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의 버스터미널은 두 얼굴의 가면을 쓰고 있다.
전국 최대 버스회사인 KD그룹의 본거지로서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나,
한편으로는 기대 이하의 실적 때문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어두운 단면이 있다.
실제로 광주시는 2000년대 초반까지 구도심 한복판에 있던 터미널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버스터미널이 사라지는 사태를 맞았다.
이 당시에는 시내와 다소 떨어진 KD 송정동 영업소에서 시외버스가 다닐 만큼,
고속도로가 지나감에도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손꼽혔다.
2009년에 이마트와 함께 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기대를 모았으나,
개장 10주년을 맞은 현재까지 눈에 띄는 상승세는 커녕,
위기의 징조가 여러 곳에서 드러나는 상황이다.
개장 1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찾은 광주터미널은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남, 성남에 이어 이날 세 번째로 찾은 곳은 광주터미널이었다.
이곳은 광주 구도심의 알짜배기 부지에 상업시설과 같이 들어섰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굉장히 크고 화려한 버스터미널처럼 보인다.
백화점, 쇼핑몰 안에 들어선 버스터미널은 전국적으로 수도 없이 많지만,
유독 수도권에는 할인마트 안에 있는 버스터미널이 많다.
여기 말고도 서수원, 동두천이 할인마트 안에 쏙 들어와서 영업을 한다.
그러나 광주가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는 구도심에 위치한 특징 때문이다.
할인마트는 보통 재래시장 상권 침해 문제로 구도심에는 거의 들어서지 않는데,
광주 이마트는 좁은 도로와 오랜 건물이 가득한 구도심과 딱 붙어있다.
심지어 재래시장과는 도보 4~5분 거리에 있다.
게다가 광주는 생활권이 성남시에 종속되어 이마트 개장 이전에도 상권이란 게 거의 없었다.
광주보다 인구가 적은 이천, 용인(처인구)과 비교해도 훨씬 유동인구가 적다.
그래서 광주터미널 주변은 광주의 중심지임에도 한산하고 조용한 느낌이 강하다.
광주터미널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뒤늦게 출발한 후발 주자이다.
광주 어디에서도 찾기 쉬울 만큼 최상의 입지에서 문을 열었지만,
이미 생활권이 서울, 성남으로 쏠린지 한참 지난 후에 생겨서 불리한 점이 많다.
그래도 이마트와 같이 시작했기 때문에 시설은 깔끔하고 부지가 넓다.
그래서 불리한 점을 뚫고 지난 9년간 많이 발전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곳에 거는 기대가 조금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추위 때문인지 터미널 안에 사람은 제법 있었으나 그렇게 많다고 볼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조명 하나 없이 빛을 채광에만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9년 전 게시물을 보면 알겠지만 이때는 은은하게 조명을 밝혀 고급진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찾아볼 수 없고,
새 건물임에도 을씨년스럽고 축축한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바로 옆 이마트 쪽은 반대로 썰렁했다가 활기를 완전히 찾은 모양새라 매우 대비된다.
게다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멀쩡한 매표소를 놔두고,
옆의 수화물 창구에서 매표업무를 보고 있다.
이건 개장 직후에도 마찬가지였으니,
처음부터 알 수 없는 문제가 지금까지 쭉 이어진 걸로 보인다.
도대체 이유가 뭔지 그 원인을 알고 싶다.
시간표를 살펴보니 공항리무진을 제외한 모든 노선이 제법 큰 변동이 있었다.
공항리무진은 하루 15회 그대로에 출발 시간조차 비슷해 유일하게 시간표가 거의 변하지 않았고,
청주(5회), 강릉(2회)처럼 횟수가 같으면서 시간표가 바뀐 노선도 있다.
대전 7회 → 9회, 원주 2회 → 4회, 경주-포항 2회 → 3회처럼 횟수가 증가한 노선이 있고,
천안(5회), 부산(4회), 제천(3회), 마산-창원(2회), 구미-대구(3회)처럼 중도 신설된 노선도 있다.
반면에 광주(4회 → 3회), 춘천(4회 → 2회), 의정부-동두천(5회 → 3회)처럼 횟수가 줄은 노선이 있고,
충주, 고양, 논산, 음성행처럼 노선 자체가 사라진 곳들도 있다.
서서히 강산이 한번 바뀔 때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이미 강산이 한번 바뀐 수준으로 노선 변화가 상당했다.
대략적인 추세를 살펴보면 노선 개통 이후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하남에 환승터미널이 개장한 이후 노선이 다소 증가하였고,
최근에 노선 단축과 폐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곳에 오기 며칠 전에 고양-음성행이 폐지된 데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춘천행의 감회 소식이 이를 말해주는 증거이다.
KD의 본고장답게 이곳에 들어오는 노선은 대다수가 KD그룹 소속이다.
이웃 하남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일부 시내버스가 터미널에서 출발하는데,
승차홈이 고작 다섯 개뿐인 곳임에도 시내버스가 출발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광주터미널 시외버스 이용률이 매우 저조하다는 것을 뜻한다.
넓지 않은 주차장에는 시내버스 세 대와 시외버스 한 대가 조용히 잠에 취했고,
그 뒤로는 차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한산한 도로와 팔당호로 흐르는 경안천,
그리고 국수봉이라는 조그마한 야산이 보인다.
구도심 바로 옆 미개발지에 터미널에 들어선 덕분에 경치가 참 좋은데,
막상 터미널 건물과는 전혀 매치가 안 되는 모습이다.
이처럼 터미널 + 이마트 건물은 구도심 시내와도, 근처 경치와도 어울리지 않게
저 혼자 으리으리한 몸집을 불린 채로 알박기를 한 상황이다.
이마트를 꼈기 때문에 터미널도 거품처럼 몸집이 커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조용한 주변 환경 및 저조한 이용객 수와 어울리지 않는 비주얼임은 확실하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승객을 끌어보기 위해 노력했겠으나,
훨씬 이전부터 전국적으로 노선을 뻗은 성남, 강남/동서울에 여전히 많은 수요를 잠식당한다.
게다가 2016년 12월에 개통한 SRT는 주변 수요를 빨대처럼 흡수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KD의 연고지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버스를 보유한 지역이면서도,
낮은 경쟁력으로 아직까지 부진에 시달리는 두 얼굴의 광주터미널은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얼굴의 가면이 벗겨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다음 목적지로 눈길을 돌린다.
첫댓글 하남과 광주가 사실상 한 묶음으로 노선이 운영되면서 주박하는 차가 더 적어보이는 게 터미널을 더 썰렁하게끔 보이도록 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횟수가 늘어난 노선이 있는 걸 보면 그런 노선들을 중심으로는 어느 정도 수요가 확보가 되어 있는지 이 부분도 궁금해집니다. 대체로 보면 소도시로 향하는 노선들을 위주로 횟수가 줄어든 반면 수요가 나올 법한 큰 도시로 가는 노선들은 현상유지가 되는 모습인데, 제가 받아들인 게 정확한지 설명을 함께 요청드립니다. 늘 깊은 고민을 안고 이동하시는 모습을 보며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전해집니다.
자주 허를 찌르는 댓글을 남겨주시는 점에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미처 짚지 못하거나 넘겼던 포인트가 담겨있어서 감탄하게 되네요. ㅎㅎ 하남터미널 개장 이후 주박하는 차들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해서 주차장이 썰렁, 수요에 비해 공간이 넓어서 더 썰렁하지요. 말씀하신게 100% 일치하지는 않아도 그런 경향은 있는 것 같습니다.
kd가 운행 한 하남,광주-공주,논산은 그야말로 공기수송만 하다가 사라졌죠.
애초에 충청권 소도시인 공주, 논산에 수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운행사도 모르지않았을텐데
아마 지금까지 운행됐던 노선 중 가장 뜬금포 노선이었을 듯.
성남에서도 논산,부여행은 천안,공주를 경유하는 완행만 각각 2회씩 운행되는게 전부인데,
천안경유없이 성남-공주,논산이나 성남-공주,부여행은 노선이 열리기를 그 지역 출신으로서 바래봅니다.
맞습니다. 왜 그런 노선을 만들었는지 의문이 드네요.
공주, 부여쪽은 지역 관광산업이 활기를 띄어야 단독 노선이 열리거나 횟수가 많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광주 구 터미널은 경안터미널로 불리기도 했었습니다.
구 터미널의 형태는 일반상가 건물 귀퉁이에 매표소가 있었고 승차홈은 4개정도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버스를 탈려면 승차홈이 아닌 박차장으로 내려가서 타야했습니다.
승차홈이 너무 높은 이유(승객이 승차를 못 할 정도)도 있었지만 버스들이 박차장에서 승객을 승,하차 시켰기 때문에 비나 눈이 오는날엔 고역이었죠.
버스노선은 명진여객 15번(광주-천호동),용인,원주,이천,곤지암,제천,충주,여주,장호원,단양,모현,원삼,오포,감곡,수안보 등이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Maximum님 덕분에 오래전 기억이 떠오르네요.
Maximum님의 터미널 기행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구터미널에 대한 자세한 설명 정말 고맙습니다. 구터미널에 대한 자료를 어디에도 구할 수가 없어서 어땠는지 궁금한게 많았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듣게 되어 좋은 정보를 알아가네요. 당시 위치는 어디였나요?
현재 터미널에서 송정동 방향으로 사진에 보이는 주차장(쉐보레[한국GM 광주지점]) 맞은편에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퇴촌,정지리,도마리,남한산성으로 가는 완행버스도 있었습니다.
사진으로 남겨두지 못한것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Maximum님 덕분에 즐거웠던 여행, 추억이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그당시에는 다른 면으로 가는 버스도 완행버스로 퉁쳤었군요. ㅎㅎ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전에 올렸던것과 비교하면 시간표는 깔끔하게 표기되있는거같애요
그거말고는 거의변한게 없는거같애요
광주는 경유하는 지역같아서 버스들이 들어와도 금방나가는거같애요
대부분의 버스가 중간경유를 해서 더 썰렁해보이는 면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