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사이트(기생충)!”
2020년 2월 10일,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수상작으로 연거푸 호명됐다. 작품상과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등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그중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4개 부문을 석권했다.
한국 영화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것도, 비영어로 제작된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모두 최초다. 아카데미 92년, 한국 영화 101년의 역사를 새로 쓴 셈. 불과 1년 전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예비 후보에 올랐으나 ‘오스카의 높은 벽’ 앞에 최종 후보로 선정되지 못했다.
1년 사이, 다른 결말을 맞은 바탕에는 <기생충>의 완성도는 물론,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우리 문화의 힘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연합
TV 뉴스와 신문기사로 본 세상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영화 <기생충>이 수상 이후 해외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에서의 인기도 심상치 않다. 구글에 따르면 이달 9일 아카데미 수상 직후 5일 동안 <기생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영화로 집계됐다.”
- 서울신문 ‘계획이 다 있는 <기생충> … 미국에 일본까지 접수’ (2020. 2. 17) 기사 중
교과서로 뉴스 이해하기
6월 민주항쟁에서 <기생충>까지
“The Oscar goes to... Parasite!”
2020년 2월 10일은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날로 역사에 기록될 거야. 남의 나라 영화제에서 상 받은 일에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면 고등학교 <한국사> 4단원 ‘대중문화의 변화와 한류의 확산’을 펼쳐보자.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대중문화는 사실 80년대까지 많은 제약을 받았 어. 1945년 해방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남북한의 좌우 대립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문화를 이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하게 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힌 이들이 지 은 음악·문학의 판매와 유통이 금지됐지.
이에 더해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 정권은 ‘음반에 관한 법률’ 과 ‘출판사 및 인쇄소의 등록에 관한 법률’ ‘공연법’ ‘영화법’ 등 문화 통제 법률을 제정하고 각종 심의 기구를 만들었어. 이어 1972년 10 월 유신이 선포된 ‘긴급조치 시대’에는 미풍양속을 보존하고 퇴폐 문화를 추방하겠 다며 모든 음반과 영상매체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지. 그때 많은 노래가 금지됐는 데,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불신 조장’,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은 ‘가사 전달 미흡과 창법 미달’ 이 사유였어. 장난 아니고 진짜로.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은 딴 세상 이야기였다니까. 1987년 6월항쟁으로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졌고, 되찾은 민주주 의는 대중문화에도 자유의 바람을 몰고 왔어. 이제 좀 그림이 그려지니? 현재 극심한 ‘빈부격차’를 통렬하게 그려낸 <기생충>의 쾌거 뒤에는 자유를 향한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사실 말이야.
다시 읽는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
101년, 우리 역사와 함께 굴곡졌던 한국 영화
우리나라에서 영화는 손쉽게 즐기는 대중문화이면서, 시대를 반영 하는 기록이기도 해.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문물 중움직이는 사진 즉 ‘활동사진’이 영화의 시작이었지. 이후 지금까지 대중문화의 꽃으로 자리 잡았어.
우리나라가 만든 첫 영화는 1919년에 제작된 <의리적 구토>를 꼽지만 영화를 섞어 상영한 연극인 인쇄극이라 최초는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지. 한국 영화 101년의 흐름이 궁금한 너를 위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인정받은 영화들을 잠시 소개하자면 60년대에는 한국의 히치콕이라 불리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 등 작가주의 작품이 등장했고, 70 ~80년대 문화 암흑기에는 <고래사냥> <바람 불어 좋은 날> 등 고도 성장 뒤불안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블랙코미디가 인기를 얻었어. 90년 대에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며 다양성이 보장되고 자본이 유입되면 서, 한국 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은행나무침대> <쉬리> 등의 다양한 소재의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가 제작됐고 영화인들의 호평을 받았지. 2000년대 초반에는 강우석 감독의 <실미 도>가 한국 영화 사상 첫 1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 영화 시대’를 열었고 그 뒤 박찬욱과 봉준호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세계가 주목한 감독들의 작품이 대거 쏟아지기 시작했어.
세계가 주목하는 ‘로컬 시상식’ 아카데미
눈을 돌려 아카데미를 살펴보자. 아카데미는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와 더불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행사임은 분명해. 그런데 이름을 들여다보면 앞의 세 영화제는 ‘Festival’이지 만, 아카데미는 ‘Award’야. 모두 작품상 등을 시상하지만, 영화제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면, 아카데미는 좋은 작품에 포상을 주는 데 방점이 찍혀 있어. 실제 영화제에는 작품의 출품국 제한도 없고, 제작한 나라에서 개봉하기 전인 작품들도 자유롭게 출품되고, 시상식 후보에 꼽히지 않아도 다양한 행사를 통해 영화 수출입이 이루어지지. 수상 작도 매년 바뀌는 심사위원단이 선정해.
반면 아카데미는 전년도에 발표된 미국 영화와 미국에서 상영된 외국 영화로 대상이 제한되고, 전 세계 수천 명의 영화인으로 구성된 회원들의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 돼. 그렇다 보니 아카데미는 ‘달랑 국제영 화상 1개 부문 준다고 국제영화제로 봐야 하냐?’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었고, 오직 미국인을 위한 미국만의 영화제라는 인식이 강했던 게 사실이야. 봉 감독도 한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20년간 한국 영화는 영향력을 행사했는데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느 냐”는 물음에 “별것 아니다. 아카데미는 국제적인 영화제가 아니라 로컬 시상식”이라고 답해 반향을 일으켰어.
봉 감독의 말대로 아카데미는 한 나라의 로컬 시상식일 뿐인데 왜 사람들은 매년 그토록 열광하는 걸까? 대한민국도 1963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부터 <기생충>까지 아카데미에 총 31번의 도전을 감행했고 말이야. 답은 바로 ‘미국’이니까! 현재 전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은 미국이라는 데 이견을 낼 친구는 없을 거야.
한걸음 더 생각하기
봉준호의 <기생충>, 노력과 기회가 만나 새 역사를 쓰다
감독상에 호명된 뒤 봉 감독은 “어릴 적부터 영화를 공부하며 새겼던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란 말인데 그 말을 한 분이 바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라며 함께 후보에 오른 거장 감독을 향한 존경을 표했어. 감격 어린 미소로 화답하는 스콜세지와 봉 감독을 향해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지. 가장 한국적인 영화 <기생충>이 창의적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를 매료시킨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사회라면 피할 수 없는 ‘양극화’라는 묵직한 주제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통용 됐기 때문일 거야.
한국 사회의 변화도 이번 수상에 밑거름이 됐어. 한국 영화의 역사는 군부독재 체제로부터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한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건 이미 앞서 설명했지. 군부독재로 억압받던 한국 사회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되찾으면서 한국의 대중문화, 즉 오늘날 전 세계가 잘 알고 있는 BTS로 대표되는 케이팝과 영화 산업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어. 그 뒤 1998 년 국민의 정부는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가 예산의 1% 를 문화에 투입하는 정책을 취했고 이는 한국 영화 산업의 양적, 질적 성장을 가져왔지. 또한 영화의 사전 검열과 각종 규제가 철폐되 면서 다양하고 자유로운 소재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스크린 쿼터 축소 후 경쟁력까지 갖추면서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등장하는 등 우리 영화 시장은 눈부신 성장의 길을 걷게 됐어.
아카데미의 변화를 위한 도전도 이에 한몫했어.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라고 표현될 만큼 백인 중심의 보수 성향이 강했던 아카데미가 외국어영화상을 국제영화상으로 변경하며 미국 백인들만의 잔치가 아닌 ‘다양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거야. <기생충>이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국제영화상 수상작이 된 건 안 비밀!
문화 강국은 자율성이 보장될 때 가능
과거 백범 김구 선생님은 가장 정확하게 문화의 힘을 표현하셨어.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부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선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주연 배우 송강 호, 투자자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모두 지난 정부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물들이야. 봉 감독은 ‘사회 저항을 부추기는 인사’로, 배우 송강호는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로 블랙리스트에 올랐지. 만약 이런 일이 이어져 이들의 활동이 계속해서 제약을 받았더라면 <기생충>은 오늘날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야. 예술에 있어 독립성과 자율성의 보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대한민국이 문화 강국임을 보여준 자리였어. 눈과 귀가 즐겁고, 자부심까지 안겨주는 우리 문화. 계속 같이 누리고 전해주기 위해선 우리의 노력도 필요해. 김구 선생님의 말씀대로 문화 강국으로서 이 세상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나라가 되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눈과 귀를 열고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을 지켜내며 다름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지녀야할 거야. 제2, 제3의 봉준호, 차세대 BTS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예술에 권력과 정치의 억압이 개입하는 ‘블랙리스트’ 같은 폭력이 결코 허용돼선 안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해.
문화예술은 자유 속에서만 깊이 뿌리 내릴수 있음을 꼭 기억하자!
내일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