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과 소통, 생의 이면을 찾아가는 길 / 조영미

[김명아]

단절과 소통, 생生의 이면을 찾아가는 길
조영미

‘작가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자’라고 했던가. 주위를 돌아보면 ‘말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너무 자주 듣게 된다. 글쓰기를 천업天業으로 알고 사는 이들에게 ‘말[言]’의 쓰임은 곧 그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과 다르지 않다. 보통 얼굴은 ‘얼’이 깃들어 있는 ‘굴’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얼이 깃든 얼굴에는 그 사람의 살아온 이력이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종종 그것과는 다른 얼굴을 대면하게 될 때가 있다. 바로 가면으로 가린 ‘얼굴’과 맞닥뜨렸을 때다.―여기서 ‘얼굴’은  페르소나persona로,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한다.― 심리학자 융Carl Gustav Jung이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말했던 것처럼, 가면으로 가린 얼굴은 상황에 따라 그 표정이 바뀐다. 반면, ‘얼+굴’은 ‘얼(혼 또는 넋)’과 ‘굴(구멍 혹은 소굴巢窟)’이 합쳐진 복합명사로 페르소나와는 차이가 있다. ‘얼’이 드나드는  ‘굴’이 ‘얼굴’이었을 때, 그것은 단순히 가면의 역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얼굴’(가면)과 ‘얼+굴’은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전자가 대상과 대상 사이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써의 표정 관리라면 후자는 날 것 그대로의 표정이다. 예를 들면, 일년 전(2009년 1월 20일) 서울시에서 도시정비사업 일환으로 추진한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은 현재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참사에서 ‘얼굴’과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겠는가.
 
망루에 말벌이 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제거반이 도착했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망루의 내부는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고
건드리기만 하면 터뜨려버리겠다는 세상을 향한
적의敵意가 팽팽하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이 끝내
망루로 올라가 말벌이 되었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도심 한가운데 거대한 말벌집이 있다는
헤드라인만 괴담怪談처럼 떠돌아다녔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물대포와 폴리시아 용역특공대까지 동원한
말벌집 제거작전이 개시되었다
무장한 제거반이 컨테이너에 실려
망루 가까이 다가가자 화염이 솟구쳐 오르고
순식간에 말벌집은 불바다가 되었다
폴리스라인 밖에서 아빠, 여보를 외치던
가족들이 비명을 지르며 하나 둘 쓰러져 갔다
마침내 공개된 망루의 내부는
쇠못으로 긁어 쓴 글씨와 반쯤 타다 남은 가족사진이
밀랍蜜蠟처럼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를 확인하고 진압완료 사인을
보내려던 제거반의 무선無線으로
난데없이 벌떼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에게 망루란
최후의 여왕벌을 모신 곳이었다는 걸
수많은 애벌레들이 희망의 후보가 되기 위해
벌떼처럼 모여드는 단상壇上이라는 걸
제거반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말벌집이 있던 자리로 속속續續 사람의 애벌레가 들어서고 있었다
――김현욱, 「말벌집이 있던 자리」 전문, 『푸른시』 제11호
 
토목사업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 상황으로 볼 때  제2, 제3의 용산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장담하기 힘들다. 지금까지도 용산참사에 대한 합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마구잡이식 개발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애벌레”가 속속들이 들어서는 곳이 어디 용산에만 국한될 일이겠는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대책 없이 쫓겨나는 원주민들의 처절한 외침과 눈물이 단순히 도시정비사업이라는 계획 아래, 그들의  발전논리에 따라 구획되어야만 하는가.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를 확인하고 진압완료 사인을/ 보내려던 제거반의 무선”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건 무엇이겠는가. 과연 “최후의 여왕벌”의 “희망”을 전망할 수 있는 곳에 우리는 와 있기나 한 것인가.
김현욱의 「말벌집이 있던 자리」를 읽으면서 독자는 시인의 들끓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얼굴’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는 이들과 ‘얼+굴’로 온몸을 던지는 이들 사이에서 경제개발의 최우선은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자’는 이러한 질문에 답해야 할 책무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좋을 말’은 과감히 생략하고, 이 시대의 ‘말할 수 없음’을 ‘말해야함’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시때때로 상황을 관망하며 현실의 아픔에 눈감은 글쓰기는 독자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바람은 내 몸속 닳아진 길을 지나고 있다.
굳어져 막힌 길 하나 있었다. 중심 척추마디가 눌려있었다.
신경이 지나 다니는 길이라 했다. 소통의 구멍을 뚫어야했다. 방향을 틀어 새 길을 냈다 주변이 아물 때까지 며칠이고 반듯이 있어라 했다. 구부리지 말라 했다. 서서 밥을 먹었고, 비스듬해진 길을 반듯하게 걸어보려 휘청거렸다.
높은 곳만 바라보며 비에 젖어도 반들반들 한 죄, 비뚤어진 중심을 감추고 산 죄. 뒤돌아보지 않고
줄달음치던 맹목盲目성 신경다발이다.
아픔이 붉은 빛으로 몸속을 지나는 사이
벼랑 위로 오르던 담쟁이넝쿨은 절벽 위에서 줄기가 굵어졌다.
내 몸에 그려진 새 길은 아직도 주변이 붉어있다
산다는 것은, 낯선 길 하나씩 몸에 긋는 일이다
오후 두 시와 네 시 햇빛이 지나는 담장 사이
몇 송이 감국은 시들어 있고
윙윙거리던 통증이 사라진, 경사진 길이 보였다 감추어졌다 한다.
가을이 겨울로 가고 있다
――임재춘, 「경사진 길]」 전문, 『시와산문』 64호
“높은 곳만 바라보며 비에 젖어도 반들반들 한 죄, 비뚤어진 중심을 감추고 산 죄. 뒤돌아보지 않고/ 줄달음치던 맹목盲目성 신경다발”로는 ‘말할 수 없음’을 ‘말해야함’으로 전환하기 힘들다. 알다시피 우리의 지난 과거사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었다. 그 몸부림의 댓가로 얻은 것은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포화상태에 이른 이기주의와 패권주의다. 타인의 삶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이윤에 맞춰 얼굴에 가면을 쓰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해온 결과, 거짓이 진실로 포장된 것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화폐의 가치로 인격이 결정되고 부富의 축적으로 능력이 인정되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소통의 구멍을 뚫어야” 한다.
임재춘의 「경사진 길」에서 화자는 “굳어져 막힌 길 하나”를 뚫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눈여겨 봐야할 것은 “소통의 구멍을 뚫어야했다.”는 화자의 언술이다. ‘뚫어야 한다’가 아닌 “뚫어야했다”는 말은 그것의 필요에 따른 수동적 대처 방안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는 어떠한 문제에 봉착하고 나서야 그것을 타계할 방법을 찾아 나선다. 오랜 시간 습習으로 익숙해진 몸이 어느 순간 “굳어져 막힌 길”로 나타날 때, 우리의 일상은 어깃장 논 것처럼 좌불안석坐不安席한다. 하지만 화자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낯선 길 하나씩 몸에 긋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낯선 길 하나씩 몸에 긋는” 행위에 대한 반성과 책임의식이다. 주지하시피 “새 길을” 내는 데는 많은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새 길’을 내는 것이 내 몸처럼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면, 타인의 ‘새 길’ 또한 더욱 귀하고 중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앎이 서로를 위한 ‘새 길’이 되었을 때, 내 것보다 당신의 것이 더 좋아지길 바랄 때, 우리는 비로소 “절벽 위에서 줄기가 굵어졌”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오후 두 시와 네 시” 사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윙윙거리던 통증이 사라진” 길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면 낯선 길의 통증쯤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그러려면 나와 너, 나아가 우리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 공간에 우리가 있습니다
살짝만 기울여도 맞닿을 거리인데
우리 사이 공간이 무한대로 넓어지고
침묵만이 공간을 꽉 채웁니다
침묵에 짓눌린 공기를 가르려
소리를 만들어 보지만
육성이 아닌 소리는
화답할 수 없어 공허만 키웁니다.

공허함을 먹고 자라던 벽은
문 하나 만들고
단절의 자물쇠를 채웁니다.

혼자만의 공간에 풍덩 빠지기 전에
소통을 위한 열쇠를 구합니다
어떠한 문이라도 열 수 있는
말랑말랑한 열쇠
어디에 있을까요?
――조경옥, 「말랑말랑한 열쇠」 전문, 『시와산문』, 64호
 
“한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은 우리의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목격된다. 단적으로 ‘얼굴’과 ‘얼굴’이 서로의  목적에 의해 마주앉았을 때를 떠올려 보자. 서로의 목적을 위해 허허실실 앉았다보면 “무한대”의 공간은 “침묵”으로 일관되고, 이는 “단절의 자물쇠”로 굳건하게 채워져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서로의 속내를 감추고 겉도는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버거운 일도 없다. 왜냐하면 “육성이 아닌 소리”는 “화답할 수 없”는 “공허“를 만들고, “공허“를 먹고 자란 벽은 또 다른 “문 하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경옥은 “어떠한  문이라도 열 수 있는/ 말랑말랑한 열쇠”가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 시에서 “말랑말랑한 열쇠”를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너와  내가 더불어 공생共生하려면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얼굴’이 아닌 ‘얼+굴’의 날것으로 서로가 말랑말랑해져야 한다는 것.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과의 소통이든 타인과의 소통이든 너와 나를 아우르는 우리의 소통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재미있지 않은가. 금속성의 열쇠가 아닌 말랑말랑한 열쇠라니. 이 말랑말랑하다는 형용사만으로도 철옹성鐵甕城처럼 견고한 문을 보드랍게 열 수 있을 것만 같다. 마력魔力같은 “말랑말랑한 열쇠”, 이 시대에 그러한 열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집안의 종손인 나는/ 유년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선산 굉이바위 수풀 속/ 200년이 다 된 7대조 할아버지를 뵈었다/ 훤칠한 오리나무로 서서/ 까마득한 손자의 머리에/ 당신의 열매 휙 던져 꿀밤을 주시며/ 바람결에 헤헤헤 웃으셨다/ 선산을 고향으로 옮길 때/ 멀리 떨어져 돌보지 못했던 7대조 할아버지/ 수풀 우거져 굉이바위 온 데 간 데 없어/ 끝내 선산에 모셔오지 못했지만/ 200년 동안 무덤이 평지가 되었다/ 무덤도 족보도 이 세상의 일일 뿐/ 이제 완전히 흙이 되거나 숲이 되어/ 또다시 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강경호, 「이백 년」, 『유심』, 2009. 11, 12월호
불교에서는 우리네 생生을 찰나삼세刹那三世라 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필자 같은 범속인에게는 그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진다. 강경호의 「이백 년」처럼 “무덤도 족보도 이 세상의 일일 뿐”인데, “굉이바위 온 데 간 데 없”는 하 세월을 살아가면서 이것이 모든 것인 줄 안다. 궁극에는 완전한 “흙이 되거나 숲이 되어/ 또다시 생을 사는 것”일 텐데 말이다.
어찌 보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모습은  인터페이스로의 얼굴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만들어 가느냐에 있는 것 같다.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며, 교양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인간다움. 이성과 논리를  앞세워 자신의 밥그릇 채우기에만 급급한 생존본능. 나의 눈으로만 세상의 옳고 그른 진리를 판단하는 박학다식한 고고함.
하지만 한 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7대조 할아버지”께서 “바람결에 헤헤헤 웃으”시는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을 지 말이다. 날 것 그대로의 ‘얼+굴’이 아니면 보고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 한다. 듣고 있어도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 한다. 날 것의 ‘얼+굴’과 인터페이스로의 ‘얼굴’이 대면하고 앉아 단절을 소통으로, 소통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작가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자’에서 ‘말해야함’으로 나갈 수 있는 작가적 정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