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명 병원도 급하면 “살려달라” SOS
지난해 12월 일본 홋카이도 대학병원 의료진이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 교수에게 다급히 SOS를 쳤다. 홋카이도 대학병원은 미국 피츠버그 대학병원에서 20년 근무하다 모국으로 돌아온 이식수술의 세계적 대가 사토르 토도 교수가 자리를 지키는, 간 이식 분야 일본 5대 병원의 하나.
이 병원 의료진은 “러시아에서 온 26세 청년이 알코올성 간경변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맡아줄 수 없느냐”고 급히 요청했다. 환자는 몸피가 크지만 간을 제공하려는 어머니와 이모는 작아서 각각 간을 이식을 할 수가 없으므로, 2명의 간을 떼어내 환자에게 이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간을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법은 이승규 교수가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을 받고 있는 ‘분할 간이식.’ 이 교수는 “빨리 보내라”고 응답했다. 청년은 한국에서 ‘분할 이식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삶을 건졌다. 어머니와 이모는 “한국의 의술이 이렇게 뛰어난 줄 몰랐다”면서 “처음부터 한국으로 올 텐데…”하고 감탄했다.
며칠 뒤 이번에는 베트남 호치민시의 쩌라이 병원에서 긴급요청이 들어왔다.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서울아산병원 소속 전문의들이 “공산당 최고위급 간부가 간염이 악화돼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보내도 되겠느냐”고 급히 보고했다. 환자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베트남 항공으로 옮겨져 서울아산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다. 그는 기적적으로 삶을 건진 뒤 “한국에 큰 빚을 졌다”고 말하고 되돌아갔다.
지금까지 3400여명에 시술, 성공률97%로 세계 최고
이승규 교수는 살아있는 사람의 간을 환자의 간에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분야’에서 세계적 대가로 꼽힌다. 지금까지 3400여명에게 생체 간이식을 시행했고 성공률은 97%에 이른다. 세계 최다, 세계 최고 성공률로 2008년 미국 ABC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1994년 국내 최초로 생체 간이식에 성공한 이래 이 분야에서 굵직한 성과들을 잇달아 내왔다. 99년에는 우엽을 효과적으로 이식하는 ‘변형 우엽 이식술’을 개발했고 이듬해에는 2명의 성인에게서 간 일부를 떼어내 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법을 개발했다. 2001년에는 살아있는 두 사람의 간 일부를 떼어 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 모두 세계 최초의 개가였다.
이 교수는 목욕탕에 가면 사람들이 겁을 먹는다. 근육질 덩어리의 몸에 팔뚝이 웬만한 사람 허벅지만하다. 가슴에는 20㎝의 칼자국이 있다. 칼자국은 ‘사고의 흔적’이 아니라 5살 때 결핵균에 심장이 감염돼 일본 도쿄 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살아난 자국이다. 당시 이 교수는 일본에서 이 병의 첫 수술 성공사례로 생명을 건지게 됐다.
10시간 넘는 수술 견디려 틈만 나면 운동...근육질 몸매
이 교수의 몸이 근육질인 것은 의사가 되고나서 정년퇴직 때까지 칼을 놓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운동을 거듭한 결과이다. 이 교수는 40대부터 “간 이식은 10시간 이상 지속되는 수술이어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술할 수가 없다”면서 틈만 나면 운동을 했다. 아침에는 집 부근 운동장을 뛰고 나서 철봉대에 매달렸다. 지금도 수술 도중 성형외과 의사들이 동맥과 미세혈관을 연결하는 20여 분 간 수술실 안의 트레드밀 위를 뛴다. 이틀에 한 번은 연구실에서 팔굽혀펴기를 한다. 최소 100번.
이 교수는 경기고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가 “너를 살려준 의술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고 설득하자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의대로 갔다. 의대에서는 흉부외과를 선택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길이 많은 외과에 들어갔다.
개 100마리로 연습 뒤 첫 수술 도전...어머니 장례식날도 수술
캐리커처=미디어카툰
“간은 신비의 장기
떼어내도 다시 생겨
공여자와 평생 유대감”
이 교수는 1978년 스승인 고 고창순 교수의 권유에 따라 ‘당대의 칼잡이’ 민병철 원장의 제자가 됐다. 민 원장은 미국 뉴잉글랜드 메디컬센터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병원이름을 신영(新英)으로 지은 ‘당대의 칼잡이’로 고대 구로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설립 때 기틀을 다진 의사. 이 교수는 민 원장을 따라 83년 고대구로병원, 89년 서울아산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교수는 이때만 해도 주로 대장항문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였다.
민 원장은 1991년 이교수를 불러 “간 이식을 하라”며 매주 개 한 두 마리씩을 실험용 동물로 사줬다. 이 교수는 100마리의 개를 대상으로 밤낮없이 동물실험을 한 뒤 첫 간이식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낙담할 여유가 없었다. 두 번 연거푸 수술일정을 잡았기 때문. 다행히 두 번째에서는 성공했다. 생체간이식 때에도 2명 일정을 연거푸 잡았다. 첫 환자는 2개월 더 살았지만 두 번째 환자는 12년을 생존했다.
그는 일과 환자에 묻혀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10여 년 동안 1주 최소 5번 12~20시간씩 수술해야했기에 병원을 떠날 수가 없었다. 수술이 없을 때에는 환자의 수술계획을 짜느라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응급환자가 있으면 한밤에도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이 실패해 환자가 세상을 떠나면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 때문에 가족과의 외식도 병원 구내식당에서 해야만 했다. 1998년 어머니가 대구 동생 집에 다니러갔다가 갑자기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대구의 의료진을 원망할 틈도 없었다. 생명이 시급한 환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장례식날 밤 그는 수술대로 향했다.
“항상 깨어 있으라” 제자들에 촉구...최근 고난도 수술법 개척
요즘에는 팀의 의사가 8명으로 늘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제자들은 이 교수에게 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모두 다른 병원에서 탐을 내는 고수들이다. 이들이 팀을 이뤄 한 해 60여명에게 뇌사자간이식, 330여명에게 생체간이식을 한다. 생체간이식은 공여자와 수혜자 모두 세밀한 수술을 해야 하므로 전체적으로 700여명에게 수술을 하는 셈이다. 이 교수는 매달 한 번씩 제자들에게 “항상 깨어있어라.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환자의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지금까지 그의 삶이 그래왔다. 덕분에 수많은 간경변증, 간암 환자가 새 생명을 얻었다.
이 교수는 요즘 분할 간이식과 함께 ‘혈액형 부적합 생체간이식’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원래 간을 이식하고나면 면역체계가 남의 간을 ‘적’으로 인식하고 파괴하려고 한다. 그래서 수혈 때와 마찬가지로 혈액형이 적합해야 이식이 가능하다. 혈액형이 맞지 않을 때 간을 이식하면 급성 거부반응이 와서 생명을 잃게 된다. 하지만 생체간이식은 주로 가족이 간을 공여해서 이뤄지는데 20~30%는 대상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2002년 일본 게이요대와 교토 대 등의 의사들이 이론상으로 급성 거부반응을 없애면 이식이 가능하다며 ‘혈액형 부적합 이식’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듬해 우리나라에서도 한 병원에서 이식을 시도했지만 환자의 삶이 연장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이 수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가, 2008년 권투선수 최요삼의 사망 이후 뇌사자 기증이 늘면서 응급 상태가 오면 뇌사자 간으로 수술할 길이 생기자 초급성이 아닌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심스럽게 혈액형 부적합 생체간이식을 시도했다. 그는 일본 방법의 문제점을 보완해서 수술 2주전에 환자에게 특별한 주사를 놓고, 1주 전에 초급성 거부 반응과 관계있는 항체를 제거한 다음 이식수술을 시행했다. 학회의 일부 의사들은 “이승규 교수가 자만해서 지금까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수술을 한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교수가 옳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250여명에게 수술해서 98%의 성공률을 보여 다른 의사들에게 새 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년 해외서 무료 시술...“정년 넘겨도 수술방에 남을 것”
이 교수는 “지금까지 여러 길에서 고민했지만 서울아산병원으로 온 것이 가장 잘 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서울아산병원은 원래 서울중앙병원이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개원을 앞두고 “이 병원은 공익적 목적을 위해 설립하며 현대의 이름도 내 호도 쓰지 말라”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정 명예회장 사후에 이름에 아산이 붙으며 이름이 바뀌었다. 이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정년퇴직 때까지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칼을 놓지 않기 위해 온몸을 바치다 세계 최고의 대가가 됐다.
그러다보니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남았다. 이 교수는 이 병원의 전폭적인 지원에 따라 매년 몽골과 베트남 등에서 무료 이식수술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해야 한다. 내년에는 세계간담도췌장학회의 조직위원장으로서 세계 각국의 의사 3000여명을 초청해 학술 경연의 마당을 펼친다. 사우디아라비아 아펙스 메디컬 그룹과 함께 서울아산병원의 이름으로 오만 살랄라에 장기이식 전문병원을 짓는다. 이 때문에 정년을 넘겨도 서울아산병원의 수술방을 지킬 가능성이 크다. 이 병원 식구들은 “이 교수가 70세까지 우리 병원의 성장과 함께 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승규 교수에게 묻다
1. 간이식은 누가 받나요?
“갑자기 간기능이 떨어져서 1, 2주안에 사망할 위험이 높은 간질환자는 응급으로 수술 받아야 한다. 뇌사자의 간은 응급환자에게 우선적으로 배정된다. 간경변증, 간암 환자 중 난치성 복수, 반복되는 복막염, 간성 혼수, 정맥류 출혈 등 때문에 다른 치료법이 듣지 않아 1년 이상 살기가 힘든 환자나 간경화가 있는데도 절제가 불가능한 간암 환자는 계획에 따라 이식수술을 받는다. 어린이는 선천성 간경변증, 담도폐쇄증, 태어날 때부터 간에 효소가 부족해 간에 독성물질이 쌓이는 ‘대사성 간기능저하증,’ 전격성 간기능 저하증 등이 대상이다.”
2. 수술 받는 환자의 나이는 상관이 없나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교과서에서 간이식 수술 대상이 60세였는데, 2000년대 들어와서 65세까지 올랐다. 요즘에는 한 달에 1, 2명 정도 70대도 수술한다. 10여 년 전에는 환자 중 40~5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50~60대가 많다. 바이러스 치료제가 많이 등장해서 간경변증으로 가는 시기가 늦춰진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3. 공여자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는 없나요?
“이식수술의 대원칙은 아무리 급해도 공여자의 건강에 위험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은 좌엽과 우엽으로 나눠져 있는데 한 개가 없더라도 나머지가 2~4개월 커져 좌우엽이 되는 ‘신비의 장기’다. 생체간이식을 통해 간의 일부를 이식해도 공여자의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가족끼리 간을 주고받으면 그 유대감은 평생 간다.”
4. 공여자의 조건은?
“간염 바이러스가 없어야 하고 간 기능이 정상이어야 한다. 또 우엽과 좌엽의 비율이 적당해서 수술 뒤 충분한 간이 남아 있어야 한다. 제공자가 수혜자보다 몸피가 크고 이에 따라 간이 클수록 성공률이 높다. 제공자의 간이 작을 경우 두 명 것을 한꺼번에 한 사람에게 이식하기도 한다.”
5. 이식수술 하려면 공여자와 수혜자 혈액형이 적합해야 한다던데….
“혈액형이 다르면 급성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는 수혈할 때와 같은 원칙에 따라 간이식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원칙은 아래와 같다.
수혜자 혈액형 |
공여자 혈액형 |
A |
A, O |
B |
B, O |
AB |
A, B, O, AB |
O |
O |
그러나 지금은 수술 전에 급성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항체를 제거하기 때문에 혈액형이 부적합한 사람끼리도 이식이 가능해졌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지는 않고 급성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에게서 시행한다. 서울아산병원에서는 한 해 생체간이식 수술 330건 가운데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이 80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