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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회 samseung
 
 
 
카페 게시글
기본 자료실 스크랩 신현림 시 모음
쥴리엣 추천 0 조회 32 08.02.26 11: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자화상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슬럼프에 빠진 그녀의 독백                        

 

청춘의 벌판을 지나고

그곳은 타버린 무명옷으로 굽이치지

애인도 나만의 방도 없었지만 시간은 많다고 느꼈지

여린 풀잎이 바위도 들어올릴 듯한 시절

열렬하고 어리석고 심각한 청춘시절은 이제 지워진다

언덕을 넘고, 밧줄 같은 길에 묶여 나는 끌려간다

광장의 빈 의자처럼 현기증을 일으키며 생각한다

지금 나는 무엇인가?

내가 원했던 삶은 이게 아닌데

사랑이 없으면 시간은 죽어버리는데

옷장을 열어 외출하려다 갈 곳이 없듯

전화할 사람도 없을 때의 가슴 그 썰렁한 헛간이란,

헛간 속을 들여다봐 시체가 따로 없다구

사람을 만나면 다칠까봐 달팽이가 되기도 하지

잡지나 영화도 지겹도록 보아 그게 그거 같고

내가 아는 건 고된 노동과 시든 꽃냄새 나는 권태,

내일은 오늘과 다르리란 기대나

애정이나 행복에 대한 갈망만큼 지독한 속박은 없다

 

나라는 연장을 어떻게 닦아야 하나  

 

 가질 순 없는 건 다 상처랬죠?                      
 
가질 수 없는 건 다 상처랬죠?

닿지 않는 하늘 닿지 않는 바다

돈이 없어 닿지 않는 외투

빌릴 수 없는 방 두 칸짜리 집

닿지 않는 사랑

절망의 아들인 포기가 가장 편하겠죠

아니, 그냥 흘러가는 거죠

뼈처럼 흰구름이 되는 거죠

가다보면 흰구름이 진흙더미가 되기도 하고

흰구름이 배가 되어 풍랑을 만나고

흰구름 외투를 입고

길가에 쓰러진 나를 발견하겠죠

나는 나를 깨워 이렇게 말하겠죠

<내가 나를 가질 수 없는데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져서 뭐하냐>구요

 

 사랑이 올 때                                           

 

그리운 손길은

가랑비같이 다가오리

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땐

시드는 걸 생각지 않고


술 마실 때

취해 쓰러지는 걸 염려치 않고

사랑이 올 때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봄바람이 온몸 부풀려갈 때

세월 가는 걸 아파하지 않으리

오늘같이 젊은 날, 더 이상 없으리


아무런 기대 없이 맞이하고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져도

봉숭아 꽃물처럼 기뻐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 가리

      

 당신이 나를 생각한다                               

 

당신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흰 풀뿌리 같은 목소리에 이끌려

비바람 속에서 내 발은 부푼다

비바람 속에서 당신을 찾아 떠난다

얼굴 한번 어루만지고 싶어

착한 마음 비치는 눈을 보고 싶어

멀리서 흰고래처럼 춤추는 당신

닿을 듯 닿지 않는 당신을

훔쳐만 보고 잠잠히 사라진다

 

아무 것도 아니었지                                  

 

너는 아무 것도 아니었지

순식간에 불타는 장작이 되고

네 몸은 흰 연기로 흩어지리라


나도 아무 것도 아니었지

일회용 건전지 버려지듯 쉽게 버려지고

마음만 지상에 남아 돌멩이로 구르리라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도 괜찮지

옷에서 떨어진 단추라도 괜찮고

아파트 풀밭에서 피어난 도라지라도 괜찮지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의 힘을 안다

그 얇은 한지의 아름다움을

그 가는 거미줄의 힘을

그 가벼운 눈물의 무거움을


아무 것도 아닌 것의 의미를 찾아가면

아무 것도 아닌 슬픔이 더 깊은 의미를 만들고

더 깊게 지상에 뿌리를 박으리라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

비로소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리라
 

 시간 창고로 가는 길                                 

                                                 

어디로든 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때

무작정 밖으로 나서는 것이다.

 

좀 가다보면 바람도 불고,

성성한 빗발도 날리고,

비로소 우울한 일도

잊으리라.

 

밖으로 나가

내 안의 문제들을

살피면 아주 하찮아서

부끄럽다.
 
그래서 지나치게

자신 안에 갇혀 있으면

위험하다. 

   

잠시 정전된 을지로 지하                            

 

갑자기 내 걷던 자리가 정전이 되었다

바다 속 같은 침묵이 주변을 휘감아 갔다

일순간 어둠이 지하도를 덮자

낯선 쾌감에 몸을 떨었다

왜 이 상태가 불안하기보다 경이로울까?

수도원처럼 고요한 상태

어쩌면 나는

가장 단순한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살이 썩어 흰 뼈만 남듯이

복잡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모든 전등을 끄고 싶듯이

단순함의 가치를 생각한다

걷고, 보고, 숨 쉬고, 마시고

텅 빈 방, 텅 빈 컵,  물과 바람 소리

단순함 속에 보이는 인생의 핵심

다시 시작하는 발길

하나, 둘 ...

지하도는 다시

들꽃 만발한 벌판처럼 훤해졌다

 

 해질녘에 아픈 사람                                  

 - 향수병 
 

이제 떠나야 할 것 같네요

그대 해안가를 떠도는 것만으로 즐거웠어요

그대 외투 빛깔처럼 황토빛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그 바다에 내 얼굴 파묻고 웃고 운 것만으로

 

그대도 날 그리워할까요

언젠가 그대 향기 잊혀지겠죠

향수병에  담아두지 못했는데

그대 손 한번 잡지도 못했는데

그대 갈망. 슬픔도 껴안지 못했는데

그대가 믿는 모든 게 되고 싶었는데

 

먹고살기 참 힘들죠

밤새 일하느라 거친 손등 호박잎이구

거긴 밥만큼 따뜻한 얼굴이구

아아, 그새 정들었나 봐요

홀홀 떠나려네요

멀리 꽃나무가 흔들리네요

속절없이 바다가 나를 덮어가네요

 

 갑자기                                                             

 

갑자기 한 바구니 오렌지가 먹고 싶고

갑자기 커피 냄새 나는 사람이 그립고

그 사람과 신나게 춤을 추고 싶고

풀밭의 호랑나비처럼 태양을 입고 날고 싶다

 

갑자기 행인들이 둥둥 떠다니는 환상을 본다

꾸질꾸질한 재개발아파트가 무너질 듯 비바람이 불면

아랫집 옆집 연탄가스가 수의처럼 날려온다

창을 열고 산성비에 천사가 녹아버렸다

빌어먹을 인간들! 나는 욕하면서 부끄러웠다

왜 이렇게 살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나 자신이 답답해 죽고만 싶었다

 

액자 속의 그림같이 조용히 살다가도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행복                                                     

 

행복은 행복하리라 믿는 일

정성스런 손길이 닿는 곳마다

백 개의 태양이 숨 쉰다 믿는 일
 

그리운 사람들을 부르며

소처럼 우직하게 일하다 보면

모든 강 모든 길이 만나 출렁이고

산은 산마다 나뭇가지 쑥쑥 뻗어 가지

집은 집마다

사람 냄새 가득한 음악이 타오르고

폐허는 폐허마다 뛰노는 아이들로 되살아나지


흰 꽃이 펄펄 날리듯

아름다운 날을 꿈꾸면

읽던 책은 책마다 푸른꿈을쏟아 내고

물고기는 물고기마다 맑은 강을 끌고 오지

 

내가 꿈꾸던

행복은 행복하리라 믿고

백 개의 연꽃을 심는 일

백 개의 태양을 피워 내는 일


 노란 꽃을 드릴께                                     

 

귀다툼의 바닷물을

오래 끌고 다니면

어둠은 하얘지기도 했어

철로 위엔 노란 꽃도 피어났어

무덤들은 흙을 풀어헤쳐 쉬기도 했구


물결치는 관 위에

호수를 뜨위기라도 하면

웃음의 향기가 메아리쳤어

철로 위의 꽃도 손에 와 앉았어

손가락 새로는 세상의 눈물도 보이구


푸른 빵에 주린 몽유병으로

강물을 오르면 넘어지기도 하겠지

이 큰 눈에 가득 담겨오는

헐벗어서 더욱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노란 꽃을 드릴께

 

 나의 싸움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한 쓸쓸함

줄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오백원 대학생                                          


왕복 전철비 이백원

점심 라면값 이백원

커피값 백원

대학 때 하루 생활비는 오백원이었다


오백원만 더 달라고 어머니께 애원한 오백원 인생

정신의 빈곤은 죽음이라 여긴 오백원 대학생

도시락 싸들고 아낀 점심값으로 복사 떠서 공부한 오백원 인생

신경정신과 의사한테 비싸다고 울어서 약값 깎던 오백원 인생

<500 마일즈>를 부르며 회한에 젖어 나는 눈보라처럼 흩날렸네

비틀즈보다 조용필을 좋아했고

투쟁이란 말 끝에 꽹과리처럼 울리는 ㅇ음을 사랑했네

희망의 돌덩이 같은 <아침이슬>을 부르며 함께 돌을 던지고

절망의 구역질을 하며 이렇게 살다 죽진 않으리라다짐했네


오른 물가만 빼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네

가난의 역사를 바꾸고 싶은 서러운 오백원 인생

까짓것 허기진 채 일렁이며 흘러가죠

그러나 못살겠다 갈아보자 오백원 인생


제기랄, 바꿔져라, 바꿔져라,

부익부 빈익빈 세상이여

 


내 여인이 당신을 생각한다                          


저녁 태양은 빵같이 부풀고

언덕은 아코디언처럼 흘러내립니다

거리에 북풍이 넘치도록 그녀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연히 만난 길과

알 수 없는 희망에 들뜬 날들을

소리가 아픈 풍금이 북풍따라 노래하고

당신에게 나던 사막의 붉은냄새가 몰려옵니다

잠시 바라보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나요

그냥 앞에 계시는 것만으로 기쁨에 넘쳐 봤거든요

소중해서 숨긴 애정의 힘이 비탈길을 오르게 합니다

정든 이의 행복을 빌고 하늘에 새들이 날아드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헤어져야 합니다

그녀는 당신이 그린 수묵화입니다

수묵화 한 장이 비바람에 젖습니다

뱃사람이 풍랑을 이기며 바다를 밀고 가듯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을 견디며 오늘을 건넙니다

 

 겨울 정거장                                            


겨울은 외투주머니에서 울고

추운 손들은 난로 같은 사람을 찾는다

오후의 저무는 해 아래 모두

깡마른 기타처럼 만지면 날카롭게 울부짖을 듯하다

싸구려 운동화처럼 세월이 날아가는데

생활은 변한 게 없고 아무도 날 애타게 부르지 않고

특별한 기억도 없다 어리석은 열망으로 뭉친

얼음덩이 처럼 서로 가까와지는 일은 불가능한 듯

침묵의 물살에 떠밀려가는 것이 강물빛이 변하고

벌써 늙어간다는 것이,

어두워지는 창공에 흰 백지장이 나부낀다

내 장갑을 누군가에게 벗어줄 기쁜 위안이 그립다


희망의 작은 손전등을 들어

내게 오는 자를 위해 길을 비춘다

나는 즐거운 타인이 있으므로 살아가고

삶은 그들에게 벗어나려 할때 조차

그들에게 속하려는 끝없는 노력이므로

감미로운 고통에 싸여 길을 비춘다  

 


이별한 자가 아는 진실                              


담배불을 끄듯 너를 꺼버릴 거야


다 마시고 난 맥주 캔처럼 나를 구겨버렸듯

너를 벗고 말 거야

그만, 너를, 잊는다,고 다짐해도

북소리처럼 너는 다시 쿵쿵 울린다

오랜 상처를 회복하는 데 십년 걸렸는데

너를 뛰어넘는 건 얼마 걸리까

그래, 너는 나의 휴일이었고

희망의 트럼펫이었다

지독한 사랑에 나를 걸었다

뭐든 걸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네 생각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너는 어디에나 있었다 해질녘 풍경과 비와 눈보라,

바라보는 곳곳마다 귀신처럼 일렁거렸다

온몸 휘감던 칡넝쿨의 사랑

그래, 널 여태 집착한 거야


사랑했다는 진실이 공허히 느껴질 때

너를 버리고 나는 다시 시작할 거야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빈민가 담벼락 같은 가슴을 뚫고 겨울이 온다

슬픔은 미친 종처럼 울고 슬픔은 끝없이 나는 연

저 환장한 연을 잡았으면

내가 너 대신 아팠으면 너를 안고 나는 갈매기였으면

아우야, 추운 너를 안고 어머니가 금강산을 날으셨구나

너를 안고 나는 바닷속을 달렸더구나


마음으로라도 날고 뛰지 않으면 살 수 없던 날들

열린 차창처럼 비명을 지르고 싶던 날들

불탄 아현동 사람들이 무덤으로 던져진 어제

저녁이 오기도 전에 식탁의 빵들은 부패했다

장송곡보다 무거운 원피스를 입고 너는 꿈 속 강변을 헤매고

버림받은 자들이 부르는 유행가가 싸락눈으로 날린다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다

우리는 토실토실한 쓰레기나 불리며 살고

작별의 꽃을 던지며 사나니

술잔은 자꾸 죽음을 향해 기울어지더라


기나긴 밤마다

아무 위로없이 남겨진 나의 너여

더 이상 탄식의 나팔을 불지 마라

현세가 지옥인 때는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무자비한 세상, 지옥의 슬픔을 월경하기 위하여  

 

 

빵을 가진 남자                                        


먼 빛 속에서

출렁거리는 아침 바다로 오십니다.

창공을 흔들고 제 가슴을 치며

야생화 보다 풋풋하게 오시는


당신은

해저같이 캄캄한 제 영혼이

끝없이 다다를 역입니다.


인간이 결국

무덤이라는 둥근 빵을 얻기 위해 살듯

빵을 가진 마음처럼 둥그래져야 겠지요


빵속의 해와 강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끌어안은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무덤까지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키스, 키스, 키스                                      


떠도는 말이 부딪쳐 상처와 이별을 만들고

따뜻한 수증기로 스미면 마음의 키스가 되지

키스, 키스, 키스! 번역해서 뽀뽀는 얼마나 이쁜 말이니

삶이 아프지 않게 시원하게

말은 사려깊은 타월이 돼야지


매순간 모든 이로부터 버려질 쓰레기까지

뽀뽀하는 마음으로

"네 일은 잘 될 거야 네 가슴은 봄바다니까"

인사하는 바로 그것

삶이 꽃다발처럼 환한 시작이야  

 


내 혀의 타올로                                        


당신의 눈은 얼굴은

슬픔의 피빠는 노을

눈보라치는 정거장이야

당신을 삶는 상처의 휘발유

내 혀의 타올로 닦아줄께

나도 함께 흐느낄께 

 

병원으로 가는 길                                     

 

 사는 게 병원가는 길은 아닐까. 나든 가족이든 번갈아 가며 병원 찾는 길.

푸른 안개가 펄럭이는 밤. 생사의 갈림길에 선 당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

절한 기도밖에 없다. 뇌출혈을 멎게 해주시고, 새들이 떠메고 가는 아침을

보여주시고, 모든 후유증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맨살을 찢듯, 그대의 아픈 자리가 주는 우울과 공포. 몇 겹 파도를 일렁

며 덮쳐온다. 우리는 사랑보다 다툼이 더 많았고, 함께 가는 길이 꼭 끼

바지처럼 버겁고, 함께 있고 싶은 만큼 벗어나고 싶었다.


'사랑은 결심'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그대 손을 잡고 봄의 산맥을 오르

싶다. 그대 손에 연분홍 철쭉꽃이 피어오르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끼

며, 함께 추스릴 시간, 깨어나 부활할 시간에.

 

 당신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흰 풀뿌리 같은 목소리에 이끌려

비바람 속에서 내 발은 부푼다

비바람 속에서 당신을 찾아 떠난다

얼굴 한번 어루만지고 싶어

착한 마음 비치는 눈을 보고 싶어

멀리서 흰고래처럼 춤추는 당신

닿을 듯 닿지 않는 당신을


훔쳐만 보고 잠잠히 사라진다

 

 

삼십 삼 세의 가을                                     


삼십 삼 세란 무엇인가

아이 하나, 둘 유아원에 보내거나

미리 죽어 목화솜 같은 바람으로 떠돌거나

우울의 강둑을 거닐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달래거나

좀더 넓은 아파트

좀더 안정된 살림을 위해

고되고 답답한 나날을 장승처럼 견디는 것인가

 

돈을 모아 자유로울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로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성취와 만족은 얼마나 먼 등대인가

등대와 가을 태양을 보며 사무치는


나의 삼십 삼 세란

무엇에든 용감해지는 일이다

바람 속 장작불처럼 거친 외로움은

죽음의 공포쯤은 커피 마시듯 넘겨주는 일

 

지금껏 사랑했는가 무얼 제대로 사랑했는가

슬프다면 대신 울어주마

불쾌하다면 기분을 바꿔주마

손을 내밀어 情人들을 편안히 맞이하고

 

내 안의 깊은 산책길을 따라

잊고 지낸 것을 생각하는 일이다

간소하게 사는 매력과

초조하게 들린 시계소리가

얼마나 어여쁜 노래인가 느끼는 일이다

 

 

 가을빨래                                                

 

바다가 보이는 곳에

빨래를 널어두었다


셔츠가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겠지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가지

자신이 그리워하는 것을


기다리면 언젠가 그대가 다가오듯

가을을 그리워하니

어느새 낙엽이 떨어진다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나뽈레옹의 이 말은 10년 동안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송곳이었다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내 많은 실패를 돌아볼 때마다

송곳은 가차없이 찌르고 찔러왔다


모든 불행엔 충고의 송곳이 있다

자만치 말라는, 마음 낮춰 살라는 송곳

불행의 우물을 잘 들여다보라는 송곳

바닥까지 떨어져서

다시 솟아오르는 햇살의 송곳


송곳은 이제 지팡이처럼 내게 다가와

신들린 듯 거친 바다처럼 밀어간다

 

 

 초록말을 타고, 문득                                 

 

돌아본다

세월의 넝쿨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산

여전히 검다

산은 구겨진 땅에 욕된 얼굴들을

쏟아내고 흐린 빛을 깨문다

폐 속에 이끼를 뜯어내고

나는, 초록 말을 꺼내 탄다

하늘은 멀고 갈 길이 아득할수록

지상은 연한 환희로 가득 차 보인다

자주 늘어나는 목에선

우울의 가래가 튀어나온다

사람마다 지르는, 길고 축축한

비명에 뜨거워지는 철로변에서

얼마나 격렬히 끌어안아야 하나

이 죽음의 민둥산을


 술 마시기 좋은 방                                    

 

햇빛에 내어 말린 고급 속내의만큼

사랑도 우정도 바래더라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인가

속이 텅 비면 견디지 못해 마시는

술과 음악은 세월을 썩게 하는 정겨운 습기라

겨울비 내리는 밤 빌리 홀리데이와

바하보다 절실한 '혼자만의 사랑' 열한 번

'백학' 일곱 번 번갈아 들으며

마음의 지붕인 쓸쓸함을 위하여

식구와 뭇사람의 건강을 위하여

홀로 건배하는데 창밖 깊은 연못에서

거북이가 솟아올라

맥주 한상자 밀고 방으로 기어오더라

 

 혼자 사는 일                                           

 

일어설 수도 없이

마음은 가랑비처럼 부서져내린다

꿈도 희망도 없이

헤매던 맨발은

죽음 가까이 아주 가까이

저녁 강 따라 흘러간다

 

먼 창가 흰 등불 비쳐나면

환한 웃음 메아리치는

아늑한 집이 그리워


쓸쓸한 내 손 잡아줄

당신이 그리워

 

 그대는 혼자가 아니리라                             

 

그대 슬픔 한 드럼통 내가 받으리라

감미로울 때까지 마시리라 평화로운 우유가 되어

그대에게 흐르리라 또한 태풍같이 휘몰아쳐

그대 삼키는 고통의 식인종을 몰아내고

모든 먹고 사는 고뇌는 단순화시켜 게우리라

술에 찌든 그대 대신 내가 술마시고

기쁜 내 마음 안주로 놓으리라

그대 병든 살 병든 뼈 바람으로 소독하리라

추억의 금고에서 아픈 기억의 동전은 없애고 말리라

그대 가는 길과 길마다 길닦는 롤러가 되어

저녁이 내리면 그대 가슴의 시를 읊고

그대 죽이는 공포나 절망을 향한

테러리스트가 되리라 신성한 연장이 되어

희망의 폭동을 일으키리라

하느님이 그대의 희망봉일 수 있다면

물고기가 되어 교회를 헤엄쳐 가리라 험한 물결

뛰어넘으리라 간절히 축복을 빌리라

그대는 혼자가 아니리라

영원히 홀로치 않으리라

 

 

 뜻깊은 인생이라고 속삭여 줘                      

 

여기 한 여자가 무너지다

한시절을 지배한 젊음과 애인

가족과 삽시간에 헤어지다

상심의 덩굴손이 지붕을 뚫고

문 밖으로 사랑의 붉은 원피스가 달려가고

무엇 하나 되흘러오는 것 없이

이곳은 하염없이 빠져나가기만 하다

여기 한 여자가 무너진다

밤마다 대머리가 되는 여자

파산한 성찬대처럼 썰렁한 여자

춥고 무서운 여자 가엾은 여자

여기 한 여자가 무너지다

사랑한 애인이 울린 여자

모든 시간이 버린 여자

그의 삶을 가볍게 해 줘

자선냄비처럼 기쁘게 해 줘

죽음의 피서지로 떠날 때까지

푸른 우산 푸른 이불을 덮어 줘

그가 헛디딘 곳마다

격려의 십자가가 피어나게 해 줘

뜻깊은 인생이었다고 속삭여 줘

그는 나와 나의 너니까

내일의 끝이니까


 나의 시                                                  


나의 시는

오르는 물가를 잠재우지 못하고

병든 자의 위로도 못 되고

뜨거운 희망을 일깨우는 망치소리도 못 되고

네 상처의 주름살도 지우지 못하고

그래, 아무 힘도 못 되지

그래도 날 여류시인이라 부르진 마

여류가 뭐야? 이쑤시개야, 악세사리야?

여류는 화류란 말의 사촌 같으니

여자라는 울타리에 가두지 마 폄하하지 마

세상을 향해 품을 열어놓고

나는 돌아본다

뭣보다 진하게 느끼는 세기말을

도시의 우울과

슬픈 열정의 그림자를

사람의 욕망과 쓸쓸함을

솔직하게 비춰내고자

괴로움을 넘고자 내 노래는 출렁인다

거침없이 일렁이며 흘러가고자

사무치는 아리랑처럼 격정의 록처럼

푸른한 재즈, 블루스처럼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1 불타는 구두, 그 열정을 던져라 지루한 몸을 후회의 쓸개즙을 토하고 나날은 잉어떼가 춤추는 강을 부르고 세상을 더럽히는 차들이 구름이 되도록 드럼을 쳐라 슬픈 드럼을 쳐라 여자인 것이 싫은 오늘, 부엌과 립스틱과 우아한 옷이 귀찮고 몸도 귀찮았다 사랑이 텅 빈 추억의 골방은 비에 젖는다 비오고 허기지면 푸근할 내 사내 체온 속으로 가뭇없이 꺼지고 싶다는 공상뿐인 내가 싫다 충치 같은 먼 사내는 그만 빼버리죠 아프니깐 당신도 남자인 사실이 고달프구요 인간인 것이 참 힘든 오늘 함께 산짐승이나 되어 해지는 벌판을 누비면 좋겠지만 인간이라는 입장권을 가졌으니 지루한 제복을 넘어 닫힌 책 같은 도시와 사람 사이에서 그 모든 것 사이에서 응시하고 고뇌하고 꿈꾸며 전투적으로 치열하렵니다. 2 저는 고요히 불타는 구두를 신은 여자가 좋습니다 실존의 화면을 꽉 채우는 여자 뭔가 대륙적인 여자 전혜린, 바흐만, 섹스턴, 베아트리체 달, 아자니, <적 그리고 사랑이야기>의 레나올린, 제니스 조플린, 프리 다 칼로, 그리고 익명의 불타버린 여자... 묘지로 가기 전의 흐뭇한 식사죠 대리만족의 기쁨 덧없을지라도 각성을 줍니다. 그들의 운명 그들의 영화는 왜 비극으로 끝나나요 당신은 인생께 뭘 기대하나요 지구폭탄을 위해 뭘 하시나요 제가 그리운 분 손 들어보세요 파리채만 손 드는군요 당당하고 기품있는 신한국여성으로 떠나기 전에 한계령을 따라 부릅니다 파스처럼 쑤시는 브래지어를 벗고 빈몸뚱이 저를 그립니다 자유로운 영혼과의 상봉이 그리우니까요 그래고 지겹게 믿고 희망하는 것은 무얼까요 <사랑은 죽음과 하나>를 씁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있을 때 비로소 나도 존재합니다 그것은 빨간 바위에서 뛰어 내리고 싶고 맹목적인 충동이겠죠 내가 너의 뺨을 만지면 나를 살게 하는 힘 서로를 잃지 않으려고 깨어있게 하는 힘 그래, 잃는다는 것은 죽음만큼 견디기 힘든 것 삶은 지겹고 홀로 괴롭고 잃는다는 것을 견디는 일 못 견디는 자, 진흙과 흰꽃을 먹으며 바다로 걸어가고 남은 자는 그가 남긴 가장 정겹고 슬픈 그림자를 안고 한없이 무너지는 바닷가를 배회하며 흘러갑니다. 불타는 구두가 싸늘한 눈보라가 되도록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1994' 신현림 음악, Painful Love / Oystein Sev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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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

인애란 러브스케치

가슴 속 뜨거운 정이란게 
이런 걸까요.
잠들고 지친 기운을 되살아나게 하는것.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갓 구운 보리 빵처럼
보들 보들하게 만드는거...
인애란 러브스케치

마침 제 안부를 묻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바닷가에서 받는 전화는 더 감동적입니다.
"고마워요,아버지."
인애란 러브스케치

나 자신은 
나를 사랑하고 또한 
내가 사랑하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 랄랄라, 시는 시시하지 않으리


이 가을에 절절하게 다가오는 사랑의 시와 사랑에 목맨 시인들
데이비드 보위부터 신동엽까지 쓸쓸함을 견디게 하는 노래여
 
                                            ▣ 신현림/ 시인
 
 
어떤 이에겐 대수롭지 않은 가을바람이 다른 이에겐 절절하게 와 닿는다.
어떤 이에게 대수롭지 않은 노래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절절히 와 닿은 노래였다.
지금 내 방식으로 해석한 노랫가사는 한 편의 시로 다가온다.

좀더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이 노래가 시는 아니라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가슴을 울렁거리게끔 문학적인 향기가 조금이라도 배여 있으면 시로 생각한다.

그리고 시는 노래로 불려질 때 더욱 의미 있으므로. 몸 밖으로 거친 바람 소리가 흐르고, 마음을 휘감는 노래가 조금씩 사무쳐온다.

수증기처럼 젖어드는 슬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데이비드 보위의 와일드 이즈 더 윈드>. 나를 사랑해주세요./ 나로 하여금 당신과 함께/ 멀리 날아가게 해주세요./ 당신과 날아가고 싶은데/ 사랑은 바람과 같은 것이죠./ 그 바람은 거칩니다.

/ 좀더 나를 애무해주고/ 나의 갈망을 채워주세요./ 그 바람이 당신의 심장으로 날아들게 해주세요./ 바람이 거칩니다/ 당신이 나를 만집니다 만돌린 소리를 듣습니다/ 당신의 키스로 나의 삶은 시작됩니다.
/ 당신은 나에게 봄입니다.
/ 나에게 모든 것입니다.
/ 당신은 모르시나요./ 당신은 삶 그 자체라구요./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 나무에 나뭇잎이 매달린 것처럼./ 나에게 다가오세요. 나에게서 떠나지 마세요./ 우리는 바람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죠/ 바람이 거칠어요. 봄으로 오는 당신. 스스로에게 모든 것인 당신은 언제나 누구나 꿈꾸는 대상일지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도 사랑이란 접어둘 수 없는 그리움일 텐데, 사랑의 대상을 만나기도 힘들지만 오직 사랑만을 열망하기엔 삶이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이런 간절함이 밴 노래를 듣고 천천히 노랫말을 헤아리게 되면 가슴이 벅차도록 격정이 몰려온다.
이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기 생긴 대로 사랑하면 된다 펑크 록의 개척자들이자 내가 시인이라 생각하는 이기 팝과 루리드. 데이비드 보위는 그들과 견줄 새로운 생명력을 갖기 위해 실험적인 음반들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한 영국 가수였다.
그가 부른 위의 노래는 실험성보다 대중적인 친밀감이 큰 작품이다.

팝의 세계에서의 시적 감성과 문학 속의 시적 감성이 어떻게 다른지 그 미묘하고 절대적인 차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세상의 시를 살펴보겠다.

특히 몹시 가을을 타는 사람들에게 그리운 시집과 시들은 뭐가 있을까. 그래도 내겐 랭보와 보들레르, 파블로 네루다, 김소월과 백석, 김수영과 신동엽 등의 시들을 꼽고 싶은데, 여기선 다 소개해드릴 수 없음이 아쉽다.

나는 당신에게 이 뿌리 젖은 바다의 가을을 선물받았소 포도와 같은 안개와 야생의 우아한 태양도 당신이 준 것이오 모든 고통이 잊혀지는 이 말없는 상자도 당신이 내게 준 선물이오 고통을 잊고 당신의 이마에는 즐거움의 꽃이 피어나지 이 모든 행복은 당신이 내게 준 것이오 이렇게 파블로 네루다의 시 ‘가을의 유서’를 읽다 보면 유서를 쓰듯이 절절하게 온 마음을 다해야 사랑임을 새삼 깨닫는다.

잉크가 아닌 피로 쓰인 시라는 네루다의 시를 읽다 보면 웬만한 시가 눈에 안 들어온다.
스케일 면에서나 상상력과 감성의 크기가 신적인 것과 연결된 것만 같다.

거대한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그의 시. 숭엄한 삶과 사랑 앞에 인간의 기품이나 품위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요즘 내 생활의 콘셉트가 ‘기품 있게, 품위 있게’란 대목이어선지 모르나 아주 깊은 혼의 골짜기에서 길어올린 듯이 기품 있는 영혼의 시. 언제나 열렬히 압도해온다.

아아, 불을 퍼뜨리는 카아네이션의 화살이여, 나는 그대를 소름의 장미나 토파즈처럼은 사랑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무언가 어슴프레한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남몰래, 그림자의 영혼의 갈림길에서 그대를 사랑한다 꽃을 피우지 않고 그 꽃의 빛을 몸 안에 숨기고 있는 나무와 같은 그대를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그대의 사랑 덕분에 나의 몸 안에서는 땅 속에서 떠오른 짙은 향기가 아련히 숨쉰다 왜, 언제, 어디인지 모른 채 그대를 사랑한다, 아무런 의문도, 오만도 없이 주저 없이 그대를 사랑한다 이 시에서 “사람들이 무언가 어슴프레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란 시귀는 사랑의 핵심으로 보인다.

다 알면 뻔하고 심드렁해진다.

연막탄이 터져 연기가 다 사라지기 전 아련한 상태까지 사랑의 신비가 아닐까. 솔직하게 사랑하되 다 보여주지 말 것. ’의문도, 오만도 없이 주저 없이‘ 사랑하되 매력을 잃지 말 것. 이렇게 사랑에 대해 아는 게 많은 것처럼 보이는 자가 실전에 약할 수 있다.

이도 저도 머리가 아프다 싶으면 자기 생긴대로 사랑하면 된다.

“다른 방법으로 사랑할 줄 모르므로.” 서정시인 신동엽 네루다는 스무살 때, 슬픈 사랑의 시, 버림받은 남자의 노래인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를 썼다.

그로부터 30년 지난 뒤에 쓴 사랑의 소네트>. 위 시는 그 소네트 중의 한 편으로 네루다 초기의 육감적이고 열정적인 사랑과는 달리 짙은 향기가 아련히 숨쉬는 사랑을 찬미했다.

1904년 칠레에서 태어나 솟구쳐오르는 격정과 폭발적인 상상력으로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꿈과 현실을 그려 노벨문학상을 탔다.

가난하게 살았고 매우 서민적인 분위기에서 사춘기를 보냈으며 어른이 되어 도시의 비인간화를 뼛속 깊이 체험한 그의 감각과 감성의 뿌리가 민중에 내리뻗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랑의 대상은 그의 연인이기도 하지만 조국이나, 민중, 대자연이기도 하다.

아주 오랫동안 내 방엔 네루다가 그의 세 번째 부인 마틸데 우르티아와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르티아와 네루다가 포옹을 한 채 서로 응시하는 표정엔 끈끈하고 신비스런 애정이 느껴져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의 신동엽 시인의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엔 내가 사랑하는 시들이 있다.

다음 시 한 수가 이 가을에 친구처럼 동병상련이 될지 모른다.

들길에 떠가는 담배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머릴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다 한 / 이 안창에의 속상한/ 드레박질이여//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매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다 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고 쓴 것처럼 마음 아프게 한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슬픔이 깃을 치고, 아무 욕심도 없이 세상을 떠나겠다는 마음이 비단결처럼 스치고 간다.

믿기 힘들 정도로 아주 가까이 느껴지는 시다.
누구나 공감할 만큼 비슷한 감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가라’란 시에서 보여주는 정의롭고 민족적이고 의분에 넘치는 시인의 모습이 아니다.
서정에 가득 찬 소시민의 초상이 엿보여 시가 더 가깝다.

랭보의 열정, 베를렌의 우수 그러면 가을을 타는 사람들이 랭보의 시 ‘고아들을 위한 선물’을 보면 자신의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반은 줄어들 것이다.

고아원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어가는 세상이라 눈여겨보고 버려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의 북풍은 문간을 두드리며, 방 안에 음산한 바람을 가득히 불어넣는다.
한 차례 휘둘러보기만 하여도 무엇이 부족한지는 누구나 알 수 있다.
이곳에 있는 두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사랑 가득한 미소로, 자랑스런 눈빛으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중략) 어린이들 몸 위에 이불을 자상하게 덮어주는 일도 잊었단 말인가. “미안하다!”라고 한마디 말한 다음, 떠나기 전에, 새벽녘의 추위로 어린아이들이 감기 들지 않도록 문을 꼭꼭 닫아주어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머니의 꿈, 그것보다 더 따뜻한 침구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새들,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듯이 손발이 얼어버린 어린아이들은, 아름다운 환영으로 가득 찬 감미로운 꿈을 장만한다.

1854년 벨기에 국경 근처 아르덴 지방 샤를빌에서 태어난 아르투르 랭보.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조숙했던 천재로서, 오늘날 남아 있는 작품들은 유년 시절의 습작까지 포함해서 모두 15살부터 20살 사이에 쓴 것들이다.

중학교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평범하고 비참했던 가정과 시골생활에 대한 반항심에서 전쟁의 와중에서도 문학과 혁명에 매혹됐다.
그리고 세번이나 가출했던 경험이 부조리한 세상과 모순투성이의 삶을 눈뜨게 했을 것이다.

랭보의 시를 처음 인정한 사람은 당대 시단의 주류에 속한 폴 베를렌였다.
그의 초청으로 온 파리에서 10년 연상인 그와 동성애로 발전해 베를렌은 신혼의 아내에게마저 등돌리고 랭보와 방랑생활을 하였다.
서로가 약물과 술로 찌들게 되면서 랭보가 결별 선언을 하자 분노한 베를렌이 총기를 들었다.

랭보는 가벼운 부상을 당하고 베를렌은 투옥돼 관계가 끝나게 된 에피소드는 이미 많이 알려졌다.

내 알 길 없어라/ 쓰라린 내 마음/ 불안하고 미친 듯한 날갯짓으로 바다 위를 나는 까닭을 위 시처럼 베를렌의 시들은 우수에 차고, 섬세한 마음의 떨림이 무척 매혹적이다.

그가 쓴 시들은 자서전적인 메아리였지만, 랭보의 시는 생생하고 역동적이고 어떤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그 자신을 넘어선다.

짓눌렸던 유년기와 편집증이나 정서불안, 동성애나 힌두교, 신비주의나 마술적인 요소들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매혹한다.

“동방의 빛이 온통 주위를 둘러싸는 나의 장엄한 거처에서 나는 나의 거대한 작품을 완성하고 나의 영광스런 은둔생활을 보냈다”는 그의 글도 참 마음을 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세계문화기행을 통해 본 랭보. 그가 왜 스무살 이후에 시를 쓰지 않았느냐고 랭보 연구자에게 묻자, 그 대답은 무척 기운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프랑스 문단의 주류가 아니었기에 자포자기의 마음이었을 거란 대답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런 경계선은 변하지 않나 보다.
어쨌든 37살에 요절한 랭보는 세계 문학사에 놀라운 감수성과 경이로운 독창성으로 거대한 향기를 남겼다.

무심하게 가을 보내기 나는 떠났지. 다 헤진 양복을 걸치고 그 찢어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시의 신이여! 나는 하늘 아래에 사는 당신의 충성스러운 신하. 오, 랄랄라. 내 얼마나 멋진 사랑을 꿈꾸었으리. 단벌 바지에 구멍이 났지 꼬마 몽상가라 길에서 운율을 훑었지. 내 주막은 대웅좌 운율에 있었어 하늘에선 내 별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길가에 앉아 나는 들었지. 아름다운 9월의 멋진 저녁소리를 이마엔 이슬방울 떨어졌어 힘나는 술같이. 환상적인 그림자 속에서 운을 맞추며 가슴 가까이 발을 대고 나도 리라 타듯 내 터진 구두의 구두끈을 잡아다녔지! 자정이 넘은 이 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 좋은 밤. 내가 좋아하는 ‘나의 방랑생활’이란 시를 조그많게 읊조려본다.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무심하게 이번 가을을 보내리라 생각하면서. 세월이란 때로 얼마나 잔혹하고 허망한가. 그나마 그 허망을 꿰뚫고 나가는 시들이 있어 이 쓸쓸한 가을이 견딜 만한 것이다.

신현림                                                                                                 

 

1961년 경기 의왕 출생. 아주대 국문과 졸업.

1990년 「현대시학」에 "초록말을 타고 문득" 외 9편을 발표하면서 등단

시인이자 사진가로상명대 디자인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풍요로운 우정, 따뜻한 애정을 꿈꾸며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는 그녀는

상상력과 서정이 흐르는 만화, 영화 보기, 음악 감상을 즐긴다.

저서로는 시집으로「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세계사 1994)「세기말 블루스」(창작과 비평사 1996)「해질녘에 아픈 사람」과

에세이집으로「나의 아름다운 창」「희망의 누드」「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시간창고로 가는 길」「싱글맘스토리,

동시집「초코파이 자전거」등이 있다.

포토에세이집과 함께 첫사진전「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을 열었다.

2007년 6월부터는 상상마당(http://www.sangsangmadang.com)에서 '향기로운 숨소리' 연재하며 상상마당 회원들에게 풍요로운 정서와 삶의 활력을 주고 있다.

 

 

 

감성 나이 서른 다섯, 시인 신현림을 만나다

 

 

책·음반가게 '이음'서 독자와의 만남 가져

 

 이명옥 (mmsarah)
▲ 신현림 시인과 함께 하는 독자와의 대화
ⓒ 박성현
지난해 말 <싱글맘 스토리>를 출간한 신현림(45) 시인이 지난 11일 서울 책·음반가게 '이음'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솔직해서 더 당당한 싱글맘 신현림


'싱글맘 스토리'로 많은 여성들의 호응을 얻은 시인 신현림은 1961년생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감성 나이 서른다섯으로 머물고 싶다는 말하는 신 시인은 시, 사진, 수필, 그림 등 다방면에 능숙한 전방위 작가다. 그녀는 치열하게 살아낸 20대를 자양분 삼아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등의 시집과 <싱글맘 스토리> <우리에게도 따뜻한 날이 올까> 등 작품을 펴냈다. / 이명옥
행사는 오후 6시 다음 까페의 '신현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신사사) 회원들, 네이버 공지를 보고 참석한 독자들 그리고 이음의 단골 독자와 서포터스로 이루어진 독자 50여 명과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는 조병준 시인이 맡았다. 조 시인은 작품의 진정한 주인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오늘의 모임은 '저자와의 대화'가 아니고 '독자와의 대화'"라면서 "책은 작가가 쓰지만 그 책을 선별해 사고 읽고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기에 진정한 주인은 독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작가가 독자를 만나 독자들이 작품을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시인은 "보조자인 사회자를 독재자로 만들지 말고 자발적으로 시인 신현림에 대해 궁금한 점은 무엇이든 질문해 달라"고 주문했다.

신현림씨는 최근 겪은 동창 두 명의 죽음, 두어 번의 접촉 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죽음과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며 "이제 어느덧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나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인생살이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이다'이라는 어느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고 부연했다.

신씨는 자신이 쓴 초기 시에 죽음에 대한 주제가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 당시 쓴 '죽음'은 삶에 대한 열망의 변형이라고. 그는 "시와 죽음은 삶의 방향 설정을 위한 진지한 모색일 수 있다"며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신현림 시인과 사회자 조병준 시인
ⓒ 박성현
자신이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선 '영혼의 정화'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때 만큼은 삶 자체가 달라지고 자신이 착해진다는 것. 이어 "20대의 절망양(孃)과 좌절군(君)을 30대 초반에 시(詩)라는 희망으로 꽃피워 자존감을 회복하고 상처를 자가 치유하였다"는 문학적 표현으로 시를 시작한 당시를 묘사했다.

네 번의 입시 경험, 한 번의 유급 그리고 이혼

▲ '신현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신사사) 운영자 홍진영씨가 질문을 하고 있다.
ⓒ 이명옥
신 시인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은 '신사사' 운영자인 홍진영씨가 맡았다. 홍씨는 '작업을 하다 안 될 때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신 시인은 글이 잘 안 써질 땐 자다 일어나기, 음악 듣기, 춤추기, 비디오보기,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보기 등으로 영감을 끌어내려 한다고 대답했다.

이어 신 시인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처절했던 삶을 이야기했다. 원하던 미대 탈락, 4수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 유급, 그리고 이혼 등. 그는 자신의 처지를 남들과 비교하면서 잘 나가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 때 이후 느낀 좌절로 오랜 불면증에 시달렸고, 자학과 절망의 20대를 보냈다고.

하지만 그는 "20대의 남다른 좌절. 절망, 열등감을 재료삼아 시를 써 등단을 했고, 그런 창작 활동이 바로 자가 치유와 자신감 회복의 시작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 싱글맘 신현림의 딸 서윤
ⓒ 박성현
신 시인이 시를 쓰는 방식은 의무적으로 글쓰기. 영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 그 사건을 시로 쓰고 한 달에 4~5편씩 무조건 습작을 한단다. 그는 서른에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3일 정도 근무하면서 최소한의 생계만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은 시에 미쳐서 살았다. 그때 그를 곁에서 본 친구까지 전문 글쟁이가 되었다니 그가 친구 진로를 결정하는데 일조를 한 셈이다.

▲ 진해에서 올라온 사사사 회원 최미진씨
ⓒ 박성현
경남 진해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최미진씨는 "대학 4학년인 10년 전 <세기말 블루스>를 처음 읽었는데, 지난 달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신현림 시인을 만나면서 인연이란 것을 생각해 보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신 시인은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다 읽고 나면 기쁨을 남겨주어 확실한 자기 치유가 되게 만든다"고 호평을 한 뒤, "만일 20대처럼 무모한 사랑이 오면 온몸을 바쳐 사랑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신 작가는 "사랑에 나이는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면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밀려든다면 사랑하겠다. 기회가 왔을 때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 시낭송 중인 연극배우 정찬교
ⓒ 박성현
또한 무성영화 변사며 연극배우인 정찬교씨는 전문 낭송가를 능가하는 솜씨로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라는 시를 낭송했다.

▲ 플라맹꼬 노래를 부르는 양순정씨
ⓒ 이명옥
뒤이어 양순정씨가 홍성남씨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플라맹꼬춤을 추고 스페인어 노래를 불러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신현림 시인은 "'사과나무'라는 영상물이 곧 나오며 전시, 동시집, 바다, 산 등 자연과 글이 어우러진 일련의 작품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창작이란 그릇, 기법이나 방법이나 소재 형식은 늘 새로워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다"며 "그래도 열심히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마무리 말을 했다.

이음 대표 한상준씨와 일문일답

- 서점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이제 4개월 되었다. 이곳은 책만이 아니라 음악과 책이 있는 문화적 공간이다. 대학로에 책과 음악이 돌아오게 만들고 싶어서 서점을 열었다"

- 이런 멋진 행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이번이 2번째다. 대형 서점과 다른 차별화되는 만남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 첫 번째 모임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 이런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 계획인가?
"한 달에 한 번 하는 식의 정형화된 프로그램은 아니다. 이슈가 될 만한 사안이 생기거나 독자 분들이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하는 작가가 있으면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다. 다만 행사 방법에 대해선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 이명옥
2006-02-13 14:10 ⓒ 2007

 

 

신현림의 싱글맘 스토리
신현림 지음/ 1만원 / 휴먼앤북스

지금 우리 사회는 이혼율이 증가하고 미혼모가 늘어나는 등,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붕괴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싱글맘 가구는 총 92만 3천 가구이며, 2010년에는 무려 140만 가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이들은 대체로 월 소득 72만 원 안팎의 저소득층이며,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과 자녀들이 당하는 따돌림 등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혼으로 인한 싱글맘을 바라보는 사회의 냉담한 시선은 그렇잖아도 생계의 위협을 느끼는 그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싱글맘 또는 싱글대디는 이처럼 우리 사회의 타자로서 소외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작가 신현림은 스스로 싱글맘이기를 선언한다. 그녀의 애환은 모든 싱글맘의 애환이며, 그녀의 바람은 모든 싱글맘의 바람이다. 그녀는 모든 싱글맘들이 삶 앞에서 자유롭고 당당해지기를 소원하며, 자신의 글이 그들의 고달픔 삶에 한 줄기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시인 신현림의 치열한 삶에서 탄생한 글로, 암울한 절망의 나날을 보석 같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담금질한 결과물이다. 그 결과 그녀의 쓰디쓴 절망은 생의 창조적 에너지가 되어, 인생에 대한 통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한 권의 책으로 탄생되었다.

이 글에서 그녀는 수많은 자기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바탕에 힘차게 흐르고 있는 것은 삶에 대한 긍정, 그리고 진한 휴머니즘이다. 예전에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던 불꽃과도 같은 도발적 시어는, 유머와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생을 관조하는 여유로운 문장들로 더욱 풍요로워졌다. 책의 내용은 크게 묶어 다음 4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좌절과 희망의 이야기. 둘째, 불확실한 삶을 헤치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 셋째, 결혼과 이혼, 가족 제도가 남성중심사회에서 던지는 일언, 넷째, 싱글맘뿐 아니라 모든 싱글들의 숙명인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물론 이 4가지 주제 이외에도 우정이라든가 부모님에 대한 추억 등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하나의 글 안에 여러 주제가 담겨 있는 경우도 많지만, 크게 이 4가지 주제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녀만의 아포리즘. 고통과 시련을 통해 얻은 깊은 성찰과 사색의 시적 아포리즘이 이 책의 품격을 더욱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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