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1902년 木板本으로 인출한 진주의 선비 하송일(初名 河頌逸, 改名 河友賢, 字 康仲, 호 豫菴) 선생의 문집 《예암선생문집(豫菴先生文集)》 5卷 2冊 완질로 권두에 乙未(1895)許愈序, 권말에 乙巳(1845)...河龍運謹書. 歲壬寅(1902)郭鍾錫跋이 있다. 상태 양호하다.
<크기> 20.6×30.8cm
[참고]
저자 하우현(河友賢)=하송일(河頌逸)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初名 하송일(河頌逸), 자는 강중(康仲), 호는 예암(豫菴). 석계(石溪) 하세희(河世熙)의 현손이다. 나이 31살에 죽었으나 당시에 작은 안자(顔子)라고 칭할 정도로 학덕이 높았다. 후산(后山) 허유(許愈)가 그 묘에 표(表)하여 이르기를 ‘천자(天資)가 수미(粹美, 순수하게 아름답다)하여 등이(等夷)에서 훨씬 뛰어났고 여기에 조예가 정심한 것을 더했으며 행의가 순무하였다.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에도 우애가 깊어 가정에서 모자람이 없었으며 충신으로 고을사람들이 믿음을 가졌으며 그의 명덕과 인물과 성역(性易)의 의의를 논한 여러 가지 설명은 스승을 연유하여 이어받은 것이 아니면서도 홀로 경지(經旨)에 계합(契合, 부합)하였다’라고 하였다.『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예암선생문집(豫菴先生文集)
5권 2책. 목판본. 1902년 현손 영수(永秀)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허유(許愈)의 서문, 권말에 하용운(河龍雲)·곽종석(郭鍾錫)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은 시 126수, 권2는 소(疏) 1편, 서(書) 13편, 서(序) 2편, 기(記) 2편, 권3은 잡저 11편, 권4는 잡저 1편, 제문 2편, 애사 2편, 상량문 1편, 권5는 부록으로 행장·묘표·묘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의「응지소(應旨疏)」는 1796년(정조 20) 시무(時務)를 건의한 것으로, 개정학제(改定學制), 절약재용(節約財用) 등 주로 문교·경제·사회 문제에 역점을 둔 글이다. 잡저 가운데 「이도경대학의의변(李道經大學疑義辨)」은 본연지성(本然之性)과 명덕(明德)에도 기(氣)가 함께 하고 있다는 이도경의 이론을 반박한 글이다.
그는 인(仁)·의(義)·예(禮)·지(智)는 이(理)며 기(氣)가 아직 참여하지 않은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요체로서 기가 발하기 전에는 그 본원을 함양하며, 기가 이미 발한 뒤에는 그 기미를 살펴서 동정과 시종을 관철해야 함을 들어 주리적(主理的)인 견지를 천명하고 있다.
또,『중용』의 성명도(性命圖)를 다시 그리고 해설하였는데,「중용전도(中庸全圖)」는 경(敬)을 중심으로 그림으로 해설한 것이다. 그리고「미발재중도(未發在中圖)」는 체(體)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희로애락을 표시, 그 관계를 해설해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를 밝힌 글이다.
그는 사람과 동물의 성(性)이 같은 중에도 다른 것이 있고, 다른 중에도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이 모두 이(理)라고 강조하였다. 「역의의(易疑義)」는『주역』64괘의 의의를 각각 해석한 것이다. 상경(上經)은 누락되고 임괘(臨卦)부터 미제괘(未濟卦)까지 28괘만 남아 있다. <끝>
출처>한옥션 문화예술 종합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