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 불날 날씨: 봄비가 오지만 포근하다.
택견-기후학교-점심-청소-헤엄-마침회-6학년 영어
[영어-토마토 스파케티]
내일쯤 푸른샘 아이들과 민주에게 놀러가려했는데 민주가 내일 아침에는 온다고 해서 다행이다. 다 낫지는 않아 줄곧 가만히 누워있거나 앉아있겠지만 곁에서 자꾸 볼 수 있으니 참 좋다. 달마다 한 번 하는 기후학교도 오늘이라 마침회 빼놓고 하루 종일 1,2,3학년 함께 공부하는 날이라 형들과 오빠, 언니와 누나들과 더 친하게 된 푸른샘 하루다. 택견도 아래층 마루에서 바닥에 푹신한 깔개를 깔고 구르고 몸을 푸니 아이들이 아주 신이 났다. 기후학교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약속을 담은 서약서도 함께 그리고 쓰는 활동으로 선물도 받았다. 강산이는 오늘도 서약서를 혼자 쓰겠다고 선생을 부른다. 쓰고 싶은 말을 써 주면 혼자서 자기 힘으로 글씨를 쓰고 싶은 거다. 날마다 뿌듯함이 쌓여가는 강산이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승민이도 두 분의 활동보조 선생님과 서약서를 쓰고 쉬고, 정우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진지함을 쏟아내고, 지빈이는 서약서 앞을 예쁜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 발표도 모두 잘하는 푸른샘 아이들 선물도 받고 형들과 하루 종일 보냈지만 마침회 때 오늘 뒷산 못 갔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헤엄 시간에도 음파 호흡으로 물 속에서 날쌘 몸놀림을 뽐내고, 씻고 옷 입는 것도 알아서 척척 잘 하는 아이들이 많다. 승민이도 학교차타고 헤엄 가는 것이 좋은지 헤엄칠 때도 쓰기 싫어하던 모자를 잘 쓰고 잘 지냈다.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아프기도 하고 마음 낼 것도 많았던 푸른샘 아이들이 4월 들어 모두 몸과 마음이 단단해 감을 느낀다. 이번 주 계획했던 푸른샘 학교살이를 뒤로 미루게 됐다는 말에 모두들 아쉬워하는 표정이란. 학교살이를 기다리는 설렘이 무척 크다. 선생에게 부담을 팍 주는 푸른샘 아이들이다.
6학년 아이들과 첫 번째 음식 만들기를 했다. Cooking Class 자료를 들고 갔지만 벌써 아이들은 고대하던 토마토스파케티 먹을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이주 전부터 아이들과 음식 만들기 이야기를 나눈 끝에 토마토스파케티로 정하고 필요한 재료와 요리법을 알아오고 발표하고 저마다 재료를 맡아 가져온 것이니 그 설렘이 어떠할지 가늠이 된다. 옛날 5, 6학년 아이들과 함께 했던 영어 수업 일지를 다시 읽어보고 필요한 영어 표현을 정리해 갔지만 어서 만들고 싶어 하는 아이들 눈빛에 선생 마음이 흔들린다. 3월 줄곧 따라 말하고 줄줄 외우고 있는 Miss Mary Mack을 한바탕 외우고, 영어 사전 만들기와 쓰기 숙제를 확인하고 빠르게 음식 만들기에 필요한 조리법(Recipe)대로 일을 나누었다. 칠판에 음식 만들며 익힐 표현을 적어두고 함께 크게 읽어본 뒤 조리 도구들을 가져와 척척 시작하는 녀석들을 보니 역시 6학년답다. 준비해간 그림과 단어가 함께 나와 있는 음식, 남새(채소), 요리에 쓰이는 동작 동사, 맛을 나타내는 형용사, 수업 계획안 차례로 살펴보는 것을 아주 간단히 하는데 목청 큰 정빈이 역시 발음도 좋고 분위기를 띄워낸다.
세영이가 양파 껍질을 벗기며 Peel the onion을 함께 말하고, 다 벗긴 다음에는 정빈이랑 돌아가며 칼질을 하며 chop the onion을 함께 외친다. 사실 양파 껍질 까고 썰 땐 보통 눈이 매워 저절로 It's hot, No pain No gain. No pain No spagetti를 익힐텐데 눈이 매운 아이들이 없다. 요리 하면서 쓰는 말은 대개 동작과 재료, 도구 순서로 말하면 된다. Chop onions with knife. Put the bacon in the frying pan... 학교에 남아 있던 낮은샘 동생들이 문을 열고 형들이 만들 음식에 눈독을 들이고, 푸른샘 아이들은 왜 6학년만 하냐고 큰소리다. 옆방에서 영어하는 5학년들도 한 번 쓱 들어와 부러워하며 돌아간다,
버섯을 맡은 수빈이랑 윤영이는 chop the mushroom, 베이컨을 자르던 유찬이가 chop the bacon, slice the bacon 모두가 함께 말하며 토마토스파게티 재료 다듬기가 빠르게 되어간다. 빵을 굽는 근학이랑 toast the bread를 함께 말하고, 밖에서 면을 삶는 우진이랑 세영이는 boil the water, put the nuddle in the pot을 함께 외치며 토마토스파게티를 요리해간다. 빵을 다 구운 근학이가 베이컨을 자르고 아이들마다 알아서 부족하거나 맡은 일들을 해내는 걸 보니 녀석들이 졸업할 학년이자 가장 큰 형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마늘, 양파, 버섯을 차례로 볶으며 Fry the garlic, Fry the onion, Fry the mushroom을 말하고 잠깐 틈이 날 때 간단하게 묻기를 한다.
Q: What’s this? A: It's a tomato.
Q: What’s this? A: It's onion.(bacon, bread, tomato sauce, mushroom...)
Q: what color is it? A: It's red. (yellow, white, green...)
Q: Do you like it? A: Yes, I like bacon.
만들기 하면서 계속 묻고 답하니 자연스레 색깔과 맛, 좋아할 때 싫어할 때 표현을 익히는데 아이들 귀와 입은 영어로 듣고 말하는데 눈빛은 이미 어서 먹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수빈이는 아버지가 정말 스파케티를 잘 만든다고 엄청 자랑을 한다. 음식을 만들며 뒷정리를 시작해서 설거지부터 먼저 나서서 하는 아이들이 참 고맙다.
마침내 모든 재료와 토마토소스 그리고 스파게티면이 섞이자 아이들 입에 침이 고여 간다. 시간이 금세 가서 안되겠다 싶어 선생도 달라붙어 바깥 부엌에서 마무리를 하고, 안에서는 아이들이 완성을 했다. 준비한 그릇마다 수북이 토마토스파게티를 담고 유찬이가 파슬리 가루를 뿌려주고, 옆방에 있던 5학년들에서 한 그릇 가져다주고 그렇게 기다리던 먹는 시간,
How is the taste?
It tastes delicious. 오이시히.
정말 맛있단다. 이런 맛은 처음이라는 세영이 말에 다시 한 번 “정말이냐?” 묻는 선생도 진짜 맛있다. 다들 맛이 있단다. 우리가 만들어서 더 맛있다는 말도 곁들이고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달려온 동생들 한 입, 두 입, 세 입 떠먹이고 참 맛있게 먹는다. 동생들도 다 맛있단다. 문에서 부러워 쳐다보는 성범이 조금 먹으면 먹은 것 같지 않다며 먹지 않고 참더니 끝내는 선생에게 두 입을 맛있게도 받아먹는다. 동생들이 많이 부러워하는 걸 보며 5, 6학년 영어 공부로 하는 것이라는 6학년들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설거지와 방 청소를 나누어서 하는데 정말 6학년답게 아주 잘 한다. 윤영이 설거지 하는 손이 야물다. 늦었지만 마치고 난 뒤 모두 모여 오늘 잠깐이나 배운 표현들을 다시 익혀본다,
stir, pour, peel, beat, chop, fry, put, onion, garlic, mushroom, pepper...
사실 노래도 부르고 차근차근 영어 익히기를 해야 하는데 시간도 부족하고 선생 준비도 철저하지 못해 수업계획안대로 다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충분하게 즐기고 익혀야겠다. 이렇게 음식으로 영어 공부하는 재미가 아이들에게 신이 나지만 음식 재료를 준비하는 부모님들이 없으면 가능하지 못한 일이다. 음식 재료값까지 모두 살펴 아이들마다 돌아가며 알맞은 재료를 맡기로 했지만 모든 것을 학교에서 다 준비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우리 학교는 여러 다른 나라 말과 글 가운데 먼저 쉽게 배울 수 있는 말로 영어를 5학년 부터 2년간 배우고 졸업한다. 언어는 일찍부터 가르치는 게 좋다는 이론도 있지만 아이들 삶에서 먼 다른 나라 말과 문화는 어느 때든지 자기가 배우고 싶을 때 충분한 시간을 집중해 배우는 게 더 낫다는 이론도 많다. 대한민국 아이들과 어른들이 영어 때문에 힘들어하고 영어를 입시와 취직의 도구로 삼는 현실에서 다른 나라 말과 글 가운데 영어가 이 사회를 지배하는 힘은 아주 세다. 날마다 삶에서 다른 나라 말과 글을 쓸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책으로, 시험으로 낱말와 글월을 익히는 건 아주 오랜 기다림과 고생스런 노력끝에야 다른 나라 문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이 땅의 아이들은 오늘도 학원에서 학교에서 영어와 씨름한다. 한 번밖에 없는 삶 가운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린시절과 꽃다운 청춘을 오롯이 국영수에 바치는 시간이 더 많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 아이들에겐 국영수 말고 꿈 꾸고 놀고 어울릴 일이 가득한데 말이다. 특별하게 다른 나라 말과 글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는지 살피지만, 2007년부터 그동안 5,6학년들과 함께 해온 맑은샘 영어 교육 또한 교육 실천의 성과로 남아있다. 우리 아이들이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도록, 우리와 다른 삶을 사는 또 다른 세계의 문화를 만나는 즐거운 시간으로 가득한 영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옛날 영어 수업 일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얘들아 영어를 즐기렴. 배워서 남주자.”
첫댓글 맛있는 요리 먹으며 하는 공부 머리속에 쏙쏙 들어올것 같네요^^
영어 공부하는 이야기 많이 올려주세요~ 경험많으신 선생님께서 하시는 방법대로 하면 아이들이 배우는데 도움이 많이 될것 같네요~^^
수빈아. 고맙다. ^^. 아버지 띄워줘서...
외국어는 재미있게 그리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되는 도구로 잘 활용하면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