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안티구아 (아래 사진출처- http://blog.daum.net/2006jk/16136251) 처음에 건설된 안티구아는 지금의 도심에서 북쪽으로 6㎞ 떨어진 아구아(Agua)화산 아래다. 그러나 아구아화산이 폭발하면서 분화구에 고여 있던 물이 쏟아져 내려와 도시를 덮쳐 도시가 사라져 버렸다. 당시의 도시는 흙더미에 묻혀 지금까지 발굴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화산 폭발 이후 스페인 통치자는 도시를 지금의 과테말라시티 자리로 옮겼다. 이때부터 안티구아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200년간 영화가 지속되면서 이 도시는 인구 20만명이 사는 거대도시로 성장했다. 식민지의 값싼 노예와 넘쳐나는 자원으로 스페인 본토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도 1770년 대지진으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 지진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수도원과 성당은 파괴되고 안티구아도 초토화 됐다. 지금 안티구아 시내 곳곳에 무너진 채 남아 있는 유적이 당시 지진의 참상을 말해주는 것들이다. 그 후 스페인은 안티구아를 지금의 과테말라시티로 옮긴다. ‘안티구아’는 스페인어로 ‘고대의’ ‘옛날의’이라는 뜻이다. 안티구아는 작은 도시다. 하지만 안티구아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스페인시절의 식민유산이 많다. 파르케 센트랄(Parque Central)이 여행자들이 우선 모여드는 곳. 외관이 가장 화려한 산티아고 성당이 공원 동쪽에 있다. 북쪽으로는 에르마노 페드로와 메르세드 성당, 남동쪽에 산타 테레사 수도원과 산타클라라 성당이 있다.
산타 클라라수도원 성당 입구 (좌)
18세기 초의 건축물이다. 처음 성당은 1705년에 완성 되었지만 1717년 파괴 되었다. 대 부분 아직 재건되지 않은채 그대로 있고 , 다시 1723년에 새 성당을 짓기 시작해 1734년에 완성 되었다. 그러나 이 성당도 1773년 파괴되어 복구되지 못했다. 클라라 수도원은 외부로 나갈 일이 거의 없던 수녀들을 위한 건물이었기 때문에 공간이 여유 있다. 회랑식 안뜰이 있으며 파사드 장식도 섬세하다. 지금은 페허가 되었으나, 절제된 아름다움이 인상적이다.
문을 들어서 지하 묘소 건물 좌우 벽의 조각물
지하 묘소로 들어가는 아래 두 개의 굴과 채플 유리창 구멍
안쪽 기도실 복도
기도실 창문 천정
지하묘소 입구
지하 묘지
이츨 건물
다른 지하 묘소 입구
수도원 정원
수도원 정원
수도원 정원
수도원 정원
별 모양의 저수조
안티아구 건물
스페인 왕가 문양
안티아구 대성당
지진으로 무너져 100년을 방치 되었다가 1680년 재건 되었으나 다시 1976년 지진으로 무너져 방치 되어 있다.
대성당 통로 부분
대성당 작은 통로
대성당 돔 부분 기둥 조각
대성당은 이런 돔이 68개 있었으며 창문이 85개, 18개 작은 기도소와 19개 예배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돔의 천사 조각
돔의 천사 조각
마야의 눈으로 불리우는 성당 창문
벽의 둥근 부분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은 스페인 신부들의 묘지이다.
작은 기도실 입구
기도실 내부 촛불
기도실 내부의 그을린 제단
마야인 신부 신학교 기숙사
2층 건물 내부
건물 내부 모습
돌과 벽돌, 진흙을 이용한 마야 건축 방법
마야 건축법 위에 회를 바르고 프레스코를 그리는것은 스페인 건축 방법이다.
회벽위의 프레스코 그림
기둥 잔해
기둥의 부조
기둥과 기둥 사이의 아치
부엌과 굴뚝
부분적으로 손실된 성당 건물로 온전히 보존된 오른쪽 성당 건물은 현재 가난한 자나 연로한 자들의 진료소로 사용되고 있다.
성당 옆 작은 문
(사진, 글 출처- http://blog.daum.net/2006jk/16136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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