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갓파더' 들고 돌아온 심형래
내가 출연하고 만든 작품 88편 코미디 영화 제작환경 열악
그래서 할리우드 진출한 것 소니와 '디워2' 제작 논의 중
'심형래'라는 고유명사를 편견 없이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한 극단(極端)에서는 할리우드를 향한 '도전정신의 화신'으로 추앙하고, 다른 극단에서는 애국심을 영화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마케팅의 달인'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심형래(52)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디 워'(2007) 같은 SF 장르가 아니라, 자신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코미디 '라스트 갓파더'다.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13도까지 곤두박질쳤던 24일, 삼청동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수많은 TV 예능프로그램이 그에게 보여준 따뜻한 환대와의 형평을 고려, 짐짓 차가운 질문 위주로 골랐다. 화신과 달인, 혹은 '영화인'과 '사장님'(영구아트)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때로는 갈팡질팡하고 때로는 종횡무진했던 그의 대답들.
―심형래라는 이름에서 사람들은 투지와 근성을 먼저 떠올리고, 영화 이야기는 뒤로 밀린다. 영화감독으로서는 섭섭한 일일 텐데.
"솔직히 '감독'이란 표현도 부담스럽다. 나는 차라리 주식회사 영구아트의 사장이란 호칭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출연하고 제작한 영화 다 합치면 모두 88편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뒷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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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형래 감독은“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함께 보는 코미디를 만들자는게 내 꿈”이라면서“그런 점에서 슬랩스틱 코미디는 인종과 언어, 남녀노소 구분없이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당신이 영화를 뒷전으로 놨다는 뜻이 아니라, 대중이 우선 떠올리는 심형래의 이미지가 그렇다는 의미다.
"우선 나는 뼛속까지 개그맨이다. (1982년) 데뷔한 이후, 시청자들에게 늘 웃음을 드리며 살았다.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딴따라'였다. 딴따라 중에서도 제일 천박하고 최하급인 게 코미디였다. '미스터 빈'은 세계 어느 비행기를 타도 볼 수 있지 않나. 우리라고 해외 코미디와 붙어서 지라는 법 없지 않나."
―어쩌면 지금의 강호동·유재석보다 전성기의 당신은 더 화려했다. 그 분노가 영화로 옮긴 결정적 계기였을까.
"일종의 콤플렉스라고 불러도 어쩔 수 없다. 당시 코미디 환경은 너무 열악했다. 코미디 영화 제작환경은 말해 더욱 무엇하고. 아직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외국에 나갈 때마다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더플백 가득 실어 왔다. (유럽의 컬러TV 방식인) PAL 방식이라 하나도 볼 수 없었지만(웃음). 그런 점에서 할리우드가 너무 부러웠고,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디 워'는 한국영화로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극장(2277개)에서 개봉했다는 기록을 세웠지만, 실제 한국에 들어온 돈은 거의 없다고 들었다.
"정확한 숫자를 밝힐 수는 없지만,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디 워'의 레퓨테이션(명성) 덕분에 이번 영화 '라스트 갓파더'를 찍을 수 있었다. '디 워'가 쌓은 신뢰 없이 오스카상 후보(1992년 남우조연상 후보·'벅시')였던 명배우 하비 카이틀(Keitel)을 캐스팅할 수 있었겠나.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도 미국에 처음 갔을 때는 돈 못 벌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많은 관객(840만)만큼이나 당시 논란과 소음도 많았다. '디 워'의 교훈은.
"뭐, 그때 일부 평론가나 영화잡지는 '쓰레기'라는 둥 험한 욕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다 고마운 비판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시나리오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지금 무협작가 '금강'이 '디 워 2'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디 워' 때 미국 DVD 판권을 행사했던 메이저 배급사 소니와 지금 '디 워 2' 제작을 논의 중이다. 모든 게 '디 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중에게 심형래는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거나 너무 과소평가된 것 아닐까.
"나는 '신지식인'도 아니고, 무슨 '화신'도 아니다. 그냥 인간 심형래일 뿐이다. 예술가도 연예인도 사기꾼도 아니다. '영구와 땡칠이' '용가리' 때 빨간 내복 입고 머리에 '화이바' 쓰고 영화 찍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분명 발전한 것 아니냐. 슬랩스틱은 관객의 나이, 장르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코미디다. 알고 보면 미국 코미디는 다 섹스와 욕설이 바탕에 깔려 있는데, '라스트 갓파더'는 그렇지 않다.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 이야기 기억하는가.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시도하지 않았다면 비행기는 없었다. 부디 그런 애정의 시선으로 봐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