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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4기(三顚四起), 나의 국궁(國弓) 입단기(入段記)
나는 지금 이 기쁜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2006년 9월 3일 오전 11시, 대구 관덕정(觀德亭).
나는 오늘 드디어 마음 속 깊이 열망해 오던 우리 전통무술 국궁의
자랑스러운 유단자의 반열에 올라서는 입단 시험에 합격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활 수련은 내가 사회생활을 접은 뒤인 늦은 나이에 시작되었다.
나는 올해로 66세, 속칭 지공파(지하철 공짜로 타는 파)이다.
염색을 하지 않아 늘 흰 머리가 유난히 바람에 흩날리는 노인의 모습이다.
젊은이들 틈에 끼어 지난 2년 동안 나는 국궁의 유단자가 되기 위해 입단대회에 참가하였지만
내가 유단자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었다.
세 번의 낙방 끝에 네 번 만에 합격의 기쁨을 안게 되었다.
첫 번째 도전하던 날이 생각난다.
함께 가자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멋모르고 나선 길이었다.
활을 갓 배우는 신사의 입장이었지만 각궁과 죽시를 메고 대회에 임했었다.
입단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필요한 시수는 9순 45시를 내어서 25중을 하여야 한다.
그날 나는 9순의 마지막 시를 들고 혼자 사대에 섰었다.
44시를 내어 24중을 해 놓고 마지막 시 한대에 운명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30여명의 응시자 중에서 합격할 사람은 합격하고 불합격할 사람은 불합격이 다 결정 나고
나 혼자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 남은 한 시(矢)가 관중이 되면 합격이고 불이면 불합격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 있었다.
모든 사람이 내 뒤에 서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며 가슴 조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한 시는 빗나가고 나는 일시천금(一矢千金)이라는 교훈을 가슴 속에 새기면서
뒷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시간을 가졌었다.
그로부터 두 번의 실패가 더 이어졌다.
금년 들어 봄에 나갔던 세 번째 도전했던 때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당시 나는 C형간염의 치료를 위해 인터페론 주사를 맞고 있던 중이었다.
약 기운으로 온 몸의 근육은 엄청난 무력증에 시달리고 있던 무렵이다.
그 때도 오늘처럼 관덕정에서 입승단대회가 행해졌었다.
나와 함께 수련하던 우리 정(亭)의 젊은이들 서 너 명과 함께 참가했었다.
첫 4순까지 나는 아주 순조로운 출발을 하고 있었다.
협회 전무를 비롯하여 모두가 이번은 합격할 것이라고 격려를 해 주었었다.
그런데 온 몸의 힘이 빠지면서 화살은 제 멋대로 날기 시작하고
나는 또다시 고배를 들고 말았다.
나보다 늦게 활을 배우기 시작한 젊은이들은 다 합격되었다.
나이가 든 노인의 몸으로 그것도 사회생활 내내 CEO 로서 생활 해 왔던 나로서
남들 앞에 서서 시험을 친다는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세 번씩이나 낙방하고 나니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사람들 대하기가 참 부끄러웠다.
올 봄 나는 경상남도 의령의 홍의정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단체전에 참가했었을 때 나는 5시중 한 시도 못 맞추는 불을 내고 말았었다.
그 때부터 나는 갑자기 나의 활이 평소 같지 않게 이리저리 마음대로 날기 시작하여
한동안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
나도 모르는 활 병이 생겼던 것이다.
고심 끝에 찾아 낸 내 활 병의 원인은
화살을 당기는 깍지 손이 제대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병을 고치기 위해 나름대로 참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깍지 손을 고정시키는 법을 터득하면서
활 공부의 분수령이라 할 쌍분(雙分)의 묘(妙)를 얻게 되고
활 쏘임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 시작하게 되었다.
금년 여름 그 지독한 더위 속에서
하루도 걸르지 않고 수련했던 하계훈련은
내 활공부가 한단계 진화한 제2기를 맞은 게기가 된 때였다고 할 수 있다.
동계훈련은 체력의 강화면에서 도움이 된다면
하계훈련은 감각의 강화가 이루어지는 특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실 두 번의 입단실패는 오히려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했었다.
활 쏘임에 대한 자신이랄까 하여튼 어떤 신념이 형성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번째 도전을 시도할 때는 어느 정도 자신이 서기 시작한 때여서
그 실패가 더 마음 아팠었다.
이번 네 번째 도전에서는 어느 때보다 자신 있게 대회에 임했었다.
3, 1, 3, 3. 이렇게 4순까지는 불안한 출발이었다.
2, 4, 4 일곱 번 째 순까지 나는 20중을 하여 나머지 두 순에 5중만 하면 합격이 되는
조금은 낙관적 입장에 있었다.
그런데 8번째 순(巡)에 나는 1중밖에 못하여 마지막 9순에서 4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금은 어려운 코너에 몰리고 있었다.
이번 대구지구 입승단대회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7명이다.
다섯 명은 입단심사를 보고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2단 다른 한 사람은 3단에 도전하고 있었다.
8순 째 이미 네 명은 합격이 되었고 한 사람은 시 부족으로 불합격이 결정 되었다.
9순 째 두 명이 사대에 남아 서 있었다.
나는 4중을 하여야 하고 내 옆 사우는 1중만 하면 합격이다.
9순에 들어가기 전, 내 주위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여유 있던 8순에 1중밖에 못한 것으로 보아 긴장된 가운데 나머지 4시를 모두 관중시킨다는 것이
사실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9순의 첫 시를 맞추자 내 옆에 있던 사우도 관중이 되어 그 사람은 합격이 되었다.
나 혼자 남았다.
순간, 마음이 명경지수처럼 맑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조용히 과녁을 응시하면서 거궁하고 살을 내었다.
관중, 관중, 관중.
마치 기적처럼 마지막 한 시 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25중, 합격의 부자가 울렸다.
내가 첫 번째 도전에서 마지막 한 시의 실수로 입단에 실패했었다.
그런데 네 번째 도전에서 겨우 마지막 한 시를 남겨두고 성공을 했다.
정말 일시천금(一矢千金)이란 교훈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모두가 내게로 달려 와 축하의 악수세례를 퍼부었다.
참 오랜만에 아무거리낌 없는 축하를 받아보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늘 나는 내 인생에서 참 위대한 전기를 마련한 것 같아 정말 행복하다.
긴 인생의 여정에서 내가 내 힘으로 세운 또 하나의 금자탑이 빛나고 있다.
오늘 나는,
5년 뒤에 내가 명궁이 될 수 있는 아주 귀한 터를 장만한 것이다.
나는 나의 환갑잔치는 하지 않았지만,
내 칠순잔치는 활을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나의 명궁잔치로 대신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20060903.和圓)
100몰기(沒技), 이제 활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몰기(沒技)는 활을 쏘는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국궁에서는 활을 내는 이가 시합이건 연습이건 간에
한 순(巡)에 반드시 다섯 발의 화살을 지니고 사대에 나가게 되어 있다.
지니고 나간 화살 다섯 대 모두를 과녁에 명중시키는 것을 몰기(沒技)라고 한다.
보통 대회에서는 3순 경기를 하는데
그 때 지니고 나간 15시(矢) 전부를 관중시키는 것을 15시 15중했다고 하며
이를 “꿈의 시수”라고 하여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내가 첫 몰기를 한 것은 2004년 3월 8일이다.
그로부터 약 2년 반 뒤인 2006년 9월 12일 100번째 몰기를 했다.
돌아보니 내 생애에 있어서 첫 100몰기를 하는 동안은
참 많은 의미를 지닌 귀한 시간들이고 기록인 것 같다.
활 꾼이 활터에 나와 사대에 서서 첫 몰기를 하면 접장이란 칭호를 받게 되고
전국대회에 참가하는 활 꾼으로서 공식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첫 몰기는 혼자해서는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반듯이 선임 접장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몰기를 해야 정식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첫 몰기를 한 사람에게는 많은 이들의 축하가 주어진다.
때문에 첫 몰기를 한 사람은 선배들에게 한턱을 내면서 정중한 인사를 해야 한다.
내가 첫 몰기를 하던 날,
“2004. 3. 8. 오후3시 7분. 박 중보 사우 몰기”
라고 칠판에 공시되었다.
나는 닭찜 두 마리, 닭똥집 튀김 하나, 막걸리 5병, 콜라 3병
합계 39,000원 어치로 소연을 베풀고 선배 사우들에게 인사를 드렸었다.
내가 나가는 “八公亭”에서는 나에게 “몰기기념패”와 함께
내 이름과 정을 표시하는 수가 놓인 아름다운 “궁대(弓袋)”를 기념으로 주었다.
나는 첫 몰기를 개량 궁으로 시작하였지만,
곧 우리 전통의 활인 각궁(角弓)과 죽시(竹矢)로 시작하였다.
첫해인 2004년에 나는 27번의 몰기를 했었다.
둘째해인 2005년에는 22번 밖에 몰기를 하지 못하였었다.
2005년은 6월에서 9월까지는 한 개의 몰기도 못하는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었지만,
경남 하동에 있는 하상정에서 개최된 전국대회에서 전국대회 공식 첫 몰기를 기록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금년, 2006년에 들어와서 49호에서 100호까지 몰기를 했고
아직 3개월이 더 남았으니 년 내에 몇 번의 몰기를 더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금년 9월은 나의 활 역사에서 꼭 기억될 것 같다.
9월 3일에는 입단시험에 합격하여 유단자가 되었으며,
9월 12일에는 대망의 100호 몰기를 하였으니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지난 6월 1일 13연중을 하고 한시를 건너 막시를 관중하여
14중을 한 것이 내 최고 기록인데,
아직 꿈의 시수인 15시 15중을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다.
지난겨울까지 나는 고집스럽게 각궁과 죽시에 매달렸었다.
그런데 정말 활을 다시 만나려는 마음에서 금년 봄부터 다시 개량궁을 잡고
그 근본적 쏘임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몰기라고 다 몰기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젊어서 합기도를 수련하여 4단까지 올라 갔었다.
합기도 수련에서 첫 번째 공부는 손목꺾기 인데,
초심자인 하얀 백띠가 하는 손목꺾기와 검은 때를 맨 유단자가 하는 손목꺾기는 수는 같아보여도 그 위력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활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초보시절 그저 단순히 근력으로만 쏘던 때와
유단자가 되어 기력으로 쏘는 지금의 활에 대한 느낌이나 맛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마음의 자세만 하여도 그렇다.
그저 과녁만 바라보고 어떻게든 과녁에 명중시키는 것만이 최고의 목표여서
온통 마음을 과녁에 빼앗겨 버렸던 초보시절과,
밖으로 빼앗겼던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들이고
내 자신의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기를 운용해 나가는 지금과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활을 내는 행위가 단순한 운동에서부터 점차 명상의 경지로
한 단계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내는 살이 과연 과녁까지 갈 수 있을까?
초보시절에는 늘 내가 미덥지를 못하였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 없으니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깊게 형성되어 있다.
나 자신을 믿고 무심의 상태가 되어,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자연과 하나 되는 쏘임 앞에서
그저 평화로움이 온 몸을 지배한다.
옛 말씀에 順天者는 興하고 逆天者는 亡이라고 했다.
나 자신에 대한 불안이 깃들 때는 팔에 힘도 더 들어가고
쓸데없는 동작이 가미되어 온 몸에 그저 아픔이 가득했었다.
그러나 물이 흐르듯 순리에 따라 기운이 흐르도록 활을 내기 시작하고부터는
전신을 감도는 편안함이 참 귀하다.
활을 내는 이의 심안이 열린다함은 무슨 뜻일까?
선인들은 반구제기(反求諸己)를 깊이 가르쳐 왔다.
잘하고 못하는 모든 것은 자기 안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심안(心眼)을 여는 첫 단계라고 말하고 싶다.
행위 하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며 제어 할 수 만 있다면,
몰기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00호 몰기를 하면서 스스로 돌아보니,
이제 활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20060912, 和圓)
첫 입상, 신라의 고도 慶州 호림정(虎林亭)에서
첫 입상, 신라의 고도 慶州 호림정(虎林亭)에서
올 가을 활은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해 주는 것 같아 정말 기쁘다.
지난 9월에는 활 꾼으로는 꼭 거처야 하는 입단의 꿈을 이루었고,
10월에는 공식대회 첫 입상의 영예를 누리는 기쁨을 안겨 주었다.
2006년 10월 14, 15 양일간 개최된
제34회 신라문화제 민속경연부문 영남지역남녀궁도대회에서
나는 노년부 2위에 올라 수상의 영광을 한 가슴 가득 안았다.
내가 활을 쏘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공식대회에서 입상의 영예를 누린 것이다.
전날 내가 활을 쏘는 팔공정의 단체전 선수로 참가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사양했었다.
젊은 선수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지만,
나이든 사람이 자칫 누를 끼칠까하는 염려와 더불어
기량이 우수한 많은 선수들의 앞을 서기가 아직은 조금 민망함 때문이었다.
개인전 참가를 위해 아침 8시 50분 혼자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집을 나선지 5분이 채 안되어 대구수성인터체인지를 지나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차창에 비치는 가을 풍경이 이날따라 참 정겹게 다가왔다.
편도 4차선의 고속도로는 영천을 지나면서 2차선으로 줄어들었지만,
가는 길은 아주 시원하게 뚫려 있어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에 조금은 마음이 들뜨려는 것을 달래며 달렸다.
대회가 개최되는 호림정은 경주황성공원 안에 있는 훌륭한 활터다.
호림정은 신라의 고도답게 우람한 고목으로 둘러 싸여 있는 공원 안에 있다.
한옥으로 지어진 정사 옆에는 이곳을 다녀간 선정자나 이름 있는 이들을
기리는 선정비 10여개가 지키고 서 있어 더욱 역사의 흔적을 일러주는 곳이다.
오전10시 가까이 도착하니 이미 활터에는 궁사들이 쏘는 시위소리가 힘차게 울리고 있었다.
원 작대를 찾아보니 나는 10대에 속해 있었다.
재 작대를 하고 있는 사무실에 들려 22대에 다시 작대를 하고 살펴보니
이번 대회에는 부산, 대구를 비롯 울산 포항 영천 영주 영덕 등 영남지역의
기라성 같은 선수 500여명이 참가하고 있었다.
-활을 잘 모르는 이를 위해-
활 대회에서 작대란 한 순(巡)을 내기 위해 보통 7명이 한조가 되어 겨루게 된다.
이 7명의 한조를 한 대라고 하며 재 작대란 처음에 짜여졌던 작대의 순서를
다시 그날의 형편에 맞도록 새로 조정하여 짜는 것을 이른다.
이렇게 대가 짜지면 궁사는 1관, 2관, 3관에서 각각 다섯발씩 15시(矢)를 내고
그 합계점수로 성적을 따지게 된다.
그리고 대회는 장년궁사부, 여궁사부, 노인궁사부로 나누어 성적을 따진다.
첫 시를 낼 1관에 올라 살펴보니 19대가 살을 내고 있었다.
몸을 풀고 대회에 임할 준비를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여유는 충분했다.
드디어 우리차례가 왔다.
나는 7명 중에서 가장 먼저 쏘는 1번 석에 들어섰다.
첫 시가 앞 나는 것을 보고 다시 조정하면서 살을 내었다.
첫 순에 4중. 출발이 그리 나쁜 성적이 아니다.
첫 순을 마치려는 순간 "역시 노익장이야!"라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함께 한 궁사들보다 늙어보이는 내가 성적이 좋다는 칭찬인 것 같았다.
이날 나의 성적은 둘째 순에서 3중, 셋 째 순에서 4중을 하여 합이 11중이었다.
노년 부 성적을 살펴보니 울산에서 온 이가 12중으로 1위였고,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8중에 4명이 머물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직 오전 12시가 채 되지 않고 있었다.
이날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장년부의 일등을 가리는 동점선두 세 명의 재 경기와
각궁과 죽시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세 명이 특별상인 신라금관을 두고
다투는 재 시합이었다.
장년부 선두 비교 전에 오른 3명 중에는 캐나다 인이 있어 이채를 띄웠었다.
그는 부산 사직정 선수로 등록된 이미 국궁 3단을 딴 시수꾼이었다.
국궁의 국제화를 이끄는 고마운 사람이다.
두 경기 모두 한 판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다시 재 경기에 들어가
단시로 자웅을 겨루면서 모두의 손에 땀을 쥐게 했었다.
오후 5시가 넘어 시상식을 겸한 폐회식이 있었다.
나는 이날 노년부에서 2위로 입상했다.
내가 상을 타기 위해 시상대에 올라 본 것이 언제이었던가?
이날 나는 단 한 시(矢) 차이로 1등에서 밀려나 우승컵을 손에 쥐지 못했다.
돌아보니 아직도 내게는 활을 통해 느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 이제부터야” 하고 스스로에게 격려를 하면서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더욱 정성껏 배우자고 다짐했다.
원래 신라문화제 대회는 각궁과 죽시 만으로 경기를 하는 대회였다.
호림정은 웬 일인지 금년에는 개량궁도 참가를 허락하였다.
2년 뒤, 다음 대회에는 나도 각궁과 죽시로 임하여 왕관에 도전하리라...
활을 배우기 시작한 이래 첫 입상의 기쁨을 누구와 나눌까?
멀리 집에서 요양중인 스승님께 전화로 제일 먼저 알려드렸다.
그리고 내가 수련하는 활터 팔공정과 집에 있는 아내에게도 알렸다.
빈손으로 왔다가 상장과 부상을 함께 태우고 돌아가는 길,
들녘의 황금물결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20061016. 和圓)
삼매(三昧)와 복궁(復弓), 바둑 복기(復碁) 하듯이...
어떻게 하면 제대로 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의 화두였었다.
활을 시작하고부터 나는 늘 선(禪)과 명상(瞑想)을 통해 활을 바라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늘 감질만 날뿐, “이것이다”는 답을 얻기가 참 힘들었었다.
알 듯 말 듯, 활과 선, 그리고 활과 명상을 어떻게 접목시켜야 할지가 막연하기만 했다.
사실 나는 늘 상 삼매(三昧)란 말을 쉽게 쓰면서도
그것의 정확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활이 잘 쏘였으면 쏘인 대로, 잘 못 쏘였으면 잘 못 쏘인 대로,
지나 놓고 보면 활을 쏘았던 영상이 뇌리에 맑게 떠오르지를 않았다.
내가 어떻게 쏘았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어야 그 다음의 대책이 설 터인데...
그저 아주 작고 희미한 기억들에 의지 한 채 무작정 자꾸 쏘기만 할 뿐이었다.
활을 제대로 쏘았을 때 몸속에 스며들던 편안하고 좋았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무술 수련의 경지를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깊은 공부에 이를 삼매의 경지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려준 분과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
얼마 전 여러 통의 e-mail이 날라 왔다.
그 중에 현재 서울 금강선원 주지로 계신 혜거스님의 육조단경에 대한 법문이 있었다.
나는 혜거스님의 법문 속에서 평소 지니고 있던 의문의 실마리를 푸는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혜거스님의 설법 속에서 나는 무엇이 바른 삼매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았을 뿐 아니라,
그 분의 법문을 통해서 명상과 간화선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혜거스님이 말하는 삼매의 본 뜻에 따라 활 공부의 방향에 대해 나름대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인도식 불교 즉 남방불교인 위빠사나에서는
자기 본성을 찾아가는 방법을 명상(瞑想)에서 찾는다. 즉 눈을 감고 화두에 젖어 드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노자(老子)의 사상과 접목된 중국식 불교는 간화선(看話禪)이 주를 이룬다.
간화선은 눈을 뜨고 화두를 바라보면서 자기 본성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활을 쏘는 것은 눈을 뜨고 하는 행위이다.
활은 표적이 되는 과녁을 바라보면서 살을 내는 행위다.
따라서 나는 활은 간화선에서 그 공부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느꼈다.
활은 무엇을 보고 내어야 할까?
활을 내는데 있어 삼매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혜거 스님의 설법에 다시 귀 기울여 본다.
위빠사나는 눈을 감고 본다. 그러나 간화선은 결코 눈을 감아서는 아니 된다.
눈을 뜨고 보이는 것에 또는 보려고 하는 것에 자기의 모든 것을 집중하여 보는 것이 간화선이다.
사람은 아홉 가지의 행위를 한꺼번에 할 수 있다고 한다.
따로 떨어진 아홉 개의 행동이 아니라
간화선에서는 온전히 그 아홉 가지 행위가 하나로 맹렬하게 집중되어야 한다.
삼매란 무엇인가? 눈을 뜨고 오감(五感)을 하나로 집중시켜 바라보는 것이다.
무엇을 본단 말인가?
눈을 뜨고 있으면 눈으로 보이는 것에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그저 눈길 닿는 것을 막연히 보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화두 하나에 온통 집중하여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 집중된 상태에서 바라 볼 때 우리는 자기의 본성으로 사물을 보게 되고
또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기는 하였지만 정확하게 기억 못하는 것은
오감이 제대로 온전하게 하나로 작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철저히 집중된 상태로 바라보는 것을 우리는 삼매 또는 삼매의 경지에 들었다고 한다.
활을 내는 행위는 가만히 서서하는 정적인 행위인 것 같지만,
자기 내부의 기를 총 동원해서 순간적으로 폭발적 파워를 일으키면서
145m 건너편에 있는 과녁으로 화살을 날려 보내는 동적행위이다.
활 내기는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표본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 속에는 활을 내려는 순간, 바람의 상태, 기온의 변화, 기압의 흐름, 등등
예민하기 그지없는 자연의 변화도 함께 잘 꿰뚫어 보아야 한다.
국궁은 양궁과 같이 가늠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몸과 마음으로 만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늘 상 똑 같은 활 내기 같지만 한번도 같은 경우가 없다.
매번 모두 새롭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활의 세계여서 활은 참 어렵다.
때문에 활은 어느 무엇보다도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무술이다.
여기에 간화선의 삼매사상과 활을 접목시켜 보고 싶은 것이다.
활을 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삼매에 들어야 할까?
활을 내는 자신과 과녁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자연의 흐름 즉 풍류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과녁이지만 바라보아야 할 것은 먼저 활을 내는 자기 자신이다.
화살을 내기 위해 발 디딤과 선 자세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거궁을 하면서 줌손은 어떻게 작용을 하고 있고 깍지 손은 어떤 선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는가?
활을 쏘는데 꼭 필요한 근육만 사용하는 경제적 행위는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만작했을 때 그리고 가입할 때의 느낌은 어떤가?
바람의 흐름과 기압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면서 과녁 어디에 표를 잡고 활을 내고 있는가?
발시가 이루어진 뒤 잔신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이 모두를 확연하게 바라보고 충분히 기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즉 온전한 삼매에 들지 않고는 다시 기억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순간적 행위 들인 것이다.
활을 낸다는 것은 활과 화살 그리고 사람이 삼위일체가 되어 과녁과 나누는 정담이다.
마치 바둑에서 복기를 하듯,
자신의 활을 내는 행위 하나하나를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자기를 바라보아야
그는 활을 내면서 활의 삼매경에 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되는 하나하나는 모두 다시 내는 활을 위한 귀한 양식이 되어야 한다,
그날 하루 10순을 내었으면 그 모두가 확연히 기억될 수 있을까?
기억되지 않는다면 결코 바로 바라 본 것이 아닐 것이다.
삼매란 말 뿐이지 그렇게 쉽게 되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온전한 삼매에 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바둑의 복기(復碁)처럼 활도 복궁(復弓)이 생활화 되어야 하지 않을까? (20061022.和圓)
활, 動中靜 靜中動의 뜻을 새기면서 저물어가는 이 한해를 ...
가장 작은 움직임으로 가장 크고 빠른 힘을 내는 비법은 무엇일까?
활을 조금씩 더 느껴가면서 나도 모르게 말 수가 적어지는 나를 발견한다.
처음 배울 때는 할말도 많고 느껴지는 것도 많았었다.
그런데 활에 더 가까워질수록 생각은 깊어지나 말 수가 적어짐은 왜 일까?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활을 잡고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어슬렁거리며 지나온 지난 한 해가
그래도 내게는 많은 삶의 의미를 던져 주었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지난 일년 나는 과연 무엇을 활에게서 배웠던 것일까?
꼬집어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가끔 자연의 섭리란 군더더기 없는 우주의 움직임 속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가가 그리는 선 하나에도 군살이 없을 때라야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음악가가 나타내는 소리도 군살이 없을 때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활도 마찬가지다.
145m 건너편 과녁에 명중을 시키기 위해 화살을 날리기 위해
궁사의 손은 밀고 당기면서 힘을 만들어 낸다.
바람이 일고 기압이 흐르는 자연 속에서 늘 마음 같이 되어주지 않는 것이 활이다.
그래서 궁사는 한껏 당겨 놓은 살을 놓으면서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가입도 하고 쓰잘 때 없는 몸짓으로 몸부림도 친다.
그렇게 해서 관중이 되어보았자 마음이 편한 것 도 아닌데...
잘못 날아간 화살의 의미를 찾아 반구제기(反求諸己)를 해 본다.
즉시 답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만,
가지고 나간 화살이 다 떨어지도록 잘못되어진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때로는 하루도 걸리고 일주일도 걸리고 영영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하기야 그래서 운동선수들에게는 코치도 있고 감독도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어떻게 하면 고요한 가운데 조금의 흩어짐이 없는 간결한 몸짓으로 활을 낼 수 있을까?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에 대해 얼마 전부터 깊이 생각해 오고 있었다.
활을 미는 줌손이 주인가? 살을 당겨 끄는 깍지손이 주인가?
당기고 미는 어느 것이 작용이고 어느 것이 반작용일까?
어느 사범께서는 줌손이 주라고 하고,
어느 사범께서는 깍지손이 주라고 해서 한동안 생각의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었다.
나는 활을 낼 때 소위 말하는 암 깍지를 쓴다.
깍지를 낀 오른 손 엄지의 뿌리관절을 용수철처럼 늘어뜨리고 살을 먹인 시위를 당긴다.
깍지 손이 끌면 끄는 만큼 줌손에 더 힘이 가하여 지면서 조임이 강하게 이루어진다.
결코 둘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하나로 엮이어 함께 놀게 마련이다.
척추를 중심으로 하는 쌍분의 원리를 구지 떠 올리지 않더라도
당기는 작용과 미는 반작용이 하나로 서로 작용하면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절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얼마만큼 조용한 가운데 이루어지느냐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동중정이요 정중동이다.
시수의 변화는 없다하더라도 다듬어져 가는 내 모습에 기쁨을 느낀다.
동작의 표준화가 이루어지면서 영축이 줄어든다.
무엇 때문에 살이 잘못 날았는지에 대한 답이 조금씩 빨리 떠오르기 시작한다.
즉시즉시 반구제기가 이루어져 가기 때문이다.
숨 가쁘게 해를 넘기면서,
하나 둘 의문투성이 던 활 세계가 조금씩 정리되어 감을 느낀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이제는 제법 활을 통해 느꼈던 것들이 응용되어져 간다.
삶 속으로 활이 베어들고 내 삶이 활 속으로 배어져 들어간다.
화가가 그렇게 많은 선을 긋고 난 후에 아름다운 선을 얻고,
소리꾼이 폭포 앞에서 그렇게 많은 소리를 지른 후에야 득음을 하듯이,
수 없이 날려 보내는 화살, 그 작용과 반작용의 틈새에 서서
나도 우주의 절묘한 궁력을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음해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선사의 모습으로 서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和圓. 20061205)
궁아일체(弓我一體), 일발필중(一發必中)의 기원...
늘 고심해 오던 화두의 하나가 “궁아일체”다.
내가 잡고 있는 활이 내 생명의 흐름과 통할 때 활과 나는 하나가 될 수 있다.
나와 함께 호흡이 이루어지고 나와 함께 맥박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 까?
비행기 조종사에게는 비행기가 애기(愛機)이고,
자동차 운전자에게는 자동차가 애기이듯이,
검객에게는 자기의 분신인 칼이 (애검(愛劒)이고,
우리 같은 활 꾼에게는 활이 애궁(愛弓)이다.
애기는 애장품과는 달라 서로 간에 정이 흐르고 생명이 함께 흘러야 한다.
그렇게 통할 때 명검이 되고 명궁이 되는 것이다.
애기란 말을 쓰기위해서는 그저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는 안 된다.
서로 간에 혼(魂)이 통해야 한다.
비록 사람과 물건 사이이지만 혼이 통해야 한다.
동물 한 마리와 인연을 맺어도,
세월이 흐르고 정이 깊이 들면서 서로 통해야만 애견이 되고 애마가 되지 않는가?
늘 활을 당겨보지만 일체감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나는 물이고 활은 기름 같기만 했다.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활이 내 품에 깊이 안겨 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는 활을 의지하고 활은 나를 의지하면서 살이 시위를 힘차게 떠나게 할 수 있을까?
그저 무턱대고 활을 쏘아댄다고 활이 아닌 것이다.
활이 활답게 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활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활을 잡은 지 5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그 문리가 터져 나옴을 느낀다.
조선시대 사법교본인 사법비전공하(射法秘傳攻瑕)에 보면 심담십사요(心談十四要)란 가르침이 나온다.
심담십사요의 열네 가지 가르침 중에서 “궁요초측(弓要稍側)”이란 항목이 있다.
활을 쏠 때 조금 기울여서 쏘라는 뜻이다.
활을 너무 세우면 양수(陽手)가 되고 너무 기울이면 합수(合手)가 되어 모두가 좋지 않다.
그러면 어느 정도 기울이라는 것인가?
활을 기울인 채 당겨 보면 현과 가슴이 닿게 된다.
겨드랑이와 가까운 왼쪽 젖가슴 위의 점이 가장 이상적인 곳이라고 본다.
가끔 보면 현이 가슴 한 가운데를 지나거나 우궁인데도 불구하고
오른 쪽 가슴 위에 현이 닿은 상태로 활을 내는 이들을 본다.
모두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것을 “전견요장(前肩要藏) 후견요제(後肩要擠)”와 함께 생각하면
답이 곧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만작한 상태에서 깍지 손을 더 당기는 역할을 하는 것은 뒤 어깨를 밀어주는데 있다.
오른 쪽 어깨위에 울러 맨 깍지 손을 끄는 것은 후견요제란 말의 의미를 터득해야 알 수 있게 된다.
이 두 동작이 만족하게 취해지면,
활과 나는 하나가 되어 아주 안정된 자세로 활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정확한 관중을 얻게 된다.
적어도 궁요초측과 후견요제를 터득해야 궁아일체를 이루는 길을 터득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활과 활을 내는 사람이 하나로 엮이어 돌아가지 못하고,
활은 활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따로 논다면 그때그때의 몸 상태에 따라 시수가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우아일체(宇我一體) 즉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하듯이,
궁아일체(弓我一體) 즉 사람과 활도 하나로 어우러져야 제대로 활쏘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평소 활은 업(業)을 닦아내는 수련이라고 생각해 왔다.
활과 함께 어우러져 활쏘기에 깊이 빠져들면,
내 전신의 기력을 모아 쏘는 화살에 내가 저지른 업들이 실려 씻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한다.
앞과 뒤가 팽팽하게 실리고 쌍분이 이루어지면서 살은 창공을 가른다.
마치 학이 창공을 향해 힘껏 나래를 활짝 펴듯이,
제대로 두 팔이 활짝 펼쳐질 때면 전율 같은 무엇이 온 몸을 타고 흐름을 느낀다.
시원하기도 하고 잦아질 것 같기도 한 느낌은 활을 내면서
활 꾼만이 느끼는 오르가즘이라 할 수 있다.
그 느낌을 타고 내 업이 사라져 가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든다.
아니 분명 업이 씻겨져 나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활과 내가 하나가 되어 펼쳐내는 초식 속에서
끝없이 피어오르는 오르가즘을 느끼고 그 짜릿한 느낌을 따라
내가 살아오면서 저질렀던 업도 사라져 간다.
그 간절한 느낌을 타고 다시 사대에 서면서 또 무얼 기원하는가?
일발필중!
절절한 집중 속에서 펼치는 간절한 기원은
오직 온전한 삶이 거기에 있음을 바랄 뿐이다.
그것이 곧 선사(善射)의 길 바로 그것이기에... (20061216. 和圓)
비정비팔(非丁非八), 모든 무술 겨루기자세의 기본이다.
비정비팔 - 서 있는 각자의 발 디딤 모습이 조금씩 다 다르다.
비정비팔(非丁非八), 모든 무술 겨루기자세의 기본이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이 상대와 겨루기 위해 어떤 자세로 서야 할까?
전방과 후방 그리고 좌우로 이동하면서 신속하게 상대와 겨루기 위해서 두 발을 딛는 모습은
바로 활쏘기에서 말하는 비정비팔의 자세이다.
그런데 단순하게 두 발을 비정비팔의 형태로 두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기운쓰기를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는 제대로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활을 쏘기 위해 만작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활쏘기 깊이를 알 수 있게 된다.
반듯하게 서서 제대로 활을 당기고 쏘는 사람도 있지만,
엉덩이가 한쪽으로 돌아 간 사람도 흔히 보게 된다.
발 디딤은 얼핏 보아 비정비팔이로되 온 몸은 그에 상응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선 자세와 호흡이 하나로 엮이지 못하고 있는 그런 자세를 흔히 본다.
비정비팔이란 무엇인가?
활을 쏘기 위해 사대에 섰을 때 과녁을 향해 서는 발 디딤을 말한다.
“온깍지궁사회” 홈 페이지 올라있는 비정비팔의 정의 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비정비팔(非丁非八)이란 발의 모양이 한자의 정자도 아니고 팔자도 아닌 모양이라는 뜻이다.
두 발이 놓인 모양이 어떻게 보면 팔자나 정자를 닮는 것 같은데,
정확히 보면 그 글자와는 다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먼저 왼발을 과녁의 왼쪽 귀를 향해 놓는다. 그리고 오른발을 왼발의 장심 부근에 댔다가
어깨넓이만큼 적당히 벌린다.
그러면 몸은 과녁과 거의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약간 오른쪽으로 틀어진다.
사람의 체형과 궁체에 따라서 오른발의 위치는 적당히 잡는다.
그런데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을 해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것은 감각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비정비팔의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이 남아있다.
맨 처음 비정비팔이 모든 무술의 기본 동작이라고 했었다.
상대와 마주하여 겨루기 위해 자세를 취할 때는
가장 자신이 안정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전후좌우 어느 방향에서라도 자기를 온전히 방어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그런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 무심코 서는 자세가 바로 비정비팔이다.
한 가지 실험을 해 보면 당장 알 수 있다.
정(丁)자와 같이 즉 발을 상대를 향해 앞뒤로 두었을 때는 좌우가 약해진다.
옆에서 밀면 밀리기 쉬운 자세임을 바로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팔(八)자와 같이 즉 발을 좌우로 나란히 두면 앞뒤가 약해진다.
앞에서나 아니면 뒤에서 밀면 금방 밀려 버리는 자세가 바로 팔자자세이다.
거기에 비해 비정비팔로 서면 전후좌우 어느 방향에서나 자기를 방어 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모든 무술에서 겨루기를 위한 발 디딤은 비정비팔로 서게 되는 것이다.
다시 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활을 내고 있는 이들을 자세히 보면,
자기 어깨넓이만큼 두 발을 적당히 벌려 딛고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기 어깨넓이보다 더 크게 벌리고 서서 활을 내는 이가 있다.
형태는 분명 비정비팔인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느 것이 맞은 것일까?
여기에서도 실험을 해 보면 금방 답을 찾을 수 있다.
비정비팔로 서되 두 발의 간격을 벌린 상태에서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시면서 항문을 닫아보면 된다.
너무 넓게 벌려 서면 쉽게 항문이 닫혀 지지 않을 것이다.
가장 편안하게 항문이 닫혀 지고 아랫배 단전에 힘이 모아지는 거리가 바로 답이다.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거리는 각자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느껴보아서 가장 편안하게 감각이 들어오는 점이 해답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항문이 쉽게 닫히고 아랫배 단전에 기운이 잘 들어온다고 느끼는 자세에서,
활을 당겨보라.
그러면 엉덩이 가 옆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선 자세에서 쉽게 활을 만작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체가 단단히 고정되면서 활을 겨누기에 몸이 아주 편해진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되는 자세가 가장 자기에게 맞는 비정비팔의 자세가 되는 것이다.
활은 다른 운동과 달라 하체를 움직이면서 하는 운동이 아니다.
수시로 접점이 변하는 다른 운동과 달라 가장 이상적인 비정비팔의 자세를 취하기가 아주 편한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활 꾼들이 비정비팔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활을 쏘기 위하여 활 꾼은 바로 서는 자세로 비정비팔을 배우지만,
비정비팔은 활 꾼만의 전유물만은 아닌 것이다.
다만 다른 무술과 다른 독특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명심 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안정된 자세는 모든 행위의 기본이다.
몸과 마음이 늘 안정된 곳에 올바른 집중과 이완도 이루어진다.
따지고 보면 무술이나 일반적 삶이나 매 한가지 이치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편안한 접점 하나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들을 해야 하는가?
참 삶이란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쉬운 것이란 것을 느낌을 받곤 한다.
수행이란 본래 그런 것인가?
사람이 어리석은 탓이리라... (20061223, 和圓)
줌손 "반바닥" 제대로 알면 활이 보인다.
어느 나이깨나 든 하지만 활 쏘는 동작이 어눌해 보이는 궁사를 보고 사범이 묻는다.
“무엇을 반바닥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
“활을 낼 때 말하는 반바닥은 쉽게 말하면 손바닥의 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줌손 둘째손가락과 셋째 손가락 뿌리사이에서부터 대각선으로 내려 그어
손목과 손바닥이 닿는 지점까지 연결시킨 왼쪽 즉 엄지뿌리를 포함한 손바닥 왼쪽 전체가
활을 미는 반바닥이 되는 것입니다.
활을 쏠 때 반바닥으로 밀라고 하는 말은 엄지뿌리의 어느 특정지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반바닥 전체를 다 쓰라는 뜻입니다.“
옆에서 듣고 보니 참 명료한 설명이었다.
대개 궁사들은 활쏘기를 시작하면서 줌손으로 활의 하장을 잘 밀어 주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줌통을 반바닥으로 흘려 잡고,
줌손 엄지뿌리의 한 점으로 줌통을 밀어 주어야 한다고 알아듣는 것 같다.
그러자니 자연 반바닥에 대한 이해가 잘못 되어지는 것을 본다.
우리나라 국궁의 1번지라고 하는 서울 황학정에서 새로 입문한 활을 배우는 이를 위해 쓴
“궁도입문(弓道入門)”이라는 교본이 있다.
그 교본에 보면 활을 잡는 손인 "줌손"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활을 잡은 손을 줌손이라 하는데 줌손은 하삼지(下三指)를 흘려서 쥐고
반바닥(엄지손가락이 박힌 뿌리)과
등힘(활 잡은 손목으로부터 어깨까지 손등과 팔등의 힘이 균일하게 뻗는 것)으로 같이 밀며
범아귀(줌손의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 사이)는 다물이고
복전(食指범節根: 식지의 첫째와 가운데 마디)은 높고 엄지손가락은 낮아야 한다.
만일 삼지(三指)가 풀리고 웃아귀(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의 뿌리가 닿는 곳)를
아래로 내리면 살이 덜 간다. 이하 생략..... “
위의 설명에서도 반바닥을 “엄지손가락이 박힌 뿌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으로도 반바닥에 대한 연구는 더되어져야 한다고 여겨진다.
활쏘기와 반바닥의 상관관계는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떤 궁사들의 줌손 바닥을 보면 못이 박혀서 군살이 심하게 오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이는 손바닥이 아주 부드럽게 상처하나 없는 이도 있어
어느 것이 옳을까하고 생각에 잠겨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사법비전공하에 나오는 심담십사요의 지궁여악란(持弓如握卵)
즉 “줌통은 달걀을 잡듯 하라”고 한 가르침을 보면
결코 손바닥에 못이 박힐 정도로 강하게 활을 잡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개 궁사들은 활을 쏠 때 줌통을 짜면서 살을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적인 조임이 아니라 억지로 짤 때 손바닥에 못이 박히는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바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닌 가 해석해 본다.
어떻게 활을 쏘아야 반바닥 전체를 이용한 편안한 활 내기가 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우선 거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활을 왜 기우려 쏘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깍지 손 끌기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하삼지에 대한 역할과 자연스러운 줌통의 조임에 대한 이해가 따라야 할 것 같다.
거궁은 활을 당기는 스타트 라인을 설정하는 자세이다.
활터에서는 활을 들어 올릴 때 물동이 이듯 하라고 가르친다.
얼마나 높게 들어야 정답이 될까?
활을 들어 올리는 높이와 이 때의 활 기울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필자의 경우는 현이 눈 높이 이상이 될때까지 활을 들어 올린다.
활을 들어 올린 후 가만히 줌손 안에 들어 온 줌통을 느껴 보아
반바닥 전체로 활이 잡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사람마다 다 체형이 조금씩 다르다.
정확하게 반바닥 전체로 활이 잡힌 상태가
각자 자신의 거궁할 때의 높이이고 기울이는 각도라고 보면 답이 될 것이다.
대개 활을 세워서 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이들은 반바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함으로서 살이 앞 나고 뒤 나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이 경우 시수가 결코 고르지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활을 들어 올릴 때 줌손이나 깍지손 손목이 뒤로 젖혀지는 사람이 간혹있음을 본다.
손목이 뒤로 젖혀저서는 들어 올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이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한 번 글을 써 보려고 생각 중이다.
위의 답에서 느껴보면 왜 줌통을 흘려 잡는가 하는 데 대한 해답이 동시에 나올 것이다.
줌통을 흘려 잡으라고 가르치는 것 또한 반바닥 전체를 쓰기위한 동작을 가르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잡힌 반바닥의 힘을 그대로 쓰기 위해서 깍지 손을 어떻게 끌어야 할까?
깍지 손은 우궁일 경우 자기의 오른 쪽 귀 위를 지나도록 당기면서
오른 쪽 어깨 위에 울러 매어야 한다.
그런 자세로 당기면서 반바닥을 느껴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하삼지와 함께 서로 어우러져
억지로 짜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줌이 조여들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바닥을 제대로 쓰고 있으면 깍지 손이 끌면 끄는 만큼 줌통은 자연스럽게 조여든다.
더불어 아주 편안하게 줌을 앞으로 밀면서 활을 낼 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반바닥은 이런 이유로 해서 전체로 편안하게 밀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궁여악란(持弓如握卵)즉 달걀 잡듯이 편안한 활 잡기가 되는 것이다.
아귀에 힘이 더 들어가면 뒤 나기 쉽다.
반바닥 아래에 힘이 더 들어 가면 살이 과녁을 넘기 쉬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활을 내는 데 어찌 반바닥 하나만을 두고 논할 수 있을까만,
각론 하나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을 터이다.
언 듯 쉽게 넘어가기 쉬운 반바닥에 대한 이해를 유독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필자가 매우 중요하게 느꼈었기 때문이다. (20070107, 和圓)
습사일기 중에서
2007. 1. 14. 일. 맑음.
날씨가 오후부터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요즈음 내가 애용하는 46파운드의 송무궁 개량 궁 줌통피를 새로 감았다.
그저께는 화살을 잘 닦아두었다.
깍지도 반들반들하게 닦아 광을 내면서 살이 잘 빠져나가도록 해 두었다.
아직 줌통 피를 갈 때가 되지 않았다싶어 참으려 했지만 마음이 자꾸 시켜서 갈았다.
활을 내는 기술적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왔지만,
내가 쓰는 활과 소품들에 대한 애정을 통해 더 정성을 기울이는 것도
또한 활을 잘 내는 방법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 속담에 “서드레가 구활이다"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매사 준비가 잘 되어 있어야 본 작업이 수월하다는 뜻이다.
목욕탕에 갔다가 구두 닦는 사람에게 캉가루 구두약도 하나 얻었다.
화살을 닦기 위해서다.
구두약도 알고 보면 가정용이 있고 직업용이 있다.
오늘 얻은 것은 직업용이다.
전문가가 쓰는 용품이 아무래도 더 나을 것 아닌가?
정에서 사범이 죽시(竹矢)를 구두약으로 닦는 것을 보았다.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죽시는 자연소재임으로 자연 소재 즉 들기름이나 올리브 유 같은 것으로 닦아야 하고
카본 시는 유성의 석유화학 제품임으로 유성소재의 약품으로 닦아야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먼지가 묻은 화살을 보면서도 무신경하게 지내왔다.
사범이 지나가는 말처럼 하던 말이 생각났다.
활 대회에 나가서 가장 무서운 적은,
“헌 활을 들고 나오면서 새 화살을 갖고 나오는 사람”이라고 했다.
활은 묵을수록 좋고 화살은 새것일수록 좋다는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손때가 묻은 헌 활은 그 활 주인과 잘 익숙해져 있는 활이다.
바람을 타지 않는 새 깃과 잘 곧게 펴진 화살대의 새 화살은
분명 좋은 시수를 내는 조건을 갖춘 모습이다.
손에 익은 활과 바람을 잘 타지 않고 곧게 날아가는 새 화살은 좋은 시수의 필수조건이다.
그러니 비록 낡은 화살이라도 잘 닦아 새것 같이 정비하여 쓸 일이다.
비록 사람들은 무신경하게 바라보지만
개량 시 하나에도 정성을 기우려 정비해 두는 마음이 얼마나 귀중한 활 사랑인가?
줌통 피를 새것으로 갈고 활을 잡고 당겨보니 미끄러지지 않고 잘 밀착해 오는 맛이 좋았다.
역시 화살과 활 모두를 잘 정비해 두는 일은 활을 잘 내기 위한 기본적 조건이다.
깍지도 매일 쓰는 것이니 어떠랴 싶지만,
나는 은 깍지를 애용한다. 쓰다가 문질러 보면 거뭇거뭇 한 때가 손에 묻어난다.
그럴 때 기분이 결코 밝아지지 않는다.
평소에 잘 정비되어 있는 차가 잘 굴러 가듯이 활도 마찬가지다.
활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 수록 할 일이 조금씩 더 늘어나는 것 같다.(20070114. 和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