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 경건하고 맑다. 티끌 하나 없이 단정한 표정이 말간 조명 빛 아래 더욱 곱다. 이 집의 표정을 대신하듯 현관문 안쪽에 다소곳이 서 있는 이 여인, 조각가 한진섭 씨의 작품 ‘기도’다. 집안에 발을 들이면서 그 표정에 마음이 정화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선한 표정을 통해서 가족들의 심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저희 집, 아니 저희 부부가 사는 곳은 언제나 흰색 천장에 흰색 벽면이예요. 남편과 아들 외에도 돋보여야 할 식구들이 많거든요.” 벽은 물론 커튼과 소파마저 하얗다. 그이의 또 다른 식구들, 바로 미술품들 때문이다. 갤러리가 작품을 위해 늘 백색 공간을 고집하듯, 미술작품과의 동거동락을 최고의 즐거움이자 미덕으로 삼는 만큼 공간은 백색의 갤러리를 닮아 있다. 화가 이청운 씨의 ‘몽마르뜨의 지붕’, 키네틱 아티스트 소토의 ‘장밋빛과 흰색의 입방체’, 조각가 한진섭 씨의 ‘휴식ⅱ’, 진유영 씨의 회화 작품, 이응노 씨의 오브제 ‘군상’…. 현관과 이어진 복도, 거실, 침실, 서재 등 공간마다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된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새어나올 정도. 공간에 전시된 작품만 20여 점, 다른 소장 작품까지 포함하면 1백여 점에 이른다.
36년간 서울대 법대 교수로 한 길을 걷다가 작년 8월에 정년을 맞은 국제법 학자 백충현 씨, 30여 년간 치과를 운영해오고 있는 치과 교정 전문의 이명숙 씨. 이들 부부가 이렇듯 갤러리 같은 집에서 살기를 즐거워하는 데는 양가 어른들의 영향이 크다. 이화여대 미대 교수를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으로 있는 서양화가 이준 화백이 이명숙 씨의 부친. 백충현 씨의 선친 역시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했을 정도로 예술 애호가셨다. 덕분에 법학과 의학이라는 각기 다른 길을 걸어도 미술에 대해서만큼은 부부가 똑같이 각별하다.
전시장을 찾을 때는 물론이고, 홀가분하게 떠난 여행길이나 가벼운 산책길에서도 ‘작품’이라 여겨지는 것이 시야에 잡히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 진짜 좋아하니까 가까이 가서 확인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거란다. 작품이 마음에 들어 구입할 때도 있고, 만난 작가가 좋아 작품을 사는 경우도 있다. 작품 구입을 놓고 의견이 달랐던 적은 없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이상적으로 실현되는 분야가 ‘미술’이라는 것이 부부의 생각. “각자의 생각과 의도를 100% 인정해주는 세계잖아요.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로 결정되는 것이지, 못하고 잘하고는 통용되지 않으니까요. 아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고 제가 좋아하는 것이 있는 법인데 혼자만의 취향을 고집할 수는 없지요.”
수많은 작품들을 모으면서 부부가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원칙 하나, 모든 작품은 화랑을 통해서만 구입한다는 것이다. 단 한번도 작가에게 직접 연락해서 작품을 구입한 적이 없다. 아버지 이준 화백이 ‘그것만큼은 절대적으로 지켜라’ 가르쳤기 때문이다. 작가는 상인이 아니기에 작가로서의 위상을 지켜줘야 하는 의무가 수집가에게 있다는 뜻이다. 작가가 작가일 수 있도록 해주는 화상이 그래서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화상 때문에 속이 상할 때도 있단다. 조용히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데 화상이 다가와 이렇게 속삭일 때다. “이 작품 정말 괜찮지요? 서둘러 구입하세요. 곧 뜰 겁니다.”
그동안 만난 작가나 작품과의 인연에 대해 백충현 씨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말한다. 풍연초 쌌던 종이에 그려진 이중섭 씨의 그림, ‘까치와 다섯 아이들’만 봐도 그렇단다. 백충현 씨가 이 그림을 만났던 곳은 27년 전 전남 부안의 어느 골동품 가게. 독도 관련 자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내려갔다가 그집 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이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 화백이 거제도에 기거했을 때 신세졌던 이발관에 그림 한 점을 남겼다’는 바로 그 그림이었다. 아내 이명숙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격도 없이’ 샀을 정도로 쉽게 구입한 셈이다. 평소에 골동품을 좋아해 그곳까지 가서 만났으니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부부와 연이 닿은 작품 하나하나에 재미난 사연이 있다. “작은 아들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는 동양화는 고 허백련 선생의 작품입니다. 선생 살아생전에 무등산을 방문하셨던 할아버지께 먼 길 찾아와 주어 반갑고 고맙다는 뜻으로 그려준 것이에요. 정말 인간적이고 따뜻하지 않나요? 글을 건네면 그림으로 화답하는 문인들 간의 대화법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조각가 한진섭 씨는 연희동 자택까지 몸소 방문해서 내 작품을 여기에 두라’고 말하기도 했고, 화가 이청운 씨는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전언에 오히려 ‘법학 전공하신 어른이 내 그림을 산다니 내가 만나봐야겠다’며 약속 장소에 나오기도 했다. 한번은 이청운 씨와 88 올림픽 기념 조각전에서 알게 된 네덜란드 조각가 마크 브루스를 집에 함께 초대한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영어에 서툴렀지만 이준 화백의 그림 앞에서 2시간이나 얘기했단다. 놀라웠다. 몸짓, 눈짓과 탄성만으로도 두 사람은 충분히 교감하고 소통했던 것. 예술만큼 국제화된 언어가 없음을 새삼 깨달았던 경험이었다.
이 많은 에피소드 중 백충현 씨가 최고로 꼽는 것은 장인어른인 이준 화백과 ‘스케치 여행’을 떠났던 일이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의 유명 박물관은 물론 소도시나 시골에 자리한 대 화가들의 생가를 둘러보는 여행이었다. 길을 걷다 기가 막히게 멋진 시골 풍광이라도 나타나면 이준 화백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케치를 했고, 사위는 스케치가 끝날 동안 한마디 불평 없이 기다리며 다음 여행지를 계획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티스의 생가를 발견한 날이나 정말 우연히 단테의 무덤을 만났던 날엔 백발 희끗한 두 어른이 콩닥거리는 동심을 안은 듯 설레고 반가워했단다. 그렇게 길 떠나 만난 작가가 이탈리아의 파카니.
“그이가 장인어른의 작품을 보고 밀라노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에 초대하겠다는 겁니다. 개인전을 열 수도 있었지만, 장인어른은 우리나라 현대작가들을 밀라노에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함께 전시했지요.” 이 재미난 사연들을 앞다투어 들려주는 부부, 정말 행복한 표정이다. 기억을 추스르는 지금도 이렇듯 즐거운데 그 순간은 오죽했을까. 이명숙 씨는 작품 하나하나 수집하면서 느낌 감정을 정리해서 얼마 전 <뒤돌아보기>라는 에세이집을 냈다. 그림과 조각에 담긴 사연과 미술애호가로서의 사랑을 시와 산문으로 엮었는데, 작품의 내면을 잔잔하게 음미해놓은 듯한 문체에서 소장품에 대한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다음 스케치 여행지는 ‘타히티’. “아버지 살아생전에 꼭 가보셨으면 하는 곳이예요. 조만간 우리 부부가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다녀올 생각입니다.” 원주민의 순수함과 남태평양의 작열하는 태양빛이 이들미술 애호가 부부에게 어떤 아름다운 기억들을 선사할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명숙 씨의 제안, “그림, 알고 걸면 확실히 다르다”
그림도 계절을 탄다 추운 겨울에는 색감이 선명하고 강렬한 톤의 유화가 따뜻한 분위기를 내기에 좋다. 봄이나 여름에는 맑고 투명한 느낌의 수채화나 시야를 시원스럽게 하는 풍경화로 밝은 느낌을 내고, 가을에는 스케치나 판화를 앤티크 액자에 담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대작은 되도록 밝게 천장이 낮은 아파트에서 규모가 제법 있는 대작을 걸고 싶다면 밝은 톤의 그림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그림이나 일상생활이 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조우하는 방법이다. 어둡고 강한 톤의 대작일수록 심리적 압박이 대단하다.
텔레비전 위에는 청량감 있게 시선을 가장 많이 받게 되는 텔레비전 위에는 피로한 눈에 청량감을 줄 수 있는 초록색 또는 푸른색의 단순한 그림을 걸어두는 게 좋다.
--출처 : 월간디자인 글쓴이 : 황혜정 사진기자 : 양재준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