑구나. 언젠가 흑요석처럼 검고 투명한 눈을 가진 여자를 본 적이 있다. 그녀에게 비결을 묻자 소변을 받아 아침마다 눈알을 씻어 준 덕이라 했다. 오줌도 안광에 기여한다. 몸이란 이렇게 야릇하고 신비하다. 김종수의 맑은 눈은 아마 자연의 소변을 안약으로 삼은 덕택일 게 다. 산중 자연이 그를 살렸으니 산이 통째 신약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나 이 '그러나'에 있다. 그러나 산이 거저 베푸는 법은 없다. 죽어라 들러붙어 두드리는 자에게만 문이 열리는 이치. 그는 산중에 들어앉아 활명의 묘수를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술에 찌들려 송장에 다다른 몸을 일으켜 세울 궁구란 화급한 현안이 었으니 몰두 또한 깊었겠다. 궁즉변에 변즉통이라. 실로 옳은 소식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간절히 변화를 갈망하자 길이 환이 보였다는 게 김종수의 통첩이다. 뭘 보았나. 자연의 이치다.
산에 들어와 한동안은 잠만 잤죠. 술과 불면에 시달렸던 서울에서와 달리 잠이 편합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느낌의 세계랄까 하는게 맑아지면서 자연의 순환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해가 뜨는 아침이면 밝아지고 따뜻해진다. 밤이 되면 어두워지면서 차가워진다, 이게 무슨 이치인가. 봄이 되면 만물이 살아나고 싹 나고 꽃이 피고, 그러다가 추풍낙엽의 가을과 엄둥이 오면서 만물이 시들고 정지한다, 이게 무슨 이치인고. 이런 궁리였는데, 아하, 따뜻한 기운과 차가운 기운, 이 양자가 자연의 주인공이로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죠. 그렇다면 내 몸도 거기에 맞추면 될 것 아닌가. 예로부터 두한족열이라는 건강법이 전해지지만 머리는 차게 하고 배 속은 따뜻하게 하는 게 내 몸을 살리는 오직 유일한 길이라는 걸 깨달았던 겁니다.
찬 기운과 더운 기운의 이치, 그건 동양철학의 근간인 음양론의 요체가 아닌가요? 김 선생의 득의에 찬 깨달음이라 보기엔 이미 너무도 유명한 이론인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새로울 게 없죠. 하지만, 보세요. 머리로만 이해하는 지식의 세계와 직접 체험하는 느낌의 세계는 차원이 다르죠. 인체에는 생명온도라는 게 있는데 내장을 따뜻하게 해 줘야만 이게 유지됩니다. 배 속은 따뜻하게, 머리는 차게 해 줘야 몸이 살고 덩달아 정신이 맑아지며 영혼조차 깨어납니다. 모든 기운이 배 속에서 나온다. 배속을 따뜻하게 하라, 그러면 죽을병도 고친다, 이게 제 얘기의 핵심인 데, 이건 그 어떤 의학자도 착안하지 못한 활명법이에요.
배 속을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
아주 쉽습니다. 차가운 음식을 절대적으로 피하고 더운 음식을 먹으면 되니까. 차가운 음식이 내장을 죽이는 반면 더운 음식은 죽었던 배 속 세포조차 살려내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총 1500일가량 단식을 했어요. 그런데, 단식 중에 뜨거운 물을 마시면 전혀 기력이 떨어지 질 않습니다. 따뜻한 음식이 몸을 살린다는 뚜렷한 반증 아니겠어요? 배 속이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에요. 죽어 가던 제 몸이 살아난 이치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찬 음식을 피할 수 있죠? 여름엔 시원한 수박을 먹게 되고 생맥주도 마시게 되는데 그것도 독이 되나요?
과일도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술도 당연히 데워 마셔야죠. 배 속을 차게 하면 천하장사라도 결국은 붓고 굳고 썩고 아프다가 죽을 수가 있어요. 차가운 기운이 뭉친 '적積' 때문인데, 몸의 이상뿐 아니라 신경질에 화가 늘고 사고력, 창의력, 집중력, 영력 모든 게 저하 되죠. 제가 말하는 이치는 너무도 간단해요. 너무 쉬워서 오히려 믿지를 않으려 하죠. 그러나, 보세요. 제 몸이 견본입니다. 젊어 보이지 않나요? 보통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젊게 봅디다. 죽을 지경이었으나 이렇게 변했어요. 배 속이 따뜻해지는 생활, 박 선생에게도 강력히 권합니다. 직접 경험하면 놀라운 실감을 할 거예요.
처음 2년은 내리 잠만 잤다
김종수의 방 안에는 수백 권의 장서가 있다. 모두 의학이나 동양철학, 수행에 관한 책들이다. 김 선생 본인에게도 4권의 저서가 있다.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 라는 책자가 2003년에 냈는데 16쇄를 찍은 스테디셀러. 중앙 일간지에 건강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으며 대학이나 기업에서 행한 강연회도 수백 회에 이른다. 그의 지도를 받아 족보 있는 갖가지 질환을 떨친 수련생만도 500여 명에 이른단다. 순항이다. "차가운 배 속을 타파하라" 외치는 그의 목청은 몹시 높은데 그게 척척 먹혀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산중 거처엔 찾아드는 사람이 많다. 지친 이, 외로운 이, 슬픈 이, 병든 이들이 찾아와 그의 지원을 받는다. 종이처럼 구겨진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돌아간다. 그래서 그의 기림산방은 늘 부산하다.
이건 어쩌면 폐단이다. 산중의 명품은 무인지경의 적막이며, 산림처사의 본분은 적막 속 자연의 리듬을 경청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면 말이다. 방문객이 많아서야 어이 한무를 누리랴. 그러나 정작 김종수는 거침없다. 산방의 문호를 활짝 개방한 것은 그게 자신의 도리 이기 때문이라 한다.
이 좋은 건강법을 나만 알면 되나, 널리 알리고 두루두루 나누어 사람을 이롭게 하자, 차가운 생활에 찌든 세상의 병증을 고쳐 보자, 하는 태세다. 확신이 넘치고 소신이 깡깡하다. 자신의 건강론이 세상을 구제할 한 가지 단서가 되기에 족하다는 신념을 표할 때 그의 눈 은 당구공만 하게 뒤룩거린다. 그러나 교만이 안 보이니 숙수다. 머리만 쓰거나 입으로만 떠드는 자가 아니라는 증빙일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사지에서 돌아온 사람이 아닌가. 꺼지는 촛불처럼 가물거리는 명줄을 간신히 건져낸 자 특유의 뚝심과 결기, 사생관과 세계관이 베이스에 공고하다.
김종수의 기림산방은 소박한 귀틀집 서너 채로 이루어졌다. 손수 고치거나 지은 집들이다. 민둥산 자락 해발 700미터 고지에 자리한 이 골짜기는 원래 화전민들의 집단 거류지였다. 그가 처음 여기에 들어왔을 때엔 흉물이 된 폐가 서너 채만 남아 있었다. 직장도 처자도 모두 뒤로한 채 단신 입산한 그는 폐가에 들어 내리 2년을 잠만 자다시피 했다.
쑥대밭이라는 거 아시죠? 첨 여기 와서 쑥대밭의 진수를 알았죠. 귀신 나오게 생긴 폐가에 쑥만 2미터 이상씩 자라 있었으니까. 모든 게 힘들었어요. 삽질이라는 걸 안 해봤으니 농사가 쉽나요? 주경야독을 하리라 했지만 전기가 안 들어오니 밤에 할 일이란 오직 잠뿐, 그렇게 2년여를 주로 잠으로 보내다 보니 비로소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밝아지더군요. 찬 기운과 따뜻한 기운이 교대 근무를 하는 순환의 이치가 보이고 말이죠. 서울에서 아프고 쓰리고 괴로웠던 몸과 마음의 상태도 공부의 과정이었음을 알겠더군요.
당시 산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망가진 몸 그대로 무너졌겠죠. 저는 주로 몸을 얘기하고 있지만 실상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게 아닙니다. 하나라는 얘기죠. 산에 들어와 마음이 열렸다, 열리면서 내면의 필링이 살아나는 일이 거듭되었으니 산에서의 모든 날들이 마음공부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 산이 큰 스승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일개 무지렁이에 다름없었던 저의 소갈딱지, 저의 내면세계를 산이 키워 줬단 말이죠.
그렇다면 사람은 모름지기 산에 살아야 마음이 열리는 걸까요? 도시에서 이상적인 삶을 살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다 보시나요?
도시의 삶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연속 아니던가요. 어떻게든 좀 더 벌어야 하고, 경쟁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신경 쓸 일이 많게 되죠. 신경을 많이 쓰다 보면 기운이 소모되고 지치게 되니 마음 열릴 겨를이 없죠. 도시에 살더라도 자연을 자주 찾음으로써 내면의 안정을 얻고 지혜를 찾는 게 대책이지 않겠나 싶습니다.
술이건 밥이건 이 집에서 빠질 수 없는 건 뜨거운 물이다. 김종수가 반쯤 술이 든 와인병에 뜨거운 물을 부어 칵테일을 만든다. 허, 나는 난생처음 뜨거운 포도주를 마신다. 이게 무슨 맛일까. 기대 반, 당혹 반으로 더운 와인을 목으로 넘기는데 이게 별미다. 배 속에 온기가 확 퍼진다. 웅크렸던 온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일어서 활개를 치거나 춤을 추어댄다.
사람들은 술, 담배를 오직 독으로 알지만 그게 아닙니다. 건강 보조제로 아주 좋은 것들이거든요. 배 속을 따뜻하게 한단 말이죠. 다만 소주든 맥주든 반드시 덥게 해서 마셔야 합니다.
아주 좋은 뉴스인데요.
뭐든 배 속을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병장수할 수 있습니다. 참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참나? 그건 무엇인가요?
영혼이 최고조로 맑은 상태죠. 마음공부의 궁극입니다.
김 선생님은 참나를 얻으셨나요?
(웃음)얻긴요. 그저 참나의 경지를 알고 있다, 하는 정도죠. 그러니 갈 길이 멉니다. 나름대로 뭔가 얻은 것 같지만 날마다 미진한 게 다시 터집니다. 매순간 노력할 뿐이죠.
술을 마치고 마당에 나서니 천지가 캄캄하다. 숨소리조차 빨아들이는 정적 속을 거닌다. 구름을 뚫은 별빛 하나가 아련하다. 밤하늘 맑아 별들이 총총한 밤엔 무한의 광휘로 아찔하겠구나. 하지만 이 밤, 희미한 한줄기 별빛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 박원식 : 자타가 인정한 山 사람, [속리산] 저자
- 박원식의 <산이 좋아 山에 사네> 중에서 - |
출처: 인드라망과 생명평화 원문보기 글쓴이: 무량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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