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임금은 "우리가 드디어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의 법통을 이어받아 우리가 드디어 '중화'가 되었다"라고 인쇄를 해서 신하들에게 나눠 준다. 1764년 영조는 "황조의 일월 우리 동국이 대명일세"라는 인쇄물을 인쇄해서 신하들에게 나눠주고, 영조 자신이 명나라의 중화 법통을 계승했다고 해서 기존의 '소중화'에서 '조선 중화주의'로 한단 계 더 격상시킨다.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는 조선은 조선이 아니라 주나라가 동쪽으로 온 것이다고 해서 '동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주자 성리학을 교조화 원리주의화 시킨 두 임금을 꼽으라면 영주와 정조다. 우리는 영조와 정조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바로 이런게 르네상스인가? 왕조실록 곳곳의 내용을 보면 영조와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 '주자 성리학을 완전히 수구골통으로 교조화시키는 데 앞장선 임금이다'라고 우리는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때부터 족보 날조가 시작된다. 이성무 국사편찬 위원장이 한국 족보의 80%는 시조가 중국에서 왔다고 기록했다.'라고 했으며, 중국인들은 노무현과 노태우 대통령 같은 노씨들은 강태공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자신들과 같은 조상을 가진 노태우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을 뛸 듯이 기뻐해서, 노태우의 경우 퇴임 후 중국에서 열린 세계 노 씨 대회에 참가 해 "선조의 고귀한 뜻을 높이 받들 것이다"라는 휘호를 써서 노 씨 기념관에 현판 글씨로 걸어 놨다.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시절 서울에서 세계 노 씨 대회를 열어서 참가자 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만찬을 했다.
중국 반 씨들은 반기문이 유엔사무총장이 되니까 중국 집창촌에 서는 큰 잔치를 열었다. 반기문은 유엔사무총장 시절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 황제들이 올라가서 하늘에다 제사를 지냈다는 태산에 오르기도 한다.
영정조 시절 조선에서는 자기들 시조를 중국에서 왔다고 족보를 날조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기자라는 사람이 조선에 와서 기자조선을 세웠다고 주장하는데, 기자라는 사람이 실제 조선에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는 물론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문헌 사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굉장히 불분명한데, 그런데도 그 당시 기자를 따라 왔다고 하는 기자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자기네 족보에다 청주한씨(淸州 韓氏), 태원 선우씨(太原 鮮于氏), 행주 기씨(幸州 奇氏), 서 씨(徐氏) 이런 사람들이 우리는 기자의 후예라고 자기들 족보에서 주장하고 있다. 또 그다음 기자를 따라 5천 명이 왔다고 하면서 그 5천 명 중에 "봉화 금씨(奉化琴氏), 태인 경씨(泰仁 景氏), 토산 궁씨(兎山 弓氏), 밀양 및 함평 노씨(密陽,咸平 魯氏)들이 모두 이 성의 시조이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기자가 조선의 왔는지 안 왔는지 이런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우리는 중국인의 후손이라는 거다. 주자 성리학의 천국인 중국에서 우리의 시조가 왔다고 하면 그만큼 집안의 권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만 갈아 치웠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이름까지도 갈아 치웠다.
고려말 조선 출범에 저항했던 성리학자 정몽주라는 사람이 있다. 이름이 '몽주(夢周)' 다. 몽주라는 것은 '꿈(夢)속에서라도 주(周)나라를 보겠다'라고 해서 '몽주'라고 이름을 지었다.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이름을 풀이하면 도(道)를 전(傳)한다는 뜻인데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도'라는 것은 주자 성리학의 '도'인데, 조선을 동주(東周)로 만드는 '도'를 전하기 위해 정도전으로 이름을 지었다.
우리가 성웅으로 떠받드는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아버지가 아들을 넷을 두었다. 그런데 중국을 아주 엄청나게 흠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들들 이름을 지을 때 삼황오제의 이름을 한 글자씩 빌려다 이름을 지었는데, 삼황오제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요임금, 순임금 뭐 이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첫째 아들은 복희씨(伏羲氏)의 희(羲)자를 따서 희신(羲臣)으로 지었고 둘째는 요(堯)임금 이름을 빌려서 요신(堯臣)이라고 짓고 세째는 순(舜)임금 이름을 따서 순신(舜臣)이라고 지었고 네째는 우(虞)임금 이름을 따서 이우신(虞臣)으로 했다.
이쯤 되면 한국인들은 스스로 자기네들이 중국 이름으로 창씨개명 한 거다. 그래서 이제 현대에 이르러 이름만 가지고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별을 못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와서 보니 조선사람들 이름이 모두 중국인인거다. 그러니 이제 일본 시대도 되었고, 또 내선일체 해야 하니 이제 이름을 모두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했더니 모두가 길길이 날뛰면서 난리 부르스를 췄다. 자 그렇다면 중국식 창씨개명은 되는데 왜 일본식 창씨개명은 안 되는 걸까?
일본통치 시절 일본이 창씨개명을 하라고 한 이유는 조선을 중화 문명으로부터 분리해 내선일체를 하기 위한 시도였는데, 그 창씨개명을 혐오하고 저주하는 이유는 그 창씨개명을 하라고 요구한 주체가 중화 문명이 아니라 오랑캐 왜구로 멸시했던 그런 일본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
주자 성리학이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모두 없어져서 소멸했나?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 DNA, RNA는 지금도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조선의 주저 성리학자 들은 자신들을 "중화의 본가"다, "우리가 명의 후예"라고 자임하면서 조상을 중국인으로 모두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중국인들이 측면에서 보면, 현재 조선의 족보를 들여다보고 "한국인 너희들은 중국인이 건너가서 의 건너가서 세운 화교국가다. 그런 화교국가가 어디 감히 싸가지 없이 중국에서 이탈해서 미국과 동맹 따위를 하노? 너거들은 빨랑 한미동맹 그런거 파기하고 중화 문명의 애비 품에 안겨라." 이것이 바로 한중동조론의 근거이고 뿌리다.
그러니까 시진핑 같은 대장 바퀴벌레가 트럼프와 만나 회담하면서 "한국은 중국 일부였으니까 미국 너희들은 손대지 마라. 게네들 원래부터 우리 꺼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다.
세줄요약 :
1. 짱개새끼들 개헛소리 한다고 욕처박기 전에 쟤들이 왜 저런 아가리를 놀리는지 그 이유부터 알자 이기야
2. 집에 있는 중국이 조상이라는 족보 전부 통구이 만들어라.
3. 씹선비 주자성리학 유교풍습 제사 지내지 마라. 바퀴벌레들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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