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시 제 목: "그리움이 머무는 집展"
■ 전 시 작 가: 이윤겸
■ 전 시 일 정: 2008년 08월 13일(수) ~2008년 08월 19일(화)
■ 전 시 장 소: 사진전문갤러리 "gallery NoW"
■ 연 락 처: 사진전문갤러리 “gallery NoW" 02-725-2930 팩스:02-725-6999
■ 주 소: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2-13 성지빌딩 3층 사진전문갤러리 “gallery NoW"
■ 홈페이지: www.gallery-now.com
■ 개관시간 10:00 ~ 18:00 ( 단, 마지막 화요일 12시 까지 관람가능 )
■작가소개 이윤겸( Lee Youn Gyeom)
이윤겸은 1953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교육대학과 한국방송통신대학 유아교육과를 졸업하였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 2004년 모범교사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1998년 사진공부에 입문하여 2004년 관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사진공부를 하면서 사진가 이종만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2005년, 동강 사진축제 초등학생 사진일기공모전에서 지도자상을 받았으며, 2006년 제16회 공무원미술대전 사진부문에서 입선하고, 라는 제목으로 기획전에 참가하였다. 현재 강릉 초당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으며, 사진그룹 ‘사진나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작가노트 오늘도 내 발걸음은 그 집을 향한다
강릉시 초당동에는 멋스럽고 아름다운 고택이 있다. 그 곳은 허난설헌 ․ 허균 생가! 오늘도 내 발걸음은 그 집을 향한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구름이 해를 가려도 운치가 있다. 특히 아침 햇살에 빛을 받은 따뜻하고 예쁜 흙담은 언제나 나를 유혹한다. 따뜻한 흙담, 나는 그것이 너무 좋다, 그 담에 기대어 있는 풀과 나무와 꽃들, 그리고 그림자. 이 고택의 여기 저기를 넘나드는 새, 나비, 잠자리, 청설모들도 정겹다. 나는 그 집에 가면 편안해진다. 꽃잎이 흩날리고, 낙엽이 흩어져 땅에 뒹굴 때도 내 마음은 촉촉이 젖어드는 그리운 그 무언가를 느낀다. 허난설헌의 짧은 생애가 너무 가련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녀의 시 속에는 너무도 거대한 세상이 담겨져 있다. 그의 천재적인 감성이 부럽기만 하다. 오랜 풍파 견디며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집을 나는 사랑한다. 이끼 낀 기와, 작은 쪽문, 남정네들이 드나들던 높은 솟을 대문, 모두 정겹다. 사랑채 문 높이 걸어 매고 대청마루에 앉아 목단 꽃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였을 남정네들과 안채 뒤뜰을 거닐며 꽃향기 속에 담소를 나누었을 여인네들…… 온갖 상상 속에 나도 그 뜰을 거닐어 본다. 그리곤 행복해 한다.
2008년 8월 이 윤 겸
■서문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집 차장섭(강원대 교수)
사람과 집은 하나
집은 사람을 닮는다. 집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의 ․ 식 ․ 주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이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은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집을 짓고 한곳에서 살면서 비로소 문화가 생겨났다. 집은 인간이 자신이 살 집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서 건축되었다. 좋은 재료와 집을 지을 땅을 구할 수 있는 경제력, 좋은 집터와 모양을 구상할 수 있는 안목, 자신의 구상대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기술력 등이 바로 집을 짓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이러한 요소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따라서 집은 짓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모습으로 지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의 수만큼 집의 모양도 다양하다. 사람은 집을 닮는다. 인간은 환경의 절대적인 영향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는 곳은 집이다.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생활하고 집에서 죽는다. 죽은 후에야 비로소 땅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집은 그 사람의 삶과 사상의 형성에 절대적안 요소이다. 온화하고 따뜻한 집이서 생활하면 성품도 따사롭고, 경직되고 반듯한 집에서 살면 바르고 꼿꼿한 기질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이 사는 집을 닮을 수밖에 없다. 사람과 집은 하나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과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따로 생각할 수 없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사는 집이 보이고,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모습이 느껴진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집과 사람을 하나로 인식하였다. 집안에 사는 사람은 집이며, 사람을 안고 사는 집 또한 하나의 인격체였다. 허균과 허난설헌이 살았던 집은 곧 허균과 허난설헌이다. 그들은 갔지만 그들이 살던 집은 그들의 모습으로 남아 그들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풍기고 있다.
꿈을 꾸던 여인, 허난설헌
허난설헌은 대대로 고관을 배출하던 양천 허씨 명문가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초당 허엽은 서경덕의 문인으로 경상감사를 지냈으며, 동서분당이 이루어졌을 당시 동인의 영수로 지명될 정도로 지명도가 높았다. 허엽은 슬하에 딸 셋과 아들 셋을 두었다. 전처 청주 한씨가 박순원과 우성전의 아내가 된 두 딸과 허성(許筬)을 낳았으며, 후처 강릉 김씨가 허봉(許篈)과 허난설헌(許蘭雪軒), 그리고 허균(許筠)을 낳았다. 허난설헌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허난설헌은 아름다운 용모만큼이나 문장이 뛰어난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다. 가문의 천재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일곱 살부터 시를 짓기 시작하였다. 오빠 허봉의 친구인 이달에게서 동생 허균과 함께 시를 배워 여덟 살에는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여자 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광한전은 선녀가 산다는 달세계의 궁전이며, 백옥루는 상제가 사는 궁전을 말한다. 허난설헌은 광한전에 백옥루를 짓는다면 자신이 그 건물의 상량문을 써야겠다는 세상이 놀랄만한 당찬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삶은 질곡의 연속이었다. 허난설헌은 15세에 김성립과 혼인하였으나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못하였다. 바느질이나 살림보다는 독서와 작문을 좋아했던 허난설헌은 시어머니의 눈총을 받았다. 고부간의 갈등으로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편 김성립은 명문가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상당한 문명을 얻기도 하였으나 여자와 술에 빠진데다 아내에게 열등감마저 지니고 있었다. 언제나 혼자였던 허난설헌은 고독하고 쓸쓸한 나날을 규방에 홀로 앉아 한 많은 시(詩)를 지으며 달래야 했다.
벌레는 슬피 울고 바람은 돌고 돌아 연꽃은 향을 잃고 달빛만 어리는데 가는 님 옷 짓는 손길이 불심지만 돋우네 (夜夜曲 1)
허난설헌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강보에 싸인 어린 아들과 딸을 잃은 것이었다. 사랑하는 딸을 잃고, 그 다음해에 아들을 잃었다. 남매를 나란히 묻고 가슴 아파하던 허난설헌은 뱃속에 있던 아이마저 잃었다. 친정집도 무너졌다. 오빠 허봉이 옥사로 종성과 갑산으로 귀양을 갔다. 유난히 동생을 아끼던 허봉은 서인과의 갈등으로 귀양살이를 하였다. 3년 뒤에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벼슬을 마다하고 온 나라를 떠돌아다녔다. 마침내 오빠 허봉은 그 높은 기개와 포부 그리고 재질을 지니고서도 불만스런 현실에 저항하면서 스스로를 학대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허난설헌은 꿈을 안고 저 세상으로 갔다. 현실에서 이어진 숱한 비극으로 결국 삶의 의욕마저 잃고 말았다. 독서와 시문으로 현실의 울분과 고뇌를 달래는 데에도 한계는 있었다. 허난설헌은 곱고 아름다운 꿈을 비정한 현실에서 펼쳐보지 못하고 가슴속에 꼬옥 안은 채 2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허난설헌의 꿈은 시(詩)로 승화되었다. 허난설헌의 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어(詩語)는 ‘꿈’이다. 허난설헌은 달과 별과 꽃과 바람, 그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는 것이 없을 만큼 다정하고 소탈하였다. 그러나 결혼이후 삶은 자신의 꿈을 펼치기에는 너무나 많은 속박과 장애의 연속이었다.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박힌 당시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의 뛰어난 재능은 오히려 인생을 힘겹게 하는 장애였다. 허난설헌은 그 장애를 넘어선 이상향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꿈이 냉혹한 현실속에서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다만 시를 통해 자신의 꿋꿋한 기질과 소신을 당당한 작품세계 속에서 펼쳐나갔다. 허난설헌의 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허난설헌의 시는 동생 허균에 의해 명나라의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왔던 주지번을 통해 중국에 전해졌다. 주지번은 ‘허난설헌의시는 속된 세상에 바깥에 있는 것 같다’고 극찬하면서 중국에서 『난설헌집』을 간행하였다. 허난설헌의 문집은 당시의 중국 낙양의 종잇값을 올려놓았다고 할 만큼 호평을 받았다. 이후 1711년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였다. 허난설헌은 시의 모습으로 집의 모습으로 그리움이 되어 우리들 마음속에 오늘도 숨쉬고 있다.
-중략-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답게
허난설헌 ․ 허균 생가는 참 아름다운 집이다. 풍수지리적인 자연적인 환경이 우리나라 최고의 집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주변은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미인송의 숲이다. 가장 한국적인 나무인 소나무 숲속에 가장 한국적인 우리의 집 한옥이 자리하고 있다. 집안에 있으면 푸른 하늘로 올라가는 당당함과 어머니의 품 안 같은 아늑함이 함께 있다. 멀리 한반도의 큰 줄기 백두대간은 웅비하는 기상을 솟아나게 하고, 바로 앞의 들판은 따사로운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행랑채 중앙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자형의 본채가 있다. 본채는 두 대문을 두어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한다.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된 사랑채는 둥근 원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정자를 옮겨와 지었기 때문이다. 안채는 겹집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부엌과 안방,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곡간채, 중간채, 문간채, 방앗간 등 다양한 건물들의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집 전체를 둘러싼 붉은 흙담은 그것을 배경을 피어나는 숱한 꽃들과 함께 허균 ․ 허난설헌 생가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허난설헌 ․ 허균 생가는 사람과 집이 하나가 된 참 좋은 집이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인간의 온기를 느낄 수는 없지만 집안 구석구석에는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았던 집은 그 주인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사람이 살았던 아름다운 집을 더욱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는 그 사람은 더욱 아름답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