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의도와 미학적인 가치와는 별개로 세상에서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건축물이 ‘최악’의 범주에 들어간다. 미(美)라는 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인지라 ‘세계 최악의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건물’로 칭해도 좋을 것 같다.
건물 둘레에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류경 호텔이나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아틀란티스 호텔의 터무니없는 조잡한 장식에 감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흉물을 파괴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박수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1위 류경 호텔(북한 평양)
북한의 장기 독재 정권 아래 인민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한쪽에선 북한의 의도와는 달리 전세계적으로 우스운 구경거리가 생겼다.
피라미드도 아니고 우주선도 아닌, 공상 과학의 악당 소굴과 같은 이 330m 콘크리트 건물은 현 정권의 과시욕을 잘 보여주는 본보기다. 남한이 1988년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북한은 이에 질세라 호텔 건립을 시작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빈곤한 북한은 이 프로젝트의 자금을 마련할 수 없게 됐다.
20년 넘게 흉물로 남아있던 호텔은 이집트 기업이 투자에 나서면서 2008년 재개됐고, 북한의 영원한 지도자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맞춰 2012년 4월16일 부분적으로 영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공사 재개를 통해 평양은 인기 관광지로 거듭나기를 꾀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미국 패션지 등은 객실 3000여개의 이 호텔을 흉물스런 건물 상위에 올려놓았다.
2위 아틀란티스 호텔(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이웃 도시인 아부다비의 긴급 구제 지원과 두바이의 기후․자연환경․인프라 등을 기반으로 두바이는 2009년도 경제위기를 무사히 극복하고 평정을 되찾는 중이다.
무분별한 개발 욕구의 상징으로 보이는 두바이의 과거 모습에 향수를 느낀다면 아틀란티스 호텔을 추천한다.
야자수 모양의 인공 섬 팜주메이라(Palm Jumeirah)의 끝에 위치한 이 거대한 호텔은 아라비안나이트와 1980년대 TV 드라마 <다이너스티>에다가 분홍빛 콘돔을 조합해놓은 듯한 불경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2008년 말 어마어마한 축하연 비용을 들여가며 개장한 호텔은 일류 레스토랑과 훌륭한 워터파크를 자랑하지만 외관은 상처 입은 건물같이 보인다. 호텔 개장식에 사용된 불꽃놀이 화약이 무려 10만개로 2008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사용한 화약의 7배나 된다니.
3위 루마니아 의회궁(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엄청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 건물이 혐오스러운 이유는 그 거대함 때문이 아니라 후원자이자 루마니아 전 대통령이었던 니콜라에 차우세스쿠의 허영심과 광기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붕괴 끝에 아내 엘레나와 함께 차우세스쿠는 아무도 슬퍼해주지 않는 분위기에서 총살되었다.
또 하나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은 차우세스쿠가 정치 및 행정 청사로 구상했던 바대로 거대한 신고전주의 건물의 건설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방이 1100개나 되고 지상 12층과 여러 지하층에 방이 1100개. 더욱 불행한 일은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주택 3만 채와 교회 28곳 등 부쿠레슈티의 다른 역사유적들이 철거되었다는 점이다.
한때 스탈린주의의 위대함을 상징했던 건물이 최근 BBC의 한 프로그램 진행자가 건물의 지하 터널을 자동차를 타고 지나감으로써 깊게 숨겨진 모습이 세상에 공개됐다.
4위 지슈코프 텔레비전 타워(체코 프라하)
216m에 이르는 타워는 일부러 문제점을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도시에서 TV탑 설계를 맡은 건축가가 우주 왕복선 발사대를 베낀 것이 의문스럽다는 것.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1992년 완공과 동시에 프라하 주민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콘크리트와 알루미늄 구조물이 주변의 역사적 풍광과 부조화를 이룬다는 것. 억지를 써도 호의적인 평가가 불가능할 만큼 인상적이지도 상징적이지도 못하다는 것.
흥미롭게도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이 타워가 세워질 당시에는 악명 높은 공산당 서기장 미로스 야케스를 의미하는 ‘Jakesuv prst(야케스의 손가락)’이라고 불렸던 적도 있다는 것.
5위 음악 박물관(미국 시애틀)
훌륭한 음악은 열렬한 흥분에서 가슴 찢어지는 우울함까지 다양한 감정을 일깨운다.
그런데 이 건물은 가끔 취향이 독특한 주정뱅이들이나 감동할 법한 예술행위에 바쳐질 방대한 규모의 실패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려한 색감의 거대한 얼룩이 드리워진 철재 및 알루미늄 건물로 인해 설계자 프랭크 게리의 명성은 말년의 엘비스 프레슬리 급으로 떨어졌다나.
시애틀 출신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가 공연 후 기타를 부수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색적 디자인. 하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총천연색의 심장 절개 수술 장면 같은 결과물은 투자자 MS사의 억만장자 폴 앨런에게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을 것.
건물 내부에 모노레일이 지나다닌다니 관람의 편리함은 있을 것이다.
6위 호치민 묘(베트남 하노이)
호치민이라는 이름에는 ‘빛을 가져오는 사람’이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그의 마지막 쉼터가 된 이 거대한 대리석 건물에서 빛을 가져올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열정적인 성격을 가진 존경 받는 베트남의 전 지도자는 칙칙한 장소에서 방부제에 취해 수십년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그가 소망했던 간단한 화장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무시되었다. 사회주의의 불꽃을 유지하고자 생명도 없는 그를 건물의 차가운 석조 속에서 영원히 보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구조 자체는 분명 공통주택이나 연꽃 등의 베트남 전통을 떠오르게 하지만 잔인한 관광객들은 이 건물을 그리스 로마 시대의 거대한 공중 화장실과 비교한다.
호치민은 유언에서 매장보다 화장이 훨씬 위생적이며 농지를 절약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지만 후대들은 죽은 자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7위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영국 리버풀)
공산 체제뿐만 아니라 서방에도 끔찍한 도시 건축 사례가 몇 가지 있다. 1960년대 후반에 설계된 영국 리버풀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그 예에 해당한다.
천국의 휴식이 연상되는 신비로운 이미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 성당은 거대한 콘크리트 텐트에 가깝다. 덕분에 현지에서는 ‘패디의 천막’(패디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를 가리키는 비어)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대성당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불운했다. 에드윈 러타인스 경의 설계는 과도한 비용의 이유로, 아드리안 길버트 스코트 경의 설계는 훌륭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했다. 결국 이 공사는 프레데릭 기버드 경에게 넘어가 현재까지 그의 완성작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루미늄 지붕에 누수가 발생하고 모자이크 타일에 결함이 발견되자 대성당 측에서는 기버드 경에게 1300만 파운드를 청구했다. 신기하게도 성당측은 건물의 실제 설계에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8위 포틀랜드 빌딩(미국 포틀랜드)
1980년대는 패턴 스웨터와 어깨 패드가 유행했던 취향이 독특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미국 오레곤주의 새 시청사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설계를 채택한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포스트 모던 양식의 거대한 석재 건물에는 화려함과 상상하기도 힘든 지루함이 혼재되어 있다. 작은 창문으로 인해 쾌적함이란 없는 감옥과 같은 느낌을 주는가 하면, 웅장함과 현대적인 느낌을 위해 마련된 반짝이는 푸른 유리와 지나치게 과시적인 테라코타 벽기둥으로 결국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1990년 마이클 그레이브 회사가 이 건물의 로비 및 푸드코트의 리모델링 작업에 입찰했다. 당시 한 직원은 ‘마이클은 이 도시에 빚진 기분일 거’라고 말했다나.
9위 방원 빌딩(중국 선양)
이미 소개한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이 건물 역시 유명하지 않았다면 그저 독특한 건물로 여겼을 것이다. 타이완에서 타이베이 101 초고층 건물이라는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던 건축가 리쭈웬은 중국의 전통 주화를 네모지게 도려낸 형상으로 오늘날의 현대식 사무용 건물에 문화를 융화시키고자 했다.
아쉽지만 동양과 서양의 만남으로 인해 바삭한 칩에 끈적한 중국식 카레 소스를 잔뜩 발라 놓은 것과 같은 결과물이 탄생했다. 건물의 원형 설계에서는 조화를 느끼기 어려우며 판유리 창과 콘크리트 층은 우울할 정도로 평범하다.
그런데 이 건물이 현지 정당의 주요 인사들의 마음에 든 것이 분명하며, 여러 차례의 공정한 심사에 의해 선양 최고의 건축물로 뽑혔다는 사실이 궁금증을 부추긴다.
10위 페트로브라스 본사(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페트로브라스의 뻔뻔함에 경의를 표해야 하나. 기업을 대표하는 본사를 이처럼 끔찍한 건물에 입주시키기로 한 결정은 다국적 기업에서 있을 만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남미 최대의 석유회사에서.
레고 블록과 폭격을 연상시키는 외관을 보고 있노라면 페트로브라스에서 이 음울한 건물을 채택한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도심 센트로 지역은 어두워지면 걸어다니기에 위험하다. 이런 지역적 맥락에서 보면 전쟁에 찌든 빌딩 느낌이 최소한의 수긍은 간다.
적어도 건물에는 문제가 없으나 인근의 대성당 또한 점잖지 못한 모습 때문에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그린닥 johnyksu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